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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20수_삼상12:19~25_증거 있어?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섬겼는지?

[Holy-PT] [241120수_삼상12:19-25]_증거 있어?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섬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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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2:19-25
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1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 왕을 구하는 악
삼상 12장은 왕을 구하는 죄를 범한 온 이스라엘을 향한 사무엘의 마지막 말(설교)이다. 오늘 본문 19~25절은 그 끝부분이다. 어제 17절에서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셨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여, 사무엘에게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19절)
○ 돌아서지 마
그런 백성에게 사무엘이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20절)
‘두려워하지 말라’에는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라는 안도가 묻어 있다. 용서를 구하니, 용서해 주고 싶어 안달 났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즉각적인 위로의 말이다. 기쁨마저 배어 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한다.
그래 용서하마.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죄를 깨달았으니 되었다. 나는 용서한다. 이젠 돌아서지 마. 오직 네 마음을 다하여 나를 섬기렴.
곧이어 사무엘은 다시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21절)”라고 말하며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길 것을 강조한다.
○ 헛된 것을 알아도 자꾸 마음이 가요
마음을 다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마음을 다할 수 있는가? 헛되다는 것을 알아도 내 마음은 그 헛것을 향해 간다. 머리와 마음은 따로 놀고, 머리와 마음의 전투에서 마음이 승리한 적은 거의 없다. 마음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구하신다.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할 수 있나
내 의지와 힘으로 마음을 다할 수 없다. 다해야 하는 내 마음의 크기도, 정체도, 나는 모르겠다. 더 솔직히 말하면, 마음을 다하고 싶지도 않은 악의 찌끼가 나도 모르는 깊고 어두운 곳에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요는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도와 강도로, 마음을 다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나보다 이런 상태를 더 잘 아실텐데, 어떻게 이런 요구를 하실 수 있나? 분명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또 하라고 명하신 것일텐데, 그 길은 무엇일까?
○ 기도하기를 쉬는 죄
그렇게 끙끙거리고 있는데 23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무엘은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사무엘 자신도 이렇게 약속한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23절)
먼저 사무엘의 말을 들어 보면, 기도하기를 쉬는 게 죄다! 이 말씀이 왜 이리 충격적이고 동시에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기도하기를 쉬는 게 죄라니! 그런데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보니, 하나님은 사무엘의 이 고별 설교를 통해,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긴 자’의 모델로 사무엘을 드러내고 계셨다. 그리고 이 23절에서, 사무엘이 마음을 다할 수 있었던 이유, 마음을 다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는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르치며 여호와를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 주여, 주를 구하는 기도
왕을 무시로 구하는 악한 내가,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힘은 바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기도는 심플할 것이다. 오직 ‘주’만을 구하는 기도. 오직 ‘주여’를 부르짖는 기도. 다른(?) 기도는 쉴 수 있어도, 내 마음을 주께 다할 수 있기를 소원하며, 주만을 구하는 이 기도는 쉴 수 없다. 그래서 이 단순하게 강력한 이 기도에는 이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길 것이다.
주여, 나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다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주여,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주여, 내 마음은 주를 구합니다. 주여, 하지만 나는 육의 연약함으로 마음을 다하지 못합니다. 주여, 그러나 내 마음을 주께 다하기 원합니다. 주여, 내 마음이 전심으로 주를 향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 증거 있어?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섬겼는지?
그런데 증거가 있나? 내가 오직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겼다는 증거? 마음을 다하면, 마음이 몸에 차고 넘치면 결국 드러나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던 마음이 눈에 보이는 몸-행동으로 말이다.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6-40)
예수님은 두 계명을 시간과 언어의 한계 속에서 첫째와 둘째의 ‘순서’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으셨지만, ‘둘째와 그와 같으니’라는 말씀으로 두 계명이 같은 위계에 있는 하나의 계명 임을 분명히 하신다. 즉,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삼상12:20)’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 그렇게 하고 있음의 증거는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에 도착한다.
○ 기도의 확장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도는 확장된다. 헛것으로 나의 유익을 위하는 기도가 아닌 이웃으로 불리는 가족, 친구, 동료, 이웃의 구원을 위한 기도가 내 마음을 주께 다하는 기도가 되고, ‘주여’라고 부르짖을 때, 우리의 ‘주여’는 위로는 주님, 아래로는 그 이웃-사랑에 닻을 내리고 소망해야 한다.
○ 기도-말씀의 신비로
오늘 말씀은 꿀 같다. 오늘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명령처럼, 나도 오직 나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기를 사모한다. 그것을 사모하니, 기도하라고 하신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말라고 하신다. 주만 사모하며, 주 이름을 ‘주여’ 부르짖으라고 하신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힘을 구하며. 기도를 마치고 오늘 일상에서 ‘사랑해’의 말과 행동을 할 때, 주님은 말씀하신다.
세규야 오늘 네가 오직 네 마음을 다하여 나, 여호와를 섬겼구나!
주님, 그렇게 오늘을 살 수 있는 은혜를 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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