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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적 일상
중독적인 사랑 그리고 우정
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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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이상 꾸준히 소식을 주고 받았다면 그 사이는 평생 갈 사이”라는 글을 읽은 건 스무 살 때였다. 아직 많은 사람이 싸이월드를 이용하던 시기이니 당시 감성에 충실한 글 중 하나였을 테다. 그때는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우선 7년이라는 쓸 데 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면서도 그걸 뒷받침하는 어떤 근거도 내놓지 않았다. 말 같지도 않은 내용을 해외 무슨 대학 저명한 연구진의 실험 결과랍시고 들이대는 뻔뻔함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십 년 남짓 산 내게 7년은 너무 길어 실감나지도 않는 시간이었다. 가장 오래된 친구라고 해봐야 고작 5, 6년인데.
의외로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내 주위를 맴돌았다. 심지어 지금은 살짝 믿기도 한다. 이제 내겐 7년 이상 꾸준히 소식을 주고 받은 사람들이 꽤 생긴 덕분일까. 심지어 스무 살 이후에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무려 10년이 훌쩍 넘은 인연들이 있다. 신기한 일이다. 이토록 오랜 기간 마음을 쏟는 상대가 이렇게 많아질 줄이야. 상당수가 호의적으로 반응해줬기에 이처럼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건 더욱더 감사한 일이다. 물론 소식이 끊긴 이들을 미워하거나 소식이 끊겼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도 않는다. 한때의 삶을 나누어 가진 ‘우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한때의 삶을 나눠 가진 우리. 우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누군가 시킨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조금 느끼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우정에 대해 논하는 행위 자체가 좀 느끼한 일인데, 뭐. 함께 쌓은 시간과 그 안에서 겪은 사건은 완전히 낯선 개인들 사이에 우정의 틀을 만들고 밀도를 높여준다. 이로 말미암아 우정은 언제나 사후에 관찰되는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 사이에 우정이 있다‘라고 공언하게 되기 전까지 모든 느낌은 그저 별개의 현상일 뿐이다. 그것이 전조 현상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상호 확인 및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친한 거 맞지?‘
반면 사랑은 확인 과정이 없더라도 혼자서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 말하자면 관계의 맺어짐이 전제되지 않아도 존재는 얼마든지 확인되는 것이다. 사랑은 우정과 달리 상대방의 수락 없이도 세상에 태어나는 게 가능하다. 그렇기에 나눠가진 삶이 없을 수도 있다. 사랑이 먼저 있으라. 시간과 사건은 그 다음에 있어도 될지니. 따라서 연인은 친구보다 가성비가 높다. 오래된 우정보다 지금 막 생겨난 사랑이 더 깊을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오래 만나도 단 몇 초면 깨질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그 어떤 관계에서보다도 짧고 굵게 겪을 수 있다.
이처럼 강렬한 건 매우 중독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가 끝날 때면 다시는 그런 사람을 못 만날까 두려워하고 연애가 시작되면 그게 다음 생까지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둘 다 진실이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한동안은 그렇게 믿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친구는 좀처럼 그러지 않는다. 약간 그렇기도 한가? 그래도 같은 크기의 감정이라면 아무래도 사랑에 비해 우정은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은가? 우정도 그만큼 격렬하다고? 미안하다. 사실 나도 친구들을 ‘사랑’한다. 아군이니 참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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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서울과 엄마와 나
90년대 중반 어느 겨울, 서울에서 김천으로 가는 고속버스 한 대는 총 세 번 휴게소에 들렀다. "원래는 한 번만 쉬는 노선인데 네가 하도 찡얼대니까 기사님이 애기 바람 좀 쐬게 하라고 글쎄 세 번이나 쉬었지 뭐니." 엄마는 '정병연은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다'라는 주제가 대화에 오를 때면 언제나 이 얘기부터 꺼냈다. 그 다음에는 아마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를 대신 봐줬던 외할머니가 응급실에 입원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이어질 터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는 그 애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태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널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 "뭘요?" "넌 멀미도 심하고 더위를 많이 타잖아." "그쵸." "근데 엄마는 멀미는 안 하고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거든." "그것도 맞죠." "그래서 난 얘가 많이 추운가보다 싶어서 옷도 더 입히고 목도리도 둘러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 울길래 아직도 추운가 싶어서 모자도 씌우고 그랬지. 털모자로." "와. 진짜 끔찍하다."
병연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더 걱정하고 고민할래
“운전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어느 날,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운전하는 날 보고 이렇게 말했다. “별게 다 대단하대?”라며 웃어넘겼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면허를 따기 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처음 도로주행에 나섰을 때 손과 발을 극도의 긴장감이 휘감았었다. 운전을 해보지 않은 나에게, 운전석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면허를 따자마자 ‘뭐, 별거 아니네.’라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인생의 관문이란, 넘고 나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막상 그 앞에 섰을 땐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높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친구 A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취업 준비에 지친 A는 취준을 그만두고 카페에서 일하며 틈틈이 하고 싶었던 걸 하고, 배우고 싶었던 걸 배웠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이런 삶이 좋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무섭다고 말했다. 사는 것도 재밌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너무 좋은데, 그래서 불안하다고. 이것저것 하느라 한 주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지만, 영양가 없이 바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바쁨이 아닌 오직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한 바쁨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거라고 자신을 믿고 있을 부모님이 실망하시게 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자기는 지금 정말 괜찮은데,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그야말로 답도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왔단다. A의 고민을 듣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욜로(YOLO)!, 카르페디엠, 지금 네가 즐거운 거면 된 거야… 이런 말들을 위로로 건네면 될까. 평론가 황현산 역시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라고 했으니까. 오늘도 내 삶을 구성하는 하루인데, 내일을 빛내기 위해 불안한 오늘을 보내야 할 이유는 없지, 아무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란 보장도 없고. 그러니 현재를 즐기라고 말해주면 되려나.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건넬 수 없었다. A에겐 눈앞에 놓인 관문이 간단히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벽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마치 운전대 앞에서 한껏 긴장했던, 면허를 따기 전의 나처럼. 그러니 A가 맞닥뜨린 벽의 존재를 무시하고 “이것은 사실 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무책임하게 “현재를 즐겨!”라고 말할 수 없었던 거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벽 앞에 서서 A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자신의 삶에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데, 이런 고민과 걱정을 단순히 욜로 같은 말로 쓸 데 없는 취급해버릴 순 없었다. 삶을 온전히 감당하려는 인간이라면 불안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게 현재의 행복을 갉아먹을지라도 말이다. 이런 고민과 걱정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삶의 과정일 테다. 우리는 완벽하게 오늘만 살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관문 한 관문 통과할 때마다 내가 걱정하고 고민했던 것만큼 이 관문이 높은 벽은 아니었구나, 깨닫는 것뿐. 남들은 욜로라지만, 한 번 밖에 살지 않으니까 나는 좀 더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짜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감을 안고서.
병연
일할 때 '~하지 말 것' 리스트
일할 때 지키려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 그것들은 보통 ‘~하지 말 것’이라는 부정어 형태를 취한다. 왜냐면 그 기준을 넘겼다고 성과로 여기진 않기 때문이다. 취미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에게 풀코스 완주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프로 마라토너에겐 그렇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해냈다’며 소소한 성취감을 누리는 태도를 경계한다. 그런 기준은 대개 지적 당한 상황을 숙고한 끝에 만들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지적이 그처럼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지적 당하는 사람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지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주로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여러 고민과 생각을 하고 많은 경험을 쌓은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운좋게 주어지는 환경에 가깝다. 한때는 내가 잘하는 걸 대신 발견해 이끌어주는 리더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좋은 리더란 내가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세심히 살피고 피드백 주는 리더다. 의외로 본인은 그걸 알기 어렵다. 플러스를 만들어 주기보단 마이너스를 없애주는 사람. 그렇게 다진 기반 위에 경험과 실력을 쌓는 게 내 일이고 그게 소위 말하는 성장이었다. 피드백 수용성이 성장의 척도라고 한다면 나의 성장 곡선은 완만할 것이다. 스스로 보기에도 피드백 수용성이 높은 편은 아닌 듯하다. 좋게 말하면 내가 한 일에 대한 평가와 나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를 잘 나누어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남의 말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한 번 찔리면 깊숙이 찔린다. 그렇게 생성된 기준들이다. 퀄리티 챙기느라 데드라인 놓치지 말 것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첫 시간에 교수는 조를 이뤄서 간단한 글을 한 편 작성해 내라고 했다. 본 평가 때 빠진 점수를 보충할 수 있는 특별 점수를 걸었다. 우리 조가 어떤 글을 써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기억나는 사실은 완성되지 않은 글을 제출했다는 것과 시간 내에 제출한 팀이 우리뿐이었다는 것. "그거 몇 초, 몇 분 더한다고 눈에 띄게 퀄리티가 높아지지도 않는다. 여러분은 지금 납기 맞추는 것부터 익혀야 할 레벨이다."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퀄리티보다 데드라인. 당연히 둘 다 챙겨야겠지만 내겐 데드라인을 가장 중요했다. 물론 이런 저런 경험을 쌓으며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하고 나자 퀄리티를 챙기기 위해 의사결정권자와 데드라인을 ‘협의’하는 선택지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데드라인 내에 처리한다는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그렇게 일할 작정이다. 최소한 내가 의사결정권자가 돼 데드라인을 지정하는 역할을 맡을 때까지는 말이다. 메일을 메시지처럼 쓰지 말 것 섭외나 제안이 많은 업무 특성상 먼저 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답장을 못 받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때부터 온갖 불안과 자조에 휩싸인다. ‘내가 제안한 내용이 흥미를 돋구지 못 했나?’, ‘내용을 쉽게 풀지 않아서 읽다가 꺼버렸나?’,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가 별로였나?’ 등등등. “나라면 이렇게 안 보냈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듣거나 ‘메일 쓰는 법’을 다룬 책을 받았을 때의 절망감이란. 첫 직장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모든 불안과 자조가 업데이트의 동력이 됐다. 지금도 많은 메일을 뜯어본다. 형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어떻게 쓰는지, 인사는 어떻게 하며 수신자를 뭐라고 부르는지, 스몰토크는 어느 관계에서 하는지, 문단은 어디서 나눌지, 어떤 순서로 내용을 짤지, 마무리 인사는 뭐라고 할지, 심지어 ‘감사합니다.’와 ‘정병연 드림.’ 사이 한 줄을 띄울지. 메일은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 유일한 타깃의 액션을 못 끌어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받는 이에겐 그 메일이 단순 메시지가 아닌 나의 포트폴리오라는 생각을 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