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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에세이
진짜 자유로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서
christine
EP 1.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늘 모범적으로 살아왔다. 학생 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생 때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그 안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달렸다. TV에서 모범생이라고 그려지는(청춘 드라마에서 약간은 측은한 존재로 그려지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때로 낭만의 시간도 있었다. 처음 상경했을 때는 대학 생활을 즐긴다고 중앙 광장에서 밤을 꼴딱 새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친구들은 행정고시에, 경영학 스터디를 할 때 나는 진짜 재밌어 보이는 동아리를 했다. 그럼에도 잠깐이었다. 기숙사에 가서는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1교시 수업을 준비했고, 동아리를 하면서도 과외를 2개, 3개씩 하고 성적은 4점대를 유지했다. 모범의 표본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부러웠다. '쟤는 늘 이상해'에서 '쟤'의 포지션을 맡는 사람. 어디로 튈지 모르고 존재 자체로 자유분방한 사람. 지금 내 앞에 앉아서 같이 술을 마시고 있지만 늘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 그런데 그 자유에는 꽤 많은 것들이 필요한 것 같았다. 시간과 돈을 낭비할 수 있는 용기. 보장된 길을 가지 않았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안을 내색하지 않을 용기.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정해진 길에서 정중앙으로 걸어왔다. 돌아보니 20대의 후반에 가까워져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내 삶이 지루하게 이어지면 어떡하지. 서른을 앞두고 불안감이 샘솟았다. 나보다 10년 먼저 이 시간을 겪는 회사 동료에게 투정을 부렸다. 혼란해요 혼란해. 성님 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요? 이 서른이라는 나이가 너무 별로에요. (그분 입장에서 내 고민은 정말 얼마가 귀여웠을까. 제발 귀여웠길..) 그러자 성님은 나에게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서른이 딱 좋은 나이 같은데? 너무 어릴 때는 사실 뭘 해보고 싶어도 세상이 무섭고 여유도 없잖아. 근데 또 서른다섯을 넘기면 정말 시도를 하는 게 두렵거든. 근데 지금 네 나이는 시간도 있고, 돈도 조금 있고, 젊음도 있으니 최고의 시간인 것 같은데?" 지혜로운 선배를 둔 건 큰 복이다. 그 말을 듣고는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생각했던 시간을 반성했다. 정말 맞는 이야기다.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나이 아닌가. 그렇지만 무언가를 시도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혹은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무의식이 내 발목을 잡는다. 모범생 콤플렉스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이상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사실 이상한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미의 기준에 부합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오롯한 빛을 뿜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런 존재에게 사람들은 매력을 느낀다. 운이 좋으면 그 이상함이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예시를 꽤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거창한 경험이라는 말 대신 '시도'라는 단어를 앞세워볼까 한다. 그냥 해보지 뭐 하는 태도. 이것조차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가볍게 도전해 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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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굳이 왜 글을 쓰겠다고 해서는
_ 내가 나를 잘 챙겨보겠다는 다짐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휙휙 넘겨보다가 인상깊은 구절을 찾았다. "그런 것들과 싸워야 해. 내 삶을 지루하고 무료하고 재미없게 만드는 것들. 그래서 여행을 가고, 책을 읽고, 맛있는 것을 먹고,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도 해보는 거야. 내가 나를 챙기기 위해서 그러는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일만 잘하면 되지, 직장인으로서 커리어만 잘 만들어가면 되지 싶었다. 때때로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음 안에 독이 차오를 때 일 년에 한 두 번 여행을 다녀오면 되지.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행복을 찾아야만 하나 싶었고 그런 사람이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차가 조금씩 쌓이면서 삶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잦아졌다. 무색 무취의 직장인이 되어가는 기분. 매월 1일이 되면 휴일과 월급날을 먼저 체크하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아휴 또 출근이네'하며 벌써 권태로운 한 숨을 내뱉는 일상 말고. 조금 더 알맹이 있는 페이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손으로 쓰기였다. 다이어리 중독자로서 업무용과 개인용 다이어리가 있지만 지난 상반기에는 거의 쓰지 않았다. 업무용 다이어리는 윈도우 스티커 메모로, 일기는 아이패드 일기로 대체했다. 특히나 아이패드로 일기를 쓸 때는 굳이 활자를 넣지 않아도 사진만 툭 넣으면 한 칸이 채워지니 오히려 좋았다. 그런데 손으로 다시 돌아오니 조금 달랐다. 손으로 일기를 다시 쓰니, 자꾸만 내일을 위한 마음이 생겨났다. '이놈에 출근 언제까지 해야 되나'라고 썼다가도, 그 다음에는 퇴사를 하기 전에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짜 뭘 하고 싶은지가 연달아 나왔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긍정을 덧대곤 했다. (어렸을 때 선생님께 제출했던 일기장의 효과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다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내려갈 수 있었다. 업무용 다이어리 또한 스티커 메모로 쓸 때보다 확실히 달성률이 높아졌다. 고등학교 3년 간 치열하게 스터디 플래너를 쓰며 공부했던 영향일까. 업무를 마치고 하는 체크는 달다 달아. 어쨌든 다이어리를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주간 에세이를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글은 사실 수단이다. 글을 쓰려면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가장 좋은 글감은 경험이고,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일상을 조금 더 다채롭게 채워가겠다는 결심이다. 노력의 알맹이들을 모아 글을 쓰고, 그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 일상은 조금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합정에서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직장인은 이렇게 애쓰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이 연재를 이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