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지나가는 7-8월의 독서
매해 7-8월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마음의 준비를 빡세게 하기 때문이다. 더위에 취약한 내게 이 기간은 약간 과장해서 ‘버리는 시간’이다. 늘 그랬다. 이 시기의 나는 모든 면에서 무력하다. 원래 놓는 게 어려운 법. 버리기로 결정만 하면 사라지는 건 금방이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자산인 시간을 버리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뭘 좀 많이 했다. 평소처럼 순식간에 지나갔길래 이번에도 헤롱거리며 보냈겠지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때보다 이벤트가 많았던 것이다. 제주도도 다녀왔고 가족 여행도 다녀왔고 평소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여럿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이사한 집 곳곳을 채우기 위해 쇼핑도 자주 하고 동네 맛집도 여럿 뚫었다. 책도 많이 읽었다. 무려 6권! 물론 SNS 돌아다니면 발에 차이는 게 1년에 100권은 너끈히 읽어내는 사람들인 시대에 이게 많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책 읽는 속도가 거북이 뺨칠 만큼 느린 탓에 100권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숫자다. 보통 한 달에 2~3권 정도 읽긴 한다. 그래도 이번엔 두꺼운 책도 있으니 많다고 해도 문제 없겠지. 그래서 무슨 책을 읽었냐면…사실 지금 주절주절 쓰기 시작한 이유도 이 책들 소개하고 싶어서다. 7-8월에 읽은 책이 모두 다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추천한다. 📚월터 아이작슨 <일론 머스크> 누구의 인생이든 편집을 거치면 나름대로 힘있는 이야기가 되지만, 일론 머스크는 대체 몇 명 분의 삶을 살고 있는 건가. 얼마 전 나영석 PD가 일론 머스크를 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최고 부자가 최고 셀럽’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런 면에서 그가 어떻게 부자(셀럽)가 됐는지 알아보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충분히 유의미하다. 📚사이먼 쿠퍼 <옥스퍼드 초엘리트> 명확한 문제의식과 고유의 관점, 탄탄한 취재, 잘 훈련된 저널리스트의 문장이라는 조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다. 영국 상류층이 성장하는 정치적 환경을 풍부한 사례로 풀어냈다. 그들에겐 브렉시트가 매우 자연스러운 결론이었고, 그건 영국 사회나 시민들과 전혀 관계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탄탄한 논증. 📚사이먼 쿠퍼 <바르사> FC바르셀로나(바르사)에 대한 이야기. 스포츠 팀은 연고지와 강한 관계성을 갖기 마련인데 바르사는 그 극단의 사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축구보다 넓은 범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펩 과르디올라가 메시,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를 만난 덕분에 감독 커리어를 화려하게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는지? 글쎄, 이 책이 주장하는 건 정확히 그 반대다. 📚김초엽 <아무튼, SF게임> 어디선가 게임을 ‘매체’로 보는 관점에 대해 접했었다. 그때는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나는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조금 이해가 됐다. 매체가 세계를 바라보는 창 혹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게임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매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전공 과목으로 게임 커뮤니케이션이 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야망계급론> 대학교에서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배웠다. 나는 그걸 이렇게 이해했다. 같은 학교(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동류라고 여겼던 사람이라도 하교(퇴근) 혹은 졸업(퇴사) 후에 ‘돌아가는 곳’에서는 제각기 다른 일상을 보낸다. 바로 그 차이를 만드는 게 아비투스. 이 책은 그 다음 단계 논의다. 요즘 갓생러들의 SNS를 맥락적으로 읽어내는 근육을 얻을 수 있다. 📚더그 복 클락 <마지막 고래잡이>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라말레라 부족 이야기. 새 시대가 오면 구 시대는 그저 물러나야만 할까? 한 시대의 중심 집단은 그 시대의 모든 것을 지배해도 될까? 인류가 존속되는 한 지루하게 반복될 이야기일 테다. 책을 읽으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의 그물이 어디까지 뻗쳐 나갈지 기대된다. 최대한 뻗쳐 내겠다는 책임감도 느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