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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6화_삼상15:17~35_‘청종’에는 ‘다만’이 없다

[Holy-PT] [20241126화_삼상15:17-35]_‘청종’에는 ‘다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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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18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32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33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34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라가니라
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 기억해, 너는 이때 왕이 되었어
진멸하지 않은 아말렉 전투의 여파가 오늘도 계속된다. 사무엘은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한 말은 ‘네가 언제 왕이 된 줄 아니?’이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17절)
사울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셨다. 그러나 지금 사울은 (잠시 후에 확인하겠지만) 입만 열면 ‘나를 높이사’를 요구한다. 스스로 작게 여겼던 사울과 ‘나를 높이사’를 요구하는 사울.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이렇게 된 것일까?
○ ‘청종’에는 ‘다만’이 없다
이 아멜렉 전투의 결과이자 결론은 하나다.
여호와께서는 서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35절)
아말렉 전투 이야기가 담긴 15장은 35절에서 위와 같이 끝난다. 그 이유가 뭘까? 사무엘이 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거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19절)
사울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려주었음에도 청종(聽從), 즉 잘 듣고 따르지 않았다! 그런데 사울의 반응이 놀랍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내가 범죄하였나이다’라는 말이 없다! 오히려 자신은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다(20절)고 답한다. 그리고 한 단어를 덧붙이면서 말을 계속 이어간다.
다만.
‘다만’은 앞의 말을 받아 예외적인 사항이나 조건을 덧붙일 때 그 말머리에 쓰는 말이다. 변명과 핑계, 그리고 남 탓을 끌어들일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전환어이다. 그래서 보통 ‘다만’ 뒤에는 변명과 핑계, 그리고 남 탓의 명분이나 합리화가 뒤따른다. 그래서 ‘다만’의 문장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주어 삼아 시작된다. 지금 사울이 그 짓을 하고 있다.
다만 우리 군인들이 전리품 가운데서 양 떼와 소 떼는 죽이지 않고 길갈로 끌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자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진멸할 짐승들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온 것입니다 (삼상15:21, 새번역)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청종’ 뒤에는 ‘다만’이 없다. ‘다만’이 자리 잡을 곳은, 그 단어가 가진 또 다른 뜻,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를 간판 삼아, ‘청종’ 앞에 자리해야 한다.
다만 청종하겠나이다.
○ 진멸하지 않은 전쟁에는 탈취만 있을 뿐이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19절)
청종하면, 전투,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위한 구원의 진멸의 전투로 나아간다. 하지만 청종하지 않으면 결국 탈취의 전쟁으로 끝난다. 진멸(殄滅)은 빼앗아 없애는 것이다. 반면 탈취(奪取)는 빼앗아 내가 갖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없어야 할 것을 내가 갖는 것이다. 자기 정욕에 따라 자기 이익을 위하여 갖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말이다. 하나님은, 사울이 진멸이라고 포장해서 우기고 있는 짓의 본질이 ‘탈취’ 임을 분명히 하신다. ‘다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21절)’한 탈취였다고, 아무리 포장해도,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신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2절)
○ 사울, 네가 진짜 두려워한 게 뭐야?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사울은 마침내(!)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24절)
사울이 정말 두려워한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입으로는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라고 말한다. 사울은 백성의 무엇을 두려워한 것일까? 사실 사울이 두려워한 것은, 백성이 아니라, 백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었다. 여호와-목소리-청종을 떠난다는 것은, 인정의 주체 역시 바뀐다는 뜻이다. ‘누구의 인정이 가장 중요한가?’가 바뀌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청종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인데, 여호와를 떠난 자는, 결국 자기-목소리(생각과 판단)-청종하게 된다. 사람들의 인정이, 역설적으로 나의 왕 노릇 하게 된다.
○ 너는 남의 옷을 찢는 회개를 하는구나
25절부터 사울은 계속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며 사무엘을 붙든다. 예배 중독자 사울에게는 예배가 만병통치약이다. 그리고 뒤이어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나온다.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27절)
왜 이 대목에서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다윗의 이 모습이 생각나는 걸까? 밧세바 사건 후 다윗은 남의 옷을 찢지 않고, 자기 옷을 벗고 금식한다.
다윗이 그 어린 아이를 살리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금식하였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와서도 밤을 새웠으며, 맨 땅에 누워서 잠을 잤다 (삼하12:16, 새번역)
그러자 다윗은 땅바닥에서 일어나서,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 입은 뒤에, 성전으로 들어가서 주님께 경배하였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오자, 음식을 차려오게 하여서 먹었다 (삼하12:20, 새번역)
○ 사울의 회개 없는 예배
사울의 회개는 왠지 불안하다. 회개보다는 ‘예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여전히 자복하는 낮아짐보다 ‘나를 높이사’를 요구한다. 또 회개에는 구체적인 행동이 따르게 마련인데, 사울은 탈취의 상징인 아말렉 왕 아각마저 자신이 직접 ‘찍어 쪼개(33절)’지 못한다. 결국 사무엘이 마무리를 짓는다. 사울의 죄 고백에는 회개가 없이 끝까지 예배, ‘경배하니라’만 있었다. 사무엘은 이런 사울을 위하여 슬퍼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말하며, 15장 아말렉 탈취 전투의 이야기를 마친다.
○ 시작도 끝도, “다만 청종함으로”
오늘 말씀의 핵심은 ‘청종’이다. 나는 이렇게든, 저렇게든, 아무튼 어떻게든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듣기는 듣지만, 즐거이 듣는지는 모르겠고, 또 들은 대로 따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즐거이 들을 수 있는, 즐거이 따를 수 있는 은혜를 기도로 구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는 눈뜨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썼다. 주여... 청종해야 하는데 내가 청종하고 있지 않은 게 있는지, 아니, 안 하려고 하는 게 있는지, 그냥 기도가 나오게 하신다. 기도가 아닌 끙끙거림에 가까웠다. 나도 몰랐는데 나는 진멸과 탈취 사이에서 지금 어떤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이기는 방법은 하나라고 하신다. “청종했어요, 다만...”이 아니라, “다만 청종할게요”이다.
주여,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청종, 예수님의 영으로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세요!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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