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재능을 앗아가지 않는다
스스로의 재능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이때 판단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내려야 한다. 이것이 내 재능인가? 맞다면 그 크기는 나의 다른 능력 혹은 남의 같은 능력과 비교해서 얼마나 되는가? 그렇다면 이 재능은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가? 가령 돈이 되는가? 그것은 내게 얼마나 가치를 갖는가? 한 시절을 걸어볼 정도인가?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지. 그랬다면 세상에는 자기 재능을 활용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았을 것이다. 보통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부담스럽게 느낀다. 망할까봐? 아니. 이도 저도 아닐까봐. 예를 들어 재능에 관해 우리는 혹시라도 애매한 재능의 저주에 빠져 평생을 낭비하면 어쩌나 걱정한다. 그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한 시절을 걸지 않았다고 신이 재능을 앗아가진 않는다. 보통 개인기 정도로 남으니까. 그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방법은 없다. 추측은 가능할지 모른다. 어떻게? 개인기로 남은 재능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으로 미뤄보면 어떨까. 미련이 남아 현재의 발목을 자꾸 잡는다면…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게 내 의견이다. 재능은 가지각색이고 그걸 알아차리는 시기도 천차만별이다. 내 경우엔 취업 준비를 하며 알았다. 남의 자소서를 잘 고쳐준다는 사실을. 단순히 잘한 게 아니다. 재능이란 별도의 예열 없이 곧바로 집중할 수 있는 것, 엄청난 노력 없이도 남보다 그럭저럭 나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효율이 좋은 것이다. 남의 자소서 고쳐주기. 내겐 그게 그랬다. 함께 취업 준비를 하던 멤버들끼리 자소서를 봐준 게 계기였다. 당시 나는 기자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논술 및 작문 시험이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지는 직무라 그런지 자소서 자체가 일종의 글쓰기 시험 같았다. 그래서 공채 시즌이 되면 자소서 스터디를 별도로 꾸렸다. 똑같은 글쓰기 스터디지만 나는 그때가 분명 더 즐거웠다. 왜 즐거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특정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로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자소서는 목적이 명확한 글이다. 지원하는 회사가 밝히고 있는 인재상을 기준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줘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능력이나 경험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다. 장황하게 풀어놓은 이야기를 각 문항에서 요구하는 내용에 맞게 정렬시키는 일이 재밌었다. 게다가 자소서에 쓰는 이야기는 평소에 많은 대화를 하는 사이라도 몰랐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내가 손대기 전과 달리 문답의 합이 부드럽게 맞아들어가 보이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음…일종의 성취감. 다른 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물론 결과도 따라줬다. 지인들에게 아이디어를 주거나 첨삭을 해줬는데 효과가 좋았다. 합격률이 올라간 것은 물론 다른 회사 지원서를 쓸 때 활용할 원소스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게 후기(?)의 공통적인 내용이었다. 기업과 직무를 가리지 않았다. 가릴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저 조금 내밀할 수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기자보다 도서편집자가 적성에 더 맞았던 게 아닐까. 물론 기자 또한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직업이지만 결국 자신이 나서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내 자소서에 ‘서포터 역할을 좋아하고 잘 맞는다’고 자주 썼는데,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썼던 거 아닌가 싶다. 거참.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웃긴 건 정작 나는 기자도 못 됐다. 겨우 일은 시작했지만 여러번 이직했다. 세 번째 퇴사를 할 쯤 얼기설기 엮인 내 커리어를 보면서 이거 참 걸레짝이 따로 없구나, 나는 망했구나 싶었다. 진지하게 숨고나 크몽에서 자소서 첨삭 일을 시작해 차차 사업화해 나가볼까 생각했다. 이 글의 첫 문단에 나열했던 질문들을 치열하게 던졌다. 그때 시작했다면 이 글은 내 서비스를 홍보하면 마무리지었겠지. 나는 내 재능이 애매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질문들에는 “그럭저럭…”이라며 넘어갈 수 있었는데 ‘한 시절을 걸어볼 정도인가?’라는 질문에는 그게 안 됐다. 그렇다면 결국 앞의 질문들에 대한 답 또한 확실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그걸 개인기 정도로 남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