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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째_봉독뉴스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_봉독뉴스_15호_240713]
안녕하세요, 봉독지기 김세규입니다 :)
7월 들어 덥고 습한 날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세상도 발맞춰 여름의 방학과 휴가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여름 특집으로 시작한 시편 봉독도 ‘시편 산(山)’ 속으로 더 깊이 들어 왔습니다. 이번 주는 벌써 네 번째 시편 산행이었고, 95고지에서 출발 118고지까지 올랐습니다. 경사가 가팔라지며 진도도 많이 나가지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예상치 못한 고지에서, 시원한 시편 바람을 맞았습니다. 그 바람은 피부 감각에 머물지 않고, 영과 육을 모두 통과하는 영의 바람이었습니다. 희한하게도 너무 시원해서, 뜨거운 눈물이 나는 불의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그 바람은 내가 피조물로 창조주 앞에 서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성령의 바람이었습니다. 은혜의 바람이었습니다.
그 바람을, 열다섯 번째 봉독 뉴스에 담아 여러분께 올립니다.
● 시편과 평행하라
118편까지 시편을 큰 목소리로 봉독하며 깨닫게 된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시편이 시(詩)라는 사실입니다! 봉독하며 이 사실을 아주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이 시라는 사실, 그것도 노래를 부르기 위해 쓴 시라는 사실말입니다. 시편 봉독의 가장 큰 은혜는, 시편을 시편에 걸맞게, 즉 시편을 시로 읽게 인도해 준 것입니다.
시(詩)인 시편의 가장 주된 형식적인 특징은, 조금 딱딱하게 말하자면, 바로 ‘평행법 parallelism’ 입니다. 어려운 말 아닙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말로 반복해 말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시2:4)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시37:6)
누군가는 예술의 원리를 ‘같은 것을 다른 식으로!’라고 정의하기도 했는데, 바로 이 평행법을 두고 한 말입니다. 시편을, 머릿속으로 읽지 않고, 입으로 봉독하면 이 평행의 리듬을 저절로 타게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게, 시는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그 시만의 고유한 특징인 운율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시편의 평행법은 어떤 언어로 번역되어도 그 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라고 볼 수밖에요!
이런 평행법의 보고(寶庫)인 시편을 봉독하니, 실로 놀라운 또 다른 평행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시편과 나의 평행입니다. 시편이 내 삶으로 침투해 들어와 평행을 이루기 시작합니다. ‘성경의 시편’이 ‘나의 시편’으로 건너와 ‘우리들의 시편’이 되어 나란히 같이 가기 시작합니다.
● 예수와 평행하라
시편의 평행법을 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주님도 히브리 시 전통에 젖어 있던 분으로, 이 평행법을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7)
제 말이 맞지요? 이런 스타일로 말씀하신 예는 복음서에 넘치고 넘칩니다. 주님은 꼭 기억해야 하는 진리가 있을 때, 평행법을 쓰셨습니다. 가치가 무한한 진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리듬감 있고 주문 같은 표현을 사용하신 겁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은 없지만, 시편의 리듬에 익숙해질수록 예수님의 말씀이 더 쏙쏙 귀에 들어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시편으로 입는 성육신
시편과 예수님을 이렇게 평행으로 묵상하다가 문득 시편과 예수님 사이에 평행하는 어떤 것 하나가 느껴졌습니다.
시(詩).
하나님이 태초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그리고 사람과 자연세계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이 행하신 일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시고자 하셨을 때, 그 언어가 이렇게 시로 나타나는 것은 필연입니다. 왜냐하면, 시는 결국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것에 몸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작은 성육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의 작은 성육신인 시편을, 주님을 향해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와 마음으로 봉독할 때, 주님은 저에게 임마누엘해 주셨습니다. 내 안에 임하신 성령님의 임마누엘이, 시편의 작은 성육신과 같다는 감동이 들어, 감사함에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게 시편의 정점에 오를수록, 예수님은 더욱 가깝고 선명하게 내려오셨습니다.
● 시편 119편에서 만나요!
다음 주(18일 목)는 무려 176절을 품은 시편 119편에서부터 등반을 시작합니다. 시편의 클라이맥스를 오릅니다. 119편은 쉽고 복잡한 평형법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능선을 자랑합니다. 이 복된 산행을 많은 분들과 함께 누리기 원해요. 시편이 내 삶과 평행을 이루게 되는 이 아름다운 봉독 시편 산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오르기 힘들 때마다 손을 내밀어 주시는 우리 주님을 만나러 떠나봐요.
18일 오후 7시 봉독당에서 출발합니다.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