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투룸 자취방은 현관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려면 반드시 계단을 올라야 했다. 반지하 생활자의 숙명이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계단은 야박하고 괘씸한 물건이다. 20센티미터 높이의 계단을 하나 오르기 위해선 최소 21센티 이상 발을 올려야 했다. 18, 19센티 정도 발을 들고 계단을 오르겠다 주장할 순 없다. 최소한의 합격선을 넘지 못한 자에게 세상은 반 계단조차 인정해 주지 않는 법이다. 이 계단의 법칙이 나를 반지하에 살도록 만들었다. 늘 15센티 정도 발을 들었다가 포기하고는 금세 다른 계단을 찾아 전진해 온 결과, 나는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미처 한 계단도 못 오르고 층계 앞에서 탭댄스만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