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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과 마케팅 '업'은 다릅니다.
경은
최근 AI에 대해 재미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PD 1명, 변호사 1명, 로스쿨 재학생 1명, 디자이너 1명, 그리고 창업가 1인 구성의 모임에서 진행되었다. Open AI의 Sora가 주제의 발단이 되어 각자 분야에서의 AI 관련 잡학을 끌어모아 긴 논의 끝에 다음의 질문만이 남았다: AI가 대체하는 것은 무엇인가? 특정한 업무 영역을 대체하는 것만으로 곧 ‘업’의 대체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 ‘업’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맞닥뜨리게 된다. ‘업’의 본질은 ‘업’을 이루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업무 영역 또는 그 내용에 대한 것과는 다르다.
예컨대 AI 변호사를 떠올려본다. 변호사와 같이 면허를 기반으로 하는 공인 전문직은 그 qualification 에서 요구하는 지식이 명시적으로 범주화되어 있다. 따라서 공인 교과서 대신 암묵지로 전문성이 구성되는 비전문직 (예컨대 컨설턴트) 에 비해 AI를 통해 그 지식을 모방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다. 변호사의 자격을 얻기 위해 학습해야하는 지식의 범위, 특정한 지식의 옳고 그름 판단 등을 생각해본다면. 그런데 이 지식을 갖추었다고 하여 변호사 업무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변호사의 업무영역 중 송무는 특히나 사실 판단 이후의 다양한 이해관계 및 그 역학을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기업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맡은 (사내/사외) 변호사는 기업의 결정에 대해 일견 중립적으로 보이는 법리해석뿐만 아니라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는 단순해석 이상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하지 않을성 싶다. 이때 사실관계에 대해 표면 위로 드러난 정보 외에도 사내 정치 역학이라던지, 기업 외부의 이해관계자의 입김이라던지를 (적고보니 대개는 relationship-based의 무언가에 국한될지도?) 고려해서 종합적인 전망을 가지고 Pros & Cons를 판단할 것인데 이 역할을 소위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한 모범생 AI 변호사가 수행하기는 어려울 테다. AI의 학습능력과 성장속도 때문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화시키기 곤란한 정보들이 실제로는 더 많이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기업과 관련하여 변호사 ‘업’의 핵심은 중립적이고 ‘기계적’인 (이 단어 또한 재고해야할 때가 금새 올지도…)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대한 결정에 대해 공식적인 authorization을 부여하는 역할, 가장 안전하게 risk를 진단하거나 나아가 조정하는 역할에 가깝다. 나는 이 두 역할 간에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 내용은 변호사에만 해당하는 바는 아니다. 모임에서는 참여한 전원의 직업을 이 관점에서 살펴보았고 꽤 유사한 결론, 그러니까 드러난 직무 skill 과 실제 ‘업’의 본질 간 차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칠게 표현하면 근미래의 AI는 특정한 업무 영역을 대체할 수는 있겠으나 그 ‘업’의 본질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요점이다.
1.
AI가 알고리즘화 하기 난감한 무작위의 정보/지식 바탕의 의사결정이 현업에서는 훨씬 많이 이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2.
그 정보/지식을 알고리즘의 재료로 input 하는 것조차 꺼려질 수 있으며
3.
무엇보다 아직까지의 인간-AI 관계 지형상 AI 에게 risk를 의탁한다는 것 자체가 감정적인 허들이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4.
이 관점에서 보면 AI 에 대해 이야기할 때 AI 를 통해 얼마나 많은 업무가 대체될 수 있냐는 방향에만 집중해서는 놓치는 지점이 생긴다는 의미다. 나 또한 AI의 가능성에 매일 압도되고 있고, 그 실무적 유용성을 높게 평가하지만 아직까지 (또는 예상보다 꽤 오랫동안) AI가 돋보이는 구간은 롱테일하게 쪼개진 세밀한 단위의 업무들에 대해서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아가서는 업무단위 뿐만 아니라 AI가 실질적으로 대체하게 되는 비즈니스 또한 유사한 현상을 보일 것같다.) 일이 '되게끔' 하기 위해 1+1 만으로 2가 되지는 않으니 2+a를 만드는 각종 ‘업’들의 종합예술(?)에 대해서만큼은 AI가 여러모로 갈 길이 멀다.
새벽네시는 현재 마케팅을 재료로 비즈니스의 성장을 만들어낸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 마케팅의 본질은 제품/서비스 외부에 고객과의 접점을 만들어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위 관점으로 돌아와 마케팅 ‘업’의 본질을 고민해보면 이는 마케팅 자체의 본질과는 차이가 있다. 변호사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할 때의 이 ‘업’의 본질은 비즈니스 성장에 대해 ‘확신’을 드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risk’에 대한 (반드시 법적 형태가 아니더라도 정서적/관계적으로) 연대책임을 뜻하기도 하고.
이 지점을 꽤 첨예한 수준으로 이해하는 데 창업 이래 꼬박 1년 정도가 걸렸다. (물론 실무자로 일하던 주니어 시기를 떠올려보면 그 격차는 아득할만큼 더하다. 돌아보건대 그렇게 놓친 수많은 기회들이 얼마나 아까운지!) 이 깨달음은 새벽네시의 현재 Core Value 중 하나인 “허세없음”을 짚어내는 데에 근간이 되었다.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적어도 그걸 찾아내려는 시도) 없이는 길을 잃기 쉽상이다.
실무적인 의사결정 레벨로 이 깨달음을 옮겨와보면,
1.
가장 주되게는 우리는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 특정한 형태여야 한다는 믿음을 폐기했다. (product 와 service 를 다루는 관점과 관련해서 흥미롭게 살펴봤던 건 퀄트릭스와 서베이 몽키의 사례다. 이견의 여지는 다양할 수 있겠으나 여전히 이 글은 강력 추천!)
2.
더 좁게는 마케터를 완전 대체한다는 목표의 마케팅 product를 상상하는 것보다 마케터의 손/발을 생생히 덜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따라서 마케터 또는 마케팅 비즈니스는 그 ‘업’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를 그려보기로 했다.
3.
나아가 앞선 모든 이야기는 결국 ‘업’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AI 및 AI를 활용하는 공급자가 아니라 고객의 사이드로 생각의 전환이 필연적이라는 점에서 고객지향이라는 가치의 외연을 훨씬 넓혀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만큼 세일즈부터 오퍼레이션까지 고객의 UX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고객이 무언가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 그 말 아래에 있는 (숨긴 또는 고객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진짜’ 동기는 무엇일까?”
이 관점에서 최근 우리 팀은 모두 함께 ‘세일즈’ 의 중요성을 거듭 스스로 강조하고 있다. 사내/외를 가리지 않고 상대의 의사결정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drive하는 그 UX 자체가 모두 세일즈다. 이 스킬을 얼마나 갖추냐에 따라 ‘업’에서의 레벨 업 (ㅎㅎ) 또한 가능하다고 본다.
어느덧 개봉이 10여년 지난 영화 (믿을 수 없어!!) <HER> 을 아직도 종종 떠올린다. 주인공 Theodore의 직업은 편지작가다. 의뢰인은 편지의 재료가 될 수신인과의 추억을 Theodore 에게 전하고 Theodore의 음성을 매개로 프로그램은 편지를 써내려가는데 물론 필체는 의뢰인의 것을 따른다. 완성된 편지는 의뢰인에게 전달되고 의뢰인을 통해 end-user에게 도착한다. Theodore가 얼마나 훌륭한 각색가이자 작가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과정을 곱씹어보면 편지를 주고받는 행위의 본질은 아마 편지를 ‘전달’하는 그 과정과 의례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에는 따뜻하면서도 묘하게 건조하게 느껴지던 그 풍경이 (물론 어딘가 여전히 건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생생히 또 새로이 와닿는 나날이다.
‘업’의 본질에 대해, AI가 불러올 변화에 대해, 마케팅에 대해, 새벽네시의 Core Value에 대해, <HER>에 대해,
실은 그 무엇에 관해서건 이야기 나누고픈 여러분들의 가볍거나 무거운 각종 연락을 두팔벌려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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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am-kyoun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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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주를 만들고 부수기
반복적으로 머리를 쿵 치는 주제가 있다. 조직은 바삐 돌아가지만 분명 어딘가 비어있다는 불안 → 아니, 바쁘다고는 한들 우리가 과연 정말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 고민을 명료화해볼까 vs. 과도하게 반복되는 고민 자체가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것이라면? → 견딜 수 없어 명료화 → 고민을 통해 만들어지는 변화를 체감하며 고민의 타당함을 인정 → 실행 중심의 안정기 → 다시 1단계로 잡념처럼 떠오르는 고민이 아니라 의미있는 수준으로 이 고민을 팀과 함께 풀어낸 건 창업을 하고 9개월 쯤이 지났을 때였다. 23년 5-7월 경의 새벽네시의 첫 타운홀/새바시 (새벽네시를 바꾸는 워크샵 😉) 였고, 그때 우리는 ‘사업의 성공은 돈 되는 것’이라는 중요한 본질을 함께 짚어냈다. 그로부터 6개월여의 시간이 지난 23년 12월 새바시에서 우리는 ‘돈 되는 universe & 그에 이바지하는 유기적인 조직 (unit 체제) 을 만들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 새바시를 계기로 타운홀은 정례화되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3주차 타운홀에서 (’위 phase 구분상 실행 중심의 안정기’로 접어들 때) 아래 글을 썼었다. 그리고 2개월 정도가 지난 내일의 4월 1주차 타운홀을 위해서는 또 다시 ‘아니 우리 진짜 잘하고 있나요’의 고민을 공유할 예정.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는 1월 3주차 타운홀의 글의 일부 발췌 & 지금의 생각을 덧댄 (Italic 처리) 버전으로의 수정: 누군가 정답을 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고정 불변의 정답이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해봐야 한다. 마케팅에 대해 우리가 늘 이렇게 고객사들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비즈니스라는 게 대단한 경영, 전략, 비전만을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일하기 방식, HR, 조직문화, 모두 그렇습니다. 누가 잘했다고 우리에게 그 방법이 필히 정답은 아니고, 또 누가 못했다고 우리에게 그 방법이 필히 오답은 아닙니다. 그러니 계속 배우고 계속 의심하면서 ‘특정한’ 방식이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건 작은 우주를 짓고 부수는 과정을 아주 빠른 템포로 계속 반복하는 것이라 참 어렵고 괴로운데 이게 없이는 영영 잘못된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일단 하다”보면 여러가지 질문이 끼어듭니다. 사소한 질문도 아니고 아주 주요한 질문들이요.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달성하려는 목표가 복잡다단히 상호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로 Objective - Key results - Initiatives 전체가 수많은 가설로 얽혀 있다는 점을 잊지맙시다. 따라서 이번의 실패가 무엇의 실패인지 발라낼 수 었이야 합니다. 부분에 대한 결론을 전체 아이템에 대한 결론으로 비약할 수 없습니다. (물론 역방향 또한 유의해야 합니다.) 요컨대 이 질문들은 우리의 경로를 수정하게 할지언정 멈추게 해서는 안됩니다: “바닷물을 끓이지 마세요” 모듈화가 될까? 트래픽이 될까? → 필요한 질문이고 동시에 이 질문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안될 가능성은 어떻게 점칠 수 있나요? 아예 니즈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니즈는 존재하지만 솔루션이 잘못 연결되었다? 니즈는 존재하지만 GTM 상 타겟을 잘못 찾았다? BM 구조상의 오류로 수익화에서 실패했다? 현재의 전략에 이 성패 변수들이 고려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그 산식을 알아낼 수 있나요? 중요한 건 팔아보기 전까지 “진짜” 인사이트는 없습니다. 그냥 파는 게 아니라 목표와 그에 따른 가설이 명확하면 팔고 나서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실행합시다! 대신 우리의 집요함이 우리를 속이지 않도록 그걸 되돌아보는 기점을 미리 찍어둡시다. 반대로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있다면? 그건 정말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너무 큰 확신으로 일단 해보는 것에서 의의를 찾고 계시다면 그건 자기만족에 불과합니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나아가고 있다는 것으로 착각하지 맙시다! 목표를 이해하고 정확히 조준할 것, 그게 아니라면 실행은 무의미합니다.
경은
일은 전쟁이 아닙니다.
지난 번 이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영상을 봤다. 감동은 엄청났다. 37 signals (aka basecamp) 의 co-founder, Jason Fried의 인터뷰. JF는 통념상의 스타트업이 하지 않는/심지어는 금기시할 법한 이야기들에 거침이 없다. (그의 결과가 validate 하니까!) 그러면서도 놀라울 것 없다고 서두서부터 거듭 강조한다. 이 세상의 95%의 비즈니스는 그가 말하는 이 새로울 바 없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왔으며, 37 Signals 또한 그 중 하나일 뿐이고, 더 나아가서는 방식이야 95% 와 5% 중 어디에 속하건 이토록 당연한 비즈니스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만이 비즈니스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답이라는 이야기를 2시간 꼬박 반복해서 설명하는 데 여전히 지루할 새가 없다. 🥹 이야기할 꼭지야 너무 많지만 이 글에서는 핵심만 다뤄본다면: 비즈니스의 본질은 궁극적으로는 '돈을 쓰는 것보다 많이 버는 것' 이다. we don't talk about things that don't really matter so much, like revenues dont really matter cause you can go broke generating a lot of money. We just want to make more money than we spend, have good healthy margins which allow us to experiment, and play, and not be afraid to do things that may not work, and just enjoy ourselves. 이 본질을 충실히 습득하는 데 있어 JF가 가장 유효하다 주장하는 방식이 bootstraping. 작은 팀: 돈을 버는 것은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돈을 쓰는 것은 통제할 수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작은 팀에서부터 시작하고 profitable한 구조를 검증하며 팀은 키워나가야 한다. 작은 자금: (작은 팀과 자연히 연결되는데) 자금이 충분히 있다면 자연히 돈을 버는 법보다 돈을 쓰는 법을 배운다. 어느 한 순간에 새로운 걸 깨닫게 될 수 없다. 처음부터 돈을 벌어온 기업만이 돈을 버는 법을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여 JF는 누군가 자기에게 덜컥 큰 돈, 큰 팀을 맡긴다면 대체 그것을 어떻게 써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사업은 어렵고 복잡성은 그 난이도를 훨씬 더 높일 뿐이다. The reason I think it's great for entrepreneurs to start bootstrapping is because they just have more practice making money, and they get better, and better, and better at the fundamental skill you need to have ultimately to run a successful business, which is to make money. 돈도 없고 규모도 작은 팀으로서 실행력을 갖추고 종래에 이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에 일관된 몇 가지 원칙이 언급된다. 절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올해 말까지 우리는" 등으로 시작하는 약속을 특히나 경계하라고 거듭 강조한다. (ㅋㅋㅋ) 예컨대 모든 비즈니스를 "6주" 단위로 생각한다는 제언이 아주 인상적이다: Every six weeks, we rethink what we’re going to do next. We’re very much an in-the-now company, making it up as we go.
경은
‘사활’을 걸고 계신가요?
일을 하다보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유난히 그런 시기에는 일터 안팎의 매순간 긴장감이 들숨날숨에 배어있다. 유머는 희박해지고 고로 웃는 일도 더 적다. 반가운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해도 온통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그럴 때의 나는 마치 소위 말하는 '사활'을 건,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 생로병사가 있다지만 유독 스타트업에는 그 존망을 가로지르는 '결정적' 순간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만 같다. 느껴지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망하고 나서 "아 그때였구나, 우리의 결정적 순간" 하고 알아차린다면 영 소용이 없을테니 늘 사활을 걸듯 임해야 살아남은 현재와 근미래에 대해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치열한 순간들의 연속에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사활을 걸듯이 임했을 때 과연 정말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나?" 이 생각에 이른 것은 학창시절 스스로의 일화로부터다. 나는 도시 곳곳의 중학교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만큼은 공부들 열심히 했다는 학생들이 모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우리는 입학 전 겨울방학부터 미리 입교하여 다함께 입학 시험을 준비해야 했는데 채 서로를 알기도 전에 겁을 잔뜩 먹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불확실성에서 비롯한 불안과 싸우기 위해 다들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모두가 은근한 기대와 자부심을 잔뜩 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동기들의 속내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그들이 아묻따 시험 공부에 온전히 매진하고 있는지 매일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모든 긴장되는 과정을 동기들은 어찌 견뎌내고 있는 것일까? 더 넓은 세상에 나와보니 내가 터무니없이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처음 받아보는 성적표를 마주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 어색한 동기들과 반강제로 입학 성적을 공유하는 순간에 억지로 괜찮은 척 웃어보일 수나 있을까? 이런 가능성은 늘 현재를 압도했다. 집중을 위해서라도 생각의 일단락이 필요했는데 고심 끝에 나는 일단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그러면서도 확률적으로 리스크가 더 높을 때는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가장 안전한 전략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받으면 스스로 만족스럽다고 자평할지를 정해두었는데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100여명의 입학생 중 대략 80등 안에 들면 된다는 소결을 내렸을 것이다. 이후 입학 시험 결과 나는 30등 정도를 했다. 갓 17살이 된 모두의 온갖 희노애락이 오가는 교실에서 나는 아마 제일 기뻐했던 이들 중 하나였다. "80등일 줄만 알았는데 내가 30등이라니!" 입학 이후 수많은 시험이 더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시험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나는 저런 식의 (상대적으로 낮은) 기대치를 철저히 유지했는데, 이전의 결과에 따라 점진적인 상향조정이 약간씩 따랐을 뿐이었다. 결과는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늘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은 결과를 내는 사람이, 정량적으로는 졸업할 무렵 자타 가리지 않고 예상치 못한 전교 1등이 되어있었다. 학업 성적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는 가장 탁월하다는 증표를 받은 셈이다. 비슷한 패턴은 중학교, 대학에서도 되풀이되었던 바 있다. (그나저나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을 졸업하고, 그 나름 사회 생활을 시작한지도 몇 해가 지났는데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떠들다니 - 하고 너무 우스워하지만은 말아 주시길... 유치한만큼 직관적인 이야기도 있다고 믿어보며…) 물론 후회없이 열심히 한 시기였다. 그러나 매일의 결과 자체에 사활을 걸며 일희일비한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여 나는 이 일화를 "낮은 기대치를 갖고도 장기적으로 훌륭한 결과에 도달하는 법" 으로 요약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는 회복탄력성과 탁월함과 관련한 사소한 tactic이 내포되어 있다. 대개 회복탄력성이나 탁월함 같은 것들은 바꾸기 어려운 성향, 또는 삶과 함께 축적된 묵은 습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성향 또는 습관만큼이나 1) 환경 (훌륭한 input) 2) 그리고 유치한 수준으로 사소한 tactic 이 끼칠 수 있는 영향 역시 꽤 크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치열히 몰입하면서도 심신이 지치는 빈도가 덜했고 지칠지언정 금새 일상으로 돌아왔고 (회복탄력성) 또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탁월함) 얻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 방법론의 핵심은 이렇다: 당장의 결과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기대치가 낮다는 의미는 이 뜻이다. 더 큰 궤적상 문제가 없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결과는 이전보다 현재 더 나아졌다는 측면에서만 집중한다. 그렇다면 문제 없다! 대신 결과보다는 방법에 집중한다. 기대치와 실제 결과 간의 갭이 얼마나 크고 작았는지, 그걸 가르는 핵심을 고민한다.
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