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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적 일상
삼총사는 없다
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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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딩 때는 어쩐지 친구들이 좀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마 빠른 년생을 향한 갖은 구박과 핍박에 시달리며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똑같이 여서 일곱 살에 불과한 애들이 시도 때도 없이 형, 누나라고 부르라며 약을 올리니 열이 받아, 안 받아? 아, 진짜 유치하게 왜 저래. 물론 유딩이 유치한 걸 이상하게 여길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거의 확실할 것이다) 유치원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파랑반 선생님이 제일 친한 친구였다.
그나마 어울렸던 친구가 둘 있다. 걔들과는 주로 ‘지구용사 벡터맨’ 놀이를 했다. 유치원 뒷마당에서 우리는 영웅처럼 활약했다. 난 ‘벡터맨 베어’를 맡았다. 사실 난 베어를 별로 안 좋아했다. 변신 전 베어의 꼬불머리가 되게 별로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세 번째로 소개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대장이나 다름없는 ‘벡터맨 타이거’나 2인자 특유의 멋짐이 폭발하는 ‘벡터맨 이글’을 좋아했지만, 그건 다른 둘의 역할이었다. 은근히 짜증났다. 어린이에게 삼총사 중 3번이란 화룡점정보단 쫄병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십 년쯤 지나 중딩이 됐지만 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다. 뚱뚱해서 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딱히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쯤 ‘캬캬캬’ 하고 웃어 넘길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스펀지밥 ‘뚱이’인 이유도 그 별명 때문이다. 어쨌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 교실, 저 교실 쏘다니며 다른 반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다. 보지 않아도 안다. 생활기록부엔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교우관계가 원만함.” 내 사춘기는 어쩌면 유딩 때 왔다 간 게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시험 공부를 하러 갔던 시립 도서관에서 우연히 타이거와 이글을 만났다. 우리는 유치원을 졸업하며 각기 다른 초등학교로 진학했고 당연히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타이거와 이글은 같은 중학교에 배정 받았다. 6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함께 시험 공부를 (핑계로 밤 늦게까지 놀러) 다닐 정도로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걔들은 반가워하며 내 핸드폰 번호를 받아갔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가끔 상상한다. 나도 타이거와 이글이 다녔던 중학교에 배정 받았다면 유년기의 우정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 관계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었을 만한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즐거움, 위로, 공감, 의지 같은 것들. 그런데 꼭 마지막에는 찝찝한 기분이 남았다. 나도 타이거나 이글 역할을 맡고 싶었지만 삼총사가 되려면 베어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쉬웠다. 나와 나머지 둘 사이의 은근한 거리감도. 그 관계는 오히려 아득한 유년기에만 머물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셋은 좀 불안하다. 혼자는 확실히 외롭고 둘은 그보다 좀 덜 외롭지만 셋은 경우의 수를 갖기 때문이다. 온전히 셋으로 존재하거나, 셋 중 둘에 속하거나, 셋 중 하나에 속하거나. 온전한 셋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니까 패스. 먼저 셋 중 하나일 때를 보자. 이때는 확실히 외롭다. 혼자서 하나일 때보다 더 외롭다. 왜냐면 인간은 보통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 때문에 괴로워지니까.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그 모순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널리 쓰이는 이유가 있지. 셋 중 하나의 입장에서 나머지 둘을 볼 때 느껴지는 무력함을 아는지?
셋 중 둘이 마냥 편하단 건 아니다. 그냥 둘이면 몰라도 셋 중 둘이 되면 나머지 하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신경 쓰지 않는 순간 그냥 둘이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와 론의 관계를 온전한 셋으로 보는 시각에 조심스레 반론을 제기한다. 셋 중 둘이 부부인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관계의 기울기에 따라 해리가 난처해질 수도 있고(누구 편을 들지?), 외로워질 수도 있다(그래도 지니가 있으니까). 자, 이제 당신도 ‘이러나 저러나 인간관계에 있어 셋이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숫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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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순두부찌개의 추억
할머니의 분식집은 시립도서관 후문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날 할머니는 오랜만에 집에 온 딸과 손자들을 맞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저녁 장사를 마감했다. 8시가 좀 안된 시간, 바닥 청소까지 마친 다음 설거지 거리를 정리하고 행주 따위를 널며 뒷정리를 끝내 갈 무렵이었다. 책가방을 멘 학생 하나가 2단 우산을 접으며 가게로 들어왔다. ​ "저희 영업 끝났어요~" ​ 수저통을 정리하던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벙찐 표정의 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어린 눈에도 보이는 듯했다. 그 눈은 틀림없이 '어라? 이 시간에 닫은 적 없었는데...?'하며 상황을 파악하는 눈이었다.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은 것 같았으나 이내 등을 돌려 나가려는 학생을 붙잡은 건 주방을 정리하고 나온 할머니였다. “아유, 아니에요. 주문해요. 뭐 줄까?” ​ 엄마는 '엄마도 참 못 말린다'는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봤지만, 할머니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애매하게 선 채 벙찐 표정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뀐 학생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순두부 찌개를 주문했다. 우리 할머니 분식집의 메뉴판 왼쪽 가장 위에 있는 메뉴였다. 식당의 주력 상품임을 뜻하는 지정학적 위치. ​ 잠시 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순두부 찌개와 몇 가지 반찬이 식탁 위에 올라갔다. 단어장인지 소설인지 모를 책을 조용히 읽던 학생은 그보다 더 조용하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달그락달그락 후루룩 하는 소리가 바깥의 빗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아주 어린 시절이지만 지금까지 선명한 장면. 내게 그 날은 가족들과 외식으로 먹은 메뉴가 아닌 그 학생이 먹던 순두부 찌개로 남아 있다. ​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을 때 순두부 찌개라고 대답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굳이 그 날의 일까지 꺼낼 필요도 없다. 할머니의 주력 상품이었던 만큼 엄마는 순두부 찌개를 좋아했고, 엄마 역시 할머니처럼 순두부 찌개를 맛있게 끓였다. 당연히 나도 순두부 찌개를 잘 먹었다. 심지어 수능 때 보온병에 꽉 채워 담아간 점심 도시락 메뉴도 순두부 찌개였다. ​ 독립해 나온 지금, 가끔 집에 갈 때면 엄마는 매 끼니 진수성찬을 차려낸다. 냉장고를 각종 요리 재료로 가득 채워 놓고도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집을 떠나기 전 날 밤까지 묻는다. 준비한 재료를 기어이 소진하고 나서도 양 손에 들려 보낼 김치나 장조림 같은 반찬까지 착착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내가 집을 떠나는 날 아침 메뉴는 늘 고정돼 있다. 순두부 찌개다. ​ 순두부와 계란을 같은 비율로 풀고 팽이버섯을 잔뜩 넣은, 얼큰함과 담백함의 대타협을 통해 맵지 않게 끓여낸 순두부 찌개. 자박자박한 국물을 조금씩 떠 먹다가 밥 위에 한 숟갈 크게 얹어 슥슥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인 순두부 찌개. 보들보들하면서도 함께 섞인 밥알 사이사이 공간을 채워서 씹는 듯 씹지 않는 듯 묘한 식감을 선사하는 순두부 찌개. ​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음식 하는 걸 좀 더 많이 배웠어야 했는데, 순두부 찌개도 그렇고.” ​ 순두부 찌개를 먹는 나를 보며 엄마는 매번 같은 말을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엄마의 순두부 찌개도 분에 넘치게 맛있다. 하지만 정작 엄마 성에는 아직도 안 차나보다. 어릴 때부터 먹던 그 맛이 안 나서 그런 거겠지. 다만 어릴 때부터 먹어온 것이 엄마의 순두부 찌개인 나로서는 그 맛의 반의 반이라도 재현하는 밀키트가 세상에 나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순두부 찌개를 먹을 때면 그 날이 떠오른다. 공부하느라 고생한 학생을 그냥 보낼 수 없었던 할머니의 마음과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면서도 답답해 하던 엄마의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꼭 지금의 엄마와 나를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순두부 찌개를 좋아하는 건 단순히 집안 내력이 아니다. 입맛의 대물림은 결국 나와 엄마, 할머니의 마음이 이어져 있다는 징표가 아닐까.
병연
내 속도를 지키는 일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고 서울에서 인천으로 퇴근했으므로 하루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해를 바라보며 달렸다. 아침에는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저녁에는 저무는 해를 뒤쫓았다. 그날의 일정을 체크하느라 정신없는 아침과 달리 저녁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이 된다. 모든 것을 '콘텐츠'라 부르며 '인풋'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직장인이지만, 퇴근길 지하철에서만큼은 비생산적이고 의미 없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듯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을 지난 열차는 지상으로 나온다. 오른쪽 창밖에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들을 물끄러미 응시하곤 했다. 어둑해진 하늘과 먼 거리로 인해 차종을 확인하긴 어렵다. 다만 그것들은 둘로 나뉜다. 지하철보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느린 차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달리는 빠른 차는 마치 영화 주인공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지 않았다. 내 속도를 지키는 일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동반한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갈 준비가 된 것이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어쨌든 하나의 트랙 위에서 함께하고 있는 이들을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는 듯한 마음. 적정 속도는커녕 현재 속도조차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가보려고 한다. 지치면 좀 쉬기도 하면서. 마지막에 멈추는 바로 거기까지가 나의 세계겠지.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역시 혼자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싶다.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가까운 듯 먼 듯, 같이 가는 듯 따로 가는 듯 움직이는 반경 몇 미터 안의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멈추지 않게 해준다. 그러고 보니 한때는 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같은 경험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던 사람들. 그때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 나만큼 멀리 왔을까.
병연
닭다리가 먼저냐, 가슴살이 먼저냐
치킨을 먹을 때면 두뇌가 풀가동된다. 어느 부위를 먹고, 어느 부위를 남길지 고민하느라 바쁘다. 1인 1닭이 안 되는 1인 가구라면 피할 수 없는 선택. 고려해야 할 변수는 두 가지다. 부위별 고유의 맛과 상태에 따른 맛. 예를 들면 나는 목과 다리를 좋아한다. 방금 튀겨 따뜻하고 부드러운 상태는 물론 완전히 식은 뒤 대충 데워 놓은 상태라도 꽤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퍽퍽살은 남길 경우 대부분 버린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치킨 한 마리를 두 끼에 걸쳐 온전히 즐기기 위해 좋아하는 부위를 남겨야 할까? 퍽퍽살을 버리고 한 끼만 먹더라도 최상의 부위를 최상의 상태로 먹어야 할까? ​ 순살을 시키면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 맞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순살을 잘 먹지 않는다. 일정한 수준의 맛을 식사 내내 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지만 어쩐지 그건 안정적이라는 느낌보다 밋밋함으로 다가온다. 부위마다 제각각인 뼈 치킨이 굽이치고 휘감기는 강이라면 순살 치킨은 직강 공사로 쭉 뻗은 형태를 갖춘 강이라고 할까. 거기엔 어떤 기승전결이나 희로애락도 없다. 그저 먹는 경험을 매끈하게 통과해낼 뿐이다. 좀 더 의미부여 해볼까. 순탄하게 흐르는 삶보다는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이 반복되는 삶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마음이 나로 하여금 순살 치킨이 아닌 뼈 치킨을 고르게 한다. ​ 그러고 보면 우린 항상 현재와 미래를 저울질한다. 크고 작은 선택들이 가져올 결과를 가늠하며 삶을 ‘계획’한다. 하지만 이제껏 경험한 바에 의하면 계획을 세우는 속도보다 그것이 무너지는 속도가 언제나 더 빨랐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획을 세워 모든 계획이 물거품 되는 상황만큼은 막아보자는 자조적 농담도 수시로 던졌다. 20대의 미숙한 경험과 통찰에서 비롯되는 계획은 대부분 이뤄질 수 없기에 완벽하게 쓰레기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는데, 내 생각엔 이 또한 미숙한 통찰이다. 왜냐면 우리 엄마만 하더라도 쉰이 될 때까지 이뤄지지 않을 계획 세우기를 반복했다고 하셨으니까. ​ 존 레논이 그랬다지. 삶이란 다른 계획을 세우는 동안에 일어난다고. 이런 이야기를 사랑한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 누구보다 계획적으로 살았던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통찰. 존 레논조차 자기 뜻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의 여러 계획이 무너지는 상황에 한줄기 위로가 된다. 잊지 말아야 한다. 계획은 삶의 일부여야 한다는 사실을. 삶이 계획에 빨려 들어가면 곤란하다. 그러니까 치킨 먹을 때 고민 좀 줄여야지. 맛있는 부위는 오늘 먹어야지. 맛없는 부위는 볶음밥으로 먹든 어떻게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조금만 덜 게을러지는 것으로 계획 저편의 삶을 채워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