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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터뷰(짧)

회사 생활을 하는 지금 정신 상태가 제일 건강하다

풀칠
회사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모 회계법인의 감사본부에서 일한다. 1월부터 3월까지는 회사가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하는 재무제표의 정확성을 감사한다(이때를 ‘시즌’이라고 부른다). 4월부터 12월까지는 그러한 감사를 준비하고 내부 회계관리제도 용역 같은 걸 한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감사본부의 꽃은 재무제표 감사다. 그러니까 시즌에는 아주 많이 매우 높은 강도로 일한다는 뜻이다. 정말 하얗게 불태운다. 4월부터 나름대로 여유롭게 회사를 다니고 5월부터 6월(바로 지금!)은 가장 한가한 때다. 이때 밀린 독서도 하고 고향도 다녀오고 여행도 간다.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됐나?
직업으로 삼고 싶은 게 너무 없었다. 경영학과였고 주변에서 다들 회계사 공부를 하길래 나도 했다. 자아실현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매일 웃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다. 그래서 내 맘에 쏙 드는 직업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회계사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나고 다녔지만 아직 탐나는 직업은 찾지 못했다.
언제까지 그 일 할 것 같나?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내 평판이 좋은 분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때문에 갑자기 퇴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퇴사를 할 것인가? 성장이 느껴지지 않을 때 또는 사내메신저로 편하게 대화 할 동기가 3명 이하가 될 때다. 시즌의 노동강도를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다. 일단은 배울 것도 많고 좋은 분들 아래에서 일해서 만족스럽다. 4년 차까지는 일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출장이 잦을 경우 퇴사 욕구가 샘솟는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직까지 출장이 거의 없었다. 출장이 많아진다면…퇴사 가능성이 급격히 올라갈 수도.
본인이 정의하는 꼰대란 무엇인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모두 꼰대가 아닐까?
‘나 꼰대가 돼 버렸나?’라는 생각을 한 적 있나?
내가 1년 차일때 당연히 했던 일들을 지금의 1년 차 선생님들이 해주지 않을 때…? 마음 속으로 약간 째려본다. 답하고 나니 진짜 꼰대 같은데…지금까지 두 번 정도 째려봤다. 출장 갔다 돌아오는 길에 탄 택시에서 1년 차 선생님이 아무 말도 안 해서 그냥 내가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앉을 때 그랬다. 그리고 시즌일 때 주말에 1년 차 선생님이 자꾸 질문할 때도 그랬다. 나는 질문을 모아서 평일에 물어보곤 했는데 날 편하게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자꾸 주말에 물어본다. 사실 시즌 주말에 일하지 않는 감사본부 회계사는 없다. 그럼에도 주말은 밀린 일을 쳐내는 소중한 개인 시간이다. 어쨌든 내 일을 멈추고 그걸 봐줘야 하는데 내 능력이 부족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질문한 선생님을 마음 속으로 째려보게 된다.
본인이 생각하는 ‘사라져야 할 꼰대질’과 ‘그럼에도 필요한 꼰대질’이 있다면 하나씩 꼽아달라
사라져야 할 꼰대질이라. 권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호통치며 지적하는 것이다. 절대 호통치지 않고 지적하지 않는 사람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항상 호랑이처럼 군림하는 사람 앞에선 더 긴장해서 더 실수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사회초년생이 실수 없이 배울 수는 없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필요한 꼰대질은, 이미 꼰대질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과 다른 분위기를 가진 지적이라고 하면 되겠다. 스스로 깨닫게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내가 먼저 퇴근하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말로만 인사한다는 걸 몰랐다. 그런데 한 선생님이 ‘다음에 눈 보고 인사해주면 안 되냐’고 하시더라. 그 선생님 성격을 생각하면 여러 번 고민하셨을 텐데 부끄러웠다. 지금도 가끔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노력 중이다.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다. ‘돈 벌어야 해서' 말고 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성인이 되고 내 인생은 대학-공부-약간의 휴식-회사로 요약된다. 놀랍게도 회사 생활을 하는 지금 정신 상태가 제일 건강하다. 이유는 너무 많다.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수업시간에 잠깐 만나고 곧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대학 때보다 하루종일 붙어있는 회사에서 마음 맞는 좋은 친구를 사귈 가능성이 높다. 열정적이고 똑똑한 사람을 지켜보는 것도 늘 좋은 자극이 된다. 그를 본받고 싶다기보다 내 인생도 더 잘 굴러갔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회계사 시험이 끝나고 입사하기 전까지 6개월을 보냈다. 하지만 난 나의 의지로 6개월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금방 나태의 굴레에 빠져 TV만 봤다. 오히려 지금 책도 더 많이 읽고 여행도 더 많이 가고 현실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아직 일하면서 내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했다는 보람은 느낀 적 없다. 언젠가 그런 기분을 느껴보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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