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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병연

요즘 정병연은

1.
전기차 화재를 다룬 뉴스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1일이었죠.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로부터 시작된 화재가 대규모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화재는 약 8시간 뒤에 잡혔는데 주변 차량 140여대가 손상됐고 아파트 주민 22명이 유독 가스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네요. 정전으로 인해 인근 행정복지센터 등에 설치된 임시시설로 대피한 사람도 많았고요.
2.
전기차를 향한 시선이 고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 의도와 무관하게 신체와 재산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타인의 의도도 아닙니다. 이번 사고는 주행 중이거나 충전 중이 아니라 주차한 지 사흘이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불이 붙었습니다. 전기차 화재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는 인식을 강하게 남겼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진화도 어렵고요.
3.
실제로 전기차 화재 발생 확률이 내연기관차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이나 스프링클러 등으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은 갑자기 폭발하는 차량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과 전소된 주변 차량을 찍은 이미지에 밀려 설득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전기차를 지하주차장에서 퇴출하자는 의견이 득세하는 것을 보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냥 치워버리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생각할까요?
4.
평소에 타고 다니는 차량이 전기차입니다. 아무래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해당 이슈를 좀 더 예민하게 바라봤던 것은 사실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충분히 이해되기도 합니다. 개인으로서 저 또한 전기차가 무서우니까요. 말 그대로 언제 터질지 모르잖습니까. 하지만 내연기관차를 탈 때도 저는 무서웠습니다. 화재를 포함한 사고는 언제나 제 의도와 상관없이 일어나니까요.
5.
인간이 만든 그 무엇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비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리스크는 남겠죠. 하지만 리스크의 소멸은 불가능합니다. 관리되는 리스크와 그렇지 않은 리스크가 있을 뿐이죠.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이런 방법 저런 방법 두루 시도해봐야 합니다. 앞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테고요. 모든 신기술은 언제나 부작용을 동반했고 이것을 최소화 하는 과정을 거쳐 우리 일상에 자리잡았습니다.
6.
물론 그러한 논의와 시도 끝에 ‘퇴출’이라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퇴출은 지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퇴출과 같은 결정일까요? 아니요. 완전히 다릅니다. 검토된 경우의 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검토된 경우의 수는 그 자체로 강력한 논리가 됩니다. 어떤 경우도 검토하지 않고 내린 결정에는 검토되지 않은 경우의 수가 미련처럼 영원히 따라붙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 반복될 거란 얘기죠.
7.
그래서 참 안타깝습니다. 왜 깔끔하고 뒤탈없는 단순한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 걸까요?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봐서 그런 걸까요? 물론 단순한 문제에는 단순한 해결책이 답이긴 합니다만…이번 전기차 화재 건은 관련 기사만 조금 찾아봐도 그렇지 않던데요. 답답합니다, 답답해!(여러 글 중 가장 좋았던 글을 공유합니다. 해당 문제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해결 방안과 여러 대안을 제시하는 글입니다)
8.
사실 전기차를 글감 삼아 쓰려고 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라식(라섹) 수술과 엮어서 ‘유경험자는 충분히 만족하는데 무경험자가 괜히 트집잡는 것’에 대해 꼬집어 보고 싶었습니다. ‘리버스 라떼’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전기차와 라식(라섹)에 더해 한 가지 사례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묵혀두고 있었는데…뜬금없는 내용으로 써먹어버렸네요. 당분간은 어렵겠지만 언젠간 쓰겠죠.
▲ 멀쩡하지 않으면서 멀쩡한 척 하는 것들은 대개 자세가 부자연스럽죠.

지난 레터 이후에

두 번째 풀터뷰 재밌는 걸 했는데 일이 됐다: CMO 정다운을 발행했습니다. 다운 님은 풀칠 구독자로서 작년에 진행한 풀칠러클럽에 참여해주신 인연으로 인스타 맞팔을 하고 지내던 분입니다. 감사하게도 손을 번쩍 들어주셔서 귀한 경험을 나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굴러가다 결국 어떤 지점으로 수렴하고 또 그걸 반복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운 님의 이야기가 꼭 그랬습니다.
아참, 풀칠 홈페이지는 여전히 공사 중입니다. 그래서 또 제 홈페이지에 올린 버전으로 공유합니다. 아마 다음에 보내는 레터에서는 풀칠 홈페이지 링크를 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거는 일기장에나 써라" 에서 '그런 거'에 해당하는 것들 모음집에서는 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피드 게시물 또는 스토리를 포함해 무작정 휘갈긴 생각들을 볼 수 있는데요. 최근 뜸했습니다.
문장 수집은 남의 문장을 통해 스스로를 성실한 독자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은 리추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주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신나게 그러모았습니다.
🍎
이런 논픽션의 큰 가치는 지식의 대중화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 우리는 결국 우리 분야가 아니면 모두 문외한이다. 이야기를 잘 만드는 것도 별도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므로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를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선진국에는 <측정의 세계> 같은 논픽션이 있다. 개념적으로 전문가와 일반 독자 사이에 위치하는 책이다. 전문가가 봐도 틀린 말이 없고, 문외한이 봐도 어렵지 않은 책은 언제든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
황석희 번역가의 <번역: 황석희>을 완독했습니다. 정보값이 높지 않고 문장의 호흡도 편안해서 쭉쭉 읽어냈습니다.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황석희 번역가의 작업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가장 유명한(사실 ‘가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겐 이게 ‘유일’한 사례라서…) <데드풀>의 번역을 맡은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죠. 그래서 함부로 말하긴 좀 어렵지만, 문장과 에피소드 곳곳에서 다소 방어적인 태도가 엿보여서 번역가님이 그동안 악의적인 피드백에 지나치게 자주 노출돼 오셨던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뭐…저의 걱정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거물이시긴 합니다만.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1>와 파르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는 계속 답보 상태입니다. 지금은 손이 가는 다른 책들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문학에 큰 흥미가 없는 편이기도 합니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의 <야망계급론>을 조금 읽었습니다. 이제 2장을 읽고 있는데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저자가 ‘야망계급’의 특징을 이리저리 읊어주는데 막연하게 상상하게 되거나 들어맞는 유명인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저와 알고 지내는 인물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그들을 주변에 둔 나도?’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남은 내용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 중입니다.
더그 복 클락의 <마지막 고래잡이>를 출퇴근길에 읽고 있습니다. 고래잡이로 삶을 이어가는 라말레라 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기들만의 오래된 방식으로 살아왔던 원주민 부족이 현대 문명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보편적인 일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 부족, 장소, 물건 등의 이름이 워낙 생소해서 누가 누구고 어디가 어디고 뭐가 뭔지 계속 헷갈리는 게 흠이라면 흠입니다. 그래도 문장을 읽어나가다 보면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해당 장면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저자가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납니다. 특히 도입부는 소설 혹은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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