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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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 ‘창백한 푸른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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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ㅈ덤,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코스모스의 크기와 나이를 헤아리고자 한다는 것은 인류의 이해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젊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하며 용기 또한 대단해서 ‘될 성 싶은 떡잎’임에 틀림이 없는 특별한 생물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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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행성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푸른 질소의 하늘이 있고 바다가 있고 서늘한 숲이 펼쳐져 있으며 부드러운 들판이 달리는 지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돌이켜 보건대 인류는 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잠시 지구라 불리는 세계에 몸을 담고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감히 그 기나긴 여정의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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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코스모스(Cosmos)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 어이며 카오스(Chaos)에 대응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그리고 우주가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이 이 단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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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주 생명의 푸가
다른 별들 주위를 돌고 있을 수많은 외계 행성들에도 생명이 살고 있을까? 만일 살고 있다면 외계 생명(extraerrestrial life)도 지구에서처럼 탄소를 기본으로 하는 유기물일까? 외계 생명은 지구 생명과 얼마나 비슷하게 생겼을까? 아니면 그곳 환경에 적응하느라,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를까?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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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주 생명의 푸가
시계가 있으면 그 시계를 만든 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온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는 생명 현상의 다양성 그리고 그 생명 현상들 배후에 숨겨진 복잡미묘함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깊은 외경의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원자와 분자가 우연히 함께 들러붙어 미묘한 기능을 가진 생물로 변신한다니!

(중략)

그러나 다윈과 월리스는 설계자가 존재한다는 생각만큼 우리 마음에 들고 또 그만큼 인간적이지만, 설계자의 존재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자연 선택이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설명이었다. 자연 선택은 영겁의 세월 속에서 생명의 소리를 더 아름다운 음악 작품으로 조탁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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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주 생명의 푸가
우리는 식물을 먹음으로써 탄수화물을 섭취한 다음 호흡으로 혈액 속에 불러들인 산소와 결합시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리고 우리가 호흡 과정에서 뱉은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에게 흡수돼 탄수화물 합성에 재활용된다. 동물과 식물이 각각 상대가 토해 내는 것을 다시 들이마신다니, 이것이야말로 환상적인 협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지구 차원에서 실현되는 일종의 구강 대 기공의 인공 호흡인 것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순환 작용의 원동력이 무려 1억 5000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태양에서 오는 빛이라니! 자연이 이루는 협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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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현대 서구 세계에서는 점성술 관련 잡지를 어디에서나 쉽게 사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문 판매대에 가면 된다. 그렇지만 천문학 관련 잡지는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이 점성술 칼럼을 매일 연재하지만, 천문학 칼럼을 한 주에 한 번이라도 연재하는 신문은 찾기 힘들다. 미국에는 천문학자보다 점성술사가 10배 이상 많다. 파티에서 내가 과학자인 줄 모르고 “쌍둥이자리이신가요?”(맞힐 확률은 12분의 1), 또는 “별자리가 어떻게 되지요?” 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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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미 소년 시절에 시골 마을 마울브론의 개신교 신학교에 들어가 성직자가 되는 교육을 받았다. 그 학교는 가톨릭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첨병으로 쓰기 위해 어린 학생들의 정신을 신학적 무기로 훈련시키는 일종의 신병 훈련소와 같은 곳이었다. 케플러는 고집이 세고 두뇌가 명석했으며 독립심이 무척 강한 소녕이었다. 성격이 그러니 황량한 마울브론에서의 외로운 2년을 힘겹게 보내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에 남과 어울리는 일이 더욱 적어지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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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그라츠를 지배하는 대공은 카톨릭교도였는데 카톨릭 교리를 교조적으로 신봉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심지어 “이교도를 다스리기보다 차라리 그들의 국토를 초토로 만들겠다.”라는 맹세를 하기도 했다. 개신교도들은 경제적, 정치적 권력 밖으로 밀려났다. 케플러가 출근하던 학교는 문을 닫았고 이단으로 간주된 기도, 서적, 찬송가 등은 모두 금지되었다. 마침내 마을 주민들까지 일일이 불려가 개인적 신앙의 건전성 여부를 조사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입의 1할을 벌금으로 물어야 하거나 그라츠에서 추방당해야 했다. 케플러는 추방을 택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위선을 행하라고 배운 적이 없다. 나의 신앙은 진지한 것이다. 나의 신앙이 농락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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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뉴턴은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학파의 유대교적 유일신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와 같은 신념에 도달한 것은, 이른바 합리주의적 또는 회의주의적 사고를 거쳐서가 아니라, 전부 권위 있다는 고대 문헌들의 해석을 통해서였다. 뉴턴이 살펴본 바에 따르면 밝혀진 사료 중에서 삼위일체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삼위일체설을 후세 사람들이 거짓으로 덧붙여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계시로 밝혀진 신이 세 가지 위격으로 존재하는 삼위일체의 신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이신 유일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생각이었기에, 뉴턴은 평생토록 이 비밀을 지키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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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뉴턴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남에게 빼앗길까 늘 전전긍긍했고 동료 과학자들과 무서울 정도로 경쟁적이었다고 한다. 역제곱의 법칙을 발견하고도 10년, 20년이 다 지나서야 발표하는 일은 뉴턴에게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의 장대함과 복잡 미묘함 앞에서 뉴턴은 프톨레마이오스와 케플러와 마찬가지로 명랑하면서 또 정감 어린 겸손을 보일 줄도 알았다. 죽기 바로 전 뉴턴은 이렇게 썼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 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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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국과 지옥
과학은 자유로운 탐구 정신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어떤 가설이든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그 가설이 지니는 장점을 잘 따져 봐 주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이런 자세의 과학이라면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 누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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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로웰의 화성인은 선량하고 희망적이었으며 심지어는 약간 신적이기까지 해서 ‘우주 전쟁’에서 H.G. 웰스와 오선 웰스가 보여 준 사악하고 위협적인 존재와는 사뭇 달랐다. 이 서로 다른 두 아이디어는 일간 신문의 일요 부록판과 공상 과학 소설 등을 통해서 대중의 의식 속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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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미국의 행성 탐사 계획을 주관하는 미국 국립 항공 우주국(NASA)은 종종 예측 불허의 예산 삭감을 당하고는 한다. 기대치 않던 예산의 증액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NASA의 과학 활동의 정부로부터 실질적인 지원을 거의 못 받고 있던 터라, NASA의 예산을 감축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과학이 희생양이 되는 수밖에 없다.
비시니액이 여느 사람 같았으면 바이킹 생물학 팀에서 당장에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비시니액은 관대하고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뛰쳐나가는 대신, 화성에서 생물을 탐사하려는 이 계획에 최상의 기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결국 그는 지구상에서 화성과 가장 비슷한 환경이라고 생각되는 지역, 즉 남극의 건조 계곡(dry valley)를 찾아 가기로 작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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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
생명의 본질은 우리를 만들고 있는 원자들이나 단순한 분자들에 있는 게 아니라 이 물질들이 결합되는 방식에 있다. 인체를 구성하는 화학 물질의 총가치가 97센트라는 둥 10달러라는 둥 하여간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주장의 글을 종종 읽을 수 있다. 돈으로 친 우리 육체의 가치가 그것밖에 안 된다니 서글프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체를 가장 기초적인 부품으로 환원시켰을 때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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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끊임없이 지속되는 탐험과 발견이야말로 인류사를 특징지은 인간의 가장 뚜렷한 속성이었으며, 인류사를 장식한 일련의 탐험 중에서 보이저 계획이야말로 가장 최근의 사건이다. 15, 16세기에는 스페인에서 아조레스(Azores) 제도까지 항해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지금은 이 시간에 지구와 달 사이에 놓인 우주의 해협을 훌쩍 건너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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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행자가 들려준 이야기
그렇지만 태양에서 명왕성까지의 거리의 2~3배 정도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이르면, 성간을 떠도는 양성자와 전자들의 압력이 오히려 태양풍의 압력을 능가하기 시작한다. 거기가 바로 태양계와 그 바깥 세상의 경계 지대인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태양 제국’의 국경이라는 뜻에서 이 지역에 ‘태양권계(heliopause)’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보이저 호는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아마 21세기 중반에는 이 태양권계를 넘어설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다른 항성계에 들어서는 일이 없이 별들 사이에 펼쳐진 무한의 공간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갈 것이다. 영원히 방랑할 운명의 우주선이 ‘별의 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와, 엄청난 질량이 묶여 있는 은하수 은하의 중심을 한 바퀴 다 돌 때쯤이면 지구에서는 이미 수억 년의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인류의 대항해(epic voyage)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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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의 등뼈
기존 원인이 자연적 근원인 이치의 샘이 손에 잡히기를 거부할 때, 사람들은 이 신이라는 용어에 자주 기대게 된다. 원인에 이르는 실마리를 놓치자마자, 또는 사고의 흐름을 더 이상 쫓아가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원인을 번번이 신의 탓으로 돌려서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때까지 해오던 원인 탐구의 노력을 중단하고는 한다. …… 그러므로 어떠한 현상의 결과를 신의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를 신으로 대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는가? 이제 ‘신’은, 인간이 경외심 가득한 마음으로 듣는 데 익숙해져 버린, 하나의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 폴 하인리히 디트리히 홀바흐 남작, ‘자연계’, 17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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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의 등뼈
하지만 기원전 6세기에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사조가 태동했다. 그것은 인류 사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생각들 중의 하나이다. 고대 이오니아 인들은 우주에 내재적 질서가 있으므로 우주도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연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모종의 규칙성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자연에게도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이렇게 훌륭하게 정돈된 질서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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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의 등뼈
데모크리토스는 그 안에 있는 별을 하나하나 분간해 볼 수는 없지만 은하수가 수많은 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별들의 집단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1750년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된 토머스 라이트(Thomas Wright)는 데모크리토스의 혜안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천문학이 광학 기술 발전의 덕을 보기 훨씬 전부터 데모크리토스는 흔히들 말하는 이성의 눈만 가지고도 무한의 심연을 충분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후대에 더 유리한 조건에서 능력 있는 천문학자들이 이룩한 수준에 이미 오래전에 도달했던 셈이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사고력이야말로 헤라의 젖을 극복하고 밤하늘의 등뼈를 뛰어넘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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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의 등뼈
피타고라스학파는 수학적 논증의 객관성 및 확실성에 매료돼 있었으며, 수학적 논증이야말로 인간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순수하고 더러움이 없는 최상의 인지 세계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러한 논증 체계야말로 코스모스였다. 그 안에서는 직각삼각형의 변조차도 단순한 수학적 관계에 순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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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의 등뼈
예수회 사람들은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우주관을 중국에 소개하여 당시의 중국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장본인들이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유클리드와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검열한 후, 태양 중심 우주관을 속이고 덮어 두는 데 온 신경을 썼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속셈에서였다. 과학이 인도, 마야, 아스텍 문화권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것도 이오니아에서 과학이 쇠퇴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만연된 노예 경제의 병폐 때문이었을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 사회에서 편히 살던 인물이었다. 그들은 노예 제도의 부당성에 괴로워하기보다 오히려 억압을 정당화하는 논지를 폈으며, 전제 독재 군주를 섬겼고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가르쳤다. (노예 사회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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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의 등뼈
원래 밝기를 알고 있는 가로등의 희미한 정도로부터 나와 그 가로등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같은 이치에서 별까지의 거리도 측정할 수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하위헌스가 사용했던 거리 측정의 방법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모두 100여 개에 이르는 구상성단들의 거리를 알아낸 다음에, 섀플리는 이들의 3차원적 분포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구상 성단들이 태양계 근방이 아니라, 은하수 은하의 궁수자리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하여, 대칭적인 분포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은하의 중심은 태양계가 아니라 태양계에서 궁수자리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구역에 있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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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의 등뼈
인류사의 위대한 발견과 대면하게 될 때마다 우주에서 인류의 지위는 점점 강등됐다. 한 발짝 한 발짝 무대의 중심에서 멀어질 때마다 강등당하는 인류의 지위를 한탄하던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가슴과 가슴 깊숙한 곳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초점이며 지렛대의 받침목이기를 바라는 아쉬움이 아직 숨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녕ㄴ 코스모스와 겨루고자 한다면 먼저 겨룸의 상대인 코스모스를 이해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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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천체들의 경우에만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천체들 사이의 거리를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광속의 유한성을 실감하게 된다. 같은 방 안에서 나와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친구를 바라본다면, 나는 사실 그의 ‘지금’ 모습이 아니라 1억분의 1초, 즉 100분의 1마이크로초 전의 ‘과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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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별들의 삶과 죽음
에딩턴의 질문은 전자의 구름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내 팔꿈치에 있는 원자의 외곽부는 음전하를 띠고 있다. 책상을 구성하는 원자도 이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음전하들은 서로를 밀친다. 내 팔꿈치가 책상을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갈 수 없는 까닭은 음전하들 사이에 생기는 강력한 척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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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별들의 삶과 죽음
애플파이를 91번 가른다면, 즉 탄소 원자를 한 번 더 쪼갠다면 작은 탄소 원자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원자, 즉 탄소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원자가 만들어진다. 원자를 자르면 원자의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반분하기를 더 계속해 보자.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양성자를 더 작게 쪼갤 수는 없을까? 양성자들은 높은 에너지를 갖는 다른 소립자, 예를 들어 양성자로 때려서 나타나는 반응을 면밀하게 조사해 보면 양성자 내부에 더 근본적인 입자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물리학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소립자들을 구성하는 더 근본적인 알맹이를 쿼크(quark)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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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별들의 삶과 죽음
전자와 양성자를 하나씩 갖고 있으면 수소, 둘씩이면 헬륨, 셋씩이면 리튬, 넷씩이면 베릴륨, 다섯씩이면 보론, 여섯씩이면 탄소, 일곱씩이면 질소, 여덟씩이면 산소,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원자 번호 92의 우라늄은 양성자와 전자를 각각 아흔두 개씩 갖는다.
아무튼 전자는 전자를 밀치고, 양성자는 양성자를 배척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원자핵에 전하를 띤 입자라고는 양성자뿐인데, 핵이 와해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핵에는 또 다른 종류의 힘, 즉 핵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핵력의 정체는 중력도, 전자기력도 아니다. 핵력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작용하므로 갈고리에 비유될 수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아주 가까이 있을 때 핵력이라는 이름의 갈고리가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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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별들의 삶과 죽음
대낮에 태양을 1초만 바라봐도 총 10억 개의 중성미자가 우리 눈을 통과한다. 통상의 광자는 망막에 걸려 시신경에 반응을 일으키지만, 중성미자는 망막에 전혀 걸리지 않고 시신경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머리 뒤로 그냥 빠져 나간다. 대낮이 아니라 한밤중에 태양이 있을 곳, 즉 내 발 아래의 지면을 보고 있어도 내 눈을 통과하는 중성미자의 개수는 대낮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서 태양과 내 눈 사이에 지구가 가로놓여 있어도 육안을 통과하는 중성미자의 개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가시광선에 대해 유리판이 투명하듯이 중성미자에 대해 지구가 통째로 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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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별들의 삶과 죽음
지구에 무거운 원소를 공급한 별들 중의 일부는 아직 은하수 은하 저편에 백색 왜성으로 남아 우리 모르게 조용히 숨어 있을 것이다.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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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별들의 삶과 죽음
중력이 10억 g가 되면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렇게 큰 중력장에서는 직진하던 빛마저 그 진행 방향이 꺾이기 시작한다. 지극히 높은 중력장 속에서는 빛조차 영향을 받는 것이다. 중력의 세기를 이것보다 더 높이면 하늘을 향해 직진하던 빛이 지표로 끌려 내려온다.

(중략)

이렇게나 강한 중력장을 동반하는 천체를 우리는 블랙홀(black hole)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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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영원의 벼랑 끝
공간이 계속 팽창하면서 원시 화구의 온도가 내려가 우주 배경 복사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빛을 방출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온 우주가 눈부시게 빛났을 것이다. 그 후 화구의 온도가 더욱 낮아지면서 우주 배경 복사의 파장 대역은 적외선과 전파 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주는 깜깜한 암흑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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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영원의 벼랑 끝
수축과 팽창의 새로운 주기가 열릴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코스모스, 그것은 바로 인도 신화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우주의 실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코스모스가 바로 그렇게 진동하는 우주라면 대폭발은 우주 창조의 순간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이전 우주가 완전히 파괴되는 최후의 순간으로 볼 수도 있다.
우주가 실제로 진동한다면 의문의 행렬은 계속된다. 팽창에서 수축으로 바뀔 때, 그래서 은하의 적색 이동이 청색 이동으로 반전될 때 인과 관계에도 역전이 생겨 결과가 원인에 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연못에 파문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내가 돌을 던지는 격이란 이야기다.
우리 우주가 영원무궁 팽창하는 우주인지, 아니면 팽창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우주인지 누구나 확인하고 싶을 것이다.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주 물질의 재고를 조사하는 것이 그 한 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코스모스의 끝, 영원의 벼랑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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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래로 띄운 편지
다시 말해서 각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정보를 영어로 기술한다면 약 1,000권에 이르는 책들을 높이 쌓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보의 양으로만 따지면 세포 하나하나가 하나의 도서관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몸은 약 100조 개의 세포들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 몸 어느 구석이든 그곳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는 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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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래로 띄운 편지
대뇌 피질에서 물질이 의식을 창출하므로 대뇌피질이야말로 인류가 꿈꾸는 모든 우주여행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잇다. 두뇌 전체 질량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대뇌 피질이 직관과 비판적 분석의 중추이다. 아이디어의 창출과 영감의 발현이 바로 여기 대뇌 피질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읽기와 쓰기, 수학적 추론과 작곡이 이루어진다. 인간으로 하여금 의식적 삶을 가능케 하는 부위가 다름 아닌 대뇌 피질인 것이다. 인류와 다른 종의 차별화가 대뇌 피질에서 비롯되며, 인간의 인간다움은 바로 이 대뇌 피질 때문에 가능하다. 한마디로 문명은 대뇌 피질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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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래로 띄운 편지
그러므로 우리는 비비나 도마뱀의 유전적 행동 양식에 더 이상 묶여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자신이 뇌 속에 집어넣은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각자는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체로서 누구를 아끼며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하지, 파충류 수준의 두뇌가 명령하는 대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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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은하 대백과사전
만약 아레시보 망원경과 같은 크기의 전파 망원경이 외계 행성에 설치되어 있다면, 비록 그 행성이 1만 5000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외계 문명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1만 5000광년은 태양에서 은하수 은하 중심까지 거리의 절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현대 과학 기술은 우리와 교신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만 한다면 그들과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수준에 와 있다. 그리고 전파천문학이야말로 인류의 이 거대한 사업에 꼭 들어맞는 과학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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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은하 대백과사전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은 아스텍 인들의 책을 보고 또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이집트의 책과 거의 비슷하다.”라고 감탄했다.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는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이렇게 서술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이다. 그들의 활동과 행동거지는 거의 스페인에서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조직적이고 질서정연하다. 이들이 기독교를 모르고 다른 문명 국가들과 교류를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떻게 이토록 훌륭한 것들을 지니게 됐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 글을 쓰고 2년 후에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과 그 외의 아스텍 문명을 철저히 파괴해 버렸다.
그자들은 황금을 보자 원숭이들처럼 날뛰며 좋아했습니다. 온통 탐욕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우리의 금을 닥치는 대로 자기들 손에 넣었습니다. 황금에 대한 그들의 욕망은 끝이 없는 듯했습니다. 황금에 굶주려 죽을 지경에 이른 존재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뱃속을 온통 황금으로 채우고 싶어 했습니다. 마치 황금을 먹는 돼지인 양 말씀입니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자기네들끼리 떠들면서, 황금 장식이란 장식은 모조리 앞뒤로 분해해서 떼어 갔습니다. 금이라곤 남은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탈취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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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은하 대백과사전
지구 문명에 악의에 찬 외계 문명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동족이나 다른 문명권과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남과 어울려 살 줄 모른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후진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의 공포감은 우리 자신의 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혹은 약간 후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히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콜롬버스와 아라와크 족(Arawaks)의 만남이 그랬고 코르테스와 아스텍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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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은하 대백과사전
돌연변이의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극히 일부는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성격의 문제가 우리를 수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 엄청난 수의 화상 환자, 시력을 상실하고 지체가 절단된 불구자들의 긴 행렬, 각종 질병, 괴이한 전염병, 공기와 물에 오랫동안 만연할 유해성 방사능, 악성 종양에 대한 공포, 사산아의 출산, 장애아의 출생, 적당한 치료법의 부재, 아무런 소득도 없이 자기 파괴의 길을 걸어온 문명에 대한 허탈감, 이 모든 재앙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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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신경심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James W. Prescott)이 산업화 이전 단계에 있는 400여 개의 사회를 선정하여 그 문하들을 상호 비교하는 통계 분석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유아기에 피부 접촉을 통한 애정 표현이 발달된 문화일수록 폭력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프로스콧의 주장에 따르면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회들은 주로 육체적 쾌락을 박탈당한 사람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인생의 결정적 두 단계인 유아기 또는 성인기 중에서 어느 한 시기에라도 피부 접촉을 통한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폭력 성향으로 기울게 된다는 것이다.

(중략)

이와 대조적으로 유아 체벌이 성행하는 사회에서는 노예 제도, 잦은 살인, 고문, 심지어는 원수의 수족을 절단하는 행위 등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여성 학대가 극심하고,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초자연적 존재가 개인의 일상을 간섭한다고 철저히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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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마치 신화의 서사시처럼 들렸을 것이다. 옳은 판단이다. 이것은 하나의 위대한 신화이다. 현대 과학이 서술한 우주 진화의 대서사시인 것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만들어진 인간이 자신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하다니. …… 우주에서 벌어졌던 진화의 단계를 차근차근 이해하노라면, 거대한 ‘수소 산업’의 최종 산물로서 태어난 생물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확실히 알게 된다.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도 우리와 같이 놀랄 만한 돌연변이를 이룩한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 먼 곳 어디에선가 우리에게 들려줄 그들의 흥얼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