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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번째_봉독뉴스_241016_봉독이 '순전한 읽기'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요?

[나를 살리는 성경 읽기_봉독뉴스_28호_241009발행]
샬롬 :)
안녕하세요, “말씀이 빛나는 밤에” 봉독지기 김세규 인사 드립니다.
○ <봉독> 시즌 2의 목적지는 ‘예배’입니다
이번 주 29번째 봉독 때, <봉독>의 가장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라고 했지만, 그건 변화를 넘은 ‘거듭남’이었습니다. <봉독>에서 <봉독 예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지금까지는 ‘봉독’ 중심의 ‘프로그램’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주부터 <봉독>은 프로그램을 벗고, ‘예배’의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예배 안에 ‘봉독’을 담았고, 기도와 찬송 같은 소중한 예전(禮典)의 요소들이 ‘봉독’과 손잡고, 순서에 맞춰 예배로 나아갔습니다.
(※ 아래 영상에 금주 봉독 예배 실황 녹화해 담았습니다)
이제는 <봉독 예배>입니다. 예배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예배를 더 정성껏 드리며, <봉독 예배>가 더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 봉독은 ‘순전한 읽기’입니다
이번 주에는 <사도행전> 25-28장까지, 그리고 구약 <이사야>로 넘어와 14장까지 봉독했습니다. 오늘 봉독할 때, 이 봉독이 참으로 ‘순전한 읽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전한’은 순수하고 완전한,입니다.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는 ‘순수’와,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는 ‘완전’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런데 이 ‘순전한’을 영어로 번역하면, 놀랍게도 ‘mere’입니다. ‘pure’나 ‘perfect’가 아니라, ‘단지’라는 뜻을 가진 ‘mere’입니다. 하지만 이 ‘단지’는 ‘겨우’나 ‘다만’이 뜻하는 부족하고 모자란 ‘단지’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이거 하나면 충분해!’라는 ‘순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무인양품 슬로건, That’s enough! 처럼 말입니다. 예를 들면, 제 딸이 이렇게 말해 줄 때처럼 말입니다. “아빠, 단지 아빠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든든했어. 무섭지 않았어.”
봉독을 영어로 번역하면 어려운 단어가 나옵니다. reverential reading. 딱딱하게 직역하면, ‘숭배심이 넘치는 읽기’입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실제 제가 봉독하며 갖는 실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온 존재로 말씀-예수님께 집중해, 말씀을 받들어 읽을 때, 주님이 주시는 마음은, ‘이것으로 충분해!’라는 빈틈 없이 꽉 찬 마음이었습니다. 봉독은 그런 ‘순전한 말씀 읽기’였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충분해!’가 ‘더 이상 말씀을 연구하거나 공부하지 않고 읽어도 충분해!’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충분함은 앎의 충분함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숨,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영-성령의 충만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봉독이 학문적으로 어떻게 번역이 되든, 저에게 봉독은 ‘순전한 읽기 mere reading’입니다. (왜 c.s. 루이스의 책 ‘mere christianity’를 ‘순전한 기독교’로 번역했는지도 이제야 제대로 이해가 됩니다)
○ 순전한 읽기, 봉독-예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런 성령 충만함이 있는 ‘순전한 말씀 읽기’가 있는 <봉독 예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다음 주는 서른 번째 봉독이고, <이사야> 15장부터 봉독합니다. 이제 찬송과 기도와 말씀으로 더 ‘순전해진’ <봉독 예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겠습니다.
23일 수요일, 저녁 7시, 봉독당에서 뵙겠습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 함께 순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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