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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9월_아침 해가 돋을 때

○ 첫 번째 스튜디오
미국 유학 시절 과감하게(!) 스튜디오를 오픈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그것도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에 오픈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구체적인 위치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제 스튜디오는 이동식이었는데,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길거리’였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길과 거리가 제 스튜디오였습니다. 수업 들으러 학교 가는 길, 수업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수업이 없는 날은 버스를 타고 좀 더 멀리 있는 길거리로 나가, 카메라 하나 목에 걸고 그 길거리를 걷고 걸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햇빛이 제 조명기였고, 구름은 빛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소프트박스였습니다. 길거리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집을 나서는 저를 보고 아내가 물었습니다.
“어디가?”
“사진산책”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은, 사진을 찍으며 길을 걷는 “사진산책”은 이렇게 제 “사진하다”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 차리고 싶어 차린 건 아닙니다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친구, rami 스튜디오에 초대받아 놀러 갔습니다. 우선, 나랑 같은 학생인데, 자기 스튜디오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스튜디오가 너무 ‘보암직스러워’ 부러웠습니다. 크지는 않았어도, 요즘 말로 너무 ‘인스타그래머블’해 보였습니다. 나에게는 한 대도 없는 스튜디오 조명기가 여러 대 있었고, 친구는 그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며, 잡지에서나 볼 법한 사진을 내 눈앞에서 척척 찍어댔습니다. 그 화려함에 더없이 초라해졌습니다.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걸었습니다. rami 스튜디오에서 집까지 꽤 먼 거리였지만, 걷고 싶었고, 걷기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안의 비교 마귀가 대가리를 쳐들며 불안과 두려움을 조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넌 지금 뭐 하냐?”라는 외침이, 겨우 재운 제 열등감을 또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뭐, 이런 하나님이 다 있어!”라는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숨을 쉬고 싶었습니다. 찬 바람이 필요했습니다.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필요했습니다.
“주님, 전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그렇게 사진산책이 시작되었습니다.
○ 길바닥에서 만난 아침 해가 돋을 때
오후 수업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여느 때처럼 카메라를 어깨에 두르고 집을 나섰습니다. 졸업 프로젝트 제안서를 몇 번이나 거절한 지도 교수님을 또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제 전공이 ‘사진’인지, ‘불안’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톡 건들기만 해도 불안해졌고, 툭 치기만 해도 두려웠습니다. 코앞의 졸업은 불안했고, 그 뒤의 진로는 두려웠습니다. 이미 무거워진 몸에, 무거운 마음이 얹어지니, 목에 건 카메라까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며, 땅속으로 꺼지고만 싶었습니다. 그렇게 죽고 싶은 마음으로 터벅터벅 걷다가 길바닥에 버려진 <아침 해가 돋을 때>를 만난 겁니다!

해는 이미 중천인데 제 눈앞에, 길바닥에서 다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제 마음은 ‘홀연히’ 밝아지며, 저도 모르게 이미 셔터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 아침 해가 돋는 버려진 액자는, 마치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까맣고 잊고 있던 기억 속 풍경을 제 속에 펼쳐 보였습니다.
○ 아침 해가 돋던 예배
우리 가족은 7명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남동생 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지만, 당시 아침마다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서 말입니다. 권사인 할아버지가 인도하셨고, “기도-찬송-말씀-주기도문”으로 구성된, 길게만 느껴지던 짧은(?) 예배였습니다. 잠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악보는 없고 가사만 있는 할머니의 찬송가를 같이 보며 찬송을 부를 때는 고역이었습니다. 아무튼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눕기 전까지는 그 예배가 우리 아침의 전통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시며, 이 전통도 함께 쓰러졌고, 다른 누구도 다시 세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 나의 할아버지, 김성식 권사님이 너무 사랑해서 정말 자주 부른 찬송이 바로, <아침 해가 돋을 때> 입니다.
그 샌프란시스코 길바닥에서 그 할아버지를 만난 겁니다. 그 찬송 <아침 해가 돋을 때>가 생각난 겁니다. 울음이 터졌고, 저도 모르게 “할아버지, 나 어떡해!”하며 길거리에 서서 울었습니다.
○ 햇빛 되게 하소서
그 버려진 액자에서 뜨는 <아침 해가 돋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과 드렸던 아침 예배가 기억이 났습니다. 그 기억 위로 찬송, <아침 해가 돋을 때>가 흘렀습니다. 언제 불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 찬송을 작은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가사를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그냥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사, “햇빛 되게 하소서”를 부를 때, 저는 방금 전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할아버지와 함께 불렀던 “아침 해가 돋을 때” 이미 거두어졌고, 저는 이제 “햇빛”이 되었습니다.
○ 햇빛-성도 되게 하소서
오늘 이 찬송을 다시 부릅니다. 마치 할아버지가 제가 주신 믿음의 유언처럼 느껴집니다. 삶의 목적을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햇빛 돼라’고 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빛.
이 찬송은 꼭 요한복음 1장을 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태초에 계셨던 말씀-하나님.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생명. 그리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졸업을 앞에 두고 하는 진로 고민은 나를 자꾸 ‘뭐가 되지?’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오늘 내 믿음의 선배, 김성식 권사님은 이 찬송 <아침 해가 돋을 때>를 들려주시면, 그저 ‘햇빛 돼라’고 합니다. 그 말씀에 제 마음에 평안해 집니다. 본질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 빛이 되어, 네가 먼저 살고, 그 생명-빛을 이웃과 세상에 비춰 함께 살라는 말씀!
고마워, 할아버지.
제 이름을 세규(인간 세, 世 + 별 규, 奎)로 지어 주셨죠? 세상에 빛이 돼라고 지어 주신 거죠? 햇빛이든, 별빛이든, 예수-생명-빛이 돼라는 말씀이죠? 할아버지, 이미 아침 해가 돋았어. 오늘도 잘 살게! 할아버지 같은 햇빛-성도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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