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나아지는 삶: EPL 5R 맨시티 : 아스널 경기를 보고
EPL 5라운드 빅매치는 맨시티와 아스널의 경기였다. 직전 시즌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했고 이번 시즌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두 팀이다. 언제에 만났어도 매우 중요한 경기였을 것이다. 맨시티와 아스널은 각각 팀의 에이스인 김덕배와 외데고르를 부상으로 잃었다. 나는 외데고르가 세계 최고 미드필더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김덕배가 나오지 못하는 건 크게 반가웠다. 물론 대체 선수 퀄리티를 고려하면 여전히 맨시티의 우위였지만. 아스널은 더이상 어중간한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강팀 상대로 맥을 못 추리던 모습을 숱하게 봤던 입장에서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경기 시작 9분만에 홀란드가 선제골을 넣는 걸 보고 ‘지금이라도 자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한국 시간으로 월요일 오전 0시 30분에 시작했다). 5경기에 10골을 넣고 있는 홀란드도 무서웠지만 그에게 어시스트를 해줄 때 사비뉴가 보여준 움직임이 오늘따라 매우 번뜩였다. 하…이거…익숙한 패턴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칼라피오리가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동점골을 기록했다. 전반전 추가 시간에는 마갈량이스가 코너킥 상황에서 역전골까지 성공시켰다. 그리고 트로사르가 퇴장 당했다. 이미 옐로카드를 받은 상태에서 경기 지연 행위로 옐로카드를 받았다. 얼마 전 라이스가 똑같은 이유로 퇴장 당해 토트넘 전에 나오지 못했는데 또. 하…이거…익숙한 패턴인데…전반전이 종료됐다. 1점 앞선 채로, 1명이 적은 채로. 지금이라도 자야 되지 않을까? 후반전 시작과 함께 벤 화이트가 투입됐다. 경미한 부상이 있다고 했는데 수비 강화하려면 별 수 없지. 아르테타 감독의 빠른 판단이 좋았다. 그럼 누가 교체되는 거지? 사카. 또 다른 에이스. 매우 합리적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딱히 부진한 것도 아닌데 예상치 못하게 변한 상황 때문에 에이스를 빼다니? 원래 탁월한 걸 갖고 있으면 어떻게든 써먹고 싶은 법이다. 하지만 아르테타는 과감했다. 그리고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전환했다. 맨시티는 후반전에 슈팅 28개를 때렸다. 점유율은 9:1까지 벌어졌다. 경기 종료 직전 스톤스가 동점골을 넣어 2-2로 끝났다. 그 직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경기 이기면 우승이다.’ 겨우 5라운드인데 뭔 소리냐고? 원래 큰 일은 기세가 중요한 법. 맨시티 베실바는 경기가 끝난 후 한 팀만 축구를 했다며 투덜거렸지만 후반전이 시작될 때 아스널의 승리는커녕 무승부를 기대한 사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맨시티는 대단한 팀이다. 경기를 봤다면 굳이 읽을 이유가 없고 경기를 안 봤다면 EPL에 관심 없는 사람일 테니 역시 읽을 이유가 없는 내용을 줄줄 쓴 것은 이 경기가 내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이다. 모든 게 충격적이었다. 에이스의 부재에도 강팀 상대로 밀리지 않았던 것, 세트피스로 중요한 골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예상 못한 변수에 빠르고 과감하게 대응하는 것. 무엇보다 점유율을 포기하고 두 줄 수비를 세운 모습. 심지어 그게 성공해서 이길 뻔했다. 미친. 아스널은 변했다. 그냥 변한 게 아니라 진화했다. 더 훌륭한 팀이 됐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꾸준히 나아졌다. 하나씩 보완하고 개선하면서. 감독, 코치, 선수, 구단 관계자 그리고 팬들까지 모두가 조금씩 그러나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것이다. 미심쩍을 만큼 단순한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나아지는 삶을 그려나가자. 그리고 생각했다. 일단 자자. 몇 시간 뒤면 출근해야 하니까. 그것부터 잘해내자. 차근차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