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 In

Puritans

All
Book
개혁교회 공예배 / 대니얼 R.하이드 (What to Expect in Reformed Worship)
1장 큰 그림 ​ 이렇게 우리 공예배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이유는 예배 순서들이 갖는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예배는 위대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은혜와 감사의 대화에 경건하고 초월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p.35 ​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가는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는가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예배는 신학이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p.18 ​ 많은 현대 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응답이라는 순서를 거꾸로 하고 있다. 그래서 먼저 찬양을 부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사실 현대에 유행하는 "예배"는 사람들이 찬양을 부르고, 목회자가 "설교"를 하고, 이어 종종 "결신 기도"로 이어지는데, 이런 예배는 성경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미국 개척 부흥 집회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현대 형식의 배후에 있는 신학은 예배에서 사람의 역할을 하나님의 역할보다 앞에 놓는다. .. 그러나 개혁교회 예배는 개혁 신학을 반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이고, 우리의 감사는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우리 예배는 "부르심-응답"이라는 성경적 형식을 따르고 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분께 응답한다. p.21 ​ 우리는 단순히 전통을 위한 전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가 성경에 바탕을 두고 성경의 빛 안에서 항상 개혁되길 원한다. p.25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원리가 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 안에서 명령하신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6문) 이것은 예배 순서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요소가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명시적으로 명령하신 것이거나,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확고한 해석 원리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p.32 2장 우리 예배의 중심 요소들 ​ 이번 장에서는 우리 예배의 중심 요소들을 반추해 볼 것인데, 앞서 언급한 말씀, 성례전, 기도가 그것이다. 이것들이 예배의 중심 무대를 차지한다. 이것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중보의 혜택을 그의 몸된 교회에 전달하시는 외적인 보통의 방편"(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45문)이기 때문이다. p.36
  1. Book
  • G
    Grace Shin
바울의 국가관 / 정대운 목사
1. 가이사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p.21 ‘성경적 국가관에 대해 바울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1) … 바로 이 부분이 바울이 말하는 ‘성경적 국가관’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권세자’들을 대항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도 함께 기억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즉, 국가 권력(권세자들)은 자신들을 대항하는 세력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p.34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전하는 ‘성경적 국가관’에도 매우 상충하는 일입니다. ​ p.38 예수님이 혁명을 거부하신 진짜 이유 (1) 복음 전도의 사명 : 4대 종교 중에서 전도를 권하는 종교, 즉 자신들의 도를 말로써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권하는 종교는 기독교 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종교를 드러내면 안된다’라는 방침이 시행되면, 실제로 종교의 자유를 침해바는 종교는 기독교 뿐입니다. … 지금 국가와 정부는 공직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전도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이 국가 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공적 임무를 행하고 있는 시간, 장소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 활동을 하며,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거룩함을 위해 :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면에서 비신자들과 구별된 동기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도들은 비신자들이 생각하는 범주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가서 모든 행동의 이유와 동기를 성경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성경에서 시작해서 성경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 (본회퍼와 다윗의 차이.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본회퍼가 처형을 당한 정확한 이유는 설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본회퍼는 복음을 전하다 핍박을 받은 게 아니라, 살인 공모죄로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무고히 죽이려고 하는 사울을 해할 기회가 있었으나, 사울이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권세자’라는 이유로 그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1. Book
  • G
    Grace Shin
도르트 종교회의 : 알미니안 논쟁의 시작과 그 영향
상실의 시대를 반영한 일본 소설, ‘인간실격’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부유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묘사, 마지막 죽음의 모습까지 작가의 삶을 담아낸 소설은 연약한 인간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손쉽게 ‘죽음’이라는 도피처로 달려가는 화자의 선택에 공감하거나 몰입하며 읽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모습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이 어딘가 저와 닮아 있었습니다. 또한 전적 타락을 인정해야만 구원의 서정에 발을 들일 수 있는 크리스천의 길과도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 끝은 확연히 다르지만 말입니다. 본서는 읽기도, 소화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한 페이지마다 부차적인 내용은 거의 없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잠시만 그 흐름을 놓치면 다시 돌아가 읽어야했습니다. 솔직히 뒷 부분인 lecture 8 ‘알미니안주의의 영향 및 결론’의 경우, 몇 단락은 건너 뛰었습니다. 알미니우스파와 명확히 갈리는 의견들을 비교/대조하는 내용을 더 숙지하는 것이 그 역사적 영향을 파악하는 것보다 제게는 우선이었습니다. ​ 1. 하나님의 뜻 p.70 “만일 여러분이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잘못이고, 만약 믿는다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해 여부를 떠나서 이것이 진리입니다.” ​ 이 구절이 제게는 조금 낯선 사실로 다가왔습니다. 복음주의권 교회와 선교단체의 색채에 물들어있던 제가 정대운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로 이 곳에 온 이후, 이전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신론’에 관심이 갔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하나님과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사뭇 다른 모습이셨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던 복음주의권 교회에서 저는 스스로 구원을 쟁취하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그만두었습니다. 나아가, ‘예수’를 실재했던 인물로 새롭게 믿게 되었고, 페미니즘과 사회주의라는 좌파적 사상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청교도 신학은 제가 ‘느낌’ 기반의 믿음이 아닌(100% 느낌 기반은 아니지만), ‘지식’기반의 믿음을 쌓을 수 있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동앗줄이었습니다. 삼송에서 알아가는 하나님은 이전보다 조금 더 ‘신적인 존재’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저 때문에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으신다는 말은 머리로는 이해되면서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조금 어렵기도 합니다. 불순종, 불신앙이 온전히 내 책임이라는 것도 신자인 저에게는 주의와 경계하는 사실이지만 추후에 전도를 하거나 복음을 전할 때 정말 그들이 ‘듣기 싫은’ 구절이겠거니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머니께서 신론 수업을 들으셨다고 하니,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어머니가 배우신 내용을 대조하며 제가 확대 혹은 축소한 신적 이해의 영역을 바로잡고 싶어졌습니다.
  1. Book
  • G
    Grace Shin
은혜 언약 Covenant of Grace
올 해 읽은 책 중 가장 영혼에 유익했던 책입니다. 처음에는 두께 때문에 손이 잘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내 리처드 얼라인과 조셉 얼라인의 글에 빠져들었습니다. 특별히 유럽 여행 기간 중에 본서를 읽었는데, 파리 뛸르히 가든(Jardin des Tuileries)에서 초록 의자에 앉아 조용히 책에 빠져들었던 경험도 함께 있어 여러모로 좋은 추억이 깃든 책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은 언제든 사 주시는 어머니께 본서를 대여가 아니라 소장해 읽을 수 있는 경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8장 ‘한 마음’에서 ‘한 마음’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신 것이 유익했습니다. 한 마음을 1) 흔들리고 불안정한 마음이 아님 2) 분리된 마음이 아님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본 점이 독특했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의 한 마음은 고정되어 있고 세워져 있고 결심한 마음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14)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저의 마음 역시 말씀 앞에 고정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경영학이라는 전공에서도 마케팅, 기획 등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 일들을 주로 하면서 정말 돈의 흐름이나 트렌드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요일 2:16-17)’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신앙처럼 절대적인 것을 소유하고자 애쓰기 보다는 내가 좋은 것, 내 취향을 만들어가는 데 사람들은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흔들리고 불안합니다. 돈, 명예, 생명도 하나님이 앗아가시면 다 그 뿐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요) 흔들리고 불안한 신앙이 아니라 앞에 있는 것에 시야를 늘 고정하고,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경건의 시간을 갖는 훈련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로 분리된 마음에 대한 설명에서 ‘하나님은 마음 전체를 모두 소유하심’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학회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할 때 ‘주제와 Align (일치, 동일 선상에 놓다) 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합니다. 큰 틀에서 디테일이 맥락을 벗어났거나, 통일성을 해친다는 이야기 입니다. 책의 표현을 보고, ‘제 마음이나 생활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로 Align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이라고 했으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큰 주제에서 어긋나 있는 겁니다. 또한, 작게는 일상에서 버스를 탈 때 기사님께 인사를 한다던지,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잡아준다던지, 학교에서 경비원이나 청소해주시는 분들께 인사를 한다던지 이런 사소한 디테일도 신경 쓰는 편입니다. 이런 매너들이 서구권에는 많이 자리잡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빠르게 변화를 겪어오다보니, 이런 좋은 문화들이 정착할 시간이나 사람들의 의식 변화가 이뤄질 틈 없이 경제 성장에만 집중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 저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궁금해하거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때 기쁘게 전하기 위해 제 삶을 계속해서 Align하고 있습니다.
  1. Book
  • G
    Grace Shin
개혁교회란 무엇인가 / 맬컴 위츠
책을 통해 얻은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개혁교회의 특징 중 구원의 길에서도 ‘효과적 부르심’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 둘째는 권징에 대한 중요성과 구체적인 이해를 얻었다. 셋째는 ‘빛과 열’이라는 비유를 통해 개혁주의에 대한 정서적인 부분에서의 이해를 얻었다. 첫째로, ‘효과적 부르심’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기존의 이해 수준에서는 효과적 부르심이란 불가항력적 은혜를 인간이 받아들이게 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간단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의지로부터 비롯되며, 성공할 수도 있고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영역이 아니라 늘 언제나 하나님께서 성공하시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책에 소개된 ‘스코틀랜드 교회 입교인 청년’이 자신이 구원을 체험한 과정을 이야기할 때, 자신이 기여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속해서 도망친 일이지만 하나님이 결국 자신을 교회로 이끄신 것임을 솔직하게 밝히는 글이 ‘효과적 부르심’에 대한 이해를 크게 도왔다. 나의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고 크게 반역하고자 했던 청소년기에 하나님께서는 대학에서 선교단체를 붙여주셨다. 믿음의 친구들과 선배들을 보며 ‘아,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렇게 살아도 안 죽는구나’하는 놀라움과 깨달음을 얻었다. 댄스 동아리를 하고자 할 때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기도하며 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고, 신앙이 없는 학창시절의 친구들의 모임에는 점점 가지 않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을텐데, 믿음 있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내게는 유의미하게 느껴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지금도 그들과의 관계가 크게 아쉽거나 아깝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뀌어지는 그 과정이 신기하다. 나도 내가 이렇게 ‘경건한’ 사람이 되어갈 줄은 정말 몰랐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 나와는 너무나 다른 성향의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내가 취약한 죄가 있지만, 순종함으로 더 큰 상을 바라보며 나를 다듬어 가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1. Book
  • G
    Grace Shin
헤르만 바빙크의 기독교 세계관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 바빙크의 저서를 처음 접했다. 네덜란드라는 나라도 낯설 뿐더러 저자 이름도 생소해 그의 명성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잘 몰랐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니, 그가 얼마나 면밀하고 꼼꼼한 철학자인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정통 칼빈주의 신학자로서 그의 최선의 지성을 다해 교리를 사수하는 사고의 흐름이 그가 가진 말씀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다고 느껴졌다. 또한 특정한 교리 체계나 특정 사회 문제를 다루기보다 기독교 세계관 자체라는 거시적인 면을 다루다 보니 모호하고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음에도 전혀 그러한 느낌이 들지 않아 놀라기도 했다. 왜 세계관인가? 그러나 바빙크는 이 이행하는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특징을 ‘내적 분열’과 ‘끊임없는 불안감’에서 찾습니다. 바빙크가 볼 때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는 사유와 감정, 의지와 행동 사이의 부조화, 학문과 삶 사이의 분열로 특징지어지며, 그리하여 그것은 세계 및 인생에 관한 통일된 관점이 결여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사람은 분열 가운데, 불안 가운데 홀로 견디면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온갖 노력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된 세계관의 요구와 필요성, 수많은 거짓 세계관들의 등장을 바빙크는 바로 삶의 이런 맥락과 연관지어 보게 됩니다. p.32-33 ​ ‘세계관’은 보이는 것을 보거나, 단지 응시, 주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p.33 ​ 그러나 상대주의는 상대적인 것 자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며, 이로써 진정한 자유를 강제로, 참된 믿음을 미신으로 맞바꾸어 놓습니다. p.138 ​ ...기독교 세계관은 바로 이러한 자율성과 자주성을 온 힘을 다해 반대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언제나 어디에서나 자기가 고안해낸 법칙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의 삶의 규칙으로 정하신 법칙들에 매여 있습니다. ... 하나님의 생각과 법들에게 우리 자신을 지성과 마음, 사유와 행동에 있어 일치시키는 것은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류의 이상이요 목적입니다. p.163-164
  1. Book
  • G
    Grace Shin
Made with Slash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