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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잡기는 어려워

직업은 어떻게 사람을 바꾸는가
해가 거듭할수록 삶의 중심이 되는 가치가 명확해지고 있다. 이제는 기억에서 흐릿해진 20대 땐 많은 걸 쫓았다. 시사교양 PD를 꿈꿨을 때라 세상의 모든 사사로운 일에 관심을 보였다. 동시에 공정과 상식이라는 사회적 대의도 추구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여러 분야에 호기심을 보였을 정도로 에너지가 꽤 넘치는 시기였다. 직장인의 삶을 몰랐던 풋내기는 5060보다 낮은 3040의 투표율을 안줏거리로 삼으며 사회를 걱정하기도 했다. 30대가 된 지금 돌아보면 키보드 위에 올려둔 손가락이 오그라들 정도로 창피한 기억이다. 20대 후반에 첫 직장을 구했다. 시사교양 PD가 아닌 여행 기자였다. 분야가 확 달라졌다.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고 관심사도 점점 좁아졌다. 업무에 적응해야 하는 신입이라 그런 걸까. 오직 여행에만 눈길이 갔다. 나머지는 사치였다. 주 4회 야근은 기본, 주말에는 돌아오는 주에 쓸 아이템을 고민했다. 아이템을 못 찾은 날이면 어김없이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았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된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물론 즐거운 기억도 많다. 두세 달마다 떠나는 해외 여행지 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종종 떠나는 국내 여행지 출장도 기분 전환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이 좋았고 그래서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더니 여행은 어느새 내 인생에서 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알게 모르게 일상을 보내는 방법, 사고방식, 소비 행태, 연차 활용, 인간관계 등 많은 부분이 여행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곰곰이 더듬어 보면 내가 하는 행동과 선택 대부분이 ‘좋은 여행’, ‘성공적인 여행’을 위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보통의 날들은 다가올 여행을 위한 몸 관리 시간이다. 마치 운동선수가 경기를 준비하듯 출국일이 정해지면 가장 좋은 신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30대 초반까지는 출국 전날 금주와 이른 취침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지금은 일주일 전부터 신경을 곤두세운다. 특히 배탈 조심! 월급 활용도 마찬가지. 상당 부분을 여행으로 지출하는 편이다. 놀러가는 것 이외의 소비는 최대한 다음 여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소비 패턴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앰비슈머. 양면적인 소비자로 가치관의 우선순위에 있는 것에 소비를 아끼지 않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여행을 위한 저축을 시작하면 짠돌이 모드가 발동된다. 8~9,000원 정도의 외식도 어떻게든 줄여서 가장 이상적인 스케줄의 항공권과 입지가 좋은 호텔 비용을 마련한다. 사용하는 신용카드도 항공사 마일리지와 호텔 포인트 적립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들로 설계했다. 여행을 하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는 환경도 조성했다. 결국 ‘업무(=여행) -> 급여 -> 여행 준비 -> 적립 -> 여행 -> 추가 베네핏’이 반복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췄다. 당연히 연차도 여행의 몫. 1년차부터 그랬다. 그저 쉬기 위한 연차는 없다. 왠지 허투루 쓰는 느낌이랄까. 작년엔 좀 다르게 보내봤다. 일종의 실험이었다. 남은 연차를 털어 여행 없이 10일을 쉬면서 스스로를 관찰했다. OTT 드라마(로키 시즌2, 최악의 악, 더 베어 등)를 보며 감자칩을 입에 쑤셔 넣었던 48시간은 나름 즐거웠지만, 나머지 일주일은 지루해서 혼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2024년의 모든 연차는 여행을 채우기로. 어느덧 여행 밥벌이 8년차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신문에서 잡지로 부서 이동 후 직업 만족도는 더 높아졌고, 여행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이제 여행은 단순히 업무와 여가의 영역에서 다룰 주제가 아니다. 그것이 중심에 있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여행은 중심을 넘어 전부가 됐다. 삶 그 자체가 된 셈이다. 발행일 2024년 1월 31일 글 이성균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71호 : 🔄직업은 어떻게 사람을 바꾸는가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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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놈들 또 시작이네
특정 이벤트가 있을 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여러 사람의 계정으로 비슷한 구도 또는 풍경의 사진과 영상이 집중적으로 올라온다. 여름이면 돌아오는 워터밤이나 흠뻑쇼가 대표적이다. 작년 이맘때엔 메타버스 기반 SNS인 본디가 그랬다. 지금은…음…어디 보자…인스타를 켜볼까? 어…요즘엔 데스커 라운지라는 데에 많이 가는 것 같다. 물론 각각의 이벤트에 반응하는 집단이 완전히 같진 않다. 워터밤이나 흠뻑쇼를 가는 이들과 데스커 라운지에 가는 이들의 교집합은 작다. 그럴 수 있지. 아무리 대중 이벤트처럼 보여도 누군가에겐 오늘의 운세나 날씨보다 가치가 낮은 정보일 수 있으니까. 아마 서로 다른 그 집단들의 평균이 나일 것이다. 내게는 그들 모습 중 일부가 담겨있다. 전부가 아닌 일부가 담겨있어서 문제다. 인스타에 전시되는 무언가가 오늘의 운세나 날씨보다 흥미롭지 않으면 상관없을 텐데, 대충 알긴 해서 부럽다. 제대로 알았다면 나도 이미 그들 중 하나였을 텐데, 그건 또 아니라 부러워만 한다. “나한테는 장들레가 그래미”라는 친구의 말에 자기 취향을 꾸준히 디깅하는 사실을 몰래 부러워했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내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티내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부러워하는 마음을 오히려 그쪽으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모르지. 나는 그저 숨기려 했을 뿐. 지금의 모습은 그 결과다. 어떻게 숨겼냐고? 한 마디면 충분했다. “인싸 놈들 또 시작이네.” 그렇게 나는 지속가능한 아싸가 돼 갔다. 인싸 놈들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대체로 ‘아니꼬움’으로 요약되시겠다(물론 기저에는 부러움이 자리 잡고 있으나 그 위에 덮인 마음 또한 ‘찐’이긴 하다). 그들은 대개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이다. 현대판 품앗이다. 스트리머들의 합방처럼 말이다. 호스트와 게스트의 역할만 다를 뿐 똑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조금 다른 콘텐츠가 무한 증식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싸 무리는 이너서클이 된다. 단순히 개개인의 합이 아니라 그 개개인을 지켜주는 하나의 울타리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너서클은 계속해서 크고 단단해진다. 그걸 보면 기분이 영 별로다. 조선시대 양반댁 담장 안쪽은 넘볼 수 없었지만 요즘 이너서클은 인스타 등 SNS를 통해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벽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CES 참가가 과연 스타트업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주제로 다소 비판적인 의견을 실은 기사를 읽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단락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 매년 한국인들의 경쟁적인 CES 참가 열기로 인해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CES에 대한 FOMO(Fearing Of Missing Out) 현상까지 생겼다고 한다. CES에서 모여야만 소위 말하는 ‘인싸’가 된다는 것이다. (…)" *[쫌아는기자들] CES 혁신상의 이면, 김진환, 2024-01-19, 조선일보 한동안 SNS에 올라오던 인증샷들이 떠올랐다. 각자의 분야에서 한가락 하시는 분들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뭉쳤다. 모르긴 몰라도 난 그 인증샷이야말로 그들이 CES를 찾은 이유에 대한 복합적인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CES라는 공간에서 그만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이 교류하다보면 얻는 것이 단지 인싸의 자격에 대한 확인뿐일까?. 글쎄. 친목도모에서 비롯되는 만족감은 물론 그 이상의 자극도 분명히 있었을 테다. 혁신과 성장의 씨앗. 그러니까 이건 좀 복합적인 얘기다. 인싸들은 ‘중심’의 두 가지 층위를 동시에 점유한다. 하나는 ‘자기 자신의 중심’이요, 둘은 ‘세상의 중심’이다. 그 사이의 싱크를 맞춰가며 제각기 성취를 이루고 그것을 바탕으로 명성을 쌓고 그 명성에 어울리는 자리에 가서 비슷한 이들끼리 교류하며 함께 서 있는 곳을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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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납치된 거야
“막내가 편하다.” 인력 충원을 해주지 않는 관리자들이 해대는 농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회사 생활에 전기(轉機)가 될 법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일을 함께 나눠 맡을 후배 직원을 받은 것이다. “이제 저 친구는 네 부사수야. 잘 관리해.” 늘 믿고 일을 맡긴다던 상사는 마치 기사 작위를 주는 여왕처럼 엄숙하게 말을 했다. 늘 그렇듯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속으로는 ‘뭐라는 거야?’ 회사 생활에서 처음으로 부사수를 맞이하는 일은 흥미롭고도 불안한 경험이다. 일단 사람이 생각이 많아진다. 그건 내 MBTI가 I로 시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고 어렵기 때문에 내 옆에 앉은 사람이 후배건 후배 할아버지건 상관없이 복잡한 심경이 된다. 뭐라고 말을 터야하지. 밥을 먹었냐고 물어봐야 하나. 취미는 뭐냐고 물어봐야 하나. 이런 회사는 왜 왔느냐고 말을 해야 하나. 커피를 한잔 하자고 하며 사무실을 잠깐 벗어났고 자기소개부터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올시다. 이 회사에서 몇 년차고 그전에는 무슨 일을 했고 지금은 무슨 팀에서 뭘 맡고 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나랑 같이 이러이러한 일을 하면 된다. 약간은 어려울 수 있지만 괜찮다 금방 배울 수 있다 따위의 말을 두서없이 내뱉었다. 우리 회사가 온보딩은 따로 없지만, 이라고 입 밖으로 냈다가 후회했다. 첫 날부터 ‘런’하는 게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두려움은 지금까지도 후배와의 관계를 쌓아가는 주된 감정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두렵다. 퇴사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업무를 나누고 일을 지시하긴 해야겠는데 어디부터가 업무 분장이고 어디부터가 떠넘기기인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일종의 기준을 만들어서 하루하루 아주 조금씩 목표치와 기대치를 높이기로 했다. 다음날 제 자리에 앉아있는 후배를 보고 말했다. “아주 잘 하셨어요.” 후배를 받는 일은 회사에서의 나를 재정립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회사는 차장급 이상의 관리자가 아니면 별다른 직책이나 직급이 주어지지 않는다. 보자보자~ 내가 올해로 이 일을 한 지 몇 년 째니까 나는 대리인가? 음.. 그럼 그냥 내 할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닌가? 왜 아닌가?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 음냐음냐. “선배, 어디세요? 저는 오늘 뭘 하면 될까요?” “저는 오늘 지각입니다.. 저를 버리고 가세요.” 그렇게 누군가에게 일을 분배하고 일의 마감 시간과 퀄리티를 설정하고 피드백을 주고 조직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살피고, 회식에는 나올 건지 눈치를 보고, 나 몰래 상사에게 왜 근무 외 수당이 없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는지 체크하고, 인터넷 브라우저 탭 중 ‘사람인’이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하는 이 복잡다양한 과정들은 나에게도 무척 새로운 일이다. 후배를, 부사수를 받음으로써 새로운 일을 맡게 된 수준이 아니라 일의 성격이나 내 역할 자체에 변화가 생겨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사수로서 내 역할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부사수가 어느새 눈으로 욕할 줄 아는 어엿한 직장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물론 자기 길은 스스로 잘 찾아내겠지만. 어쩌면 나는 ‘멍청하고 부지런한(멍부)’ 사수가 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안합니다. 사실 저도 사수는 처음이에요.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치고 퇴근한 후배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 납치된 거야." 발행일 2024년 1월 17일 글 마감도비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69호 : ⚖️ 사수로 중심잡기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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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제나 날 행복하게 만든다
새해 첫날 이름 모를 산 뒤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올해의 목표를 떠올렸다. 물론 2023년의 만다라트표도 미완성인 채로 끝나고 말았지만. 자고로 목표라는 건 성공 만큼이나 실패하는 재미도 있는 법이다. 2024년의 목표는 작년과 같다. ‘안정감’이다. 안정감이라는 건 사랑 만큼이나 모호한 단어라서 구태여 주석을 달아보기도 한다. 내 경우엔 안정감의 원천은 ‘LOVE WHAT YOU LOVE MORE’다. 직역하면 ‘사랑하는 것을 더욱 사랑하라’라는 뜻인데 출처는 0호를 끝으로 사라진 매거진 <블립>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행복감은 나에게 안정감을 선사한다. 업무용으로 받은 나의 반려 노트북에도 ‘LOVE WHAT YOU LOVE MORE’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다. 작년에도, 올해도 꼭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2023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일 년을 보냈다. 분명 어영부영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고를 하면서 뒤돌아 보니 꽤나 많은 걸 쟁취했다. 그중 하나는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요소가 늘었다는 점이다. 여러 다리 중 하나가 부러져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할 만큼, 분명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여기엔 양가적인 측면이 있다. 한 축은 내가 별 거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이 나이쯤 먹으면 뭔가 그럴듯한 존재가 되어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별 거 없다. 간신히 일어나 씻고 출근하고 뒤지게 일하고... 그 틈새로 가끔씩 행복한 일이 찾아올뿐. 운이 좋아 작은 꿈이나 큰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도 내 인생은 뒤집어지지 않을 거고,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로 매일 눈을 뜨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거북목이 유발한 좌측 어깨통증이 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소한 소망이 있을뿐이다. 물론 인생이 뒤집어질 만한 사건의 정도가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정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별거 아니라는 자각은 스위치를 전례 없던 방향으로 전환하게 만든다. 이 드넓은 우주 속 태양계 안에 그 먼지와도 같은 지구, 또 그 안에 작은 나라 속 도시에 살고 있으니. 내가 너무 자그마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세상사에 저절로 무신경해지곤 한다. 요란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은 외면하고, 차라리 그 시간과 정성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반대의 축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정확히 짚자면 나의 취향에 대한 확신인데, 남들이 좋다는 것들을 이제는 탐내지 않는다. 적어도 내 취향이 아니라면 그래미나 노벨문학상도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LOVE WHAT YOU LOVE MORE'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바람에 취향을 편식하게 되고 말았지만. 살아보니 어차피 편식을 해도 사람은 정해진 만큼 큰다. 물론 뉴진스의 음악은 무지막지하게 좋다. 이 생각의 연장선에서 한 영화를 떠올렸다. 사후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원더풀라이프>에서는 천국으로 가기 전, 인생에서 단 하나의 기억을 골라야 한다. 그건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기억일 수도 죽음을 피하기 위해 경계해야 하는 기억일 수도 있다. 삶에서 가져가야 할 단 하나의 기억이라니. 이거야말로 한 사람의 가치관을 가늠할 수 있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누렸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고르곤 한다. 나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사는 존재라고 믿으니까. 행복이야말로 나의 신앙이다. 올해 <원더풀 라이프>를 보며 내가 고른 단 하나의 기억은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다. 그날 내가 만난 사람과 바라본 풍경. 그날 들은 음악과 애인과 나눴던 이야기들. 공연을 방해했던 어린아이의 기침소리까지도. 그때 그 장소 안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그득하게 채워져있다. 그것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나는 깊은 행복감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정도다. 예전에 한 정신과 교수가 말하길 기록을 통해 나를 기쁘고 슬프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것. 스스로 행복해질 방법을 처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더욱 사랑할수록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해석했다. 역시 내가 얻은 이 안정감의 원천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이제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확신했다. 소란스러운 유행이나 요망한 알고리즘이 나를 설득하려 들 때. 그래서 나의 취향이 흔들리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할 때. 그럴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그건 다른 누구의 기준도 아닌 오직 나에게만 좋은 것들이면 충분하다. '나한테는 장들레가 그래미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신이야!'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할수록 내가 더욱 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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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기행
몇 년 전에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당시의 순례길엔 내 또래의 한국인이 많았다. 우리는 굳이 여기까지 와서 걷는 이유를 서로 물으며 친해졌다. 모두 크고 작은 실패를 이유 삼아 여행을 하고 있었고, 그 실패들 중 단번에 이해가 가지 않는 실패는 없었다. 외국에서 떠도는 것은 실패가 흥행하는 시대에 따라붙는 일종의 유행 같았다. 거기서 같이 걷느라 친해진 친구들이 있다. 둘은 신혼부부였다. 둘 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회사를 관두고 가진 돈을 다 털어서 왔다고 했다. 아주 지랄맞은 상사를 만나서 더 견디고 싶지가 않았다고, 그러던 찰나에 TV에서 여행하는 예능을 보고 그냥 떠나와버렸다고 했다. 둘은 나보다 나이는 조금 더 많았지만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사람들이었다. 한 쪽은 물집이 잘 잡혀서 내게 반창고며 바세린이며를 빌려 갔고 한 쪽은 영어 울렁증이 있어서 장보기를 어려워했다. 걸음은 느리고, 말은 많은 둘과 함께 몇 주를 같이 걸었다. 저녁은 보통 내 담당이었다. 손 크게 장 보는 걸 좋아하는 내가 고기도 굽고 파스타도 삶고 샐러드도 만들었다. 스페인의 시골에서 함께 찍은 사진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꽤 오랫동안 우리의 프로필 사진이었다. 둘에게 아이가 생긴 지는 이제 1년이 됐다. 그들의 프로필 사진을 통해서 아이가 크는 걸 염탐하는 습관이 내게 생긴지도 꼭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지난 주말엔 한 번 놀러 오라는 말에 못 이기는 척 넘어가 부산에 다녀왔다. 부모가 된 둘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능숙하게 우는 아이를 달래고 분유를 타 먹이고 기저귀를 갈면서 출근 준비도 한다. 새벽에도 자지 않고 낮에도 졸지 않는 젊은 부모는 아이가 잠드는 그 짧은 평화의 순간마다 내게 스페인 이야기를 하러 온다. “우리 그때 진짜 젊었다 아이가” “그때 진짜 좋았다” “니는 힘들다고 신발도 집어던져놓고 뭘 좋았다하는데.” 아이가 깨기 전까지 우리는 목소리를 낮추고 시간 여행을 한다. 그때도 지금도 말이 별로 없는 나는 투닥대는 둘에게 우물쭈물 대다가 그래도 지금 참 좋아 보인다는 상투적인 인사를 겨우 건넨다. “맞나. 맞다. 그래도 지금 모든 게 순리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무사히 밥도 먹고 트림도 한 아이는 잠들었다. 아이가 내는 숨소리는 사람이 내는 소리라기보단 생명 그 자체가 내는 소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옆방에서 소곤소곤 옛날 생각을 하던 젊은 부부의 말소리도 이내 졸아든다. 소독된 주방의 식기들이 정오의 햇볕을 받아 빛나고 있고 도시의 소리는아주아주 멀게 들린다. 바깥에선 분명히 사람들이 나름의 중요한 일로 시끄럽게 굴며 무진장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만 지금 이 시공간은 바깥의 바쁨으로부터 완벽히 등을 돌리고 있다. 지금, 여기가 아마 이 가족의 중심일 것이다. 어떤 생의 중심에 초대받아, 그 시간을 대접받은 손님에겐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날 새벽엔 침대 머리맡에 달린 카메라를 믿고 대담한 모험을 떠났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고깃집에 가서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한 것. 둘은 사장님을 포함한 가게의 모든 사람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장님은 밑반찬이며 고기며 볶음밥이며 내올 때마다 애는 잘 있나 하며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 보고 젊은 부부는 그럴 때마다 나를 귀한 손님이라고 소개하며 동문서답을 한다. 핸드폰 화면 속 아이가 뒤척일 때마다 둘 중 하나는 고기를 먹다 말고 뛰쳐나간다. 고깃집의 모든 사람들이 참 좋은 세상이다 하며 웃는다. 나는 둘이 사준 음식을 삼키며 다시 생각한다. 이 가족이 오늘 내게 보여준 모든 모습을 기억하겠다고. 그래야 이들이 다시 과거를 여행하자며 초대할 때 내게도 무언가 내놓을 게 있겠다고. 고깃집 수저 통에 기대둔 핸드폰 화면 속에 젊은 아빠가 등장한다. 아이를 안는다. 둘의 눈동자가 검게 반짝, 빛난다. 핸드폰 화면을 보고 웃는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술잔을 채운다. 화면 속의 그이가 다시 테이블 앞에 앉길 기다려야 하므로 ‘짠’은 잠시 미뤄둔다. 고깃집의 사람들이 젊은 아빠가 아이를 어떻게 다시 재우나 보려고 화면 앞으로 모여든다. 모두의 불콰한 얼굴에, 세월마저 씻어내리는 미소가 번진다. 발행일 2024년 1월 3일 글 야망백수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67호 :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잘 잡아야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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