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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글 투고

자유
Harper
죽어가던 수많은 밤들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에, 그게, 그러니까, 아무래도, 소위 술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꽤나 마신 상태에서, 본디 뜨거웠지만 이제는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온수에 몸을 푹 담그는 것은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간적으로 피가 몰려서 잔뜩 뜨거워진 머리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수준의 저급한 생각들만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계속 이러고 있다가는 뇌부터가 익어서 아주 죽어버리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묵은 호텔 객실의 화장실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욕조에서마저도 물을 아끼지 않는 것에 눈치가 보일 정도로, 저는 존재의 유무조차 확인이 되지 않는 다른 이들의 눈치까지도 온 신경을 다해 살피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비단 이럴 때만이 아닙니다. 제가 눈치를 보는 것은 제 귀에는 항상 조용히 귓속말을 속삭이는 악마가 살기 때문입니다. 그 악마는 제가 아주 조금만이라도 이기적이고 제 자신만을 위하는 일을 저지르기만 하면 곧바로 찾아와 그로 인해 아주 작은 피해라도 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 귀에 곧이곧대로 읊어대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존재하는, 그러니까 마치 선천적인 지병과도 같은 이 악마는 당최 사라지지를 않아서, 뭐, 덕분에 여러 사람들에게는 항상 남을 위해주는 착한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실상을 따지자면 스스로를 갉아내어 나오는 부스러기로 남들을 먹이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반신욕을 즐기다가 문득 또 다시 눈치가 보인 저는, 대충 몸이 불어 그 부피가 본래의 것보다 조금 더 커졌다고 할 수 있을 때 즈음에 배수구 구멍을 막고 있던 고무로 된 무언가를 뻥 하고 빼내버렸습니다. ​ 물은 그 작은 구멍 속으로 소용돌이를 그리며 빠르게 빨려들어갔습니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던지 제 발가락 끝마저 함께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그대로 흘러들어가고 싶다, 예, 부끄럽지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욕조에서 나가게 되면 또 다시 온갖 괴이하고 해괴하며 불가피한 것으로 가득한 세상이 절 덮칠 예정이었고, 또 그건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었기에, 그럴 바에야 유연하고 무력하다 못해 무형이기까지 한 물이 되어 그대로 그 속에서 녹아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의 말로를 전해줄 이 하나 없겠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에게 주어질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는 물이 되어 목욕물과 함께 사라지는 것 마저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 때문에 저는 물이 빠지는 내내 욕조 속에 누워있었습니다. 목까지 차올라 제 폐를 짓눌러서 숨쉬는 것을 방해하던 욕조 속 물은 어느새 발등을 간신히 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배수구 쪽에서는 이상한, 무언가 카가각 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배수구에서는 물이 다 빠질 때 쯤이면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수영장 옆에 길게 늘어뜨려져 있는 배수구도 마찬가지인데, 아, 물론 지금의 저는 저게 무슨 소리인지 모를 리가 없습니다만, 갑작스레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배수구 속에 사는 괴물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 소리는 자세히 들어보면 무언가가 게걸스럽게 입맛을 다시는 듯한 소리 같아서, 그 속에서 갑자기 정체불명의 존재의 기다랗고 축축한 혀가 튀어나와 저의 허리를 휘감아 순식간에 낚아채가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에 괜히 그 텅 빈 속을 더욱 노려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 생각해보면 어릴 적의 저는, 음, 그러니까, 현실의 물리 법칙 상에서 어느정도 일어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일어날 리 없는 수준의 사건을 상상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때의 저는, 정말이지 온갖 기이한 상상들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수영장의 배수구 속에 사는 정체모를 무언가라던가, 길을 가다 갑자기 어떻게든 의기투합에 성공한 수많은 비둘기 떼에게 덮쳐져 눈알을 모조리 파먹힌다던가, 도로 한복판을 달리는 트럭 뒤편의 헝겊을 보고 있으면 그걸 찢고 튀어나오는 거대한 도마뱀같이 생긴 괴물이라던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중 최고는 단언컨데 돌연 부모님이 사라지는, 말 그대로,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밤마다 갑자기 부모님이 사라져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상상을 해서 홀로 두려움에 휩싸여 눈물을 보이기 십상이었고, 그런 저를 귀엽게 여기셨을지 어땠을지는 모르겠다만 어머니께서는 그런 저를 꼭 끌어안아주시곤 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내가 상상했던대로 돌연 사라지는 증발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주변에 있다가도 어느 날 갑작스레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는 사실을 괜한 고민 끝에 깨닫고 스스로를 두려움이라는 감옥 속에 가둔 채 너무나도 작아진 나 자신을, 저기 저 책상 위의 네모난 거울 속에서 발견하곤 합니다. ​ 이처럼 저는 어떻게든 스스로 외로움을 발굴해서 느끼려 드는 사람입니다. 제 옆, 또는 뒤, 또는 앞에서 건재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그런 발칙한 상상을 통해 없애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외로움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 물론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외로움만을 유일한 벗으로 삼는다는 고독한 기분에 취하는 것을, 그러니까 외로움 그 자체보다는 외로움에 취한 저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딘가 슬픈 눈빛을 하고 있다'라는 수식어가 멋있다고, 정말 부끄럽지만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 대해 알아갑니까.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생각합니까.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아닌 사람을, 사랑합니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쉬이 해소되지 않는 은근 모를 애정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저 자신을 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것은 마치 저를 뒤덮은 담요같아서, 너무나 두껍고 무거워 스스로 떨쳐낼 수도 없거니와 숨만 턱턱 막힐 따름입니다. ​ 그렇게나 지긋한 외로움을 느끼지만, 왜인지 오히려 근처의 사람들을 스스로 하나 둘 쳐내는, 이보다도 모순적일 수는 없는 사람이 여기 하나 있습니다. 오랜 친구를 단지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서 어색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길을 걷다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갑작스레 빨라진 발걸음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긴 경험이 있습니까. 회복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관계를 스스로의 손으로 끊는 것은,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사람의 호흡기를 제 손으로 직접 그의 입에서 떼어내버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때문에 그것에서 미세한 희열인지 쾌감인지 모를, 아무튼 부정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진정으로 느꼈던 것은, 삶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의 기분, 그래요, 죽음을 말하는 겁니다, 그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죽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고통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두려워서, 바보같게도 안아프게 죽는 법만을 이것저것 찾아본 저로써는 더더욱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안아프게 죽을 수 있다면 당장 오늘이라도 죽고싶지만 그런 방법이 없다면 영원토록 살고싶은 저는, 고통이라는 것을 두려워하기만 할 뿐 그것을 이겨낼 생각 따위는 하지도, 할 수도 없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를 비겁자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비겁한 것이라면 세상에 비겁하지 않은 자는 자해를 하는 정신병자 뿐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죽음 또는 생명이라는 모순적이지만 상호보완적인 무언가를 그것 곧이곧대로 느껴보기 위해 스스로의 살갗을 씹고 뜯으며 눈물을 흘리는 저는, 그 누구보다도 정정당당한 사람일 것입니다. ​ 아, 이런 젠장. 제가 성인이 되던 날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술에 취하는 걸 즐기는 것과 술을 즐기는 것은 다르다고, 술에 취하는 것을 즐기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고 아주 진지하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오늘도 '취하고 싶다'라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힌 저는, 무심코 또다시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어있는 맥주 한 캔을 향하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부여잡지 못하고, 결국엔 그것을 집어들고야 만 것입니다. 그렇지만 맥주 정도로는 그닥 취하지도 않고 배만 부른지라, 결과적으로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 싶으면서도, 생각을 한 발짝만 더 이어나가보니 술에 취하는 것도 술 그 자체도 즐기지 못한 저는 이미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 천하의 불효자가 되어버렸던 것이었습니다. ​ 제가 제 자신에 대해 엄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 제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 아닌가 걱정되십니까. 그런 염려 마십시오. 저는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압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본 저는, 이루어낸 것은 없음에도 어떻게든 과장하여 그럴싸해 보이게 치장한 겉껍질이 진정 저인 양 살아가는 한량과 그 괴리를 크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스스로가 내쉬는 족족 한심한 숨을 뿜어대는 주제에 보이는 사람들을 보이는대로 평가하기에 바쁜 저는, 아주 게으른 뇌와 적어도 그보다는 바삐 굴러가는 눈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 사실을 튼튼하고 두꺼운 금고에 이중, 삼중으로 보관하여 자물쇠까지 건 다음 마음 깊숙히 어딘가에 처박아버렸을 뿐이고, 때문에 그 깊은 곳을 보지 못하는 여러분께 저는 미약하게나마 빛을 내비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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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ge
Sonate de Saturne
​너 생각이 났다. 아주 잠깐. 나에게 닿은 것이 뜨거운 것인지 차가운 것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을 정도의 잠깐. 딱 그만큼. 이내 생각을 지워버린 것은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는 것처럼 생각을 그만둔 것은, 아직도 너 생각이 조금 뜨거워서이다. ​ ​ 잘 모르겠다. 길게 늘어뜨린 그림자조차 만나지 못하는 너와 나 사이에 대체 무엇이 있었길래, 너가 뱉은 숨을 내가 마시고, 너가 뱉은 말을 내가 듣던 그 때의 무언가를 그토록이나 간직하고 싶었는지. 우리가 지나간 곳에 남은 것은 오로지 샴푸인지 린스인지 모를 강렬한 너의 냄새 뿐이고, 그 때의 나의 시선에 담긴 것은 온통 너뿐인지라. 너와 나의 추억이라고 부르는 것 조차 어색할 정도로, 그 속에 나는 없었다. 그 시간들은, 우리의 것이었나, 너만의 것이었나. ​ ​​너와 나는 많은 것을 공유했다. 보통의 인간관계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나 사실은, 손가락 사이에 점이 있어-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나는 두 번째 발가락이 엄청 길어-라고 말했다.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일단 나는 꽤나 해맑게 웃었던 것 같긴 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래된 탓이다. ​ 다른 누군가가 나로 인해 울고 웃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왠지모를 두근거림과 긴장감, 설렘...어느정도는 오락의 성질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너를 더더욱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나로 말미암은 너의 감정의 표출은, 그것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던간에, 몹시도 소중한 것이었다. ​ ​잊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떠올리면 따끔거리는 기억의 처분은 항상 많은 곤란을 낳는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유일한 질투의 대상이 과거의 나뿐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또한 그 과거의 내가, 질투의 대상임과 동시에, 미래를 알고 있기에 가능한 동정의 대상이기까지 하면, 나는 정말로, 어떻게 해야하는가. ​ ​뜨거운 태양 아래서 너와 함께 걷던 길을 홀로 걸었다. 땀이 줄줄 나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어지러울 때까지 걸으며, 나는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도로 위에 거친 심박수 그래프를 그렸다. 이 길을 둘이서 함께 걸어도 그다지 좁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아주 가까이서 걸었기 때문. 이 길을 둘이서 함께 걸어도 그다지 덥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이 길보다 더 뜨거웠기 때문.​ ​ 새하얀 별사탕을 입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썼던, 전해주지 못한 편지를 겉옷 주머니에서 찾았다. 번져버린 글씨들, 흐릿해진 마음들, 더러워진 여백들은,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간신히 유지 중이던 균형을 잃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때 그 별사탕 속에는, 양귀비 씨앗이 하나. 너가 주었던 콘페이토는, 생각보다 설탕맛이 많이 나지 않았어서. 살짝 부족한 당도는 너의 몫이었다.​ ​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공간은 변해가고, 삶은 반복되고, 기억은, 희석된다. 그래, 나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추억이라는 이름 아래라는 핑계로 선명히 기억하지도 못한 채, 서서히 희미해지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처럼. 그리움과 서글픔을 적절히 뒤섞은 그것은, 이제는 꽤나 밍밍한 맛이 되었다. ​ ​알코올이 가득한 술잔 속에 깊이 담궜던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들을, 하나 둘 조심스레 꺼내어본다.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눈부실 정도로 푸르른 봄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째서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가. ​ ​아직 깊은 한구석에 자리한 채 훌쩍거리는 그것을, 천천히 어루만지다, 한 번 콱 세게 쥐어버리곤, 나는 자는 듯 죽음에 들었다. 내일이면 깨어날 깊은 죽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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