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는 우주선에 탑승하기 전 엔지니어가 보여줬던 책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금발의 머리카락에 녹색 옷을 입은 아이가 작디작은 자신의 행성에서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 그래, 그런 이야기였다. 그가 보여준 책은 삽화가 없었고 간략하게 요약된 줄글만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생각한다. 그 행성은 ‘이곳’과 똑 닮았다고. 물론 이곳엔 장미 한 송이와 바오밥나무가 없고, 종류를 알 수 없는 돌이나 먼지덩어리만 가득하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느낌! 안드로이드가 가진 ‘느낌’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러니까…… 소개하자면, 마치는 오늘로 ……일 정도─지구에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이 행성 M-EchO-1527에서 탐사를 진행하고 있는 안드로이드다.
담당 프로젝트는 「Echo」, 제조명은 「Page-T」, 모델명 「Ma-Chi」. 하는 업무라곤, 글쎄! 성분이 확인되지 않은 물질을 모두 채집해서 우주선에 싣는 것? 굉장히 지루하고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마 그가 성실하지 않은 안드로이드였다면 진작 주저앉아서 바오밥나무 모양의 모래성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 아, 이 경우엔 모래나무인가…… 라는 농담이나, 성실하지 않은 안드로이드가 존재하긴 하냐는 질문은 뒤로 밀어두도록 하자.
어쨌거나 중요한 건 결론이다. 그가 안드로이드가 아니었다면 진작 질려버렸으리라는 것. 하지만 마치는 괜찮았다. 왜 괜찮냐고 하냐고 묻는다면…… 음! 짧은 버전으로 이야기할까. Page-T 안드로이드는 모두 단순 보조, 서포트 위주로 작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정도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지…….
그래서 갑자기 왜 자기소개를 하고 있냐고.
그야,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돌이나 먼지덩어리만 가득한 이 행성에 불시착한, …… 이 우주선 너머로!
이 모든 생각은 그저 안드로이드의 데이터 복기일 뿐이고, 실제로 음성으로 상대에게 전달한 건 아니니 그저 독백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아, 그런가? 이게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주마등이구나!! 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 안드로이드는 당장 목숨이 위험한 게 아니긴 하지만, 너무 까다롭게 굴진 말자.
“…… 실례합니다?”
마치는 채집통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주먹을 쥐어 가볍게 우주선의 문을 통, 통, 두드렸다. 얼마 전에 받은, 지구에서 온 통신을 떠올린다. 지원 인력을 보내준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성분 채집에 진전이 있으니 더욱 힘내달라는 상투적인 이야기 외에는. 그러니까 아마 이 문 너머에 있는 건 자신의 동료,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진 않을 거란 소리다……. 그렇다면 과연 누굴까? 평범한 우주 미아? 아, 책에서 녹색 옷의 아이가 사람을 만난 것도 이런, 비슷한 전개였던 것 같은데…….
잠깐. 그렇다면.
“…… 혹시 외계인인,”
덜컹.
“꺄아악!!!”
창문이 열렸다. 마치는 깜짝 놀라며 두어 걸음 물러났다. 등을 돌리고 도망갈 순 없었다. 푸쉭거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열린 새까만 창문 너머로…… 하얀 머리카락이 보여서. 정확히는 우주복 헬멧 안쪽에서 보이는 머리카락이.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일단 인간형인 누군가가 나왔다! 그 ‘누군가’가 무언가 말하는 듯 뻐끔거리는 게 시야에 보였는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마치는 아, 하고 자신의 음성 인식 스위치를 올렸다. 그동안 자신 외의 다른, 그러니까 대화 능력을 갖춘 지성체와 대화할 일이 별로 없어서 업무 효율을 위해 꺼놓은 스위치였는데. 그러자 청각 센서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말뜻을 바로 이해하진 못했다. 어려운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러니까, 어. ‘이럴 때 쓰는 게 번역 스위치, 가 맞던가?’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다른 스위치를 올렸다. 이건 정말 드물게 써본 기능이었는데.
“미안해요!! 아아, 갑자기 떨어질 줄 몰라서 우주복을 챙겨입느라고.”
“…….”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알려줄 수 있나요?”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인사하자는 듯 손을 뻗으며 마치에게 다가왔다. 너머로 보이는 우주선의 모습은 제법 평범했다. 외계인이라기엔…… 지구에서 봤던 설비와 제법 비슷했다. 아니, 자신이 타고 온 우주선과도 꽤 유사했다. 디테일한 건 다르지만 전체적인 느낌이. …… 그럼 지구인인가? 외계인이 아니라? 확실히, 지구에서 개발한 번역 프로그램이 쓸만하게 먹히고 있다는 게 증거가 되긴 했다. 아니면, 요즘 외계인은 지구의 언어를 주 언어로 사용한다거나…….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 해, 행성 M-EchO-1527…….”
“그렇군요! 모르는 곳이네요! 그런데 표정이 좀 이상한데. 혹시 어디 불편하신가요?”
“…… 대화가…….”
“네!”
“대화가…… 되네.”
“네?”
——
진짜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고 후회하는 것도 잠시. 자신을 ‘슈리 아리엘라’라고 소개한 사람은 오히려 ‘당연하죠!’ 하고 웃으며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자며 자신을 이끌었다. 우주선에서 나와 돌과 먼지만 가득한 곳에 자리를 잡아, 나란히 앉기까지 해서. 어쩌다 보니 이곳에 떨어지게 됐다며, 우주 미아가 되었다는 말과 다름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그는 태연했다. 겁이 없는 건지, 안심하고 있는 건지. 행성 좌표를 알려줬고, 통신망도 멀쩡히 작동하는 것 같으니 답장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아주 최악은 아니긴 한데…….
마치는 괜히 눈동자를 돌리다, 슈리에게 질문했다. 평소에 음성 센서를 사용할 일이 워낙 없다 보니, 아까부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슈리는 개의치 않았다. 마치가 말을 더듬어도 기다려주고, 로딩이 오래 걸려도 기다려줬다. 다행스럽게도.
“파티라는 거, 그렇게 재밌어?”
“그럼요! 365일, 매일매일을 파티만 하며 보내고 싶다는 사람도 많은걸요.”
파티.
어쩌다 이런 흐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생각해 보니 책에도 파티라는 단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 아마? 아마.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파티라는 건 마치에게 굉장히 생소하고 신기한 개념이었다. 그야, 당연히……. 안드로이드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걸. 음, …… 확신하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닐지도. 하지만 적어도 마치가 알던 자들은 그랬다. 그들은 프로젝트를 돕는 안드로이드가 필요했던 거지, 인간처럼 웃고 즐기는 안드로이드가 필요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파티를 열어줄 이유가 없었고, 그에 대한 지식을 알려줄 이유도 없었고, 안드로이드가 그걸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고…….
그러니 지금의 대화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사전적으로만 알고 있던 내용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가 이것저것 들어와서. 마치는 눈을 반짝이며 슈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이야기한다. 원하는 옷을 차려입는 사람들도 많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신다.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차분하고 모던한 분위기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화려한 장식을 가득 채워 반짝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은하수처럼. 채집은 안 하고 이렇게 이야기만 나누고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채집 아냐?’ 새로운 정보를 취득하고 있잖아!
“…… 아리엘라 씨도? 매일 파티만 잔뜩 하고, 그래?”
“파티를 준비하는 시간도 포함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말에 마치가 눈을 끔벅인다. 안드로이드에게 장착된 안구 파츠에 불과한데, 왜 그렇게 슈리를 지그시 바라보게 되는지.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두근거렸다. 파티, 파티. 어쩐지 두근이라는 단어와 어감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해. 결국 그 또한 심장 파츠겠지만.
그럼 슈리는 지금도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걸까? 이 행성에 불시착한 것도 그 연장선인 걸까. 어떤 파티를 준비하고 있길래. 그런 질문을 잔뜩 떠올리다, 결국 정리하지 못한 얼굴을 한다. 그럼에도 기대는 선명하다. 그렇구나.
“그래서 아리엘라 씨는 반짝이는 거구나!”
본인이 파티, 그 자체인 사람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