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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톡#010][기도]_전화 왜 했어?

#1
"통화 돼?"

"그럼.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했어. 그런데 그냥 하면 안 돼?"

"당연히 돼지! 되고 말고!"
카톡이 왕 노릇하는 시대에 전화를, 그것도 무슨 일, 즉 이유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어서, 그냥 했다? 이거야말로 러브-콜이고, 사랑의 시작이다. 그냥 전화를 하다니! 그렇게 그냥 해서 받는 전화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렇게 그녀는 그냥 전화해서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전화를 끊으며 또 묘한(?) 소리를 했다.
"이제 좀 숨이 쉬어져."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에게, 그냥 한 전화만큼 사랑스러운 전화는 없다. 그냥 한 전화는, 그래서 사랑의 표적(sign)이다.
#2
오늘 기도 중, 문득 기도에는 '제목'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요즘 기도 제목이 뭐예요?"
당연히 진심으로 사랑해서, 진정 중보하고 싶어서 그/그녀에게 묻는다. 하지만 어떤 모임 안에서 순서에 따른 형식으로도 묻는다.
"요즘 기도 제목이 뭐예요?"
기도 뒤에 붙은 "제목"은 그러니까 그/그녀의 구할 바이다. 그것을 묻고 알고 함께 기도하는 것은 귀하고, 이는 기도에 있어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바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새 기도에 피부처럼 붙은 '제목'이 기도를 그냥 할 수 없고, 제목이 있어야만 하는 것, 제목이 있을 때만 하는 것으로 축소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구할 바가 없으면 굳이 기도가 필요 없는 것처럼. 기도하려면 끊임없이 기도의 제목들을 생산해 내야 할 것처럼.
#3
제목 없이 우리 기도할 수 없나?
기도가 뭘까?
이 질문은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만큼이나 우주적이다. 알지만 다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기도에 대한 가장 기도다운 정의는, '호흡-숨'이다. 마치 찬양처럼. 기도에 전부를 건 (이건 과장이 아니다!)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 물어도, 묻자마자 돌아오는 답은 역시 '호흡-숨'이었다. 영향을 받았나? 지금 나의 답도 그렇다.
우리가 숨을 쉴 이유/목적이 있어야 숨을 쉬나?
그냥 쉰다.
기도가 호흡이라면, 우리가 그냥 숨을 쉬는 것처럼, 요란하게 만든 기도-제목 없이 그냥 하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기도, 더 기도다운 기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새벽 기도 중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당연히 주님에게 "그냥" 기도할 수 있고, 주님은, 제목 없이 "그냥" 한 기도에 더 놀라고, 더 기쁘게 받아 주시겠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냥”한 기도는, 제목을 드린 게 아니라 나를 드린 것이고, 주님을 향한 나의 중심,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드린 것이니까. 기도로 주님께 전화를 걸고, 특별한 제목 없이, 그 분의 이름만을 불러도 그 분은 기뻐하실 것 같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듯이.
#4
그런 마음이 오늘 기도 중 강하게 들어, 나는 기도 수화기에 대고, 계속 내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만 그냥, 계속, 크게 불렀다.
"주여!"
다소 크게 불렀는지 주변에서는 묻는다.
"부르짖는 기도를 하시나 봐요?"
그렇게 들렸나? 나는 그저 "그냥" 주님께 기도로 전화를 드린건데!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만 되어 있어도 기쁘고 숨이 쉬어지니까. 그게 나의 기쁜 살 길이니까.
오해 없기를! 연약한 우리는, 주님께 올릴 우리의 기도 제목을 함께 나누고, 같이 기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은혜로 우리의 제목들은 온전한 '빌 바'가 되어 주님께 열납될 테니까.
하지만 주님이 보실 때, 창조주인 우리 주님이, 당신이 피조물인 우리에게 사랑받는다고 여기실 때의 기도는 역시 "그냥" 기도이다. 가끔 기도해 각 잡고 일목요연하게 주님께 구할 제목들을 올리는 것보다, 무시로-수시로 "그냥" 거는 기도를 더 반가워하실 것 같다.
오늘도 "그냥" 주님과 꽤 긴 통화를 하고 왔다. 사랑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아시다시피, 사랑하는 사람끼리 뭐 특별한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냥 이렇게 산다. 아, 지금 다시 그분께 "그냥" 전화를 드리고 싶다. 눈을 감고 부르면 된다.
"주여!"
주님이 물으신다.
“세규야, 전화(기도) 왜 했어?”
“그냥요”
주님의 더는 환할 수 없을 만큼 환하게 웃으시는 얼굴이 내 마음에 비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