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스버거는 혁신인가 [풀칠 1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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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듯 말 듯 해, 혁신

‘이제 곧 초복이군.’

10년 전 이맘때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먹은 짬밥이 ‘초복 특식’ 삼계탕이었던 탓에 매해 이맘때면 ‘이제 곧 초복이군’ 하게 된다. 하지만 난 초복을 챙기지 않는다. 여름이면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에 꼭 보양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아니다. ‘이제 곧 초복이군’ 하게 되는 것과 내 라이프스타일은 별 관계가 없다. 그건 뭐랄까…꼭 한 시절의 상흔으로 마음에 남았을 뿐이다. 중복과 말복은 언젠지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게 증거다.

‘이제 곧 초복이군’이라는 생각은 한동안 일상 속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회의 중 쉬는 시간에, 점심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퇴근 후 지하철역까지 걷는 동안, 옆 사람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이제 곧 초복이네요…삼계탕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지요. 그러나 대개 말만으로 그친다. 나는 초복을 챙기지 않기 때문이다. 삼계탕을 먹을 수 있지만 그 이유는 ‘초복이라서’가 아니라 ‘먹고 싶으니까’다. 내 선택의 근거를 외주 주지 않으리.

그러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이 초복에 삼계탕을 먹는다. 중복도, 말복도 놓치지 않는다. 삼계탕집 주인은 삼복 시즌이면 더 많은 재료를 확보해 둘 것이다. 올림픽 같은 이벤트를 앞두고 스포츠 브랜드가 물량 갖추기에 들어가듯이. 연말이면 베이커리에서 각양각색 신상 케이크를 내놓듯이. 아주 작은 습관이라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장이 형성된다. 역시 습관이야말로 가장 큰 상품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말도 안 되는 습관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에 뜨거운 음식을 먹어 더위를 이겨내겠다는 발상을 최초로 했던 사람은 누굴까. 직관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걸 주장하고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누군지 몰라도 덕분에 800만 삼계탕인이 여름에도 밥 먹고 산다. 아니지, 밥 팔고 산다. 다른 게 혁신이 아니다. 이런 게 혁신이지. 다음 혁신은 ‘겨울에 냉면 먹는 날 만들기’ 정도 되려나.

친구와 냉면을 먹다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식초와 겨자를 골고루 뿌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지. 그건 너무 1차원적이잖아.”

“그럼? 네가 생각하는 다음 혁신은 뭔데?”

“아무도 상상 못한 시원한 음식을 만드는 거지. 예를 들면 아이스 버거라던가…”

“듣기만 해도 *롯스럽네.”

*롯스럽다: 희한한 버거(ex. 왕돈까스 버거)를 자주 내놓는 롯데리아의 실험정신을 일컫기 위해 유튜버 침착맨이 만들어 낸 신조어다. 그는 롯스러움에 대해 “자신감 있게 하다가 덤벙대고, 기대하고 실망하다가 거기서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서, 나중에 계속 생각이 나서 롯데리아를 선택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직관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게 혁신이라며.”

“난 아이스 버거 따위를 주장할 용기도 없고 설득할 자신도 없어.”

“훗날 아이스 버거로 세계 버거 시장에 혁신을 이뤄낸 사람의 전기에서 주인공에 반대하다가 결국 그를 떠나는 인물이 칠 법한 대사군.”

아이스 버거는 혁신인가. 듣자마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한 나는 정녕 혁신의 반대자일 뿐인가? 그렇다면 혁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혁신을 혁신이게 하는가. 그건 바로 논리다. 상대방이 스스로 ‘말이 되네’라고 생각하게끔 길을 뚫어줘야 한다. 예컨대 더운 날에 뜨거운 음식을 먹어 더위를 이겨내겠다는 발상에는 논리가 있다. 날씨가 더우면 상대적으로 몸 속 온도가 차갑다. 때문에 뜨거운 음식을 먹어 몸 속 온도를 높여주면 몸 안팎의 온도가 맞아 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추운 날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스 버거에는 논리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 차가운 빵과 패티 어디에 논리가 존재한단 말인가. 제아무리 굴려봐도 내 머리는 기껏해야 냉채족발 버거를 넘어서는 아이디어는 떠올리지 못한다. 냉채족발 버거, 그럴 듯하다고? 천만의 말씀. 이정도 수준의 일탈은 전위적 버거 제조의 선두주자인 롯데리아에서 이미 검토했을 것이다. 롯스러운 그들조차 말끝을 흐렸을 테지. ‘아, 이건 좀…’ 아이스 버거는 훌륭한 상상이다. 좋은 시도였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혁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잠깐. 이거 누구에게 하는 말이지?

얼마 전 동료들과 하루종일 토론하며 세운 회사의 비전이 떠올랐다. 비전 달성에 필요한 프로덕트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것들을 설명하는 문장에 사용된 ‘차별화’, ‘핵심 가치’, ‘영향력’, ‘탁월한’, ‘압도적인’, ‘폭발적인’ 같은 단어들이 생각을 멈춰세웠다. 우리가 작성한 건 전략 문서일까? 혹시 우리 비즈니스에 깃들길 바라며 그저 써내려 간 기도문 아니었을까? 우리가 혁신이라 여겼던 것들, 적어도 혁신을 이루겠다는 마음은 진심이라 믿고 내놓은 것들. 그건 생김새만 좀 다른 아이스 버거 아니었을까?

“사고 흐름이 왜 이렇게 자학적이야? 얼마나 대단한 거 한다고. 아니, 대단한지 아닌지도 모르지. 거기에 얼마나 매달렸다고 말야. 그냥 좀 뻔뻔하게 굴어. 뻔뻔하게. 현실에서는 뻔뻔함이 자주 논리를 이긴다고.”

“그렇게 이긴 사람들이 자신의 뻔뻔함을 논리로 착각하는 꼴이 얼마나 역겨운지 너도 알잖아.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난 역겹다고 생각 안 해. 결과적으로 뭔가가 되게 만들었다면 그건 충분히 논리적이었던 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게 역겨울 거면 입만 열면 혁신, 혁신 하는 업계에서 일 못하지. 근데, 혁신 없는 업계가 있긴 하냐?”

“너 <스티브 잡스>니 <일론 머스크>니, 하여튼 그런 기업가 이야기 그만 좀 읽어.”

“왜 얘기를 그쪽으로 틀고 그래?”

친구의 말이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니다. 혁신은 결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혁신이란 걸 알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혁신이라는 결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뿐이다. 타인(심지어 같은 팀 동료 중에도 있을 수 있다)에게는 허무맹랑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자신만큼은 맹신해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그걸 두고 뻔뻔함이라 이르는 것은 실례일지도. 아직 그런 믿음을 가져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저 지나가는 게 최선일 것이다. 내게도, 그에게도. 그런데 ‘그’가 누구지? 사실 그거, 내가 맡아야 하는 역할이기도 한 거 아닌가?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켜자 토스에서 보낸 푸시 메시지가 뜬다.

‘아마존 📈 최근 1년 중 최고가를 기록했어요(276,988원)’

챗GPT의 등장 이후 모든 이목이 AI로 쏠렸던 지난해 초, 빅테크 위주로 주식을 샀다(생애 첫 투자다). 마침 여유 자금이 있었고 여기저기서 듣고 본 것과 차트 모양을 봤을 때 이 주식들의 가치는 분명 더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토스 증권의 깔끔한 UIUX는 초보자의 주식 투자 진입장벽을 낮춰줬다. 공부한다 생각하고 소소하게 넣자는 마음을 먹기 쉬웠다(더 넣을걸!). 생각해 보면 그때 내 결정에도 ‘이건 매우 혁신적이다!’라는 판단이 있었다(온 세상이 똑같이 얘기하긴 했지만).

혁신…대체 뭘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일단 내일 생각하자. 고민을 집안까지 끌고 들어올 필요는 없으니. 냉장고를 열었다. 다음날 도시락으로 싸갈 것이 똑 떨어졌다. 하지만 괜찮다. 내게는 컬리가 있으니까. 그런데 아차, 11시가 넘어 새벽배송을 놓쳤다. 괜찮다. 나는 쿠팡 와우멤버십 유저이기도 하니까. 유유히 식재료와 냉동식품을 골라담고 ‘밀어서 결제하기’로 간편하게 쇼핑을 마친다. 간단히 씻고 침실로 들어가 넷플릭스를 켠다. 뭘 볼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그렇듯 일단 켠다.

모두 한때는 아이스 버거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누차 말하지만 아이스 버거는 혁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스 버거인지 아닌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 간편송금도, AI도, 새벽배송도, 유료 스트리밍 플랫폼도 결국 스스로 논리를 만들어 주장했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러고 하면 세상에 혁신 아닌 게 없다. 세상 자체가 온통 혁신의 결과로 이뤄져있다. 정말 그렇다. 어딘가에는 분명 나만의 혁신도 있을 것이다. 세상까지 안 바꿔도 된다.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만 바꿔도 그건 충분히 유의미한 혁신일 테니까.

그만 자야겠다. 시리야, 내일 7시에 깨워줘.

[🍔아이스버거는 혁신인가 [풀칠 186호]](https://fullchill.stibee.com/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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