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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6월_주님은 나의 팸퍼스!

○ 일용할 기저귀
유학 시절, 2년 정도 일주일에 3번, 하루에 8시간씩 ‘현대택배’라는 곳에서 일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미국 구매 대행업체였고, 육아맘에게 특화된 곳이었다. 한국 손님들은 미국 ‘아마존’에서 다양한 육아 물품을 주문했고, 회사는 결제를 대행하고, 물건을 받아, 바로 한국에 비행기로 쏴 주었다. 말 그대로 택배 회사였기 때문에 이 모든 게 올인원 프로세스로 가장 신속하게 처리되어, 찾는 손님이 정말 많았다. 그중 최고의 인기 아이템은 놀랍게도(!) 기저귀였다! ‘하기스’가 아닌, ‘팸퍼스’! 정말 호떡집에 불난 듯 팔렸다. 내 일은 박스용 테이프로 안전하고 단단하게 그것을 다시 포장하는 것이었다.
당시 첫째 윤호가 결혼 8년 만에 태어났다. 사장님은 이런 내 형편을 모두 알고 계셨다. 윤호 엄마 역시 팸퍼스를 좋아한다는 사실까지! 그래서 가끔은 하루 일당을 현금이 아닌, 기저귀로 계산해 주셨다. 당시 내 하루 일당은 $100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기저귀 두 박스면 사실 $100이 넘었는데, 사장님은 특별 보너스처럼 나에게 팸퍼스 두 박스를 그날의 일용할 양식으로 주셨다.
그 기저귀 두 박스를 차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갈 때 나는 이상하게(?) 더 부요했다. 할머니는 쌀독에 쌀이 가득할 때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게 이런 기분일까? $100 든 얇은 봉투를 아내에게 건넬 때보다, 이 묵직한 팸퍼스 기저귀 두 박스를 안고 집으로 들어갈 때 아내는 더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더 아빠 노릇한 것 같고, 더 남편 노릇한 것 같아서. 박스를 뜯어 ‘일용할 기저귀’를 보관함에 옮길 때, 우리는 주님이 공급하시는 ‘일용할 양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놀랐다! 전에는 그 ‘일용할 양식’이 밥 사 먹을 돈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이 ‘일용할 기저귀’를 통해 우리는 기쁨으로 우리의 모든 것에 감사로 자족할 수 있었다. 단언컨대, 부족한 게 없었다.
○ 더더-타령
그러나 요즘은 단언컨대, 부족한 것만 보인다. 마이너스만 보인다. 기이하다. 미쁘신 주님은, 당신의 약속처럼, 나와 우리 가족에게 ‘일용한 양식’을 한 번도 끊으신 적이 없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나에게는 저 ‘팸퍼스 시절’의 감사로 똘똘 뭉친 자족은 없다. 이런 말이 나온다.
“주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그런데요, 이게 전부인가요? 설마 윤호가 아직 기저귀 찬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걔가 벌써 고3이고, 지오는 중1이에요. 뭔가 우리의 현 상황이 주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에 실시간으로 반영이 안되고 있는 것 같아, 약간 불안해요.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일용할 양식의 ‘양’을 한 번 재고해 주셨으면 해요. 좀 ‘더’요! 정말 허투루 쓰는 게 없거든요. 그냥 얘들 키우고, 얘들이 크다 보면 자연스럽게 돈 들어갈 곳이 더 생기는 것뿐인데, 이게 제 탓이라고는 할 수 없잖아요? 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솔직하게 고하라고 하시니, 일단 이런 형편만큼은 있는 그대로 고하는 게 제 일인 것 같아서요.”
이게 내 마음의 소리이고, 창피해(?)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꿍꿍거리는 나의 기도다. 왜 이리 ‘더’ 원할까? 왜 ‘일용할 양식’이 충분히 않다는 생각이 들까? 왜 나의 ‘일용할 양식’은 돈에 못처럼 박혀 빠져나오지 않을까?
○ 일용한 양식 먹어 뭐하게?
오늘 아침 이런 무거운 마음을 안고 스벅으로 출근(?) 하는데, 나에게 잊고 있던 그 ‘팸퍼스 기저귀’를 다시 생각나게 하셨다. 당시 나는 그것이 주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이라고 확신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양식’의 포인트는 밥에 버금가는 ‘물건’이나, 밥을 살 수 있는 ‘돈’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이유/목적’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 걸까?
○ 난 ‘관계’로도 줬는데, 넌 몰랐나 보구나?
요즘 내가 ‘더더-타령’ 하는 것이, 어쩌면 공급해 주시는 분의 마음(이유/목적)으로부터 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서 그런 것은 아닐까? 악하게, ‘당신을 위해서’라고 위장하면서! 조금씩 숨이 쉬어진다. 땅에 머리를 처박고 일용할 양식 타령을 했는데, 내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게 하신다. 마음이 펴지고, 눈이 넓어지며, 보이지 않았던 ‘일용할 양식’이 보인다. 그렇게 하늘을 보니, 양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보인다. 바로 ‘관계’다. 관계가 양식이었다. 부모님과의 관계, 아내와의 관계, 윤호-지오와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손님들과의 관계. 이렇게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영으로 지은 바 된 ‘생령(living person)’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적 양식을 제공해 주셨다. 그 관계 속에서, 사랑과 인정과 지지와 연대와 우정을 고봉밥으로 배불리 먹으며 살아 왔다.
○ 주님은 나의 팸퍼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아니, 나를 온전히 아신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이 ‘팸퍼스 사진’을 '일용할 양식'으로 주신 것 같다. 이 사진을 먹으니, 내 영의 방향이 잡히고, 중심이 새롭게 된다. ‘더더-타령’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에게 내가 얼굴을 돌렸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또 세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은 다시 나를, 당신을 향해 반듯하게 정렬시키신다. 프린터 헤드 정렬처럼, 하나님의 마음이 깨끗하게 삶으로 출력될 수 있게! 한 번도 부족하게 주신 적 없고, 앞으로도 부족함 없을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 말이다. 둔한 나, 연약한 나, 악한 나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일용할 양식이 바로, 나, 예수다, 세규야!
‘팸퍼스(pampers)’는 ‘소중히 보살피다’ ‘애지중지하다’라는 뜻이다. 맞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고 외쳤는데, 이제 나는 ‘주님의 나의 팸퍼스!’라고 외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오늘을 시작하는 나를 애지중지 하시며, 나도 모르는 필요까지 모두 ‘일용한 양식’으로 공급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주님은 나의 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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