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침입자
낮에 뜨겁게 달궈진 더위가 밤에도 식지 않고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무더웠던 2024년 여름의 밤. 평화로웠던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그래도 잘 때는 에어컨을 꺼야지’하는 생각에 낮부터 쉼 없이 돌아가던 에어컨을 송풍으로 돌리고 실외기가 있는 베란다로 나갔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실외기를 베란다 밖으로 내놓지 못한다. 단지의 미관을 해친다나 뭐라나... 그 덕분에 베란다는 실외기가 내뿜는 뜨거운 열풍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집은 창가에 놓인 실외기의 송풍구와 베란다창의 방충망이 반대여서 에어컨을 키고 끌 때마다 수동으로 방충망과 열린창의 위치를 반대로 바꿔줘야 한다. 방충망과 창을 교차해서 바꾸려는 찰나, 창 너머 어둠 속에서 습하고 뜨거운 공기와 함께 거대한 무언가가 ‘지이이이익 지이이익’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열린 방충망 틈으로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 성격인데, 어둠 속에서 나를 덮쳐오는 거대한 실루엣의 존재를 발견한 순간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새된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나를 순식간에 지나쳐 거실로 진입한 녀석은 굉음과 함께 공중을 정신없이 배회하다 형광등에 안착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괴생물체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매미였다. 그것도 지금껏 내가 본 어떤 곤충과도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크기의 매미. 나는 매미가 그렇게 큰지 처음 알았다. 손가락만한 크기에 드론 같은 매끄럽고 탄탄한 몸집, 가늘고 기다란 느낌의 다른 곤충들과 달리 형광등 불빛 아래 영접한 매미는 흡사 온몸을 철갑으로 두른 중세기사 같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지금껏 집에 출몰한 수많은 벌레를 잡아왔지만 이 녀석한테는 감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거실 한켠에서 바닥에 늘러붙어 있던 고양이가 침입자를 발견하고는 사냥꾼으로 돌변해 매미를 향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냥이의 펀치보다 매미가 더 빨랐다. 매미는 고양이를 피해 다시 거실 책장 뒤 좁은 틈으로 사라졌다. “지지직” “냐아아아오!” “츠츠지이” “냐아오오오오옹!” 매미와 고양이가 만들어내는 환장의 하모니에 잠시 넋이 나가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낚시대 장난감과 비닐봉지를 준비했다. 낚시대 장난감으로 책장 뒤를 휘적이자 매미가 책장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밤중에 소동이 녀석에게도 힘들었는지 매미는 더 이상 날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비닐봉지로 집어들었다. 거실에서 베란다까지 가는 몇 발짝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마냥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내 모든 오감은 활성화되어 얇은 비닐막을 사이에 두고 전해지는 몸부림치는 매미의 감촉, 발광할 때마다 내지르는 지이익, 지이익 소리까지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렇게 간신히 창밖으로 매미를 놓아주자 매미는 단발마 같은 소리만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거실에 남은 것은 장난감 낚시대와 비닐봉지로 무장한 나와 동공이 최대로 확장되어 콧김을 내뿜는 흥분한 고양이, 그리고 뜨거운 습기로 가득한 열대의 밤이었다. 다음 날이 되어도 매미의 위용이 잊히지 않아 월루 활동으로 매미에 대해 좀 알아봤다. 한국에는 다양한 매미가 산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소리로 우는 매미는 참매미다. 매앰매앰매앰울다가 끝에 매애애애앰하고 리듬감 있는 울음소리가 특징이다. 말매미는 쐐애애애애액~하고 가장 시끄럽게 울다가 갑자기 뚝 그친다. 말매미는 그 요란한 소리만큼이나 몸집도 크다. 나를 공포에 떨게 한 녀석이 바로 이 말매미였던 것 같다. 그밖에도 애매미, 소요산매미, 쓰름매미, 깽깽매미 등 모두 자신들만이 울음소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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