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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병연
요즘 정병연은(24.06.30)
1.
돈을 많이 썼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경제력과 경제관념은 제각각입니다. 당연히 ‘많이’의 기준도 다 다를 테죠. 그러니 얼마를 썼냐고 묻지 마시길. 대신 본인이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금액을 떠올려 보세요. 조금 이해가 갈지도 모르겠네요. 여튼 이번 달 지출액은 평소보다 숫자가 압도적으로 큽니다. 아, 집이나 차를 사진 않았습니다. 또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얼마 안 쓴 거 같긴 하네요.
2.
적어도 수십만원, 많게는 백만원이 넘어가는 물건들(!)을 며칠 동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이젠 살 거 다 사고 참을 건 다 참았습니다). 그러다보니 10만원 쯤 되는 가격 차이는 비교 요소조차 안 되더군요. 남들은 결혼 준비할 때나 할 법한 경험을 체험판으로 겪어봤습니다. 재밌다면 재밌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아마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는 날이 오면 마냥 재밌다고 할 수 없겠죠? 지금 즐겨야겠습니다.
3.
마케터는 온갖 소비를 해봐야 한다죠? 출처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유명한 마케터 분들이 쓴 책이나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서 접했을 말입니다. 소비자가 돈을 쓰게 만드는 일을 하는 만큼 그 스스로 소비자가 돼 돈을 열심히 써봐야 ‘영감’과 ‘통찰’을 얻을 수 있고 그로써 업무에 나만의 ‘취향’을 녹여 ‘트렌드’를 따르는 게 아닌 이끌 수 있다는 류의 얘기죠. 솔직히 당시에는 ‘맞는 말이긴 한데 좀 공허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4.
물론 저는 마케터가 아닙니다만…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지출을 하고 나니 그런 조언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 일부나마 이해하게 됐습니다. 특히 얼마 전 방문했던 서울시 성수동에 위치한 빈티지 가구점 오드플랫(@oddflat)이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사실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구입할 의사 자체가 없었습니다. 실제로도 구경만 하다 나왔고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평소의 저라면 꿈에서도 안 했을 고민을 합니다.
5.
벽걸이 시계 때문입니다. 마침 이 레터를 보내는 지금 이 시간을 기준으로 오드플랫 인스타그램에 가장 최근 게시물로 올라와 있네요. “아서 우마노프(Arthur Umanoff)가 디자인한” 수동 시계라고 합니다. 수동 시계란? “태엽을 키로 몇 바퀴 돌려주어야 시계추가 멈추지 않고 진동하게 되고, 이 진동의 힘으로 바늘이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선명하고 단단한 외형과 무게감 있는 색의 조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6.
그 앞에 머무는 시간이 꽤 길었는지 사장님이 슬그머니 다가와 “시계 보고 계시나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아, 네, 네. 너무 예뻐서요…”라고 흘렸습니다. 사실 51:49로 ‘사지 않는다(사면 안 된다)’라는 결정을 내린 터라 진한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차였습니다. 어딘가 신난 얼굴로 이런 저런 설명을 하시는데…사장님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한 녀석을 들일 형편이 못 됩니다…어색하게 웃고 가게를 나섰습니다.
7.
인스타 글을 보니 “이런 수고를 감수하더라도 이 시계는 너무 멋지게 생겼습니다”라고 쓰셨네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런 수고가 이 시계를 더 멋지게 만드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빈티지-아날로그 썸띵은 나날이 발전하는 현대 기술이 소거해 버린 불편함에 그 ‘멋짐’의 일부를 기대고 있기도 하니까요. 어쨌건 이 시계는 사장님도 관심 갖고 살피는 제품이었던 것입니다. 인정 받은 느낌이 들어 으쓱했네요(아님).
8.
참고로 시계의 가격은 110만원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일 수도 있겠죠. 헉, 제가 지금 뭐라고 했죠?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상상을 할 수 있게 되다니. 이게 가장 놀랍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빈티지 시계에 그만한 돈을 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별 거 아닌 듯하지만 사실 대단히 큰 변화입니다.
9.
훗날 제가 빈티지 가구와 인테리어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면 아마도 그 시작점으로는 지금 이 시기를 지목할 겁니다. 누군가 태생부터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겼던 ‘안목’도 사실 이처럼 사소해 보일 수 있는 계기에서 불꽃 튀듯 피어났던 것이겠구나 싶습니다. 뭐랄까, 그것은 자의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불가항력을 가진 일종의 덕통사고라고 할까…? 흠. 그나저나 거실 한쪽 벽이 유독 허해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요?
지난 레터 이후에
영화 <소울메이트>를 봤습니다. 김다미, 전소니 배우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원작으로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을 상당히 재밌게 봤습니다. 한때 저의 인생영화 3위에 랭크돼 있었죠(인생영화 랭크 매기는 방식에 대한 글은 여기).
원작 이야기 흐름에서 주요한 포인트는 그대로 남겨뒀지만 꽤 많은 부분이 한국화(?) 됐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좀 아쉬웠습니다. 다만 배우의 외모를 비롯해 시각적으로는 확실히 더 편안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저도 한국인이니까요. 여튼 딱 그 정도.
영화는 시종일관 여성 캐릭터 둘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남성 캐릭터(요즘 핫한 변우석 배우)가 나옵니다만, 그 역할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연출된 삼각관계는 오히려 둘의 관계를 더 강하게 비추죠. 다른 캐릭터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동성 친구와의 1:1 관계를 대하는 것에 있어 여성과 남성이 갖는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것은 충분히 일반적인가요? 유의미한 근거가 있나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각 성별 캐릭터를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 존재하는 것 같긴 합니다.
다만 남성의 경우 이미 많이 다뤄져 왔으며 그래서 생긴 스테레오 타입이 있는 반면, 여성의 경우 너무 다뤄지지 않아 생긴 스테레오 타입이 있는 것이고요. 제게 있어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그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관점을 더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코멘트가 쓸 데 없이 길어졌네요. 원작과 리메이크 중 한 편만 골라달라고 하신다면 원작을 추천하겠습니다.
다큐멘터리 <일론 머스크 쇼>를 봤습니다. 3부작입니다. 다큐는 추후 <일론 머스크> 책 리뷰와 같이 다뤄보려고 합니다. 간단하게 코멘트하면, 일론 머스크에 대한 흥미로운 면모를 알기에 적당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비판 또는 고민해야 할 부분들은 많이 빠져 있죠. 이것은 책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래도 책은 분량이 분량인 만큼 다큐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긴 합니다. 다큐와 책을 비슷한 시기에 함께 보는 것을 권합니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봤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한참 핫할 때는 이 영화와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다루는 콘텐츠(ex. 침투부-이 영상 보고 가면 얼마나 좋았을까?)들만 섭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맨해튼 프로젝트와 시대적 배경, 주요 과학자, 원자폭탄의 원리 같은 것을 알게 됐는데요. 오히려 영화에서 그런 것들은 부차적이고 오펜하이머의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더군요(물론 부차적인 것들을 알고 있으면 더 깊이 있는 감상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각기 다른 시점과 상황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 편집 방식은, 그것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실제로 더 효과적이라고 하더라도 제겐 좀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책으로 읽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장바구니에 담아뒀습니다.
문장 수집 여전히 순항 중입니다.
Q. ‘마동석의 길’이요?
A. 그 형은 그냥 배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 같이 하시잖아요. <범죄도시> 시리즈도 동석이 형의 욕망이 묻어난 작품이거든요. 형도 무명 시절이 있었고, ‘나는 나중에 이런 영화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고 그 아이덴티티가 <범죄도시>라는 시리즈로 나온 거예요. 형이 오랜 생활 투자한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나온 거고요. 그 길을 저는 열렬히 응원해요. ‘나도 동석이 형 같은 액션 스타가 돼야지’가 아니라 ‘나도 동석이 형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해서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영화인이 돼야지’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난 2주 사이에 완독한 책은 없고요. 월터 아이작슨의 <일론 머스크>를 읽고 있습니다. 드디어 끝이 보입니다. 다음 레터 보낼 때는 완독 소식을 전해드릴게요. 움하하.
/workoutsome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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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요즘 정병연은(24.07.16)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2박 3일, 마지막 날 오전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므로 짧은 편이죠. 그래도 꽤 알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식사 덕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볍게 소개. 첫째 날 점심은 서귀포시에 위치한 식당 센트로에서 먹었습니다. 4인이었고 수비드 제주 돼지, 감자 뇨끼, 비스크 크림 파스타, 조개 파스타, 로메인 샐러드를 골랐습니다. 점심 식사에는 1인당 음료 한 잔이 포함돼 있습니다. 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어요. 손님은 전부 도민이었습니다. 하긴 제주도까지 와서 굳이 양식을 먹을 이유가 없긴 하죠. 그래도 맛집이긴 한 것 같습니다. 2시에 방문했는데 세 팀 정도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도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시더라고요. 실제로 맛도 좋습니다. 저녁은 제주시청 인근 중식 이자카야 산아에서 먹었습니다. 나름 관계자(?)라서 권해드리기 조심스럽긴 합니다. 그래도 맛은 확실합니다. 송이관자, 칠리새우, 짜장면을 먹었습니다. 아, 여기도 손님 대부분이 도민입니다. 만약 가보시게 되면 아시게 되겠지만, 관광객이 머물 만한 동네가 아니거든요. 아, 한 블럭 뒤에는 갱이네보말칼국수라는 데가 있습니다. 여긴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맛집인 것 같아요. 라마다호텔에서 잠을 자고 산아에서 저녁을 먹고 다음 날 갱이네에서 아점을 드시면 딱이겠네요. 둘째 날 점심은 제주시청 바로 옆에 있는 라스또르따스에서 먹었습니다. 멕시코 음식점입니다. ‘제주도에서 굳이…?’ 싶긴 하죠? 어쨌든 관광객과 제주도민 모두가 인정한 맛집입니다. 저는 까르니따스, 뜨리빠, 부리또를 먹었습니다. 까르니따스와 부리또는 기본 타코입니다. 구성이 기본이라는 거지 맛은 꽤 좋습니다. 제주 한우 곱창을 활용한 뜨리빠는 정말 맛있더군요. 달고기(생선)를 쓴 뻬스까도가 이 날 안 된다길래 2안으로 주문한 건데 아주 훌륭했습니다. 아, 고수가 들어가는데 뺄 수도 있습니다. 저녁은 한림에 있는 육고깃집에서 먹었습니다. 뼈갈비세트가 주력인데 등심덧살에 대한 평가도 좋습니다. 저는 2인팟이라 뼈갈비세트만. 고기를 구워먹고 있으면 뼈에 붙은 고기를 따로 구워서 내옵니다. 진짜 맛있습니다. 역시 고기는 뼈에 붙은 고기인가…아참, 한림점이 본점인데요. 제주시에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맛에 크게 차이는 없지만 왠지 본점이 더 나은 것 같다는 느낌은 그냥 느낌일 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접근성은 제주시가 더 나을 테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굳이…?’ 싶은 메뉴와 ‘굳이…?’ 싶은 동네의 조합은 색다른 제주도의 맛을 알려줬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일로 제주도를 자주 방문하다 보니 ‘굳이…?’ 싶은 것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몇 년에 한 번 여행으로 찾는 경우였다면 저 역시 안전한 선택을 했겠죠. ‘굳이…?’ 싶은 선택지는 가장 먼저 배제했을 게 분명합니다. 당연히 그게 꼭 나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정석만으로도 일정을 채우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원래 변주나 응용은 따분한 기초 위에서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제 딴에는 평소의 나답지 않은 과감한 선택이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비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암요. 물론입니다. 삶의 모양이 다양한 이유는 각자 쌓아온 선택의 모양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일 테니까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에서 ‘굳이…?’ 싶은 것들을 허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굳이…?’ 싶은 선택지가 소거된 삶은 아무래도 ‘다양한 삶의 모양’에 기여하기 어려우니까요. 돌연변이가 진화를 만드는 원동력인 것처럼 내 경험에서도 가끔씩 돌연변이가 하나 쯤 나와줘야 합니다. 앞으로도 제주도를 자주 갈 겁니다(당장 9월 초에도 방문 계획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자주 가는가? 그에 대해서는 따로 전해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어쨌든 저는 제주도에 관해서는 꽤 재밌는 포지션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1년에 3~4회는 꼭 제주도를 가는데 제주도민도 아니고, 이주민도 아니고, 순수하게 제주도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을 좋아해서 여러 곳을 다니는 사람도 아닙니다. 여러모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경계 위에 서 있는 느낌이죠. 그래서 말인데요. 고백하자면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제주도에서 굳이…?’라는 이름으로 디에디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겁니다. 작년 이맘때 생각했던 것 같군요…엇, 잠시만요. 지금 ‘굳이 버킷리스트라고 할 것까지 있나…?’, ‘굳이 그런 걸 글로 써야 해…?’, ‘굳이 디에디트인 이유는 뭐지…?’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넣어두십시오. 왜냐면 저도 아직 그 답을 모르니까요. 원래 ‘굳이…?’ 싶은 건 떠올리는 게 먼저고 언젠가 직접 해본 다음 이유를 깨닫는 것에 가까운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병연
프로페셔널
요즘 정병연은(24.06.16) 이사 중입니다.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이사를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집을 옮겼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서울시 노원구입니다.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다보면 노원구에 살았던 분이 꼭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거기서 나고 자라 2~30년을 살았습니다. 23년 거주자는 나서기 민망하겠습니다. 오래된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새벽에 잠깐 깼는데 잠이 오지 않아 거실로 나갔습니다. 창밖에는 주차장이 보입니다. 구축 아파트 특유의 이중, 삼중 주차가 눈에 띕니다. 양쪽으로 아파트 건물이 늘어서 있습니다. 아직 불을 끄지 않은 세대가 많네요. 군데군데 설치된 가로등이 단지 내부를 적당하게 밝힙니다. “밤 산책하기 좋게 조성돼 있다”는 지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왠지 모르게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 회사도 이사 중입니다. 이직은 아닙니다. 이게 말하자면 복잡한데…아무래도 회사 일인 만큼 제가 이러쿵저러쿵 할 내용이 못됩니다. 일단 ’피벗’이라고 요약하겠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나마 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울 만한 설명이네요. 그 과정에서 전반적인 환경에 작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담컨대 이와 비슷한 경험은 하고 싶어도 못 해볼 것 같습니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합니다. 풀칠도 이사 중입니다. 스티비 브랜드 페이지와 인스타그램으로 구독자 분들을 만나왔는데요. 더 나은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재밌는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 우리만의 ‘본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곧 소식 들려드릴게요. 이제 보니 다음 달이면 풀칠도 4주년을 맞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데 마침 또 적당한 명분이 되겠네요. 제 아카이브도 이사 중입니다. 첫 번째 뉴스레터를 보낼 때는 노션 웹사이트를 썼고, 두 번째 뉴스레터를 보낼 때는 거기에 우피를 입혔습니다. 세 번째 뉴스레터를 보낼 때는 그 껍데기를 다시 벗겨냈죠. 이번에는 슬래시페이지라는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아파트 실거래가 앱 ‘호갱노노’를 직방에 엑싯했던 창업 팀이 작년에 론칭했더라고요. 아쉬운 점도 다소 있지만 사용성도 좋고 개선 속도도 빠릅니다. 이제 제목 관련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 상황 따위를 주절대다 여기까지 왔네요. 재미없는 이야기를 읽게 해 죄송합니다. 에헴. 자, 그럼… ‘professional movers’는 포장이사를 뜻합니다.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일상에서 영어를 써보신 분이겠군요. 사실 전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좀 어색했습니다. 밥벌이를 하는 모두가 ‘프로페셔널’인 건 맞지만, 그렇기 때문에 굳이 그것을 명시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재밌습니다. 포장이사라는 단어도 만들어진 맥락이 비슷합니다. 우리는 이사할 때 크게 세 가지 선택지를 갖죠. 직접 이사, 반포장이사, 포장이사. 직접 이사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챙기는 것이라면 포장이사는 가져가야 할 이삿짐 목록과 새 집에서 그것들을 풀어놓을 위치만 지정하면 됩니다. 짐을 싸고 싣고 나르고 정리하는 일은 업체에서 진행하죠. 반포장이사는 그걸 같이 하는 것이고요. 나의 노동력을 얼마나 보존했는지, 즉 돈을 얼마나 냈는지에 따라 반포장 혹은 포장이라고 구별해 부릅니다. 그러니 포장 = professional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 효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짐이랄 게 딱히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 뭐, 이사뿐인가요? 우리는 생활의 점점 더 많은 한 부분을 프로페셔널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걸 ‘사치’로 여기지도 않고요. 프로페셔널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본질적으로 누군가를 대신해 무언가를 해주고 대가를 받는 것. 예술가, 요즘엔 크리에이터가 더 적합하겠네요. 여튼 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대신해 경험해주고 누군가를 대신해 상상해줍니다. 누군가를 대신해 표현해주죠. 중요한 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해 주는 것’이죠. 나를 대신해준다는 느낌을 받지 않으면 아무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병연
작가적 사고
요즘 정병연은(24.05.31) 속 시끄러워 죽겠습니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제 신상에 이런 저런 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중이라 그렇습니다. ‘일어나는 중’이라는 진술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레터를 보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 클리어 된 게 없네요. 그러니 자세하게 밝히기는 어렵겠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언젠가는 이 또한 글감 삼을 날이 오겠죠?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에 처해도 마지막엔 ‘글감 하나 건졌네’라는 생각을 슬쩍 끼워 넣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작가’의 자질을 갖췄다고 우겨볼 만합니다. 예전에 참여했던 글쓰기 모임 리더는 이를 ‘작가적 사고’라고 부르더군요. 출근길 아침 갑자기 ‘오늘 하루만큼은 작가적 사고를 해보자’며 그 날 겪은 일을 글로 써보라는 돌발 미션을 내주던 게 떠오릅니다. 작가적 사고란 무엇일까요? ‘글감 하나 건졌네’ 마인드셋이라는 자질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마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고, 일관되고, 설득력 있게 담아내면서 좀 더 신선한 사례, 살짝 다른 관점, 개성 있는 통찰을 섞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죠. 결국 작가란 어떤 메시지를 글로써 표현하는 사람이니까요. 많은 사람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탐냅니다. 그 심리를 절묘하게 파고든 서비스가 브런치죠. ‘지원’을 해서 ‘합격’한 사람에게 ‘글을 발행할 권한’을 부여하고 ‘작가님’이라 불러주니까요. 게다가 기성 작가가 아님에도 실제 출판을 해내는 것을 보여줬죠. ‘글쓰는 OOO’이라는 정체성이 유행처럼 번지는 데 브런치가 기여한 바는 적게 잡아도 절반 이상일 겁니다. 작가적 사고를 하는 사람과 작가는 다릅니다. 둘 사이에 위계가 존재한단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작가적 사고를 충분히 연마하지 않은 사람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내세우면 그냥 좀 마음이 그렇습니다.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이 아닌데...고작 그런 글을 쓰면서…작가…? 글을 신성시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글을 신성시 하며 그 후광을 누리려는 꼴이 보기 싫습니다. 언론사 입사 준비 일환으로 다녔던 학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첫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자로 과제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오후 1시까지 1,500자 분량의 논술 한 편 쓰기. 논제는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참고로 수업은 평일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됐습니다. 저는 그대로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갔죠. 어떻게 저떻게 작성해서 제출한 당일 저녁에 문자가 한 통 더 왔습니다. 메일로 첨부해 보낸 다른 수강생들의 글을 모두 읽고 각각에 상/중/하 등급을 붙인 뒤 그 이유를 간단히 적어 다음날 자정까지 제출하라는 과제였죠. 함께 수업을 듣는 인원은 30여명. 총 3개 클래스가 동시에 진행되므로 읽어야 할 글은 약 90편. ‘미친 과제 아냐?’ 싶었습니다.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런데 한 10편 쯤 읽고 나니 속도가 붙었습니다. 확실한 기준 하나가 생긴 덕분입니다. 바로 ‘드라마 <기황후> 언급 여부’입니다. 과장 없이 90편 중 50편 정도가 <기황후>를 언급했습니다(2013년 방영된 드라마로 역사 왜곡으로 크게 논란이 됐습니다). 나중에는 '기황후'의 '기'만 보여도 다음 문단을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자동으로 '하'로 분류했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 이 미친 과제는 나를 골탕 먹이려고 낸 게 아니구나. 그냥 글 한 편을 써보는 게 아니라 수백 명의 글을 읽고 그 중에 합격자를 가려야 하는 ‘필기시험 채점자’ 입장을 직접 겪어보라는 의도가 담긴 과제로구나. 선생님, 욕해서 죄송합니다. 글쓰기 책에 단골로 나오는 비법,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무조건 버려라'의 속뜻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