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하늘은 걷다2

Lila
​밤의 호흡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던 시간들
어둠 속에서 나는
가장 깊은 상처와 마주했다

​고요한 새벽이 올 때까지
이불 속에 웅크린 채
내 안의 아픈 아이를 달래주었다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나의 호흡만이
이 세상에 온전히 존재함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소리

​숨을 들이마시고
모든 불안을 내뱉는다
들숨에 나를 향한 다정함을 채우고
날숨에 오늘의 무게를 놓아준다

​가장 어두운 밤을 통과할 때
우리는 가장 깊은 쉼을 배운다
이 밤, 나에게 쉼을 허락한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다

​저 하늘처럼 홀로 떠도는 줄 알았습니다
각자의 섬에 갇혀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을 거라고

​긴 가을밤,
문득 당신의 어둠을 보았습니다
나와 닮아 있는
숨겨진 눈물의 습기를

​작은 목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괜찮아요' 대신
'나도 그래요'라고 속삭이자

​우리 사이의 깊은 바다가
잔잔한 물결이 되어
따뜻하게 이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장 깊은 고독 속에서야
우리는 깨닫습니다
혼자가 아니었음을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것이 이 가을이 주는
가장 확실한 위로입니다.

​다시, 하늘을 걷다

​길을 잃었고
많이 흔들렸으며
수없이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이 길 위에
단단히 세웠습니다

​이제 고개를 듭니다
저 높은 가을 하늘을
두려움 없이 마주합니다

​발밑에는 더 이상
미련이나 후회가 없습니다
그저 오늘을 살아낸
가벼운 발자국만 남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불어오지만
이제 나는 멈추지 않습니다

​가장 깊은 성찰을 통과한 후
나는 다시,
나만의 속도로
단단한 걸음을 내딛으며
하늘을 걷습니다.

​고요만이 남았을 때

​세상 모든 소리가
먼 곳으로 떠나고
나의 귓가에 남은 것은
오직 나의 심장 소리뿐

​고요는 침묵이 아니라
가장 정직한 소음이었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거는

​오래된 후회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들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 때
나는 도망치지 않고
그 모든 것과 마주 앉았다

​잡념의 먼지가 모두 가라앉은
이 깊은 고요 속에서
비로소 내 안의 가장 순수한
나를 만난다

​그 만남이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

​오래된 습관의 자리

​어김없이 손이 가는 곳이 있다
익숙한 자세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던
오래된 생각의 습관들

​돌아보면 수없이 많은 시간
나는 나를 미워하는 법을
가장 열심히 배웠다
'너는 부족해'라고 속삭이던
가장 나쁜 버릇

​오늘 밤,
나는 낡은 방을 정리하듯
그 습관의 자리를 쓸어낸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행위가
사실은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던 서툰 방어였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나는 나를 용서한다
너는 충분히 애썼다고
이 깊은 밤,
나는 새로운 습관을 들인다
나를 아껴주는 다정한 언어를.

​달빛이 건네는 위로

​창가에 스미는 달빛은
차갑지만 따뜻하다
모든 것을 비추면서도
결코 강요하지 않는 빛

​어둠 속에서만 더 선명히 보이는
나의 슬픔과 고통들을
가만히 감싸 안는다

​세상 모든 상처들이
달빛 아래에서는
그저 은은한 윤슬이 될 뿐이다
아픔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도 아름다워지는 순간

​어머니의 주름처럼 깊은
그 고요한 빛 속에서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가장 깊은 밤에야
가장 밝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나에게 쓰는 사과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모질었다

​넘어질 때마다
가장 먼저 '괜찮냐'고 묻지 않고
'왜 이리 약하냐'고 다그쳤고

​남들에게는 관대했던 기준을
오직 나에게만
가장 엄격하게 들이밀었다

​오늘은 이 밤의 고요를 빌어
텅 빈 거울 앞에서
내 자신에게 무릎 꿇고 앉는다

​오랜 시간 외면했던
지치고 상처 입은 나를 향해
가장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넨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

​가장 강한 용서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이었음을
이 깊은 가을밤에야 깨닫는다.

​낙엽의 완전한 궤도

​나무는 미련 없이
가장 화려했던 옷을 벗어던진다
바람에 몸을 맡긴 낙엽은
비로소 완전한 궤도를 그린다

​가장 높았던 가지에서 떨어져
나선형으로 공중을 유영하다
차가운 땅으로 귀환하는 그 순간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순환의 완성이다

​우리는 떨어지는 것을 보며
늘 슬픔만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자유의 몸짓이었음을

​놓아주는 일은
스스로를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가장 정직한 착륙이었음을
깊은 가을밤, 깨닫는다.

​어머니의 뒷모습처럼

​가을볕 아래 앉은
어머니의 뒷모습은
점점 작아져 간다

​주름진 손으로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굽어진 어깨가 말없이 품었던
수많은 고난의 시간들

​어머니는 삶의 가장 깊은 진실을
침묵으로 가르치셨다
굳이 소리 내어 울지 않아도
가장 숭고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침묵의 뒷모습에서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성숙이란
세상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그림자를 조용히 품어 안는 일임을.

​어머니, 당신의 뒷모습은
나의 가장 깊은 명상입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자세

​나무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마지막 잎새를 떨군 후
고요히 모든 것을 침잠시킨다

​다가올 혹독한 추위(겨울)를 알면서도
두려움 대신 묵묵한 수용만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생명을 거두고
가장 깊은 속에서
다음 봄을 위한 양분을 저장한다

​나의 마음에도 겨울이 온다면
애써 밝은 척 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은 잠시 웅크리고
상처를 덮어두어야 할 시간

​침묵의 갑옷을 입고
내면의 핵심만을 남겨둔 채
더 깊이, 더 조용히
성숙이라는 이름의 겨울을 준비한다.

​빈 가지가 쓴 편지

​가장 강한 나무는
가장 깊이 비워낸 나무임을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가 말해줍니다

​떠나보낼 것을 다 떠나보내고
버릴 것을 다 버린 뒤에야
비로소 얻는 고요한 자유

​텅 빈 하늘을 배경 삼아
가지 끝에 걸린 마지막 빛이
희미하게 속삭입니다

​이 침묵의 시간이
다가올 가장 화려한 봄을 위한
가장 완벽한 약속이라고

​비워낸 만큼
더 큰 희망을 채울 수 있음을
가을의 빈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채워지는 물잔

​넘어진 자리에서
쏟아져 버린 줄 알았던
나의 마음의 물잔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잔은 완전히 비어있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스며드는
작은 희망의 물방울로
매 순간 천천히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햇살은 투명한 잔을 비추어
채워지는 과정마저 아름답게 만들고
잔잔한 물결은
나에게 속삭입니다

​당신이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삶은 멈추지 않고
당신을 향해 흐르고 있다고

​비어 있는 채로
완벽할 수는 없지만
다시 채워질 수 있기에
우리의 오늘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작은 불씨의 힘

​모든 것이 삭막한 들판처럼 보일 때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가장 깊은 절망의 잿더미 아래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아주 작은 불씨가 있다

​세상은 그 불씨를 보지 못하지만
나의 심장은 안다
그 작은 온기야말로
가장 거대한 어둠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아직 완전히 타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꺼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이미 충분한 기적이다

​가장 작은 불씨가
세상을 밝힐 순간을 믿는다.

​흔들림 없이 피는 꽃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억새풀은 부러지지 않는다
뿌리가 깊기 때문이 아니라
흔들리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가을 들판을 수놓은 작은 꽃처럼
우리의 삶 역시
외부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내면의 강인함으로 피어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나의 가치를 믿고
내가 정한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피어나는 것

​바람이 불어와도
고요히 자신의 빛을 내는 꽃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오래된 벤치에 새겨진 약속

​공원의 오래된 벤치에 앉는다
숱한 계절의 무게를 견디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은 자리

​나무의 연륜처럼 새겨진 벤치의 무늬는
조용히 나에게 속삭인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도
차가웠던 겨울의 외로움도
결국 시간이 데려갔듯이

​지금 당신을 괴롭히는
어둡고 힘든 순간들 역시
반드시 끝이 있을 것이라는
변치 않는 약속을 남긴다

​벤치에 스미는 따뜻한 햇살은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이에게만 주는
가을의 다정한 보상이다.
가을날의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īlā (लीला)
돋을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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