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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무능감 극복기
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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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되고 나서 새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면, 매주 월요일 퇴근길에 로또를 사는 것이다. 대학생 때 저런 건 불행한 사람들이나 사는 것이라며 대차게 비웃곤 하던 내가 로또 사기를 습관의 하나로 삼는다는 것은 불행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왜 직장인이 되면서 불행하게 되었던가. 이유는 간단하다. 월급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것은 벌기 이전엔 까짓것 없어도 인생 사는데 별 지장이 없는 것처럼 굴 수 있지만 막상 벌기 시작하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나는 이 돈만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 내가 지금 받는 2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론 사치를 부리는 것은 고사하고 그럭저럭 건실한 미래ㅡ취미생활도 즐기고, 차도 사고, 집도 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도 하고ㅡ조차 요원함은 굳이 경제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계산할 수 있었다. 미래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에 맡기고 불행하지 않기란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로또를 살 만큼의 불행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나를 무엇보다도 불행하게 만든 것은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나누는 대화였다. 점심시간 스몰토크의 단골 소재가 회사 욕일 수밖에 없는 것은 중소기업의 생리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회사 욕의 결론이 묘하게 자조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나는 너무나 불행했다. “이놈의 회사...문과를 나온 게 죄지”. 이 집단적 자조의 기저에 흐르는 생각은 우리는 무능하고, 무능해서 이런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패배주의였다.
요약하자면 나는 작은 월급이, 그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행했으며 무엇보다도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나의 무능에서 찾아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패배주의 때문에 불행했다. 로또는 이 모든 불행을 한 큐에 날려버릴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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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요일에도 퇴근길에 복권가게에 들렀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남자가 자동 5게임짜리 복권을 받아들고 떠나는 걸 좇다가 길가에 잠시 세워둔 그의 차에 눈이 간다. 벤츠다. 벤츠 끄는 사람들도 로또를 사는구나. 희망을 돈 주고 사야 하는 처지 안에서도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나도 로또 당첨되면 벤츠나 사볼까. 아니다, 앞코에 마크가 없으면 아반떼랑 벤츠랑 구별도 못하는 ‘차알못’ 주제에 무슨 벤츠는 무슨 벤츠. 하기야 내 인생이 벤츠랑 무슨 상관이 있겠어. 그러다가 갑자기 내 인생에도 잠시 벤츠가 머물렀었던 때가 있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취업 전에 여행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였다.
순례길에서 만난 애나는 꽤나 ‘히피적’인 사람이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자동차를 끌고 다니는 이 시대에 굳이 굳이 몇 백 키로미터를 걷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 히피스러운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긴 하지만 애나는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례자 사무소가 있는 생장이라는 마을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지만 애나는 거기서 800km 떨어진 프랑스 리옹의 자기네 집 현관에서부터 걸었다. 마라톤 대회도 아닌데 시작 지점을 정해놓은 게 우습다는 이유였다(이런 저항정신이야 말로 히피정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애나는 걷는 하루 종일 군인들이 군가 부르듯이 남의 눈치 따윈 보지 않고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댔다(히피는 뮤직을 사랑한다). 애나는 노래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그 노래만 파는 타입이었는지 늘상 같은 노랠 불렀는데 이 노래의 제목이 바로 벤츠였다. 우드스탁의 아이콘, 제니스 조플린의 메르세데스 벤츠.
애나는 좀 특이하긴 하지만 활기 넘치는 길동무였다. 나 같은 샌님도 기꺼이 록밴드의 세션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우리의 무대는 이런 식이었다.
"오 주여(합창) / 나한테 사주지 않을래요(짝) / 멀셰디스 벤츠를(돌림노래) / 내 친구 들은 전부 포르쉐를 몰아요. 나는 보상받아야 해요(짝) / 내 평생 죽도록 일했고 도와 주는 놈들도 없어요(하이라이트, 진지하게 열창) / 그러니 주님(완급조절 중요) / 제게 사주지 않을래요 / 멀셰디스 벤츠를(관객 모드로 전환해서 열심히 박수)"
록스타를 따라다니면서 풍월을 읊다보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히피의 주제가라고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반 체제적인 가사란 말인가! 죽도록 열심히 일하고, 친구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물주에게 벤츠를 요구하는 노랫말은 그 당당함 때문에라도 벤츠를 끌 자격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왜 성실하고 공정하게 경쟁에 임했음에도 벤츠를 끌 수 없는가? 어떤 물건들은 왜 그렇게 비싸야만 하는가? 우리는 터무니 없이 비싼 물건들을 보며 부러워하거나 자책할 것이 아니라 노력, 경쟁, 보상이라는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해 봐야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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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용지를 넣고 멀어지는 벤츠의 뒤꽁무니를 쳐다보며 한편으론 애나와 불렀던 메르세데스 벤츠를 생각했다. 묘하게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심지어 약간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노래의 반체제성이 울분을 조금이나마 환기해준 탓일까? 갑자기 모든게 우스워졌다. 주머니의 로또도 우습고 벤츠를 끌면서도 로또를 사는 사람도 우습고 그걸 바라보며 ‘나는 게으르고 무능해서 저런 건 못 타’라고 혼자 열폭했던 것도 우스웠다. 도대체 나한테 이렇게 가혹하게 굴어서 뭐에 쓴담? 벤츠 끄는 사람을 보고 능력 있다고 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벤츠 못 끄는 사람보고 능력 없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오류가 아닌가. 내가 스스로에게 씌운 무능의 혐의가 오류일뿐더러 천박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하니 또 웃음이 났다.
이 천박함을 반성해보자는 생각으로 카카오톡 내게쓰기를 켰다. 방금의 깨달음을 최대한 명징하게 표현하려 애쓰며 몇 마디를 적어봤다. 내가 무능하고 게을러서 벤츠를 못 끄는 것이 아니다. 그냥 벤츠가 존나 비싼거다. 다른 버전으로도 적어봤다. 내 월급이 작은 것은 내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냥 월급이 적은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적고 보니 꽤 마음에 들었다. 불행의 가장 큰 부분을 덜어낸 기분이랄까. 여전히 막막하고 궁색하고 답이 안 보이는 인생이지만 다음 주 월요일의 퇴근길에는 로또 대신 떡볶이를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발행일 2020년 9월 9일
야망백수
*이 에세이는 풀칠 제 9호 : 무능 : 무능감 극복기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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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
일상력
1 아무래도 존버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존버는 내가 키우는 스투키의 이름이다.) 존버의 화분에서 시큼한 냄새가 진하게 풍기길래 길다란 줄기를 살짝 당겨봤더니 '뽕'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뿌리가 통째로 뽑혀버렸다. 그러고 보니 청록색의 영롱한 자태를 뽐내던 스투키가 생기 없는 연두색을 띠기 시작한 것도 벌써 몇달 전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죽은 식물에 설탕물과 탄산수로 매주 정성 어린 부관참시를 하고 있던 셈이다. 미동도 비명도 없이 명을 다한 존버의 사체를 화장지에 고이 싸서 종량제봉투에 던져 넣었다. 자신의 이름처럼 존나 버티지 못한 채 존버는 떠나버렸다. 식물을 곧잘 시들게 하는 편이라며 구매를 망설이던 나에게 '이 녀석을 죽이기는 쉽지 않을걸요'라던 판촉사원의 도발 섞인 말이 떠올랐다. 햇빛을 많이 쐬지 않아도, 심지어 물을 주는 것을 까먹어도 된다기에 냉큼 구입했던 건데. 이름을 'John Burr'라 지은 것도 다 끈질기다는 생명력 때문이었는데. 그 쉽지 않다는 일을 가뿐히 해낸 스스로가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졌다. 2 곱게 죽지 못한 존버의 망령이 이 집에 깃든 걸까.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끈 힙합 아티스트의 영상에서 뜬금없이 나무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나무가 죽으면'이라는 말로 시작한 두 사람의 대화는 통렬한 자기반성으로 이어졌다. '집에 있는 나무가 죽은 거야. 잘 안 죽는 건데. 나무가 죽는 걸 보니까 내 생활 패턴이 나무에 대입해서 보이는 거지. 만날 늦게 자고 햇볕 안 보려고 암막커튼을 쳐두고... 아, 내가 잘못되고 있구나.' '나무가 죽는 건 그만큼 내 생활에 여유가 없다는 거 같아. 내 거실에 놓인 나무 한 번 바라볼 여유가 없는 거야.' 소금과 우원재는 나무의 죽음이 곧 일상이 파괴됐음을 알리는 경고 같은 거라고 했다. 집에서 키우는 나무가 죽었다는 건, 본인이 그만큼 엉망으로 살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거라고. 나는 존버의 죽음을, 혹은 일상이 망가진 현실을 비겁하게 회피하고 싶었던 걸까. 존버의 생명력을 의심하며 구글링을 해봤지만 스투키 뒤에는 '키우기 쉬운'이나 '생명력 강한', '질긴'이라는 키워드가 뒤따를 뿐이었다. 나 또한 정말 엉망으로 살고 있구나. 내 삶도 정말 실시간으로 개박살이 나고 있구나. 여지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풀칠
잃어버린 근본을 찾습니다
최근 말 한마디에 무력감을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꽤나 매서운 질문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씩 이직하셨는데 여기도 1년 다닐 건 아니죠?” “담당했던 업무가 조금씩 다르던데, 경력이라고 봐야 할까요?” 3년차 경력과 3개의 직장, 3개의 직무. 고단수인 인사담당자에게는 잡스러운 경력을 찰흙 붙이듯 얼기설기 엮어 제출한 이력서가 손쉬운 먹잇감처럼 보일 게 뻔했다. 약점을 간파 당하면 이내 날선 질문들이 귓가로 들어와 뇌리에 콕콕 박힌다. ‘그러니까요, 그게 말이죠...’ 그럴 때마다 미처 당황을 감추지 못한 채 어물거리며 답변하기 시작한다. 면접이 진행되며 질의의 난이도가 고조됨에 따라 심박 수가 치솟고 호흡마저 가빠진다. 예상 범위 안에 있는 질문이고 이미 수차례 당했는데도, 도통 적응이 되질 않는다. 구질구질한 변명에 가까운 답을 늘어놓고 나서야 굳어있는 면접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한숨만 안 쉬었다 뿐이지, 마스크 위쪽의 표정만으로도 이미 이 면접이 망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다. 복싱은 잘 모르지만 어설프게 가드를 올린 채 원투 펀치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그 뒤로 결정타가 날아든다. “다음 질문드릴게요. 파주 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대뜸 이쪽의 근본을 물어오는 근본 없는 질문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데, 그 질문은 못 들은 걸로 하겠다는 듯 면접관을 빤히 쳐다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친절한 눈빛을 띈 자비심 없는 면접관은 똑 부러지는 말투로 질문을 재차 던진다. ‘그 항목은 자기소개서에 충분히 적어두지 않았나요? 분량이 모자랐나요?’라고 되묻고 싶지만, 이미 입이 절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까 저는 여기저기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고요. 책 모으는 걸 좋아하고, 음악 듣는 걸 그보다 조금 더 좋아하고... 영화도 그럭저럭 좋아해요. 또, 한화이글스랑 리버풀 팬이고... 어...”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멍청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주접스럽게 나열하고 말았다. 나조차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몽땅 내뱉고 나서야 시야가 돌아왔다. 면접관을 표정을 보자마자 이 면접의 결과를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면접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집으로 돌아와 애꿎은 베개와 이불을 두들겨 댄 것만큼은 확실하게 떠오른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난 뒤에야 쪽팔림의 구렁텅이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이불 걷어차는 걸 그만두고 나를 한방에 넉다운시킨 그 질문을 곱씹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면접에서 떠벌거린 것처럼, 나의 취향이 나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는 걸까. 퍼스널 브랜딩이 득세하는 시대라는데 본인도 제대로 자랑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시대에 뒤처진 모지리가 아닐까. 아니, 애초에 몇 마디 말로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설명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나는 어떤사람인가. 차라리 스무 살 때의 내가 이 질문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워낙 하고 싶은 게 많았던 투지 넘치는 시기였으니 찰나의 고민도 없이 답하지 않았을까. 좋아하던 게 무엇인지 맹렬하게 쫓던 스물다섯 때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답변을 찾을 수 있었을 거 같다. 사회(직장)의 쓴맛을 찔끔 맛봤을 뿐인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단정 짓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런 인간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떠벌리기엔 그 분야에 나보다 재능과 열정이 넘치는 인재들이 즐비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덕업일치에 실패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고, 취향에 대한 애착도 전과 같이 않아서 '이거 없으면 못 산다' 싶은 것도 딱히 남아있지 않았다. 겨우 몇 년 사이에 나는 열정도 취향도 변변찮은 심심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풀칠
‘건강’이라는,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진 맙시다.
결국 번아웃이 찾아왔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기미는 있었다. 매주 수요일쯤 되면 탈진이 찾아왔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거의 좀비처럼 죽지 못해 업무를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누가 나에게 맡겨둔 것 마냥 대형 프로젝트가 내 앞으로 밀려왔다. 어렵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속으로 앓으며 야식을 먹듯 야근을 해야 했다. 어느 정도 내 욕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놈의 완벽주의. 일은 많은데 꼼꼼하게 처리하고 싶은 맘에 늦은 밤까지, 어떤 날은 새벽까지 업무를 붙들고 있었다. 마치 대학생 시절 과제를 해치우듯이. 하필, 이라고 해야 할지 때 마침이라고 해야 할지. 대형 프로젝트를 앞둔 월요일 아침. 눈을 뜨면서 단박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침부터 손발에 힘이 없어서 겨우겨우 출근과 아침회의를 마쳤고 무척 창백한 얼굴로 팀장에게 내 상태를 알렸다. 병원에 다녀오라던 팀장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집에 가서 쉬라는 얘길 해줬다. 이직 후 처음으로 낸 병가였다. 코로나 걱정이 아예 없지는 않았을 것이나 그래도 호사스러운 처사임에는 분명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정확히 내가 겪었던 경험이 번아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말 그대로 ‘번아웃’이라는 말이 내 상태에 가장 적절한 표현처럼 느껴졌다. 정신을 한 데 집중하기 어려웠고 두통과 매스꺼움이 찾아왔다. 온 몸이 퉁퉁 붓는 것과 동시에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번아웃, 더 정확하게는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치면 각종 글이 쏟아진다. ‘풀리지 않는 피로’, ‘20대 번아웃’, ‘번아웃 진단법’, ‘무기력증 극복하기’ 등등. 비단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마 주니어 직장인들에게 번아웃 증후군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한때 내가 풀칠 멤버인 파주님의 집에 기거하는 동안 우리는 사무실에서 챙겨먹어야 하는 영양제며 도수치료의 효능 따위를 공유하곤 했으니까. 어느 밤엔가 둘 다 퇴근 후 몹시 지쳤고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다음 날 출근이 걱정돼 캔에 든 탄산음료로 건배를 했던 밤이 생각난다. 대학생 땐 어른들에게서 젊을 땐 사서 고생하는 거라던 얘기를 자주 들었다. 대전에서 일하며 남들보다 뒤쳐져있다고 열등감을 느끼던 시기에는 젊을 때 고생해야 노후가 편하다는 얘기가 그렇게 뼈아플 수가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 일하면서 남들과 겨우 비슷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내 몸을 얼마나 혹사시키고 있었는지,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를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았다. 병가를 내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아주 가까운 미래만을 보고 있었구나, 하고. 당장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당장 가까운 시일에 내 업무에 대한 평가는 좋을지 몰라도,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방식이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건강’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말아야지, 되새기며 혼곤하게 잠에 들었다. 병가 다음날인 화요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우리는 남으로부터, 그리고 나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프지 말자. 나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