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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되겠지
전기차
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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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병연은
1.
전기차 화재를 다룬 뉴스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1일이었죠.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로부터 시작된 화재가 대규모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화재는 약 8시간 뒤에 잡혔는데 주변 차량 140여대가 손상됐고 아파트 주민 22명이 유독 가스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네요. 정전으로 인해 인근 행정복지센터 등에 설치된 임시시설로 대피한 사람도 많았고요.
2.
전기차를 향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 의도와 무관하게 신체와 재산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타인의 의도도 아닙니다. 이번 사고는 주행 중이거나 충전 중이 아니라 주차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불이 붙었습니다. 전기차 화재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는 인식을 강하게 남겼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진화도 어렵고요.
3.
실제로 전기차 화재 발생 확률이 내연기관차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이나 스프링클러 등으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은 갑자기 폭발하는 차량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과 전소된 주변 차량을 찍은 이미지에 밀려 설득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전기차를 지하주차장에서 퇴출하자는 의견이 득세하는 것을 보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냥 치워버리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생각할까요?
4.
평소에 타고 다니는 차량이 전기차입니다. 아무래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해당 이슈를 좀 더 예민하게 바라봤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충분히 이해되기도 합니다. 개인으로서 저 또한 전기차가 무서우니까요.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잖습니까. 하지만 내연기관차를 탈 때도 저는 무서웠습니다. 화재를 포함한 사고는 언제나 제 의도와 상관없이 일어나니까요.
5.
인간이 만든 그 무엇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비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리스크는 남겠죠. 하지만 리스크의 소멸은 불가능합니다. 관리되는 리스크와 그렇지 않은 리스크가 있을 뿐이죠.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두루 시도해봐야 합니다. 앞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테고요. 모든 신기술은 언제나 부작용을 동반했고 이것을 최소화 하는 과정을 거쳐 우리 일상에 자리잡았습니다.
6.
물론 그러한 논의와 시도 끝에 ‘퇴출’이라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퇴출은 지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퇴출과 같은 결정일까요? 아니요. 완전히 다릅니다. 검토된 경우의 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검토된 경우의 수는 그 자체로 강력한 논리가 됩니다. 어떤 경우도 검토하지 않고 내린 결정에는 검토되지 않은 경우의 수가 미련처럼 영원히 따라붙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 반복될 거란 얘기죠.
7.
그래서 참 안타깝습니다. 왜 깔끔하고 뒤탈없는 단순한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 걸까요?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봐서 그런 걸까요? 물론 단순한 문제에는 단순한 해결책이 답이긴 합니다만…이번 전기차 화재 건은 관련 기사만 조금 찾아봐도 그렇지 않던데요. 답답합니다, 답답해!(여러 글 중 가장 좋았던 글을 공유합니다. 해당 문제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해결 방안과 여러 대안을 제시하는 입니다)
8.
사실 전기차를 글감 삼아 쓰려고 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라식(라섹) 수술과 엮어서 ‘유경험자는 충분히 만족하는데 무경험자가 괜히 트집잡는 것’에 대해 꼬집어 보고 싶었습니다. ‘리버스 라떼’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전기차와 라식(라섹)에 더해 한 가지 사례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묵혀두고 있었는데…뜬금없는 내용으로 써먹어버렸네요.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언젠간 쓰겠죠.
▲ 멀쩡하지 않으면서 멀쩡한 척 하는 것들은 대개 자세가 부자연스럽죠.
지난 레터 이후에
두 번째 풀터뷰 재밌는 걸 했는데 일이 됐다: CMO 정다운을 발행했습니다. 다운 님은 풀칠 구독자로서 작년에 진행한 풀칠러클럽에 참여해주신 인연으로 인스타 맞팔을 하고 지내던 분입니다. 감사하게도 손을 번쩍 들어주셔서 귀한 경험을 나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굴러가다 결국 어떤 지점으로 수렴하고 또 그걸 반복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운 님의 이야기가 꼭 그랬습니다.
아참, 풀칠 홈페이지는 여전히 공사 중입니다. 그래서 또 제 홈페이지에 올린 버전으로 공유합니다. 아마 다음에 보내는 레터에서는 풀칠 홈페이지 링크를 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거는 일기장에나 써라" 에서 '그런 거'에 해당하는 것들 모음집에서는 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피드 게시물 또는 스토리를 포함해 무작정 휘갈긴 생각들을 볼 수 있는데요. 최근 뜸했습니다.
문장 수집은 남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성실한 독자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리추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주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신나게 그러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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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픽션의 큰 가치는 지식의 대중화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 우리는 결국 우리 분야가 아니면 모두 문외한이다. 이야기를 잘 만드는 것도 별도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므로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선진국에는 <측정의 세계> 같은 논픽션이 있다. 개념적으로 전문가와 일반 독자 사이에 위치하는 책이다. 전문가가 봐도 틀린 말이 없고, 문외한이 봐도 어렵지 않은 책은 언제든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
황석희 번역가의 <번역: 황석희>을 완독했습니다. 정보값이 높지 않고 문장의 호흡도 편안해서 쭉쭉 읽어냈습니다.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황석희 번역가의 작업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가장 유명한(사실 ‘가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겐 이게 ‘유일’한 사례라서…) <데드풀>의 번역을 맡은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죠. 그래서 함부로 말하긴 좀 어렵지만, 문장과 에피소드 곳곳에서 다소 방어적인 태도가 엿보여서 번역가님이 그동안 악의적인 피드백에 지나치게 자주 노출돼 오셨던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뭐…저의 걱정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거물이시긴 합니다만.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1>파르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는 계속 답보 상태입니다. 지금은 손이 가는 다른 책들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문학에 큰 흥미가 없는 편이기도 합니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의 <야망계급론>을 조금 읽었습니다. 이제 2장을 읽고 있는데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저자가 ‘야망계급’의 특징을 이리저리 읊어주는데 막연하게 상상하게 되거나 들어맞는 유명인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저와 알고 지내는 인물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그들을 주변에 둔 나도?’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남은 내용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중입니다.
더그 복 클락의 <마지막 고래잡이>를 출퇴근길에 읽고 있습니다. 고래잡이로 삶을 이어가는 라말레라 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들만의 오래된 방식으로 살아왔던 원주민 부족이 현대 문명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보편적인 일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 부족, 장소, 물건 등의 이름이 워낙 생소해서 누가 누구고 어디가 어디고 뭐가 뭔지 계속 헷갈리는 게 흠이라면 흠입니다. 그래도 문장을 읽어나가다 보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해당 장면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저자가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납니다. 특히 도입부는 소설 혹은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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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공식적
요즘 정병연은 기침을 달고 삽니다. 코로나 후유증입니다. 광복절 즈음 목이 간질거리더니 그 주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바로 알겠더군요.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을. 하필 자가검진키트가 똑 떨어지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확진 받은 것은 아닙니다만, 예전부터 그런 말이 많았잖습니까. ‘이거 코로나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아니라고. 그런 생각조차 못할 만큼 화끈하게 온몸을 두드린다고. 그게 무슨 말인지 이번에 알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할 때도 이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경험이 두 번 있습니다. 다만 자가검진키트로는 별 짓을 해도 두 줄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디 가면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린 적 없다’고 큰 소리 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왜 코로나라고 확신하냐고요? 대표적인 증상이 모두 나타났거든요. 특히 미각이 사라지는 것과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침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것.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저는 공식적으로 코로나에 걸린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최소 두 번은 걸렸을 텐데요. 그 뒤에 “어쨌든 공식적으로 걸린 적은 없다”고 덧붙이면 듣는 사람도 “아, 뭐, 그렇긴 한데…”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공식적인 것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운동선수의 이적에 있어서도 ‘오피셜’ 나기 전에는 안심하지 말자고 하는 이유가 있죠.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딥페이크 범죄와 관련해 정의당 당직자 강남규 님이 쓴 페이스북 글을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원외정당 공보를 한다는 건 속도와의 싸움이다. "정의당만" 낸 상태여야 그나마 기사가 된다. 특히 원내정당들이 입장을 내기 시작하면 정의당이 낄 자린 급격하게 없어진다. 이 문제 관련해서 지난주에도 입장을 하나 내긴 했지만, 구체적인 학교 명단이 돌기 시작하면서 문제를 인식하는 정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오전에 기자회견이 있어 늦어지는 동안 조바심이 났다. 결국 오후에 내게 됐는데, 이미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게 무슨. 아무 당도 입장을 안 내고 있다. (진보당 김재연 대표가 트윗을 올리긴 했다. 트윗만 올리고 페북엔 안 올렸더라.) 그래서 이렇게 기사가 나갔다. 하지만 기사를 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황당하고 당황스럽기만 하다. 내가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공식적인 것은 힘이 셉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보증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공식적인 것은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다소 추상적입니다. 조금 느립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은 직감과 기분에 따라 ‘좋빠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요. 더 명확하고 더 빠를수록 그것은 힘이 더 세집니다. 이례적인 것은 그 자체로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례적인 것은 유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을 때 딱 하나 있는 선택지가 평범한 경우가 오히려 드물겠죠. 그러니 어쩌면 선택 자체는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 선택을 최선으로 만들어 가는 노력이 어려울 뿐. 어려워서 피할 건가요? 개인은 그럴 수 있습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인데 누가 누구를 덮어놓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런 자격은 누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당이 그래도 되나요? 정당은 사회의 룰을 만드는 주체입니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사회 집단입니다. 심지어 원내정당은 실질적인 권력도 쥐고 있죠. 말도 안 되는 범죄(라고 썼지만 이미 디지털 성범죄는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딥페이크 기술이 보편화 되는 시점에서 여러 사람이 경고하기도 했죠. ‘말도 안 되는 범죄’는 사실 순진 혹은 무식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에 수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는데 공식 입장 표명이 이토록 느긋하다니, 솔직히 충격 받았습니다. 유불리를 따지고 있었다면 나쁜 것이고 단지 늦게 인지했다면 무능한 것이죠. 딥페이크 범죄는 어떻게 될까요? 가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카페)에 모여 수사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이들을 상대로 상담 및 수임 홍보에 나서는 변호사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중에 딥페이크 범죄 포스터에 집게손을 썼다며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고 경찰은 포스터를 삭제·회수 조치했습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일인가 싶어요. 정말로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상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정말, 답답한 일 투성입니다.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말이에요. 지난 레터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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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가족 여행
요즘 정병연은 속초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사는 저와 동생은 9시에 출발했고 부모님은 경북 김천에서 5시에 출발했습니다. 사실 속초를 도착지로 찍는다면 소요 시간이 크게 차이나진 않습니다(여행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서울 4시간, 김천 4시간 30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왜 그렇게 일찍 집을 나섰을까. 절에 다녀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동생이 합류하기 전에 원주 구룡사, 영월 법흥사에 들렀다 올 계획이라고 하시네요. 그 다음 일정도 절인데. 만나자마자 점심을 먹었습니다(식당은 정가네메밀막국수입니다. 절 방문 일정은 고정값이기 때문에 그 동선에 맞춰 급하게 찾은 곳인데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심지어 짧지만 웨이팅도 했어요. 추천합니다). 평창 월정사를 둘러본 뒤 속초로 이동해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수산시장에서 회를 먹었습니다. 물론 술도 한 잔 했죠. 다음 날 아침에 순두부를 먹고 또 다른 절로 향했습니다. 속초 신흥사와 양양 낙산사입니다. 이틀만에 절 다섯 곳이라니. 이쯤 되면 이번 여행은 ‘속초 여행’보다는 ‘강원도 절 투어’라고 부르는 게 맞겠습니다. 자연스레 불심이 차오릅니다. 33관음성지라는 게 있습니다. 한국의 절 중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입니다. 그리고 이 절들을 순례할 수 있게 만든 책자가 있습니다. 책자를 들고 종무소에 가면 인증 도장을 찍어줍니다. 여기에 포함된 강원도 소재 절은 총 다섯 곳입니다. 네. 저희 부모님이 이틀 사이에 다녀가신 곳들이죠. 멀리 강원도까지 오시는 김에 한번에 해치우려고 하셨던 겁니다! 참고로 이 33이라는 숫자는 우연히 정해진 게 아닙니다. 33은 불교에서도 의미 있는 숫자인데요. 관세음보살이 33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신앙에서 비롯됐습니다. 일본 불교의 관음 성지 순례 역시 서부 지역의 33개의 절을 방문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죠. 물론 저희 부모님은 순례자라기보다는 국내 여행 다닐 겸 참여하는 라이트 유저지만요. 결과적으로 부모님의 33관음성지 순례에 이용(?) 당한 셈이지만, 딱히 불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님과 가는 가족여행은 자칫 효도 여행에 그칠 수도 있는데, 부모님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자연스럽게 여행의 책임(?)을 분담하게 되니까요(아빠는 3년 뒤에는 꼭 튀르키예에 가자고 노래를 부릅니다). 언젠가는 전적으로 저와 동생이 책임지는 효도 여행을 다니겠죠.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꺼이 할 수 있죠. 예전에 갔던 여행에서 엄마는 운전석에 앉은 나와 조수석에 앉은 동생을 뒤에서 바라보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20년 전에는 그 자리에 자신들이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바뀐 위치가 새삼스러웠다는 것이죠. 우리가 살았던 그 시기를 이제 아이들이 사는구나. 이런 거구나. 이런 게 윤회구나. 이렇게 우리는 돌아가는 것이구나. 우리의 삶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구나. 하늘로 돌아간다면 오늘을 떠올리며 확신에 차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참, 아름다웠더라 지난 레터 이후에
병연
굳이
요즘 정병연은(24.07.16)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2박 3일, 마지막 날 오전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므로 짧은 편이죠. 그래도 꽤 알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식사 덕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볍게 소개. 첫째 날 점심은 서귀포시에 위치한 식당 센트로에서 먹었습니다. 4인이었고 수비드 제주 돼지, 감자 뇨끼, 비스크 크림 파스타, 조개 파스타, 로메인 샐러드를 골랐습니다. 점심 식사에는 1인당 음료 한 잔이 포함돼 있습니다. 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어요. 손님은 전부 도민이었습니다. 하긴 제주도까지 와서 굳이 양식을 먹을 이유가 없긴 하죠. 그래도 맛집이긴 한 것 같습니다. 2시에 방문했는데 세 팀 정도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도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시더라고요. 실제로 맛도 좋습니다. 저녁은 제주시청 인근 중식 이자카야 산아에서 먹었습니다. 나름 관계자(?)라서 권해드리기 조심스럽긴 합니다. 그래도 맛은 확실합니다. 송이관자, 칠리새우,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아, 여기도 손님 대부분이 도민입니다. 만약 가보시게 되면 아시게 되겠지만, 관광객이 머물 만한 동네가 아니거든요. 아, 한 블럭 뒤에는 갱이네보말칼국수라는 데가 있습니다. 여긴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맛집인 것 같아요. 라마다호텔에서 잠을 자고 산아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 날 갱이네에서 아점을 드시면 딱이겠네요. 둘째 날 점심은 제주시청 바로 옆에 있는 라스또르따스에서 먹었습니다. 멕시코 음식점입니다. ‘제주도에서 굳이…?’ 싶긴 하죠? 어쨌든 관광객과 제주도민 모두가 인정한 맛집입니다. 저는 까르니따스, 뜨리빠, 부리또를 먹었습니다. 까르니따스와 부리또는 기본 타코입니다. 구성이 기본이라는 거지 맛은 꽤 좋습니다. 제주 한우 곱창을 활용한 뜨리빠는 정말 맛있더군요. 달고기(생선)를 쓴 뻬스까도가 이 날 안 된다길래 2안으로 주문한 건데 아주 훌륭했습니다. 아, 고수가 들어가는데 뺄 수도 있습니다. 저녁은 한림에 있는 육고깃집에서 먹었습니다. 뼈갈비세트가 주력인데 등심덧살에 대한 평가도 좋습니다. 저는 2인팟이라 뼈갈비세트만. 고기를 구워먹고 있으면 뼈에 붙은 고기를 따로 구워서 내옵니다. 진짜 맛있습니다. 역시 고기는 뼈에 붙은 고기인가…아참, 한림점이 본점인데요. 제주시에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맛에 크게 차이는 없지만 왠지 본점이 더 나은 것 같다는 느낌은 그냥 느낌일 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접근성은 제주시가 더 나을 테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굳이…?’ 싶은 메뉴와 ‘굳이…?’ 싶은 동네의 조합은 색다른 제주도의 맛을 알려줬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일로 제주도를 자주 방문하다 보니 ‘굳이…?’ 싶은 것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몇 년에 한 번 여행으로 찾는 경우였다면 저 역시 안전한 선택을 했겠죠. ‘굳이…?’ 싶은 선택지는 가장 먼저 배제했을 게 분명합니다. 당연히 그게 꼭 나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정석만으로도 일정을 채우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원래 변주나 응용은 따분한 기초 위에서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제 딴에는 평소의 나답지 않은 과감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비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암요. 물론입니다. 삶의 모양이 다양한 이유는 각자 쌓아온 선택의 모양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일 테니까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에서 ‘굳이…?’ 싶은 것들을 허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싶은 선택지가 소거된 삶은 아무래도 ‘다양한 삶의 모양’에 기여하기 어려우니까요. 돌연변이가 진화를 만드는 원동력인 것처럼 내 경험에서도 가끔씩 돌연변이가 하나 쯤 나와줘야 합니다. 앞으로도 제주도를 자주 갈 겁니다(당장 9월 초에도 방문 계획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자주 가는가? 그에 대해서는 따로 전해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어쨌든 저는 제주도에 관해서는 꽤 재밌는 포지션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1년에 3~4회는 꼭 제주도를 가는데 제주도민도 아니고, 이주민도 아니고, 순수하게 제주도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을 좋아해서 여러 곳을 다니는 사람도 아닙니다. 여러모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경계 위에 서 있는 느낌이죠. 그래서 말인데요. 고백하자면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제주도에서 굳이…?’라는 이름으로 디에디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겁니다. 작년 이맘때 생각했던 것 같군요…엇, 잠시만요. 지금 ‘굳이 버킷리스트라고 할 것까지 있나…?’, ‘굳이 그런 걸 글로 써야 해…?’, ‘굳이 디에디트인 이유는 뭐지…?’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넣어두십시오. 왜냐면 저도 아직 그 답을 모르니까요. 원래 ‘굳이…?’ 싶은 건 떠올리는 게 먼저고 언젠가 직접 해본 다음 이유를 깨닫는 것에 가까운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