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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번째_봉독뉴스_241120_돌 같은 내 마음 어루만지사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_봉독뉴스_34호]
샬롬 :)
안녕하세요,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 <봉독>, 봉독지기 김세규 인사드립니다.
이번 한 주도 평안하셨어요?
저는 <봉독뉴스>를 시작하며 계절의 변화에 더 민감해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날씨 이야기로 인사드리며 뉴스를 시작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과정에서 저에게 계절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각하게 하시며, 지금을 더 온전히 누릴 수 있게 인도해 주신 것 같습니다. 나이 먹는 서운함(?)을, 신비하기 그지없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기쁨과 감사로 바꿔 주시니,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 Hallelujah’는 히브리어인데, ‘여호와를 찬양하라 Praise the LORD’는 뜻입니다)
○ 봉독-독창-완창
이번 주는 34번째 <봉독>이었습니다. 베드로전후서-요한일이삼서-유다서,를 봉독했습니다. 그리고 <봉독>으로 신약 통독을 마친 날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모처럼(?) 혼자 90분을 봉독으로 독창하고 완창한 은혜가 임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 돌 같은 내 마음
솔직히, <봉독>을 시작할 때의 제 마음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미 여러 일들로 좋지 않은 마음이 있었는데, <봉독>마저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좋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은 돌 같았습니다. 아니 돌 같지 않았습니다. 각종 건축 폐기물들이 시멘트에 엉겨 굳은 덩어리 같았습니다. ‘남 탓’이 날카로운 철근처럼 곳곳에 삐죽이 나와 있었고, 부당하다는 소리치는 마음은 동시에 ‘내 탓’이라는 정죄에 엉겨 붙어 숨쉬기도 힘들었습니다. 성령의 은혜에 풀리지 않는 내 탓은, 건강한 죄 고백-회개로 나가지 못하고, 자기 정죄와 연민으로 추락합니다. 그렇게 곤고했습니다.
○ <봉독>에서 풀려 나오는 성령의 은혜
가끔은 억지로라도 해야 할 일을 그렇게 할 때, 그 일이 나를 지키고 살릴 때가 있습니다. 이번 주 <봉독>이 그랬습니다. 봉독을 시작하자마자 느꼈습니다. 성경을 보는 제 눈은 풀렸고 몸에는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일단 베드로전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말씀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받들어 읽다 보니, 눈에 힘이 모아졌습니다. 동시에 몸의 힘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리가 숨을 쉬기 시작하고, 말씀이 주는 리듬에 몸이 자연스럽게 스윙했습니다. 알 수는 없지만 내 얼굴이 나도 모르게 웃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4:16)
요한일서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4:16절을 봉독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구절을 봉독하는 순간, 제 마음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이 울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요한 사도의 편지를 봉독해 나갔습니다.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
<봉독>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 융단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이 제 안에 팡, 팡, 터질 때 아픔이 사라지며 기쁨도 팡, 팡, 터졌습니다.
거하라, 그 사랑 안에.
‘사랑’을 봉독할 때, 내가 말씀으로 그 사랑 안에 거하고 있음을, 그 사랑이 나를 감싸 녹이고, 덥히고, 살리며, 생명 주고 계심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셨습니다.
○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 <봉독>
<봉독>의 서브타이틀은,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입니다. 그런 소망을 갖고 지은 이름이고, 그런 은혜를 입고 싶어 붙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인 <봉독>의 은혜가 제게 임한 겁니다.
봉독을 마쳤습니다.
남 탓-내 탓-부당의 상황이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달라졌습니다. 빛 가운데로 나가니, 사랑 안에 거하니, 환히 보이는 게 있습니다. 제 꼴,입니다. 제 죄,입니다. 제 악,입니다. 그런데 그 꼴-죄-악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에 거하니 판단-정죄가 아닌, 회개-용서 구함으로 나갈 용기를 주십니다. 나는 엉망진창인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엉망진창이라는 사실이 믿어지니, 엉망진창을 쩔러댔던 정죄의 칼을 거두게 됩니다.
○ 기념사진 한 장
이번 <봉독>을 마친 후 저는 카메라 타이머를 세팅해 놓고 저를 위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분수령적인 봉독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살린 봉독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봉독>을 저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했고, <봉독>하는 제 자신이 너무 좋았습니다. 꼴이 말이 아니어도 말입니다.
○ 이제 예레미야를 만나러 갑니다.
다음 주에는 예레미야를 만나러 갑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인치신 후에 저를 예레미야에게 인도하시는 이유가 분명 있으리라 믿습니다. 심판의 말씀을 줄곧 듣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게 사랑의 하나님의 나를 위한 사랑의 말씀 임을, 그리고 회복의 말씀 임을 말입니다.
추상(秋霜) 같은 예레미야의 말씀 앞에 서 보겠습니다.
추워지는 겨울, 그게 사실 진정 영을 따뜻하게 하는 불 앞에 서는 것 같습니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서 있겠습니다.
말씀 앞에 함께 서서, 말씀을 받들어 읽기 원하는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11월의 마지막 수요일, 27일 오후 7시, 봉독당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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