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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적 일상
Essay
병연
내 방 안의 세계
부모님의 일터인 꽃집이 가족의 생활공간을 감싸 안은 구조의 비닐하우스가 우리집이었다. 계절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실내온도와 더위를 많이 타는 내겐 살짝 답답한 공기, 뒤섞인 꽃향기와 초록으로 빽빽한 풍경 사이에서 자랐다. 비닐하우스 내부에서는 빗소리가 실제보다 증폭되어 들린다. 빗방울이 천장을 두드리면 그 진동이 비닐을 타고 집 전체로 흐른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거대한 타악기 안에 들어앉은 기분이 되곤 했다. 그 집에서는 눈 쌓이는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렸다. 도시가 잠든 밤에 함박눈이 쏟아지면 창을 열고 가만히 귀기울여 보시길. 과일 껍질을 벗길 때의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최소 볼륨으로 낮추면 비슷할까? 홀로 깨어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소리란 곧 존재를 뜻하기 때문에. 싸락싸락. 비닐하우스에서는 바로 그 소리를 꽤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눈이 오는 날이면 어린 나는 소파에 홀로 누워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 시간을 보냈다. 문보영 시인은 종종 자기 방의 평면도를 그려놓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다. 각 공간에 번호를 매긴 다음 “⓵에서 ⓶로 이동하며 ~라고 생각했다"라고 적는 식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침대에서 책상으로 가는 것이 꼭 달 표면에 내딛은 인류의 첫발만큼 위대한 도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이 벌어지는지. 시인의 독특한 시선은 한정된 크기의 방을 애정으로 꼼꼼하게 살펴온 결과 같다. 그래서 어느 날 내 방도 그려봤다. 마침 주말 오후를 몽땅 쏟아 부어 바꾼 방 구조가 퍽 마음에 들던 참이었다. 나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는 데 관심이 많은데, 아마 동생과 함께 방을 쓰며 자란 환경 탓인 듯하다. 대학생 때도 늘 룸메가 있었기 때문에 '혼자만의 공간'은 누린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치다. 그마저도 대개 좁은 원룸이었다. 취향은커녕 반드시 있어야 할 것도 겨우 채워 넣는 곳. 보통은 주어진 조건에 나를 맞추곤 했다. 여전히 나는 삶의 여러 조건보다 작고 나약하다. 눈오는 소리에 귀기울이던 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을까?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내 영역을 확보하는 데에 좀 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재와 침실과 옷방을 따로 가지진 못했지만 어떻게든 나눠 놓은 방 한 칸에 충분히 만족한다. 그 사이를 오갈 때면 우주왕복은 아니지만 출퇴근 정도 느낌은 든다. 방 안에 여러 세계를 들여놓았다는 점에서 시인과 비슷하다고 우기면 억지스러운 일일까?
병연
신은 재능을 앗아가지 않는다
스스로의 재능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이때 판단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내려야 한다. 이것이 내 재능인가? 맞다면 그 크기는 나의 다른 능력 혹은 남의 같은 능력과 비교해서 얼마나 되는가? 그렇다면 이 재능은 무엇으로 바꿀 수 있는가? 가령 돈이 되는가? 그것은 내게 얼마나 가치를 갖는가? 한 시절을 걸어볼 정도인가?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지. 그랬다면 세상에는 자기 재능을 활용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았을 것이다. 보통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부담스럽게 느낀다. 망할까봐? 아니. 이도 저도 아닐까봐. 예를 들어 재능에 관해 우리는 혹시라도 애매한 재능의 저주에 빠져 평생을 낭비하면 어쩌나 걱정한다. 그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한 시절을 걸지 않았다고 신이 재능을 앗아가진 않는다. 보통 개인기 정도로 남으니까. 그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방법은 없다. 추측은 가능할지 모른다. 어떻게? 개인기로 남은 재능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으로 미뤄보면 어떨까. 미련이 남아 현재의 발목을 자꾸 잡는다면…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게 내 의견이다. 재능은 가지각색이고 그걸 알아차리는 시기도 천차만별이다. 내 경우엔 취업 준비를 하며 알았다. 남의 자소서를 잘 고쳐준다는 사실을. 단순히 잘한 게 아니다. 재능이란 별도의 예열 없이 곧바로 집중할 수 있는 것, 엄청난 노력 없이도 남보다 그럭저럭 나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효율이 좋은 것이다. 남의 자소서 고쳐주기. 내겐 그게 그랬다. 함께 취업 준비를 하던 멤버들끼리 자소서를 봐준 게 계기였다. 당시 나는 기자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논술 및 작문 시험이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지는 직무라 그런지 자소서 자체가 일종의 글쓰기 시험 같았다. 그래서 공채 시즌이 되면 자소서 스터디를 별도로 꾸렸다. 똑같은 글쓰기 스터디지만 나는 그때가 분명 더 즐거웠다. 왜 즐거웠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특정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로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자소서는 목적이 명확한 글이다. 지원하는 회사가 밝히고 있는 인재상을 기준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줘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능력이나 경험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다. 장황하게 풀어놓은 이야기를 각 문항에서 요구하는 내용에 맞게 정렬시키는 일이 재밌었다. 게다가 자소서에 쓰는 이야기는 평소에 많은 대화를 하는 사이라도 몰랐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내가 손대기 전과 달리 문답의 합이 부드럽게 맞아들어가 보이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음…일종의 성취감. 다른 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물론 결과도 따라줬다. 지인들에게 아이디어를 주거나 첨삭을 해줬는데 효과가 좋았다. 합격률이 올라간 것은 물론 다른 회사 지원서를 쓸 때 활용할 원소스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게 후기(?)의 공통적인 내용이었다. 기업과 직무를 가리지 않았다. 가릴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저 조금 내밀할 수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기자보다 도서편집자가 적성에 더 맞았던 게 아닐까. 물론 기자 또한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직업이지만 결국 자신이 나서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내 자소서에 ‘서포터 역할을 좋아하고 잘 맞는다’고 자주 썼는데,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썼던 거 아닌가 싶다. 거참.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웃긴 건 정작 나는 기자도 못 됐다. 겨우 일은 시작했지만 여러번 이직했다. 세 번째 퇴사를 할 쯤 얼기설기 엮인 내 커리어를 보면서 이거 참 걸레짝이 따로 없구나, 나는 망했구나 싶었다. 진지하게 숨고나 크몽에서 자소서 첨삭 일을 시작해 차차 사업화해 나가볼까 생각했다. 이 글의 첫 문단에 나열했던 질문들을 치열하게 던졌다. 그때 시작했다면 이 글은 내 서비스를 홍보하면 마무리지었겠지. 나는 내 재능이 애매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질문들에는 “그럭저럭…”이라며 넘어갈 수 있었는데 ‘한 시절을 걸어볼 정도인가?’라는 질문에는 그게 안 됐다. 그렇다면 결국 앞의 질문들에 대한 답 또한 확실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그걸 개인기 정도로 남기기로 했다.
병연
획기적인 브루잉커피
무언가에 대한 인식폭이 외부 자극에 의해 별안간 확장될 때가 있다. 사소한 순간이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세계다. ‘획기적’이라는 말은 그럴 때 쓴다. 고수를 즐기기 시작한 건 제주시청 인근 레스토랑 도브 다이브에서 광어 셰비체를 맛봤을 때부터다. 당시만 해도 내게 고수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굳이 추가하지 않는 식재료였다. 광어 셰비체에는 기본적으로 고수가 들어가므로 혼자였으면 별 생각없이 먹었을 테지만 고수를 먹지 않는 해린이와 함께였기 때문에 빼달라고 요청했다. 사장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럼 고수를 따로 덜어드릴 테니 맛이라도 보시겠어요? 그게 이 메뉴의 킥이라서 절대 못드시는 게 아니라면 한 번 쯤 드셔보셔도 좋을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굳이 됐다고 할 이유도 없었고 사장님의 표정과 말투에 진정성이 느껴져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로 내 세계는 달라졌다. 획기적이었다. 제주공항 근처에 위치한 카페 그린루스카에서 마신 브루잉커피(콜롬비아 산 라파엘 워터멜론)도 그런 경험이었다. 사실 나는 커피 문외한이라 보통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기본이 보장하는 만족도의 최저선에 안주하는 편이다. 어쩌다 한 번 브루잉커피를 마실 때면 커핑 노트를 유심히 읽는다. 음. 이 맛이 이런 맛이라고? 봐도 모른다. 봐도 모르겠으니 굳이 몇 천 원 더 주고 마실 이유가 없다. 그러니 또메리카노, 또메리카노. 그런데 그린루스카에서 왜 브루잉커피를 시켰더라? 아메리카노가 메뉴에 없었던 것 같다(정확하진 않음). 커피는 잘 모르고 굳이 고르자면 산미가 있는 걸 고르는 편이라고 하니 원두를 세 개 추천해 주셨다. 맛 설명 부분을 천천히 살펴봤다. 눈에 들어온 게 ‘콜롬비아 산 라파엘 워터멜론’이다. ‘수박, 수박, 수박, 메로나’라는 설명이 흥미로웠다. 그 조합은 물론 수박이 세 번 연속 나오는 게 웃겼다(정해진 작성법에 따른 것이겠지만…). 자리에서 카페 인스타그램을 훑다보니 사장님이 커피를 가져다 주셨다. 뭐라 설명해 주셨으나 기억은 안 난다. 고개는 열심히 끄덕였다. 수박, 수박, 수박, 메로나. 이렇게 정확한 설명이라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리스타가 의도한 커피 맛을 그대로 느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날의 원두 상태와 브루잉 방식과 나의 피로도 또는 포만감 같은 것들이 잘 조합된 결과일 테지만, 결과적으로 그 경우의 수를 뚫어냈다. 딴 게 중요한가. 그거면 된 거지. 감동적이었다. 나도 커피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획기적이었다. 앞으로 나는 브루잉커피에 좀 더 도전해보는 사람이 되겠구나. 그러고 보면 몇 번 경험한 뒤 ‘이건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결론 내리고 마음 속 창고 안에 처박아둔 것들이 얼마나 많았나. 그 중에 우연한 계기로 나를 사로잡을 것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시 한번 들춰볼 수 있도록 창고 문을 단단히 잠가두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브 다이브의 광어 셰비체와 그린루스카의 콜롬비아 산 라파엘 워터멜론이 준 교훈이다. 나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 보답으로 드릴 게 “정말 잘 먹었(마셨)습니다”라는 인사뿐이었다. 이 글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고. 덧) 그린루스카라는 상호는 그린과 루스카를 붙여 만들었다. 그린은 사장님이 좋아하는 초록색. 루스카는 빈티지 잔으로 유명한 아라비아핀란드의 초기모델 중 하나로 핀란드어로 가을(낙엽, 단풍, 갈색 등등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테리어 톤을 그린&브라운으로 잡으셨다고. 그런데 우리가 앉았던 러그가 미처 가리지 못한 바닥에는 보라돌이가 빼꼼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쪽에는 나나와 뚜비가 보였다. 감각적인 인테리어 사이에 튀어나온 예전 공간의 흔적에 웃음이 나왔다. 한정적인 예산은 오래된 건물이 품고 있는 과거의 흔적과 그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지고자 노력한 현재 사이를 이어준다. 그건 또 그거대로 썩 나쁘지 않은 듯하다.
병연
순식간에 지나가는 7-8월의 독서
매해 7-8월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마음의 준비를 빡세게 하기 때문이다. 더위에 취약한 내게 이 기간은 약간 과장해서 ‘버리는 시간’이다. 늘 그랬다. 이 시기의 나는 모든 면에서 무력하다. 원래 놓는 게 어려운 법. 버리기로 결정만 하면 사라지는 건 금방이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자산인 시간을 버리는 게 올바른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뭘 좀 많이 했다. 평소처럼 순식간에 지나갔길래 이번에도 헤롱거리며 보냈겠지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때보다 이벤트가 많았던 것이다. 제주도도 다녀왔고 가족 여행도 다녀왔고 평소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여럿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이사한 집 곳곳을 채우기 위해 쇼핑도 자주 하고 동네 맛집도 여럿 뚫었다. 책도 많이 읽었다. 무려 6권! 물론 SNS 돌아다니면 발에 차이는 게 1년에 100권은 너끈히 읽어내는 사람들인 시대에 이게 많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책 읽는 속도가 거북이 뺨칠 만큼 느린 탓에 100권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숫자다. 보통 한 달에 2~3권 정도 읽긴 한다. 그래도 이번엔 두꺼운 책도 있으니 많다고 해도 문제 없겠지. 그래서 무슨 책을 읽었냐면…사실 지금 주절주절 쓰기 시작한 이유도 이 책들 소개하고 싶어서다. 7-8월에 읽은 책이 모두 다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추천한다. 📚월터 아이작슨 <일론 머스크> 누구의 인생이든 편집을 거치면 나름대로 힘있는 이야기가 되지만, 일론 머스크는 대체 몇 명 분의 삶을 살고 있는 건가. 얼마 전 나영석 PD가 일론 머스크를 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최고 부자가 최고 셀럽’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런 면에서 그가 어떻게 부자(셀럽)가 됐는지 알아보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충분히 유의미하다. 📚사이먼 쿠퍼 <옥스퍼드 초엘리트> 명확한 문제의식과 고유의 관점, 탄탄한 취재, 잘 훈련된 저널리스트의 문장이라는 조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다. 영국 상류층이 성장하는 정치적 환경을 풍부한 사례로 풀어냈다. 그들에겐 브렉시트가 매우 자연스러운 결론이었고, 그건 영국 사회나 시민들과 전혀 관계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탄탄한 논증. 📚사이먼 쿠퍼 <바르사> FC바르셀로나(바르사)에 대한 이야기. 스포츠 팀은 연고지와 강한 관계성을 갖기 마련인데 바르사는 그 극단의 사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축구보다 넓은 범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펩 과르디올라가 메시,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를 만난 덕분에 감독 커리어를 화려하게 시작했다고 생각하시는지? 글쎄, 이 책이 주장하는 건 정확히 그 반대다. 📚김초엽 <아무튼, SF게임> 어디선가 게임을 ‘매체’로 보는 관점에 대해 접했었다. 그때는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나는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조금 이해가 됐다. 매체가 세계를 바라보는 창 혹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게임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매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전공 과목으로 게임 커뮤니케이션이 있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야망계급론> 대학교에서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배웠다. 나는 그걸 이렇게 이해했다. 같은 학교(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동류라고 여겼던 사람이라도 하교(퇴근) 혹은 졸업(퇴사) 후에 ‘돌아가는 곳’에서는 제각기 다른 일상을 보낸다. 바로 그 차이를 만드는 게 아비투스. 이 책은 그 다음 단계 논의다. 요즘 갓생러들의 SNS를 맥락적으로 읽어내는 근육을 얻을 수 있다. 📚더그 복 클락 <마지막 고래잡이>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라말레라 부족 이야기. 새 시대가 오면 구 시대는 그저 물러나야만 할까? 한 시대의 중심 집단은 그 시대의 모든 것을 지배해도 될까? 인류가 존속되는 한 지루하게 반복될 이야기일 테다. 책을 읽으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의 그물이 어디까지 뻗쳐 나갈지 기대된다. 최대한 뻗쳐 내겠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병연
하자 있는 소파
우리집엔 TV가 없다. 앞으로도 들일 계획이 없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빔프로젝터로 이미 충분하다. TV가 없으면 거실 인테리어 자유도가 극적으로 높아진다. 동선에 대한 제한이 대부분 사라지고 전기 콘센트도 여러 개를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에이, 그래도…’하는 의무감에 TV를 놨다면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TV-탁자-소파’로 귀결되는 K-거실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TV 없는 거실이 가능하게 한 선택 중 하나가 바로 1인용 소파다. 우리집은 2인 가구이므로 1인용 소파 2개를 놓기로 했다. 물론 2~3인용 소파 1개와 1인용 소파 1개를 배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집 거실은 그렇게 넓지 않다. 긴 소파를 놓는 순간 기껏 올려놓은 인테리어 자유도가 상당히 낮아진다. TV 없는 거실에서는 굳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없으니 각 소파를 어울리는 자리에 적당하게 비틀어서 놓아도 된다. 때로는 같은 쪽을 바라보지 않아도,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관계. 요즘 나는 그런 관계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다. 그렇게 구매한 소파가 드비저리(de Bejarry)의 마드리드 라운지 체어 X 오토만 세트와 히어퍼니처의 HFS-72다. 먼저 사기로 결정한 건 드비저리 마드리드 라운지 체어 X 오토만 세트다. 29CM에서 처음 봤고 서울시 성수동 소재 편집샵 TTRS에서 실물을 확인했다. 예뻤다. 그리고 편했다. 안 살 이유가 없었다. 다만 거의 눕다시피 할 수 있는 선베드가 떠오르는 외형을 가진데다 오토만과 사이드 테이블까지 샀기 때문에 전체 부피가 꽤 된다. 자칫 잘못하면 긴 소파를 놓는 것만큼 자유도가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빅&스몰 조합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불균일성에서 비롯되는 리듬감이 거실에 깃들길 바라면서. 스몰에 해당하는 제품이 히어퍼니처의 HFS-72다. (여기서 잠깐. 종속변수에 해당하는 HFS-72의 사진을 쓴 이유가 궁금하신 분도 계실 테다. 간단하다. 드비저리 세트는 품절로 인해 2개월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방금 전 문장이 과거형이 아닌 것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매 당시 가격은 29CM VIP 쿠폰을 먹여 약 100만원 정도. 월요일에 결제했는데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의 직원은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로 해당 제품은 금요일에 출고돼 토요일 쯤 도착할 거라고 알려줬다. 가구 배송이야 원래 며칠 걸리는 법이니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렇게 연락까지 주시다니 참 친절한 업체라고 생각했다(알고 보니 상품 페이지에는 3일 이내 출고라고 적혀 있었다). 소파는 그 다음 주 화요일에 왔다. 다소 아쉬웠지만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벨소리를 듣고 문을 여니 그 앞에 거대한 박스가 놓여 있었고 낑낑대며 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보통 가구는 집 안까지 넣어주시지 않나? ‘보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조심스럽지만 지금껏 가구를 구매하면 기사님이 집 안에 넣어주시고 박스 등 포장재는 회수해 가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반 택배 배송처럼 온 것이다. 거실에 날리는 먼지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 때문인지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런 걸로 컴플레인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소비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업체 직원에게 짜증을 전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품에 약간 하자가 있었다. 소파를 지탱하는 부품이 파손된 것이다. 그로 인해 평형이 맞지 않아 앉은 채로 몸을 기울이면 소파도 함께 기울며 흔들렸다. 명백한 컴플레인 사유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거대한 박스를 해체하고 스티로폼을 비롯한 다량의 포장재를 분리수거 하고 온 참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힘이 빠진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불만을 전하는 것도 상당한 힘이 드는 일이다. 내겐 그 힘이 부족했다. 교환 또는 반품 절차를 떠올리는 것조차 번거로웠다. 게다가 이 부분만 제외하면 디자인 등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든 상태였다. 혹시 러그 위에 두면 괜찮지 않을까? 괜찮았다. 살짝 거슬리긴 했으나 애써 눈을 흐리게 뜨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이 그처럼 약간의 하자를 안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들은 고이 품고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추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애인에게 혼났다. 바보도 아니고 이걸 왜 그냥 쓰냐고.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애인은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어쩜 이렇게 나와 생각하는 것도 비슷할까. 하지만 애인은 나와 다른 부분도 많은 사람이다. 막 퇴근한 참이라 지친 상태일 텐데도 아닌 건 아니라고 바로 말하는 것이다. “당장 고객센터에 문의 남겨” 나는 그렇게 했다. 밤 10시가 넘었기에 지금 올려봤자 29CM와 히어퍼니처 직원 누구도 당장 확인하진 않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애인이 시키는 대로 당장 문의를 남겼다. 사진도 2장 첨부해서. 다음 날 오후에 전화가 왔다. 앞서 출고 일정을 알려준 직원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자신을 대표라고 소개했다. 어이쿠. 대표님이 직접 전화를 주시다니. 그럴 것까진 없는데. 말씀하시는 내용을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했다. 해당 제품은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데 내가 받은 제품이 마지막 재고였으며 일부 부품만 교체하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교환을 받으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듯하니 반품으로 처리를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교환을 택하기는 어려웠다. 그걸 되돌려 보내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고 이미 드비저리 세트를 좀 기다려서 받기로 했기 때문에 추가로 뭘 더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꺼려졌다. 그럼 반품…? 하이고. 또 한참을 소파 찾느라 고생하겠구만.
병연
순두부찌개의 추억
할머니의 분식집은 시립도서관 후문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날 할머니는 오랜만에 집에 온 딸과 손자들을 맞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저녁 장사를 마감했다. 8시가 좀 안된 시간, 바닥 청소까지 마친 다음 설거지 거리를 정리하고 행주 따위를 널며 뒷정리를 끝내 갈 무렵이었다. 책가방을 멘 학생 하나가 2단 우산을 접으며 가게로 들어왔다. ​ "저희 영업 끝났어요~" ​ 수저통을 정리하던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벙찐 표정의 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어린 눈에도 보이는 듯했다. 그 눈은 틀림없이 '어라? 이 시간에 닫은 적 없었는데...?'하며 상황을 파악하는 눈이었다.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은 것 같았으나 이내 등을 돌려 나가려는 학생을 붙잡은 건 주방을 정리하고 나온 할머니였다. “아유, 아니에요. 주문해요. 뭐 줄까?” ​ 엄마는 '엄마도 참 못 말린다'는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봤지만, 할머니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애매하게 선 채 벙찐 표정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뀐 학생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순두부 찌개를 주문했다. 우리 할머니 분식집의 메뉴판 왼쪽 가장 위에 있는 메뉴였다. 식당의 주력 상품임을 뜻하는 지정학적 위치. ​ 잠시 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순두부 찌개와 몇 가지 반찬이 식탁 위에 올라갔다. 단어장인지 소설인지 모를 책을 조용히 읽던 학생은 그보다 더 조용하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달그락달그락 후루룩 하는 소리가 바깥의 빗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아주 어린 시절이지만 지금까지 선명한 장면. 내게 그 날은 가족들과 외식으로 먹은 메뉴가 아닌 그 학생이 먹던 순두부 찌개로 남아 있다. ​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을 때 순두부 찌개라고 대답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굳이 그 날의 일까지 꺼낼 필요도 없다. 할머니의 주력 상품이었던 만큼 엄마는 순두부 찌개를 좋아했고, 엄마 역시 할머니처럼 순두부 찌개를 맛있게 끓였다. 당연히 나도 순두부 찌개를 잘 먹었다. 심지어 수능 때 보온병에 꽉 채워 담아간 점심 도시락 메뉴도 순두부 찌개였다. ​ 독립해 나온 지금, 가끔 집에 갈 때면 엄마는 매 끼니 진수성찬을 차려낸다. 냉장고를 각종 요리 재료로 가득 채워 놓고도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집을 떠나기 전 날 밤까지 묻는다. 준비한 재료를 기어이 소진하고 나서도 양 손에 들려 보낼 김치나 장조림 같은 반찬까지 착착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내가 집을 떠나는 날 아침 메뉴는 늘 고정돼 있다. 순두부 찌개다. ​ 순두부와 계란을 같은 비율로 풀고 팽이버섯을 잔뜩 넣은, 얼큰함과 담백함의 대타협을 통해 맵지 않게 끓여낸 순두부 찌개. 자박자박한 국물을 조금씩 떠 먹다가 밥 위에 한 숟갈 크게 얹어 슥슥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인 순두부 찌개. 보들보들하면서도 함께 섞인 밥알 사이사이 공간을 채워서 씹는 듯 씹지 않는 듯 묘한 식감을 선사하는 순두부 찌개. ​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음식 하는 걸 좀 더 많이 배웠어야 했는데, 순두부 찌개도 그렇고.” ​ 순두부 찌개를 먹는 나를 보며 엄마는 매번 같은 말을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엄마의 순두부 찌개도 분에 넘치게 맛있다. 하지만 정작 엄마 성에는 아직도 안 차나보다. 어릴 때부터 먹던 그 맛이 안 나서 그런 거겠지. 다만 어릴 때부터 먹어온 것이 엄마의 순두부 찌개인 나로서는 그 맛의 반의 반이라도 재현하는 밀키트가 세상에 나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순두부 찌개를 먹을 때면 그 날이 떠오른다. 공부하느라 고생한 학생을 그냥 보낼 수 없었던 할머니의 마음과 그런 할머니를 이해하면서도 답답해 하던 엄마의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꼭 지금의 엄마와 나를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순두부 찌개를 좋아하는 건 단순히 집안 내력이 아니다. 입맛의 대물림은 결국 나와 엄마, 할머니의 마음이 이어져 있다는 징표가 아닐까.
병연
내 속도를 지키는 일
인천에서 서울로 출근하고 서울에서 인천으로 퇴근했으므로 하루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해를 바라보며 달렸다. 아침에는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저녁에는 저무는 해를 뒤쫓았다. 그날의 일정을 체크하느라 정신없는 아침과 달리 저녁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이 된다. 모든 것을 '콘텐츠'라 부르며 '인풋'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직장인이지만, 퇴근길 지하철에서만큼은 비생산적이고 의미 없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듯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을 지난 열차는 지상으로 나온다. 오른쪽 창밖에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들을 물끄러미 응시하곤 했다. 어둑해진 하늘과 먼 거리로 인해 차종을 확인하긴 어렵다. 다만 그것들은 둘로 나뉜다. 지하철보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느린 차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달리는 빠른 차는 마치 영화 주인공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점에서 둘은 다르지 않았다. 내 속도를 지키는 일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동반한다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갈 준비가 된 것이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어쨌든 하나의 트랙 위에서 함께하고 있는 이들을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는 듯한 마음. 적정 속도는커녕 현재 속도조차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가보려고 한다. 지치면 좀 쉬기도 하면서. 마지막에 멈추는 바로 거기까지가 나의 세계겠지.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역시 혼자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싶다.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가까운 듯 먼 듯, 같이 가는 듯 따로 가는 듯 움직이는 반경 몇 미터 안의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멈추지 않게 해준다. 그러고 보니 한때는 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같은 경험을 사이좋게 나눠가졌던 사람들. 그때의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 나만큼 멀리 왔을까.
병연
닭다리가 먼저냐, 가슴살이 먼저냐
치킨을 먹을 때면 두뇌가 풀가동된다. 어느 부위를 먹고, 어느 부위를 남길지 고민하느라 바쁘다. 1인 1닭이 안 되는 1인 가구라면 피할 수 없는 선택. 고려해야 할 변수는 두 가지다. 부위별 고유의 맛과 상태에 따른 맛. 예를 들면 나는 목과 다리를 좋아한다. 방금 튀겨 따뜻하고 부드러운 상태는 물론 완전히 식은 뒤 대충 데워 놓은 상태라도 꽤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퍽퍽살은 남길 경우 대부분 버린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치킨 한 마리를 두 끼에 걸쳐 온전히 즐기기 위해 좋아하는 부위를 남겨야 할까? 퍽퍽살을 버리고 한 끼만 먹더라도 최상의 부위를 최상의 상태로 먹어야 할까? ​ 순살을 시키면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 맞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순살을 잘 먹지 않는다. 일정한 수준의 맛을 식사 내내 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지만 어쩐지 그건 안정적이라는 느낌보다 밋밋함으로 다가온다. 부위마다 제각각인 뼈 치킨이 굽이치고 휘감기는 강이라면 순살 치킨은 직강 공사로 쭉 뻗은 형태를 갖춘 강이라고 할까. 거기엔 어떤 기승전결이나 희로애락도 없다. 그저 먹는 경험을 매끈하게 통과해낼 뿐이다. 좀 더 의미부여 해볼까. 순탄하게 흐르는 삶보다는 기쁨과 슬픔, 사랑과 이별이 반복되는 삶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마음이 나로 하여금 순살 치킨이 아닌 뼈 치킨을 고르게 한다. ​ 그러고 보면 우린 항상 현재와 미래를 저울질한다. 크고 작은 선택들이 가져올 결과를 가늠하며 삶을 ‘계획’한다. 하지만 이제껏 경험한 바에 의하면 계획을 세우는 속도보다 그것이 무너지는 속도가 언제나 더 빨랐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획을 세워 모든 계획이 물거품 되는 상황만큼은 막아보자는 자조적 농담도 수시로 던졌다. 20대의 미숙한 경험과 통찰에서 비롯되는 계획은 대부분 이뤄질 수 없기에 완벽하게 쓰레기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는데, 내 생각엔 이 또한 미숙한 통찰이다. 왜냐면 우리 엄마만 하더라도 쉰이 될 때까지 이뤄지지 않을 계획 세우기를 반복했다고 하셨으니까. ​ 존 레논이 그랬다지. 삶이란 다른 계획을 세우는 동안에 일어난다고. 이런 이야기를 사랑한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 누구보다 계획적으로 살았던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통찰. 존 레논조차 자기 뜻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의 여러 계획이 무너지는 상황에 한줄기 위로가 된다. 잊지 말아야 한다. 계획은 삶의 일부여야 한다는 사실을. 삶이 계획에 빨려 들어가면 곤란하다. 그러니까 치킨 먹을 때 고민 좀 줄여야지. 맛있는 부위는 오늘 먹어야지. 맛없는 부위는 볶음밥으로 먹든 어떻게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조금만 덜 게을러지는 것으로 계획 저편의 삶을 채워가야겠다.
병연
삼총사는 없다
유딩 때는 어쩐지 친구들이 좀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마 빠른 년생을 향한 갖은 구박과 핍박에 시달리며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똑같이 여서 일곱 살에 불과한 애들이 시도 때도 없이 형, 누나라고 부르라며 약을 올리니 열이 받아, 안 받아? 아, 진짜 유치하게 왜 저래. 물론 유딩이 유치한 걸 이상하게 여길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거의 확실할 것이다) 유치원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파랑반 선생님이 제일 친한 친구였다. ​ 그나마 어울렸던 친구가 둘 있다. 걔들과는 주로 ‘지구용사 벡터맨’ 놀이를 했다. 유치원 뒷마당에서 우리는 영웅처럼 활약했다. 난 ‘벡터맨 베어’를 맡았다. 사실 난 베어를 별로 안 좋아했다. 변신 전 베어의 꼬불머리가 되게 별로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세 번째로 소개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대장이나 다름없는 ‘벡터맨 타이거’나 2인자 특유의 멋짐이 폭발하는 ‘벡터맨 이글’을 좋아했지만, 그건 다른 둘의 역할이었다. 은근히 짜증났다. 어린이에게 삼총사 중 3번이란 화룡점정보단 쫄병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 십 년쯤 지나 중딩이 됐지만 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다. 뚱뚱해서 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딱히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쯤 ‘캬캬캬’ 하고 웃어 넘길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스펀지밥 ‘뚱이’인 이유도 그 별명 때문이다. 어쨌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 교실, 저 교실 쏘다니며 다른 반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다. 보지 않아도 안다. 생활기록부엔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교우관계가 원만함.” 내 사춘기는 어쩌면 유딩 때 왔다 간 게 아닐까 싶다. ​ 그러던 어느 날 시험 공부를 하러 갔던 시립 도서관에서 우연히 타이거와 이글을 만났다. 우리는 유치원을 졸업하며 각기 다른 초등학교로 진학했고 당연히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타이거와 이글은 같은 중학교에 배정 받았다. 6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함께 시험 공부를 (핑계로 밤 늦게까지 놀러) 다닐 정도로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걔들은 반가워하며 내 핸드폰 번호를 받아갔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가끔 상상한다. 나도 타이거와 이글이 다녔던 중학교에 배정 받았다면 유년기의 우정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 관계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었을 만한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즐거움, 위로, 공감, 의지 같은 것들. 그런데 꼭 마지막에는 찝찝한 기분이 남았다. 나도 타이거나 이글 역할을 맡고 싶었지만 삼총사가 되려면 베어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쉬웠다. 나와 나머지 둘 사이의 은근한 거리감도. 그 관계는 오히려 아득한 유년기에만 머물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 그러니까 아무래도 셋은 좀 불안하다. 혼자는 확실히 외롭고 둘은 그보다 좀 덜 외롭지만 셋은 경우의 수를 갖기 때문이다. 온전히 셋으로 존재하거나, 셋 중 둘에 속하거나, 셋 중 하나에 속하거나. 온전한 셋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니까 패스. 먼저 셋 중 하나일 때를 보자. 이때는 확실히 외롭다. 혼자서 하나일 때보다 더 외롭다. 왜냐면 인간은 보통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 때문에 괴로워지니까.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그 모순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널리 쓰이는 이유가 있지. 셋 중 하나의 입장에서 나머지 둘을 볼 때 느껴지는 무력함을 아는지? ​ 셋 중 둘이 마냥 편하단 건 아니다. 그냥 둘이면 몰라도 셋 중 둘이 되면 나머지 하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신경 쓰지 않는 순간 그냥 둘이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와 론의 관계를 온전한 셋으로 보는 시각에 조심스레 반론을 제기한다. 셋 중 둘이 부부인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관계의 기울기에 따라 해리가 난처해질 수도 있고(누구 편을 들지?), 외로워질 수도 있다(그래도 지니가 있으니까). 자, 이제 당신도 ‘이러나 저러나 인간관계에 있어 셋이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숫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병연
서울과 엄마와 나
90년대 중반 어느 겨울, 서울에서 김천으로 가는 고속버스 한 대는 총 세 번 휴게소에 들렀다. "원래는 한 번만 쉬는 노선인데 네가 하도 찡얼대니까 기사님이 애기 바람 좀 쐬게 하라고 글쎄 세 번이나 쉬었지 뭐니." 엄마는 '정병연은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다'라는 주제가 대화에 오를 때면 언제나 이 얘기부터 꺼냈다. 그 다음에는 아마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를 대신 봐줬던 외할머니가 응급실에 입원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이어질 터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는 그 애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태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널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 "뭘요?" "넌 멀미도 심하고 더위를 많이 타잖아." "그쵸." "근데 엄마는 멀미는 안 하고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거든." "그것도 맞죠." "그래서 난 얘가 많이 추운가보다 싶어서 옷도 더 입히고 목도리도 둘러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 울길래 아직도 추운가 싶어서 모자도 씌우고 그랬지. 털모자로." "와. 진짜 끔찍하다."
병연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더 걱정하고 고민할래
“운전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어느 날,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운전하는 날 보고 이렇게 말했다. “별게 다 대단하대?”라며 웃어넘겼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면허를 따기 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처음 도로주행에 나섰을 때 손과 발을 극도의 긴장감이 휘감았었다. 운전을 해보지 않은 나에게, 운전석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면허를 따자마자 ‘뭐, 별거 아니네.’라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인생의 관문이란, 넘고 나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막상 그 앞에 섰을 땐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높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친구 A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취업 준비에 지친 A는 취준을 그만두고 카페에서 일하며 틈틈이 하고 싶었던 걸 하고, 배우고 싶었던 걸 배웠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이런 삶이 좋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무섭다고 말했다. 사는 것도 재밌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너무 좋은데, 그래서 불안하다고. 이것저것 하느라 한 주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지만, 영양가 없이 바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바쁨이 아닌 오직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한 바쁨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거라고 자신을 믿고 있을 부모님이 실망하시게 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자기는 지금 정말 괜찮은데,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그야말로 답도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왔단다. A의 고민을 듣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욜로(YOLO)!, 카르페디엠, 지금 네가 즐거운 거면 된 거야… 이런 말들을 위로로 건네면 될까. 평론가 황현산 역시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라고 했으니까. 오늘도 내 삶을 구성하는 하루인데, 내일을 빛내기 위해 불안한 오늘을 보내야 할 이유는 없지, 아무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란 보장도 없고. 그러니 현재를 즐기라고 말해주면 되려나.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건넬 수 없었다. A에겐 눈앞에 놓인 관문이 간단히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벽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마치 운전대 앞에서 한껏 긴장했던, 면허를 따기 전의 나처럼. 그러니 A가 맞닥뜨린 벽의 존재를 무시하고 “이것은 사실 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무책임하게 “현재를 즐겨!”라고 말할 수 없었던 거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벽 앞에 서서 A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자신의 삶에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데, 이런 고민과 걱정을 단순히 욜로 같은 말로 쓸 데 없는 취급해버릴 순 없었다. 삶을 온전히 감당하려는 인간이라면 불안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게 현재의 행복을 갉아먹을지라도 말이다. 이런 고민과 걱정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삶의 과정일 테다. 우리는 완벽하게 오늘만 살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관문 한 관문 통과할 때마다 내가 걱정하고 고민했던 것만큼 이 관문이 높은 벽은 아니었구나, 깨닫는 것뿐. 남들은 욜로라지만, 한 번 밖에 살지 않으니까 나는 좀 더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짜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감을 안고서.
병연
일할 때 '~하지 말 것' 리스트
일할 때 지키려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 그것들은 보통 ‘~하지 말 것’이라는 부정어 형태를 취한다. 왜냐면 그 기준을 넘겼다고 성과로 여기진 않기 때문이다. 취미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에게 풀코스 완주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프로 마라토너에겐 그렇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해냈다’며 소소한 성취감을 누리는 태도를 경계한다. 그런 기준은 대개 지적 당한 상황을 숙고한 끝에 만들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지적이 그처럼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지적 당하는 사람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지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주로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여러 고민과 생각을 하고 많은 경험을 쌓은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운좋게 주어지는 환경에 가깝다. 한때는 내가 잘하는 걸 대신 발견해 이끌어주는 리더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좋은 리더란 내가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세심히 살피고 피드백 주는 리더다. 의외로 본인은 그걸 알기 어렵다. 플러스를 만들어 주기보단 마이너스를 없애주는 사람. 그렇게 다진 기반 위에 경험과 실력을 쌓는 게 내 일이고 그게 소위 말하는 성장이었다. 피드백 수용성이 성장의 척도라고 한다면 나의 성장 곡선은 완만할 것이다. 스스로 보기에도 피드백 수용성이 높은 편은 아닌 듯하다. 좋게 말하면 내가 한 일에 대한 평가와 나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를 잘 나누어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남의 말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한 번 찔리면 깊숙이 찔린다. 그렇게 생성된 기준들이다. 퀄리티 챙기느라 데드라인 놓치지 말 것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첫 시간에 교수는 조를 이뤄서 간단한 글을 한 편 작성해 내라고 했다. 본 평가 때 빠진 점수를 보충할 수 있는 특별 점수를 걸었다. 우리 조가 어떤 글을 써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기억나는 사실은 완성되지 않은 글을 제출했다는 것과 시간 내에 제출한 팀이 우리뿐이었다는 것. "그거 몇 초, 몇 분 더한다고 눈에 띄게 퀄리티가 높아지지도 않는다. 여러분은 지금 납기 맞추는 것부터 익혀야 할 레벨이다."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퀄리티보다 데드라인. 당연히 둘 다 챙겨야겠지만 내겐 데드라인을 가장 중요했다. 물론 이런 저런 경험을 쌓으며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하고 나자 퀄리티를 챙기기 위해 의사결정권자와 데드라인을 ‘협의’하는 선택지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데드라인 내에 처리한다는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그렇게 일할 작정이다. 최소한 내가 의사결정권자가 돼 데드라인을 지정하는 역할을 맡을 때까지는 말이다. 메일을 메시지처럼 쓰지 말 것 섭외나 제안이 많은 업무 특성상 먼저 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답장을 못 받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때부터 온갖 불안과 자조에 휩싸인다. ‘내가 제안한 내용이 흥미를 돋구지 못 했나?’, ‘내용을 쉽게 풀지 않아서 읽다가 꺼버렸나?’,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가 별로였나?’ 등등등. “나라면 이렇게 안 보냈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듣거나 ‘메일 쓰는 법’을 다룬 책을 받았을 때의 절망감이란. 첫 직장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모든 불안과 자조가 업데이트의 동력이 됐다. 지금도 많은 메일을 뜯어본다. 형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어떻게 쓰는지, 인사는 어떻게 하며 수신자를 뭐라고 부르는지, 스몰토크는 어느 관계에서 하는지, 문단은 어디서 나눌지, 어떤 순서로 내용을 짤지, 마무리 인사는 뭐라고 할지, 심지어 ‘감사합니다.’와 ‘정병연 드림.’ 사이 한 줄을 띄울지. 메일은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 유일한 타깃의 액션을 못 끌어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받는 이에겐 그 메일이 단순 메시지가 아닌 나의 포트폴리오라는 생각을 늘 한다.
병연
중독적인 사랑 그리고 우정
“7년 이상 꾸준히 소식을 주고 받았다면 그 사이는 평생 갈 사이”라는 글을 읽은 건 스무 살 때였다. 아직 많은 사람이 싸이월드를 이용하던 시기이니 당시 감성에 충실한 글 중 하나였을 테다. 그때는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우선 7년이라는 쓸 데 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면서도 그걸 뒷받침하는 어떤 근거도 내놓지 않았다. 말 같지도 않은 내용을 해외 무슨 대학 저명한 연구진의 실험 결과랍시고 들이대는 뻔뻔함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십 년 남짓 산 내게 7년은 너무 길어 실감나지도 않는 시간이었다. 가장 오래된 친구라고 해봐야 고작 5, 6년인데. 의외로 그 문장은 오랫동안 내 주위를 맴돌았다. 심지어 지금은 살짝 믿기도 한다. 이제 내겐 7년 이상 꾸준히 소식을 주고 받은 사람들이 꽤 생긴 덕분일까. 심지어 스무 살 이후에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무려 10년이 훌쩍 넘은 인연들이 있다. 신기한 일이다. 이토록 오랜 기간 마음을 쏟는 상대가 이렇게 많아질 줄이야. 상당수가 호의적으로 반응해줬기에 이처럼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건 더욱더 감사한 일이다. 물론 소식이 끊긴 이들을 미워하거나 소식이 끊겼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도 않는다. 한때의 삶을 나누어 가진 ‘우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한때의 삶을 나눠 가진 우리. 우정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누군가 시킨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조금 느끼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우정에 대해 논하는 행위 자체가 좀 느끼한 일인데, 뭐. 함께 쌓은 시간과 그 안에서 겪은 사건은 완전히 낯선 개인들 사이에 우정의 틀을 만들고 밀도를 높여준다. 이로 말미암아 우정은 언제나 사후에 관찰되는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우리 사이에 우정이 있다‘라고 공언하게 되기 전까지 모든 느낌은 그저 별개의 현상일 뿐이다. 그것이 전조 현상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상호 확인 및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친한 거 맞지?‘ 반면 사랑은 확인 과정이 없더라도 혼자서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 말하자면 관계의 맺어짐이 전제되지 않아도 존재는 얼마든지 확인되는 것이다. 사랑은 우정과 달리 상대방의 수락 없이도 세상에 태어나는 게 가능하다. 그렇기에 나눠가진 삶이 없을 수도 있다. 사랑이 먼저 있으라. 시간과 사건은 그 다음에 있어도 될지니. 따라서 연인은 친구보다 가성비가 높다. 오래된 우정보다 지금 막 생겨난 사랑이 더 깊을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오래 만나도 단 몇 초면 깨질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희로애락을 그 어떤 관계에서보다도 짧고 굵게 겪을 수 있다. 이처럼 강렬한 건 매우 중독적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가 끝날 때면 다시는 그런 사람을 못 만날까 두려워하고 연애가 시작되면 그게 다음 생까지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둘 다 진실이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한동안은 그렇게 믿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친구는 좀처럼 그러지 않는다. 약간 그렇기도 한가? 그래도 같은 크기의 감정이라면 아무래도 사랑에 비해 우정은 상대적으로 덜하지 않은가? 우정도 그만큼 격렬하다고? 미안하다. 사실 나도 친구들을 ‘사랑’한다. 아군이니 참으시라.
병연
인생 영화 있으세요?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따로 정리해두면 편하다. 자주 출제되는 문제의 정답은 달달 외워둬야 효율적이다. 비슷하게, 자주 쓰이는 스몰토크 소재에 대해서는 레퍼토리를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바로 ’인생 영화‘ 이야기다. 인생 영화로 늘 세 편을 꼽는다. ‘라라랜드’와 ‘인사이드 르윈’ 두 편은 고정이다. 나머지 한 편은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고른다(2024년 4월 현재 그 자리는 ’바빌론‘이 차지하고 있다). 이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내 나름대로는 전략적인 구성이다. 라라랜드는 공감을 얻기 쉬운 선택이다. 재밌게 본 사람이 많고 이야깃거리도 풍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르윈은 크게 유명한 영화가 아니다. 덕분에 내 취향을 상대에게 각인시키기에 좋다. 최근 재밌게 본 영화는 그 자체가 훌륭한 스몰토크 소재다. 세 편 모두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다. 우연의 일치다. ’다함께 글쓰계‘ 멤버들과 이 얘기를 나누던 중 “음악 영화를 좋아하시나봐요”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세 편 모두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인지했다. 음악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곱씹는 일이 즐겁다.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도 흥미롭다. 누구든 자신을 즐겁게 해주고 흥미롭게 해주는 영화를 좋아할 텐데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라라랜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복잡한 감정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선택이 후회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다. 인사이드 르윈은 아무리 격렬한 모험으로 가득 채우더라도 우리의 삶이란 결국 잠에 들었다가 깬 뒤 어딘가로 떠나는 행위의 반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지루한 반복 비슷한 일상으로 수렴한다는 진리를 얘기하는 영화다. 바빌론은 모든 개인의 성취란 시대 배경을 기반으로 하며 시대 변화를 이겨내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에 기여하고 있는 작디작은 재능들을 존경하게 만드는 영화다. 스몰토크 소재로서 영화는 무난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곱씹어 내놓은 영화는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특별’이라는 단어에 쫄 거 없다. 바로 그때,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알아갈 수 있었다면 충분히 특별한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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