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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엘라스틴

조용히 성장하는 합정역 직장인의 일기

2024년 5월 | 장미처럼 강렬했던, 라떼처럼 다정했던
봄을 알리는 꽃이 벚꽃이라면, 봄의 마지막을 알리는 건 이팝나무가 아닐까. 낭만의 상징으로 쓰이는 벚꽃과는 다르게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다. 물론 이 사진을 찍은 날 오후 반차를 써서 더 행복한 것도 있다. 햇빛은 점점 따뜻해지고 바람은 여전히 시원하다.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10년 전의 나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너무 들뜨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진정하자 진정해. 그리고 보이는 것보다 내실을 단단히 만들어가자는 이야기도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나와의 관계라는 것. 그걸 꼭 말해주고 싶다. 10년 뒤의 나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특히 이번 5월은 쉽지 않았고, 숨 돌릴 틈 없었다. 한 숨 끝에 눈물이 맺히는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하는 목적이 있다. 자신만의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책이 가 닿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책이라는 물건 안에 담긴 다정한 이야기를 전할 것이다. 그 한 가지의 목표를 위해 이 모든 건 이겨낼 수 있다. 성수동에서 미팅을 하고 우연히 들어간 카페. 저녁에는 주류를 파는 것 같았다. 층고가 높은데 전반적으로 어두침침해서 묘했다. 파주의 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5년 전 일을 하러 다녔던 그곳을 다시 와보니 기분이 복잡했다.아직 기억한다. 출근 시간보다 1시간 먼저 회사 근처 카페에 도착해서 일기를 썼던 순간들. 그 때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면 꽤나 필사적이었다. 그 시간들이 진정 나를 성장시킨 것 같다. 여의도의 노을. 퇴근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중간에 서서 급하게 찍었다. 어쩜 저렇게 아름다운지. 물감으로 그래픽으로 저런 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렇게 만들어낸다고 해도 자연이 주는 감동을 재현할 수 있을까. 5월이 좋은 이유. 송이가 무거워서 머리가 내려가있는 걸 보면 그 자체로 귀엽다. 예전에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할 때 건물 대문을 장미 덩쿨이 감싸고 있었다. 그 문을 지날 때마다 마치 장미의 세례를 받는 것 같았다. 노트북과 이것 저것을 담은 보부상 같은 가방을 둘러매고 뛰어가던 대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퇴근길에 본 달. 꼭 짙은 어둠 속이 아니라도 그 나름의 멋이 좋다. 합정동 라무라 추천. 합정에 맛있는 라멘집이 많다. 라무라는 이번에 처음 갔는데 유명한 곳은 이유가 있다. 기름지고 짭짤하고 감칠맛 폭발. 나를 온전히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주 행복한 일이다. 오랜만에 생긴 휴일에는 시집과 라떼를! 고명재 시인의 세계는 소탈하고, 다정하고, 귀하다.
christ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