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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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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파편
주간 회고
통제감
고삐를 쥐고 있는 감각은 쾌락을 위함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것이다. 조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여 고삐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혹은 굴러떨어지더라도 인간은 쉽사리 죽지 않음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알 수 없는 현기증에 어찌 할 바 모른 채 짜증스레 손아귀에 힘을 조금 더 주어 본다. (2025.02.18.)
  1. 일간 파편
  • 최민우
AI의 한계
AI는 확장성이 없으며, 기억력 문제로 업무 컨텍스트를 숙지하지 못하며, 기술 유출의 위험이 있다. 기존 지식에 대해서만 알고있으며, 특정 기업의 업무 컨텍스트를 숙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술유출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건 거의 대부분의 신입 개발자도 동일하게 갖추고 있는 속성임. 이미 LLM은 우수하지 않은 신입 개발자를 충분히 대체할 정도는 되고, 이미 대체하고 있다는거 (2025.02.17.)
  1. 일간 파편
  • 최민우
물결
물결 치듯 밀려오는 회의감을 대처하는 법은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성싶다. 사소한 것에도 픽 토라져버리는 모양이 어린 아이만도 못한 것인데, 어찌 된 노릇인지 그 꼴을 23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고 토라지고, 사랑하고 토라지고, 사랑하고 토라지고. (2025.02.15.)
  1. 일간 파편
  • 최민우
#002 0208-0214
본 것 눈 내린 서울, 인왕산에서 내려다보는. 배구경기 고향 팀과 1위 팀의 대결. 무언가 처참한 기분. 경기장이 시끄럽고, 야구에는 수비 시간이 있는 것과 달리 조용히 쉴 수 있는 타이밍이 없다는 점. 역시 겪어 봐야 안다. 『사람의 아들』 (이문열) 전에 읽다 둔 책. 왜 읽다 뒀을까 싶을 지경. 결국 남는 질문: 나는 세상을 어떻게 더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인가? (아래 I 프로그램 이야기에서 계속) 종국엔 <이래셔널 맨>과 같은 문제의식. 사람 한 명 털거나 죽이는 것이 사변적으로 제도적으로 사회를 손 보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사회 체계로 숨어 드는 순간 이미 진 것은 아닌지. 익숙한 말이나, 정말 그럴까?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 익숙한 문제의식, 인상적인 표현. 유튜브 알고리즘을 끄고 피처폰으로 다시 옮겨 간 계기. 『아비정전』, 『러브레터』, 『테넷』, 『스파이 패밀리: 코드 화이트』 그저 그런 이야기들. 테넷 - 복잡하긴 하나, 그것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면 나쁜 영화 아닌가? 그러나, 2-3시간 내에 어느 선으로 설득해야 하는가? 관객의 마음에 오래도록 찐득할 정도로 진득하게 남는 영화가 좋은 영화는 아닐까? <무기세>, 서울대학교 미술관 심상용 관장은 언제나 제대로 된 전시를 기획할 줄 아는 사람. 이미지적으로도 좋았고, 담지하는 바도 끄덕일 법한 작품들. 그러나 실천으로 옮겨올 수 있는 것인가? 애초에 체념의 정서가 짙게 배태된 듯한 패배의 공간.
  1. 주간 회고
  • 최민우
고찰1
사랑을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하는 하트(💕) 모양은 심장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주체할 수 없는 심장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참으로 격렬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그 감정에 걸맞은 표현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사랑하던 이들 사이에 사랑이 식는다는 것은,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심장을 파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장을 파내면 우리는 죽는다. 다른 심장을 이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심장 없이 살아가는 그 찰나를 견뎌낼 무언가가 필요하다. 진짜 심장을 파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 감정을, 이 귀한 경험을 끊임없이 곱씹고 음미한다. (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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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우
설렘
자신은 연애보다 연애 이전의 설렘만을 즐기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당시 나는 비판했으나, 이제 와 생각해보니 이해 되는 말들이다. 설렘만이 삶을 들뜨게 한다. 사랑에 관해서든, 새로운 만남이든, 기다리는 일이든, 설레지 않고는 날 수 없다. 말을 못하게 되는 것도 설렘의 효능인가보다. 정말 어버버하기 짝이 없는 글이네. (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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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우
반추위(rumen)
어떤 생각을 시간을 들여 곱씹는 행위를 비유적 표현으로써 '반추'라고 부르곤 한다. 세상엔 너무 먹을 것도 많고, 대부분이 말랑말랑한 형태로 가공되어 나오는지라 보통은 하지 않는 일이나, 때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먹을라치면, 단박에 삼켜 소화해버리기도, 그렇다고 꼭꼭 씹고 있기도 무서워 어쩔 수 행하게 된다. 오늘은 입대한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의 감정들은 어디 숨어있다가 다시 튀어나와서 내게 이다지도 알 수 없는 향취를 올려보내고야 마는 것인가. (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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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 말하기
여러 명이 만난 모임에서 가진 돌아가며 가치관을 말하는 시간. 누군가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것, 또 누군가는 스스로의 허물에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어떤 누군가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는 것.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말일까? 이런 좋은 말들만 듣노라면 알 수 없이 분노하게 된다. 내가 1번 항목을 특별한 가치로 여긴다 하여 2번, 3번을 욕망하지 않는 것인가? 누군들 할 수 있는 말을 자신의 가치관이라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윤리를 미워하고 행복을 포기하며, 미래를 위해서는 친구조차 버릴 수 있다는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이 사회에도 마련되길 소망한다. 이딴 세상에는 이딴 이야기가 더 잘 어울린다. (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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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우
러브레터의 첫인상과 인상
러브레터를 제대로 본 건 처음인데 이 찜찜함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지? 분명 아름다운(엄밀히는 아름답게 그려 낸) 이야기인데, 어찌보면 짜증나는 형태의 사랑이잖아. 결국 와타나베는 대체재였을 뿐이야. 이것이 처음 생각이었다만, 곱씹어 보면 그럼에도 와타나베에게 청혼까지 하게 된 것은, 그들이 쌓아 온 고유한 시간 때문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랑 이야기다. 각각의 사랑이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동등한 사건이란 말이지. 그러나 동명이인 둘의 (짝)사랑은 단 한 번도 자세히 서술되지 않고 은근히 드러날 뿐이다. 흠.. 짜증나 젠장. 그리고 중간중간 그 느끼한 남자 좀 어떻게 해버리고 싶어. 마초적인 (so called 남성적인) 것들의 역함을 도무지 견딜 재간이 없다. 추후 말을 다듬을 예정. 그러나 당장의 인상 기록을 위하여.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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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0201-0207
본 것 영화 멜랑콜리아 이레셔널 맨 아비정전 만난 이 바보같기만 했는데, 멋진 바보가 되어 조우한 G군 오랜만에 만난, 전쟁터와도 같은 곳에서 살아 돌아온 M양 새로운 집단, 날 가장 설레게 하는 이들 생각한 것 부르주아의 우울감에 대한 이중적 감정 그들의 고통은 이해하면서도, 열받음을 어쩔 수 없음.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 편입되어 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해설: 어쩌면 나는 이미 그들에게 "너희는 돈이 많으니 행복해야지"와 같은 식으로, 행복을 강요하고 있는 것임. 그리고 나도, 삶이 여유로울 때는 같은 모습이었음을 생각하니 문득 부끄러워짐. 지금도 얼마간은 그러하겠으나. 외로움 '벗'의 존재에 대한 회의. 사랑이 부족한 현대 사회에 대한 염증. 회의감 한성이라는 내집단에 대한 회의 삶적으로는 본받을만 한 멋진 이들이나, 모두가 어느덧 번뜩임을 포기한 듯함. 그렇다면 아래 기수에서, 아직 지치지 않은 이들을 찾기? 그러나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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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쫓는 자(追光者)
有的爱像大雨滂沱却依然相信彩虹 "어떤 사랑은 마치 비가 쏟아지는데도 여전히 무지개를 믿는 것과 같아" -追光者 中 꿈꾸는 삶이 존재한다고 믿는가? 글쎄 모든 것은 철저히 자본주의의 논리 내에 편입되어 실익과 저울질될 만한 형태로 어떻게든 산입되어 있는 것은 아닐지. 최근 남성 사이에서도 상향혼을 추구하는 이들이 - 최소한 '이상'으로 고려하는 이들이 - 부쩍 늘었다고 느낀다. <모순>이 때 아닌 인기를 누린 것도 이러한 안진진의 선택에 공감한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인 성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삶도 어디엔가 존재하고, 그런 이들은 영감을 준다. (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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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감
다시 날아보고 싶어졌다. 태양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 오래도록 쓰지 않은 날개를 돋우고프다. (20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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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우
반증 가능성
"비판이 불가능한 의견은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근래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 과학에서의 반증 가능성이 떠오르기 십상이나, 그와는 달리 새로이 제시된 의견이라 하여 잠정적 권위를 갖는 것도 아니며, 말과 말은 각자의 타당함과 타당하지 않음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것. 나는 지적받기를 몹시 싫어한다만은, 그딴 인생이라면, 그런 말밖에 주고받지 못하는 관계라면, 그런 행동이라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이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은 아니었을른지.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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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없는 비관의 습관
사랑받지 못하는 삶은 여전히 가치 있는가? 주 1회 자신을 회상하는 글을 써 보겠노라 다짐했건만, 막상 글을 끄적이려다 보니 몰아치는 회의감 속에 휩쓸리고 말았다. 첫째로는 내 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적어도 내가 바라는 수준만큼은 아니다. 나의 가장 깊은 독자였던 이가 나를 떠난 뒤로는 언제나.) 둘째로는 실제 글의 내용에도 사랑 받은 이야기가 전무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랑 받는 것이 그다지도 중요한가? 글쎄, 뒤집어서 묻고 싶다. 사랑받지 못하는 삶은 가치가 있는가? 생명이라면 응당 지닌다고 인정할 법한 가치 이상으로, 정말 그 사람의 이름 석자로써 쓸모 있는 삶이긴 한가? 사실 스스로 갖춘 대답이 있다. 그런 삶은 단연코 가치가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고, 그것은 그들이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비틀거리는 이들에게 연명할 식량 수준의 부스러기 만치를 떼다 줄 뿐이지, 거기엔 감탄도 승복도 없다. 모두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게 멋진 옷을 차려 입고.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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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
탈출구를 전혀 찾고 있지 못하다. 감금의 근본적 계기랄지 원인과는 무관하게, 내가 비겁을 일삼으며 은총을 꿈꾸지 않는 상황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낮은 층위에서 끝없는 무료와 자기혐오를 반복하고만 있다. 문제가 있음을 느낀 것도 어느덧 옛일이다. 추락이 움직임의 표준이 되어버린 지금, 내게는 낙하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뒤집는 방법밖에는 없다. 기존에 보던 방식과 정반대로 생각함으로써 이 또한 나름의 고양이며 행복이라고 자위하는 수밖에. 그러자 알 수 없는 현기증이 찾아온다. 그래, 어쩌면 이것은 멀미일까. 몸담던 현실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날 때, 이를 테면 섬에 가기 위해 배를 탄다거나 빠르게 낙하하는 놀이기구를 탈 적에 경험하는, 그 조증을 동반한 어지러움인 것일까. 그렇다면 나의 외침은 더이상 절규가 아니다. 나만 뒤집힌 줄 알았더니 온통 뒤집혀 있다. (2023.08.28. → 20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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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우
사소한 충동
끔찍함을 마주하면 습관적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내 든다. 꺼내려고 꺼내는 것도 아니고, 마주한 것이 그다지 끔찍하지도 않음에도, 타인의 치부와 정신병과 안쓰러움을 미처 품어주지 못한 채, 그러나 동시에 그렇고자 하는 마음에, 이 둘 중 갈팡질팡 하나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하는 탓에 그저 소멸을 욕망할 뿐이다.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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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림에 관하여
결국 사랑한다는 말이 그다지도 무서워서 황망히 도망치다 뒤를 돌아보니,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비로소 나는 쫓기는 이가 아니라 쫓는 이었음을 깨닫는다. 오늘에서야 그토록 원하던 세 글자를 읊조려 보고서는 그저 울었다.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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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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