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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03금_룻1:15-22_<델마와 루이스> vs <룻과 나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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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러자 나오미가 다시 타일렀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저의 겨레와 신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의 뒤를 따라 돌아가거라."
16 그러자 룻이 대답하였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17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 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
18 나오미는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19 그 두 사람은 길을 떠나서, 베들레헴에 이르렀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이르니, 온 마을이 떠들썩하였다. 아낙네들이 "이게 정말 나오미인가?" 하고 말하였다.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를 10)나오미라고 부르지들 마십시오. 11)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도 괴롭게 하셨으니, 이제는 나를 12)마라라고 부르십시오.
21 나는 가득 찬 채로 이 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텅 비어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치시고, 13)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14)불행하게 하셨는데, 이제 나를 나오미라고 부를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여인인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 왜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날까?
영화에 버디무비, 로드무비라고 불리는 장르가 있다. 버디무비는 두 사람의 우정을 주로 다루고, 로드무비는 주인공이 여행하는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다룬다. 보통 버디무비와 로드무비는 한 영화 속에서 친구처럼 만나, ‘성장’을 이야기한다. 나는 “버디+로드→성장”을 베이스로 만든 모든 영화에 환호한다.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1993년에 개봉했다. 당시 버디무비는 남자의 전유물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개성 강한 두 여자가 버디로 등장했다. 심플하게 내용을 소개하면, 두 여자, 델마와 루이스가 버디로 등장, ‘로드’를 질주하며 ‘살 길’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영화는 ‘살 길’을 찾아, 그랜드 캐년의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는 장면에서 멈추며 끝난다.
성경에도 이런 “버디+로드→성장”으로 가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바로 <룻기>다. 주인공은 두 여자, 나오미와 룻이고, 이 둘도 ‘살 길’을 찾아 길을 떠나며 ‘믿음’의 성장을 함께 이루어간다. 두 여자가 주인공인, 이렇게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는 사실이 매번 읽을 때마다 놀랍다!
○ 나오미의 살 길
어제 동서 오르바는 떠났다. 자신의 겨레와 신에게로 돌아갔다. 오늘 나오미가 다시 룻을 타이른다. 너도 네 동서의 뒤를 따라 돌아가라고(15절). 우리는 지금 두 며느리를 타일러 각자의 겨레와 신들에게 돌려보내려는 나오미를 보고 있다. 나오미는 하나님을 알고 믿었지만, 다른 이방 민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아직 그저 자기 겨레의 ‘신’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다. 하나님을 유일한 신으로 믿어, 그래서 하나님만이 ‘살 길’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 없는 여자 셋이 이 세상에서 어찌 같이 살 수 있을까? 나오미에게 그건 불가능해 보였고, 같이 사는 것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신이 등장했음에도 불고하고, 각자의 신에게도 돌아가라는 나오미의 말은 가장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살 길’이 된다.
○ 룻의 살 길
룻의 대답이 길게 이어진다. 서두에 나온 말이 핵심이다. 이렇게 말한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1:16a)
룻은 ‘강요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며, 떠나지 않겠다는 결정이, 곁에 머물겠다는 결정이, 자신의 선택 임을 분명히 밝힌다. 이 대목이 참으로 놀랍다! 룻은 나오미를 보고, 나오미 때문에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룻은 지금 자기 신앙으로, 자신의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 어찌 이런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룻은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선택을, 자기 믿음으로 만들고 있다. 어쩌면, 하나님을 ‘신’으로만 여겼던 나오미의 그늘 아래에서, 룻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어, 자기 ‘하나님’을 만난 것 같다.
○ 함께 살 길
이어지는 룻의 이야기는 더 놀랍다. ‘강요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들은 나오미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심지어 무안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오미 입장에서, ‘돌아가거라(15절)’는 말은 사랑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한 말이었으니까. 룻은 곧이어 ‘어머니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16b)’라고 말하며, 시어머니와 믿음의 눈을 맞추며, 자신을 향한 시어머니의 사랑과 진심을, 또한 고스란히 품어 안는다.
더 나아가, 룻은 시어머니의 믿음 역시 세워나간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라는 고백에 이어,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17절)’라고 말한다. 이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단순한 충성(효) 맹세가 아니다. 룻은 이렇게, 자신을 통해 시어머니에게 믿음의 도전을 주고 있다. 그러니 그 ‘하나님’을 ‘살 길’로 삼고 ‘같이’ 살자는 말이다. 마지막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17절)’라고 하는데, 룻은 이렇게 말하며 하나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나오미는 알았다. 이 아이가 굳게 마음을 먹었구나. 그리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두 여자는 길을 떠났고, 마침내 한 곳에 이르렀다.
그 동네 이름은, 놀랍게도 ‘베들레헴’이었다.
○ 살 길, 베들레헴
‘살 길’이 시작되는 곳은, 예수가 태어날 베들레헴이었다. 몹시도 괴로운 ‘마라’의 인생이 되어, 텅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21절).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이 두 여자는 여기가 ‘살 길’이요, ‘살아날 곳’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그냥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그날, 서로 권면하여(히3:13)’ 살았을 것이다.
그래, 말씀이 있는 곳, 오늘 여기가 베들레헴이다. 내 힘으로 올 수 없는 여기까지, 오늘은 룻과 나오미 덕분에 왔다. 삶 속에서 쓰게 된 인생을, 말씀에 담가 단 인생이 되게 하신다. 또 힘을 주시고, 룻의 고백을 나도 할 수 있게 이끄신다. 하지만 나의 수준은 아직 낮다.
하나님,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싶고, 하나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저도 머물고 싶어요. 하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고백해요. 이 언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신나는(?) <룻기>가 당분간 계속 상영될 예정이다. 계속 정주행하자. 예수-엔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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