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일상 | 미뤄왔던 나를 다시 찾는 일 | 직장인 일상 | 원두서점 | <노인과 바다> | 박완서 작가 탐독 | 새해 목표
모든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이번 1월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안식 휴가를 얻은 3주 동안 스스로와 대화를 하면서 마음속의 진짜 이야기를 많이 찾았는데요. 그중 한 장면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연히 '원두 서점'이라는 카페를 방문했습니다. 커피와 책을 연결한 점도 좋았고 다녀온 분들의 리뷰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카페에 도착해서는 깊은 고민 없이 메뉴판 제일 위에 적혀 있던 '노인과 바다'라는 커피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블렌드를 설명하는 글을 읽다가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노인과 바다>를 아직 완독하지 않아서 이후에 언급되는 이야기는 블렌드 설명서 속 문장에서 출발한 제 생각에 기반합니다. 정확한 책의 해석은 직접 읽어보고 찾아보세용) 노인이 그렇게 고생 고생을 해서 청새치를 잡았는데 상어와 싸우고 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이 노인에게 진짜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제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좋은 직장, 높은 연봉, 그럴싸한 것들을 얻기 위해 매일 매일 고전을 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외부 작용으로 그것들을 잃게 된다면? 나에게 정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과정이 행복한 일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결과는 내가 좌우할 수 없고, 심지어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해도 너무 쉽게 그 가치가 변할 수 있으니까요. 이뤄가는 장면 속에서 내가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 데에는 박완서 작가의 책과 MMA 엑소 무대가 힘을 보탰습니다. 아이패드 속 책은 박완서 작가의 <그 남자네 집>입니다.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박완서 작가의 책을 다시 읽었는데요. 학생 때 시험을 위해 억지로 읽던 때의 감상과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한 개인이 전쟁의 광풍에 휘말리고,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했던 순간들은 지금의 내 상황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거울삼아 행복해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저도 한낱 인간인지라 이기적인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내 삶을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기에 태어난 게 얼마나 드물고 귀한 운명인지 느끼게 되었고요. 어쩌면 나의 자유에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내 앞의 굴레들을 몸으로 치워준 선대 어른들에 대한 의리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엑소인데요. 제 또래들은 익숙할 텐데 '너 이상형이 누구야?'라는 말 대신 '너 엑소에서 누구 좋아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화려하게 떠오르던 때도 있었고, 여러 그룹들이 앞서가며 한 발씩 뒤로 갔던 순간들도 있었겠죠. 그런데 그 십수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무대 위 멤버들의 표정이 순수하게 빛나는 거예요. 특히 카이님의 표정이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표정이라 솔직히 정말 너무 부러웠습니다. 저렇게 사랑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도, 그걸 참 멋지게 단련해왔다는 것도요. 어쩌면 또래라서 그런 부러움이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결핍이 목표를 향한 원동력이었습니다. 부산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고 싶어서 기를 쓰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갔고, 작은 출판사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자 그전에 해보지 않았던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이직한 회사에서도 동료에 비해 적은 연차와 경력을 노력으로 메워보고자 애썼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1인분의 몫은 착실히 해낼 수 있는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능숙해지자 비로소 평온과 불안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도, 가족도, 친구도 제 삶을 이루는 그 어떤 면에서도 큰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이 고민을 챗GPT에게 말했더니 단숨에 해석해 주더라고요. 이제는 결핍이 동력이 되는 시간이 지난 거라고. 그래서 나를 이끄는 다른 동력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이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겠다는 이 단순한 다짐에, 저는 혼자만의 여행과 수많은 카페 투어와 <노인과 바다>와 박완서 작가의 책과 EXO의 무대까지 필요했습니다. 참 많은 증거가 필요하군요. 그래서 제 올해 목표는 결핍을 만회하는 것이 아니라, 이끌리는 쪽을 선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는 삶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재밌게 채워가고 싶어졌습니다. 스스로에게 채워뒀던 부담감과 죄책감을 내려놓고, 나를 추동하는 삶을 사는 것. 그렇게 매일의 가능성을 기대하다 보면 비록 청새치를 다 잃더라도 과거에 나는 행복했다고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chris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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