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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구 저쩌구
미켈 아르테타: 묵묵하지만 욕심을 갖고
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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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팀 아스날의 감독 미켈 아르테타는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국가대표에 선발된 적이 없다. 그의 나라인 스페인에는 유명한 선수가 많았다. 당대 최강의 팀 FC바르셀로나를 이끄는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있었다. 그 라이벌 팀인 레알 마드리드부터 리버풀, 바이에른 뮌헨 등 세계적인 팀에서 내내 주전으로 활약한 사비 알론소도 있었다. 아스날을 먹여살리다 FC바르셀로나로 떠난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명단에 겨우 이름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스페인이 2008년 유로, 2010년 월드컵, 2012년 유로까지 제패하는 걸 보는 아르테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르테타는 묵묵히 축구를 했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에게는 조금 밀릴지 모르겠지만 그 역시 꽤 유명한 선수였다. 일찍이 유럽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2005년 EPL 팀 에버튼에 합류해 차곡차곡 평판을 쌓았다. 2011년에 같은 리그의 아스날로 이적한 뒤엔 핵심 선수이자 주장으로 5시즌을 뛰었다. 말년에는 경기력이 다소 떨어져 실제 출전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베테랑으로서 리더십과 통솔력을 발휘하며 팀을 뒷받침했다. 아르테타의 선수경력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더없이 안정적인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그래서 매우 이상적인. 그를 수식하기 위해 쓴 표현이 ‘꽤 유명한’에 그치는 게 섭섭하게 느껴질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선수였다.
선수 시절의 아르테타. (사진=아스날 공식홈페이지)
아르테타는 육각형 미드필더였다. 측면과 중앙 어느 위치에 두든지 곧잘 소화해내며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에버튼에서 그를 빼고 전술을 구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스날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경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기여했다.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제각각인 동료들 혹은 상대팀의 전술이나 기세에 따라 달리 흐르는 경기 양상에 맞춰 필요한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했다. 탁월한 퍼포먼스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부재할 때 오히려 자연스럽게 존재감이 느껴지는 유형이었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묵묵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이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틀렸다. 그 두 가지는 아무 관계 없다. 당연히 아르테타도 욕심을 냈다.
2011년 아르테타의 아스날 이적은 다소 급박하게 진행됐다. 이적 시장이 닫히기 직전에 계약이 확정되면서 전 소속팀인 에버튼은 그의 대체자를 구할 시간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에버튼 감독과 팬들은 “더 늦기 전에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아르테타를 비난하지 않았다. 무려 7시즌 동안 에버튼에서 최선을 다한 그의 선택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중요해서 다시 말한다. 아르테타는 꽤 유명하고 훌륭한 선수였다. EPL에서 오랜 기간 꾸준히 경기에 나서 제 역할을 다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이른바 ‘월드클래스’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 높은 명예를 추구할 자격은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아르테타는 아스날에서 2014년, 2015년 연속으로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바랐던 대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뛰었다. 매번 16강에 그쳐 아쉽긴 했겠지만 말이다. 그때의 아스날은 1996-1997 시즌 이래 한 번도 EPL 4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은 강팀이었다. 아르테타의 마지막 시즌인 2015-2016시즌에는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은퇴한 다음 시즌 5위로 밀려난 아스날은 이후 8위까지 떨어지면서 유럽 대항전도 못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짧지 않은 암흑기를 보낸 아스날은 지난 2022-2023시즌 2위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부활을 이끈 것이 감독으로 돌아온 아르테타라는 점이 재밌는 포인트다.
아르테타는 2019-2020 시즌 중간에 아스날 감독으로 합류했다. (사진=아스날 공식홈페이지)
아르테타는 은퇴 후 곧바로 맨체스터 시티의 코치로 부임했다. 우상이었던 펩 과르디올라 감독 밑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았다. 그러다 2019-2020시즌 중간에 우나이 에메리 아스날 감독이 경질됐고 전부터 아스날과 접촉이 있었던 아르테타가 새로운 감독으로 합류했다. 아르테타 역시 단번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의 지휘 아래 그라니트 자카, 부카요 사카 같은 기존 선수들이 제몫을 해냈고 마르틴 외데가르드, 토마스 파티, 벤 화이트, 아론 램스데일, 가브리엘 제수스, 올렉산드르 진첸코, 레안드로 트로사르 등 영입한 선수들도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팀은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믿고 활용할 수 있는 선수풀에서 자신이 영입한 선수와 기회를 준 선수의 비중을 높이고 그로써 이전과 눈에 띄게 다른 성과를 내면 감독의 팀 장악력은 기하급수로 확대된다. 누구를 영입하고 방출할 것인지, 누구를 주전으로 쓰고 후보로 쓸 것인지 등의 결정에 권위가 실리므로. 아스날 감독으로서 아르테타의 가장 큰 성취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안목이 좋았다. ‘어떤 선수를 영입할 것인가?’와 ‘어떤 선수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을 줄 알았다. 그렇기에 결과가 따라왔다. 말년의 아르센 벵거와 경질된 에메리가 끝까지 풀지 못했던 문제를 아르테타는 끝내 풀어냈다.
아르테타는 더 높은 명예를 추구할 자격이 있다.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알론소, 파브레가스…그리고 아스날에서 그와 함께 뛰었던 선수들은 이제 없다. 하지만 아르테타는 여전히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꽤 유명한 선수였던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증명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물론 지난 시즌 우승을 놓치고 처음엔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팀과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본 끝에 그는 아스날 감독으로서 다시 또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다. 예전처럼 묵묵히 축구를 해나갈 것이다. 지난 시즌이 단지 행운에 따른 결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그가 아스날에서 벵거와 같은 반열에 올랐으면 좋겠다.
나는 욕심을 갖고 묵묵하게 할 일을 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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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커뮤니티 매니저 채용공고 분석해보니
직군으로서 커뮤니티 매니저는 앞으로 더 세세하게 분류될 것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비교적 최신의 개념이다. 시장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시작점은 불과 2010년대에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관심사 기반의 네트워킹에 대한 니즈와 자기계발 및 성장에 대한 니즈를 겨냥해 트레바리 같은 유료 모임 서비스가 나타났다. 온라인에서는 무신사와 스타일쉐어, 오늘의집 같은 서비스가 성공하면서 커뮤니티에 커머스 기능을 붙이는 모델이 자리를 잡았다. 커뮤니티 매니지먼트도 새롭게 등장한 일이었다. 레퍼런스가 없으니 기업은 제각기 상황에 따라 커뮤니티 매니저의 주요 업무와 필요 역량 등을 다르게 정의했다. 공유 오피스 기업인 위워크의 커뮤니티 매니저, 커머스 기업인 오늘의집의 커뮤니티 매니저, 모임 플랫폼 기업인 문토의 커뮤니티 매니저, 콘텐츠 플랫폼 기업인 플로의 커뮤니티 매니저는 같은 이름으로 다른 일을 한다. 커뮤니티 매니저는 '직군'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라고 모두 같은 디자이너가 아니듯 커뮤니티 매니저라고 모두 같은 커뮤니티 매니저가 아니다. 디자이너에 비해 짧은 역사로 인해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직군이 세세하게 분류될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지금은 뭉뚱그려서 얘기되고 있지만 한국에선 곧 정리되지 않을까? 네이버와 카카오가 커뮤니티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걸었으니. 양적 성장이 끝난 네이버와 카카오는 질적 성장을 노리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양대 IT기업으로서 그들의 행보에는 과도할 정도로 큰 사회적 관심이 쏟아진다. 어쩔 수 없다. 두 기업의 서비스 이용자 집단은 사실상 대한민국 국민과 일치한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커뮤니티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사실은 더욱더 의미심장하다. 왜 그럴까? 먼저 ‘이용자 집단이 대한민국 국민과 일치’하는 상태에 대해 살펴보자. 언뜻 보면 궁극에 다다른 상태인 듯하다. 그러나 기업에게는 한편으로 굉장히 두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이용자 수를 늘리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이용자 수를 늘리지 못한다는 것은 곧 성장이 정체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물론 배부른 소리다.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니까. 그정도 되면 리스크 관리만 잘해도 이용자 수가 빠질 일은 없다. 네트워크 효과로 인한 대체불가능성 때문에 강력한 락인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은 늘 신성장 동력을 찾는다. 그 유명한 붉은 여왕 가설이 나올 타이밍이다.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해” 양적 성장이 안 되니 성장 전략의 초점은 질적 성장으로 간다. 이용자 한 명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 단적인 예가 카카오의 오픈채팅 활성화 전략이다. 지인과의 대화방에 그치지 않고 불특정 다수와의 대화방도 열 수 있다면? 이용자 한 명이 카카오톡에서 맺는 관계의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네이버의 오픈톡도 맥락을 같이한다.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가 커뮤니티를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다. 이용자를 그냥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잘 모으고 싶기 때문이다. 관심사와 같은 명확한 기준을 바탕으로 잘 분류된 이용자 집단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자산이다. 광고나 쇼핑 등으로 연결하기도 용이한 것은 물론 플랫폼의 영향력을 더욱더 강화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할 것이다.
병연
‘질러야 한다’라는 신호: 박찬용, <좋은 물건 고르는 법>을 읽고
얼마 전 비싼 반바지를 한 벌 샀다. 굳이 ‘비싼’ 반바지라고 쓴 이유는 자랑하려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비싸기 때문이다. 비이커(BEAKER) 매장에서 발견한 스튜디오니콜슨 제품으로 통이 크고 무릎을 살짝 넘기는 길이에 면 80% 린넨 20%로 만들어진 반바지다. 무신사 기준 할인가 396,990원(정가 595,000원). 난 아울렛에서 마지막 재고를 샀는데 35만원 정도 줬다. 개인적으로 비이커에서 산 첫 번째 제품이다. 지금까지 내게 비이커는 심리적 가격 상한선을 높이는 곳이었다. 여기서는 내가 산 반바지도 특출나게 비싼 편이 아니다. 그러니 여길 돌아다니다가 코스(COS)나 아르켓(ARKET)에 가면 제품 가격이 이보다 더 합리적일 수 없는 듯 느껴지는 것이다(코스나 아르켓도 일반 SPA브랜드에 비하면 다소 비싼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좋은 물건 고르는 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 정도 금액까지는 ‘비싼 건 이유가 있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그 ‘정도’는 각자의 취향이나 경제력에 따라 달라질 테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많은 돈을 투자할 만한 확고한 취향이 없다. 최저가만 고집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경제력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감당 가능한 선에서 비싼 걸 고를 수 있고 그러려고 한다. 물론 내가 산 반바지는 그 선을 넘어간다. 그럼에도 이 바지를 산 이유는 당연히 있다. 우선 ‘통이 크고 무릎을 살짝 넘기는 길이의 반바지’를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지난 봄에 별 생각 없이 입어봤던 제품이 의외로 마음에 딱 들었다. 사이즈가 좀 작았다. 평소라면 ‘살 더 빼면 되지’ 라며 샀을 텐데, 그러기엔 또 비쌌다. 내려놓을 수밖에. 그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었다. 만듦새도 훌륭했다. 허리는 밴딩 처리돼 있는데 굉장히 쫀쫀하게 느껴졌다. 지금보다 허리 사이즈가 커지든 작아지든 핏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을 듯했다. 적당한 두께와 답답하지 않은 소재까지 모든 요소가 흡족했다. 특히 실제로 입었을 때 허리부터 골반까지 이르는 부위를 감싸는 느낌이 좋았다. 무엇보다 스튜디오니콜슨 자체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있었다. 물론 그래도 비싸다. 하지만 ‘질러야 한다’는 신호가 너무 강력했다. 인생에 가끔 찾아오는 이러한 신호는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특히 취향 개발에 힘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겐 굴러들어온 기회다. 내 경우엔 그 신호를 받아들인 결과가 늘 취향 개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충분히 개발된 취향 내부에선 기호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받아든 기호가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나의 ‘좋은 물건 고르는 법’이 좀 더 개선될 것 같다. ‘비싼 건 이유가 있다’를 넘어 그 이유를 더 구체화해 나가는 계기로 삼으면 될까? 이건 이래서 비싸고, 저건 저래서 비싸다는 것을 찾아보고 알게 된다. 더 나아가 스스로 정의도 해보고 납득도 해보면 어떨까. 적어도 나 자신이 만족하면서 낭비처럼 보이지도 않는 건강한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실 물건의 품질이 얼마나 좋은지, 그에 합당한 가격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 과장 좀 보태면 현대 미술에 감동할 능력을 가진 사람만큼 희귀할 테다. 한편으로는 억울하다. 현대 미술이야 애초에 접할 기회조차 없었으니 아쉬운 마음도 안 든다. 물건은? 일평생을 사고 쓰고 버리며 지내왔는데 우리는 여전히 쇼핑에서 적잖은 실패를 경험하니까. 하지만 박찬용 에디터의 책 <좋은 물건 고르는 법>은 바로 이런 생각을 고쳐먹게 해준다. 사실 우리는 현대 미술을 접하지 않은 만큼 제대로 된 쇼핑을 해본 적이 없다고 일러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른바 현명한 소비 생활이란 스스로 소비와 물건에 대한 문답을 지속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둘러싼 복잡한 질문 사이에서 답을 내야 하는 사람은, 아울러 물건 사이에서 이런 질문을 만들어 나름의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은, 여러분 자신이다. 그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산다면 평생 각종 마케팅용 신화와 마케팅 이벤트에 파묻힌 채, 자신이 파묻혀 있는 줄도 모르고 소비자본주의의 부품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미 그렇게 체제의 잠재 부품으로 살아가고 있을 테고. - 박찬용, <좋은 물건 고르는 법>
병연
하방 저지와 디스리스펙: 맨스티어 디스전의 의미
코미디 크리에이터 ‘뷰티풀너드’는 얼떨결에 한국 힙합의 거대한 전환을 이끌어낸 장본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뷰티풀너드는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 소속 크리에이터다. 2명의 멤버(최제우, 전경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현재 힙합과 래퍼를 소재로 한 페이크다큐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그룹 ‘맨스티어’의 멤버(케이셉 라마, 포이즌 머쉬룸) 역할로 출연 중이다. 단순히 콘텐츠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힙합 음원을 발매하고 라이브 공연도 하니 일종의 ‘부캐’인 셈. 맨스티어는 ‘일반 대중이 느끼는 한국 래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화신이다. 이 캐릭터를 통해 묘사되는 질 낮은 말투와 행동, 알맹이 없는 가사, 각종 사회적 물의 등 사례별로 그에 해당하는 래퍼들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댓글창이 공감에서 비롯된 웃음으로 가득한 이유다. 사실 한국 래퍼의 부정적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수요는 이미 존재했다. ‘쇼미더머니’ 무대에서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며 광역 도발을 시전한 이찬혁이나 뽀글머리에 꿀벌 같은 옷을 입고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라고 내뱉는 고등학생 김하온이 반향을 일으켰던 것만 봐도 그렇다. 뷰티풀너드는 그러한 수요를 풍자로써 충족시킨 것이다. 세계관 기반의 캐릭터쇼로 서사까지 착실하게 쌓아갔다. 게다가 맨스티어의 랩 실력과 곡 수준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중이 반응했다. 지난 2월 말 선보인 ‘AK47’의 뮤직비디오는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조회 수 1000만에 다가섰다. 그야말로 대박 음원. 적지 않은 래퍼들도 이들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맨스티어는 클럽에서 직접 공연을 했으며 최근엔 힙합플레이야페스티벌 무대에도 서며 라이브 실력을 증명했다. 그렇게 그들은 ‘국힙을 정리’ 해버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맨스티어는 일종의 하방 저지선이 됐다. 한국 래퍼들은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싶지 않다면 ‘최소한’ 맨스티어만큼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최소한’ 맨스티어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야 했다(물론 ‘훌륭한’의 기준은 흥행 여부가 아니다.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한다는 뜻이다). 스스로에게 맨스티어의 말투, 행동, 태도 같은 것들이 묻어나지 않는지 검열해야 했다. 모든 게 다 뛰어난 기획력을 가진 코미디언이 의도한 결과일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개인적으로는 ‘아니다’에 한 표).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 버렸다. 문제는 풍자를 기반으로 한 하방 저지는 당사자 의도와 상관없이, 특히 대중의 반응을 얻을 경우에는 디스리스펙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풍자 자체가 타인의 결점이나 현실의 부정적인 면모를 꼬집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조롱의 근거로 소모하는 이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뷰티풀너드의 풍자가 영원히 선을 넘지 않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pH-1이 맨스티어 디스곡 ‘BEAUTIFUL’을 통해 짚은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내 식대로 해석하면, “너희들의 콘텐츠는 충분히 재밌고 나 또한 좋아했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 지금 이게 진짜로 너희들이 바랐던 상황인가? 크리에이터라면 자신의 콘텐츠가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풍자가 존중을 잃으면 조롱밖에 남지 않는다는 거 잘 알잖아. 우리도 고민이 많으니 같이 생각해보자.” 이를 두고 ‘긁’이라고 한다면, 맞다. 긁힌 거. 하지만 그건 필연적인 결과다. 원래 특정 집단에 덧씌워진 멸칭은 대개 그것으로 묘사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타격하기 마련이다. 맨스티어에게 ‘긁힌’ 또 다른 래퍼, 이센스가 이해되는 이유다. 물론 그가 쏟아낸 모든 발언을 긍정하긴 어렵다. 다만 “진지하게 하는 사람 기분 개좆같게” 만드는 행태를 더는 참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이라는 사실만큼은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