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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터뷰
정당이라는 일터: 당직자 김예슬
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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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이 업계에 한 발 걸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주변에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보기 힘들 거라고. 심지어 이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지하지 못 했을 거라고. 김예슬은 당직자다. 정당에서 일한다. 매일 아침 국회로 출근한다. 그는 정치인인가? NO. 정치 꿈나무인가? NO. 직장인인가? YES. 5년 차 풀칠러 김예슬과 이야기 나눴다.
출처: pixabay
짧게 소개 부탁합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당직자로 일하고 있는 김예슬 주임입니다. 계약직 기간을 포함하면 벌써 5년 차네요.
소속을 어디까지 밝힐 수 있나요?
원하는 수준이 있나요? 편한 대로 해도 돼요.
저희야 당연히 최대한 구체적인 게 좋습니다만, 아무래도 정당이다 보니 조심스럽지 않을까 싶어서요.
상관없어요. 일하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인터뷰니까요.
좋습니다. 당직자란 당최 뭐 하는 직업인가요? 우리가 흔히 아는 당직은 아닐 테고요.
정당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보통 정당 하면 당대표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을 떠올릴 텐데요. 그 외에도 조직으로서 정당을 굴리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 있어요. 홍보, 행사 운영, 회계 등등.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죠. 일반 회사원이나 공무원들이 그렇듯이 저희도 입사하면 발령 나는 대로 여러 부서를 돌아요. 저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정책 연구를 담당하는 민주연구원 정책연구실 소속이고요.
정당에서 일하는 일반행정직 직원이군요. 요즘엔 무슨 업무를 하고 있습니까?
조금씩 다양한 일을 해요. 다음 달(8.18)에 전당대회가 있는데요. 뉴스에선 당 대표 선거 얘기가 주로 나오지만 사실 그게 다가 아니에요. 2년마다 열리는 행사인 만큼 그동안 바뀐 시대 흐름에 맞춰서 당헌, 당규도 조금씩 수정하는데요. 제가 속한 민주연구원에서는 그중 강령 개정을 맡았고, 저 역시 당분간 이 업무를 지원할 예정이에요
그쪽 업무를 지원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시대 흐름을 반영한다고 했죠. 이게 저희끼리 의논해서 정하는 게 아니에요. 외부 패널을 모셔서 간담회를 열죠. 세상은 이렇게 바뀌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당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야기를 나눠요. 그런 크고 작은 행사가 일주일에 몇 개씩 잡혀요. 이번 달이 특히 바쁜 이유죠. 강령개정 작업에 투입된 건 처음인데, 매주 간담회를 세팅하고 정리하고 회계처리 등등을 할 예정이에요.
다들 그렇게 일합니까?
부서 바이 부서. 저희 부서는 대부분 연구위원들로 이뤄져 있고 행정 업무 담당자는 1명이에요. 네. 저요. 사무실 비품 관리해, 회계 처리해, 자료집 만들어, 포스터 만들어, 현수막 달아…이것저것 많이 해요. 사실 민주연구원으로 발령난 당직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다른 부서에서도 궁금해해요. TO가 달랑 1명이니 잘 모르죠.
작은 스타트업의 경영지원 매니저(특: 1인 팀) 같네요.
잘 모르겠지만, 우스갯소리로 저는 교수님 15명과 일하는 조교 1명이라고 표현해요 (웃음)
이해됩니다. 제가 과돌이 출신이거든요.
잘 아시겠네요.
바쁩니까?
정당의 다른 부서에 비해서 역동성을 덜한데, 여기도 나름대로 무지 바빠요. 그래도 조직 분위기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큰 일정만 없다면 8~10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해도 되는 분위기예요. 점심도 혼자 나가서 먹고 와도 뭐라고 안 하시구요. 물론 같이 먹으면 더 반가워해주시고요.
2~3살이지만 그 차이로 인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고작 2~3년만 지나면 되는 건데 너무 조급했던 것 같아요.
늦게 시작했더라도 내면적으로 성숙해졌을 때 준비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부터 얘기해 볼까요?
어릴 때는 외교관이 하고 싶었어요.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고등학생 때는 미디어 쪽에 관심을 가졌어요. 연극부에서 시나리오 쓰다 보니 PD는 어떨까 싶었죠. 대학생 때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알바도 해보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내 길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PD의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창의성 면에서 부족하더라고요. 제가.
그때가 언제입니까.
대학교 3학년쯤.
빨리 깨달았네요. 그 뒤로는?
기자를 준비했어요. 한 3년 했나. 그게 정말 너무 하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휴학 없이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네요. 빠르다면 빠른 편.
빨랐죠. 그게 패착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이 2~3살 정도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너무 좋고 배울 것도 많았어요. 별개로 자꾸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나보다 시야도 더 넓은 것 같고. 더 빨리 개선해 나가는 것 같고. 불합격해도 덤덤한 거 같고.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덤덤하지 않았겠지만. 제가 언니, 오빠들 나이가 되니까 알겠더라고요. 2~3살이지만 그 차이로 인해 알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고작 2~3년만 지나면 되는 건데 너무 조급했던 것 같아요. 늦게 시작했더라도 내면적으로 성숙해졌을 때 준비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잘했겠죠. 잘해서 합격했을 수도. 그게 아니더라도, 늦게 시작했어도 그만두는 시점은 거의 비슷했을 겁니다. 3년 준비하고 그만뒀다고요? 아마 2년 늦게 시작했다면 1년 준비하고 그만뒀을 겁니다. 쉽게 포기했을 거라는 말이 아니에요. 그만큼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네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가 아직 당직자까진 못 갔네요.
이제 나와요. 아무튼 그렇게 2020년이 됐어요.
코로나.
네. 코로나가 터졌어요. 한 해 동안 언론사 공채가 없었어요.
막막했겠군요.
그쵸. 이제 장수생인데, 기회조차 없으니까.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연락이 온 거예요.
누구로부터?
친구요. 당직자로 일하고 있던 친구. 일손이 하나 필요한데 6개월에서 1년. 계약직. 뉴스 모니터링. 생각 있니?
뉴스 모니터링. 기자 지망생이면 평소에 하는 거니까.
네. 다만 알바는 과외 아니면 카페만 해봐서 좀 낯설었죠. 그래도 사회 경험 한번 해보고 오자 싶었어요. 뉴스 모니터링 특성상 이른 새벽에 출근하고 오후 3시 정도면 퇴근했거든요. 공부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어쩌다 당직자가 된 케이스.
그쵸. 당직자라는 직업은 물론 정당도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제가 입사한 게 2020년 10월이거든요. 그때부터 계속 선거가 있었어요. 지방 선거, 재보궐 선거, 대통령 선거.
다이내믹 했네요.
실무자 입장에서는 재밌을 수밖에 없는 시기죠. 엄청 역동적이었어요. 뉴스 틀면 우리 회사 얘기가 쏟아지고. 그리고 제가 공보국에서 일했거든요. 옆에 논평 팀이 있었어요. 거기서 ‘오늘은 이런 문장을 넣자’라고 메시지를 만들어 내면 그걸로 온갖 뉴스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너무 흥미로웠어요.
사회초년생 치고 그만한 효능감을 느끼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논의해서 만든 메시지가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게 눈에 보이니까요.
공보국이면 기자도 많이 만났을 텐데요.
많이 만나죠. 대학교 친구나 같이 공부했던 언니, 오빠들. 다들 기자가 됐으니까.
어떻던가요?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어요. 공보국 근무하면서도 기자지망생이란 소리는 하고 다녔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부장님이랑 길을 걷던 중에 친한 기자언니를 마주쳤어요. 부장님한테도 저랑 같이 기자 준비를 했던 언니라고 소개했죠. 웃으며 헤어졌는데 부장님이 저한테 괜찮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저 언니는 기자가 돼서 여기 왔는데 속상하지 않냐고.
합격하지 못한 모든 지망생이 겪을 수 있는 일이죠.
네. 아차 싶은 거예요. 진짜 아무렇지 않네. 그냥 그 언니가 반가웠고 아쉬움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때 딱 기자에 대한 미련을 접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서 이런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우리 회사 대표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회사는 저런 걸 할 수 있는 회사구나’ 생각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공채로 다시 입사했습니다. 어떻던가요?
공채 직전에 슬럼프 비슷한 게 왔어요. 사람도 일도 익숙해졌고. 그냥 일찍 퇴근하고 싶고. 근데 공채 통과하고 정규직이 됐는데도 뭔가 나아지는 게 없는 거예요.
전환점이 있었나요?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식 분위기는 슬프고 무겁고, 저도 마음이 아픈 와중에 우리 당 대표가 추도사를 하러 올라갔어요.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서 이런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 뭔가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우리 회사 대표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회사는 저런 걸 할 수 있는 회사구나’ 생각했어요. 미우나 고우나 저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직 중 하나가 우리 회사구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죠.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꿀 거야’ 같은 생각이 들던가요?
그런 생각은 오히려 입사 초에 많이 했죠. 차츰 회의적으로 변했다가 그 일을 기점으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다만 ‘세상을 바꿀 거야’보다는 ‘세상을 바꿀 책임이 있는 곳이야’에 가까운 거 같아요.
자기의 일과 회사에 현타를 느끼는 사람은 많습니다. 사실 대부분이죠. 이 현타를 어떻게 다룰지 성실하게 고민한 만큼 미래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설익은 사회초년생의 마음가짐을 잘 성숙시켜 나가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일단 지금은 적당히 좀 잘살고 있는 편이에요.
오늘 직업을 소개하면서 ‘정당도 회사’라고 얘기하셨는데요.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맞긴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묘하게 위치가 다르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요.
회사 다니는 게 매일 매일 운동회 하는 느낌이에요. 청팀과 백팀이 확실하게 나뉘어 있는? 좋게 말하면 가족 같고 미워도 안고 가는 건데, 나쁘게 말하면 안으로 싸고도는 느낌이 있죠.
일반 기업에 비해 ‘이겨야 할 상대’가 명확하게 있어서 그런 걸까요? 일반 기업에도 경쟁사는 있지만 확실한 경쟁의 무대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정당에는 선거라는 무대가 있는 것과 다르죠.
맞아요. 예전에 제 자소서 봐주던 친구가 “예슬아, 여기 승리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니?”라고 했는데요. 저는 되게 충격받았거든요. 우리 회사에서는 엄청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인데.
‘승리’라는 단어로 목표를 설명하는 조직이 흔하진 않죠. 스포츠팀 정도?
그쵸. 완전 그거네요. 제가 운동회 하는 느낌이 든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네요.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업무 툴은 뭐 씁니까?
뭐 쓰세요?
노션, 슬랙, 구글워크스페이스가 기본이고 개발, 디자인 협업 툴 몇 개 씁니다.
몇몇 부서에서 좋은 툴들을 쓰기 시작했는데, 대체로는 아날로그예요. 결재는 수기로 받아요. 사무총장 떴다 그러면 본청까지 뛰어가죠. 그럼 각 부서에서 온 사람들이 복도에 줄 지어 기다리고 있어요. 메신저는 텔레그램을 많이 쓰는 편이죠. 보안 문제도 있고, 아직 구성원들이 IT 친화적이지는 않아요.
출처: 본인 제공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 같습니까? 상상해 본 가장 먼 미래는 언제입니까?
그만두고 싶단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아직 배울 것도, 경험해 볼 것도 많은 곳 같거든요. 상상해 본 가장 먼 미래는 부장 정도? 지금으로부터 8~9년 정도 이후요. 그쯤이면 하나의 팀을 맡을 테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좀 더 생길 테니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내 커리어를 어떻게 개발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곧 정기 인사가 나거든요. 웬만하면 다른 부서를 경험해 보고 싶긴 해요.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입니다. ‘돈 벌어야 해서’ 말고 일하는 이유가 있다면?
세상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너무 재밌어요. 처음 일할 때는 처음이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5년 차인데도 여전히 재밌어요. 짜증 나고 힘들고 울고불고해도 어쨌든 집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이랑 관계도 맺고 갈등도 빚고 화해도 하고 사회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를 만들어도 보고. 이 모든 과정이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나거든요. 저 스스로 제 모습을 만드는 자유를 누리는 게 좋아요. 회식에 끌려가는 게 싫네 마네 어쩌네 해도 이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어렸을 때 TV로 보던 직장인의 애환 그 자체인 것 같아서 또 너무 재밌어요.
글/ 아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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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은 ‘일이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재밌는 걸 했는데 일이 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꼭 덧붙인다. ‘너무 좋잖아!’ 우당탕탕 흘러온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현재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경로였을 거라 확신하게 만드는 정다운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왔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올해로 딱 10년 차에 접어든 정다운입니다. 지금은 헤이러너스라는 F&B 브랜드에서 CMO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밥을 팔아요. 김밥을 판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오픈 준비에 6개월 정도 썼고 오픈하고 나서 6개월 정도 지났어요. 다 합치면 1년 쯤 됐네요. 많은 걸 하셨을 듯한데요. 잘 모르는 입장에서 다운 님의 하루를 상상하며 업무를 쪼개 봤습니다. 매장 관리, 상품 판매, 마케팅, 기타 백오피스 업무 정도. 모든 일을 했죠. ‘실제로 김밥을 마는 것’ 빼고는 다 했어요. 브랜드 이름을 짓고, 콘셉트를 정하고, 공간을 꾸미고, 어떤 고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전략을 짜고, 이런 저런 비용 관리도 하고. 오픈 준비하는 6개월, 오픈하고 난 뒤 얼마 간은 그렇게 다 아울렀어요. 다행히 금방 자리를 잡아서 이제는 대부분의 업무에서는 손을 떼고 마케팅과 B2B 영업 쪽에 집중하고 있어요. 현재 다운 님의 일과를 소개해주신다면. 아침엔 무조건 매장에 출근합니다. 그 날 이슈가 없는지, 뭔가 챙겨야 할 건 없는지 살펴봐요. 특히 고정으로 나가는 단체 주문이 항상 있는데요. 그거는 제가 매일매일 배달을 하고 있어요. 직접 배달까지? 저를 보고 시켜주시는 거잖아요. 많이 주문해주시기도 하고요. 처음으로 정기 배송을 해주셨던 분들이니 웬만하면 직접 가서 인사도 드리고 맛은 어떤지 여쭤보기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여기 주변에 회사가 많잖아요(헤이러너스는 광화문에 있다. 인터뷰 다음 날 상암에 2호점을 오픈했다). 포장하러 자주 오시다가 이제 아예 정기 배송으로 진행하고 있는 거기도 해요. 배달 다녀와서는 뭘 하시나요? 매장에서 필요한 물품이나 재료 같은 것들을 리스트로 받아서 처리하고요. 여기(길 건너 스타벅스) 와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좀 하죠. 인스타그램 관리 같은 거. 콘텐츠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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