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력서 상시 오픈 시대 [풀칠 176호]

*풀칠 뉴스레터([링크](https://fullchill.stibee.com/p/181/))에 쓴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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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드인에 첫 글을 썼습니다.”

최근 몇 달 링크드인 피드에 위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 자주 보였다. 이미 읽은 글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끌올된 건가 싶어 게시 일자를 보면 방금 올라온 것인 경우가 많았다. 작성자들의 스펙은 다양하고 화려하다(적어도 ‘그럴 듯하게’ 보인다). 그리고 대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가입만 해놓고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다른 분들이 편하게 올리시는 걸 보고 용기를 얻어 일단 무엇이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후 하나같이 그대로 마무리 되는 출사표형 게시글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링크드인에 첫 글을 썼습니다”라는 글은 유독 링크드인에서만 포착된다. 예컨대 “브런치 작가가 됐습니다”라는 글은 브런치보다는 블로그나 인스타나 스레드 같은 데서도 종종 보인다. 그런데 “링크드인에 첫 글을 썼습니다”라는 글은 다르다. 오직 링크드인에서만 보이는데 마치 거기가 링크드인이 아닌 다른 플랫폼인 것처럼 군다. 괜한 반항심에 나는 그냥 냅다 올렸다. 그런데 조금 써보니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링크드인이라는 플랫폼 특성에 매우 충실히 복무한 결과였다.

복잡해 보이는 온라인 공간이지만 결국 마이페이지와 게시판으로 요약 가능하다. 우리가 거기서 활동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와 다양한 형태의 기록을 남기는 행위로 이뤄져 있다. 이 두 가지 행위에 어떤 가이드를 주는지에 따라 수많은 온라인 공간들이 갖는 독자적인 정체성이 결정됐다. 대표적인 가이드는 공개범위다. 두 가지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한 공개범위가 다른 각각의 온라인 공간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자신의 정보와 다양한 형태의 기록은 꾸준히 업데이트 된다. 정보와 기록은 오프라인의 경험에서 비롯되지만 반복적인 업데이트는 스스로를 빚어내는 자기담론으로 기능하며 ‘온라인 정체성'을 형성시킨다. 이러한 자기담론은 다시 우리의 현실 속 사회적･전문적 위치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반응에 반응하는 한편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는 다양한 층위의 네트워크를 쌓아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은 이제 꽤나 일반적인 루프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이 “링크드인에 첫 글을 썼습니다”라는 글을 링크드인에 올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네트워킹 파티에 참석해 건네는 첫 인사’였던 것이다. 사실 링크드인 자체가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모여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직장인 페르소나를 뒤집어 쓰고 온다(아마 그들도 인스타, 페북, 스레드, 엑스, 블로그, 브런치 등등등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말투를 쓸 테다). 게다가 나의 동료가 될 수도 있는 사람과 리크루터와 헤드헌터들이 득실거린다. 정중하게 인사부터 해야지.

아이고, 힘들다. 현재 소속된 회사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혹시 모를 가능성(그것이 이직이 됐건 업계 네트워크 형성이 됐건)을 위해 불특정 다수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을 별도로 해야 한다니. 물론 그것이 필수조건은 아닐 테다. 하지만 필수조건이 아닌 것을 필수조건인 것처럼 부추기는 것이 상품의 본령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품이 많아도 너무 많은 시대다. 링크드인 같은 온라인 서비스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세상엔 각종 강연, 모임 등 ‘회사 밖 활동’에 신경 쓰게 만드는 것들 천지다.

『커뮤니티 자본론』이라는 책에서는 지방의 일자리 경쟁력이 서울･수도권에 비해 떨어지는 배경으로 ‘성장 기회를 주는 커뮤니티 자본의 격차’를 지목한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좋은 기업 한두 개 갖고 있는 것은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 즉 비슷한 수준의 좋은 기업들이 모여 있는 규모가 곧 커뮤니티 자본인 셈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요즘 청년’들에게 이직은 커리어 향상의 주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설사 실제로 이직을 하지 않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다들 ‘언제든지 이직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삶을 산다. 나도 그러한 상태를 유지해왔다. 이력서는 늘 최신으로 업데이트 하며 상시 오픈해둔다. 내 프로필을 조회한 사람의 커리어, 그가 속한 회사가 현재 채용 중인 포지션, 리크루터나 헤드헌터를 통해 들어온 구체적인 제안 등을 근거로 ‘타인의 관점으로 본 나의 커리어’를 그려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커리어지만 그렇게 해온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건 사실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그 과정을 거쳐 ‘당분간 이직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러니까 핵심은 이직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기회가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의지다(’압박감’이라고 썼다 지웠다. 그것을 압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에). 그것은 인적자본과 자기계발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보다 사회적인 성격을 갖췄을 때 나타나는 형태가 아닐까. 링크드인 피드가 꼭 가면무도회장처럼 느껴졌던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력서 상시 오픈 시대 [풀칠 176호]](https://fullchill.stibee.com/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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