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7일, 인바운드 투자 검토 제안 내역을 슬랙에 연동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시점에 '주식회사 엘알에이치알'이라는 곳으로부터 검토 요청이 접수되었습니다. 알 수 없는 뜻의 법인명을 뒤로한 채 내용을 살펴보니, 민족사관고등학교 출신 3명을 포함한 매우 젊어보이는 팀이 명품 수선을 시작으로 2차 명품 시장을 혁신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렇게 패피스 팀과의 첫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명품 수선 영역의 작아보이는 규모, 전무하다시피한 팀의 경력, 때로는 미숙해보이던 커뮤니케이션 방식들에도 불구하고, 수선 너머 대표님의 큰 꿈, 패기 (또는 전완근) 그리고 검토 과정 내내 성장해가는 모습을 통해 '이 팀의 5년 뒤에 함께하고 있고 싶다'는 베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투심 이후 클로징 과정에서 대표님께서 베이스가 아닌 다른 투자사만의 돈을 받겠다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패피스의 성장에 우리가 무조건 제일 도움이 되는 주주가 될 것이다'는 말을 믿어주시면서 그 후 일년 반정도 함께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순탄하진 않았습니다. 제품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브랜딩에 치중했고,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본 경험이 없어서 개선 속도가 느렸고, 일부 공동창업자들이 이탈하고, 성장이 멈췄습니다. 솔직히, 이런 경우는 많은 VC들이 기대를 점점 더 낮추게 되는 상황입니다. 리소스가 부족한 상태로 계속 신규 발굴과 사후 관리를 해나가야하는 상황에서, 더 포텐셜이 커보이는 포트폴리오사들의 케어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신경쓰고 도와준다해도 잔소리 수준에 불과할 것이 뻔하고요. 그랬던 패피스였는데요, 제가 2주 전에 뉴발란스 제품을 수선하면서 제품 경험이 투자했을 당시와는 비교도 안되게 좋아진 것을 보고 정말 기뻤습니다. 팀은 몇 주간 뚝딱뚝딱 수익모델을 만들더니 BEP를 달성한 반면, 수도 없이 많던 경쟁 서비스들은 사라졌습니다. 자괴감이 드리우던 팀의 표정에 자신감이 조금씩 붙으면서, 수선 너머의 것을 본격적으로 잡으러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