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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초콜릿 바다
박정우 독후감(2024.9.28. 모임 회기 대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딩 시절 허세에 취해 읽었던 '디지로그'. 워낙 이전의 기억을 회고하다 보니. 남는 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신조어의 결합이라는 사실뿐. 어떤 노년의 인사가 이 정도로 현재의 테크놀로지를 통찰할 수 있다니. 그 문학적 수사와 세계의 변화에 대한 예리한 감수성에 감탄했던 일이 떠오른다.
선생이 '돌아가신 건' 2022년 2월. 어언 2년이 훌쩍 지났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누군가의 삶에 대한 추모를 덧붙이지도 못했다. 그저 3인칭의 죽음일 뿐이었다. 회고도 성찰도, 추모도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번에 만난 '마지막 수업'이라는 표제의 책은 그의 마지막을 다뤘다. (2년 전 이맘때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선물받은 일이 있다. 책장 한켠에 고이 모셔 두었지만 읽을 여력을 내지 않았다. 선물 준 이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고 존중했기 때문에.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은 텍스트가 아니라 메시지였다. 그 사람이 전해준. 그래서 소중히 간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기도. 배울 점 많은 스승 같기도. 외골수에 본인의 지식만을 떠벌리는 교수님 같기도. 종잡기 어렵지만 한 인간의 생태이자 생애. 다소 지나침이 있더라도 한 인간의 그림자는 처연하다기 보다 총천연색 같다. 과거는 현재로, 현재는 미래로. 유한한 땅에 발 디딘 유한한 인간에게 허락된 건 시간의 흐름뿐이다. 우리가 가진 재화나 마음도 결국 유한의 땅에서 스러져 간다.
내 독서의 결론은 현재를 붙잡아야 할까Seize the day 아님 현재를 관조해야 할까Let it be에서 멈춘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삶을 추구한 이어령 선생이라는 이정표를 오마주해 '지성에서 감성으로'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문학을 밀어냈던 내가 요즘 별안간 문학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미묘하게 변한 바람과 풀냄새도 신경쓰기 시작했다. 크로노스로 봤던 세상이 카이로스로 바뀐 것 같다. 영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내는 나만의 해답은 바로 카이로스를 더 단단히 짊어지는 데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내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공감이 되세요?'라는 말로 타인에게 되묻는 자가 있었다. 나의 유별남을 인정해 준 때문인지, 나의 고유성을 부각시켜 준 덕분인지. 그가 본인의 행복관에 대해 말할 때 나는 그대로 동의해 주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당신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즐겁다고. 행복의 주관성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미 그의 크로노스적 세계를 지나왔다. 지나왔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카이로스에는 하늘이 있다. 바람이 있다. 햇살이 있다. 몽글몽글한 음악이 있다. 산미 있는 커피향이 있다. 마음에 파동을 그리는 책의 한 문장이 있다. 그리고 이런 취향을 벼리는 데 함께한 시간과 사람과 장소가 있다. 그 모든 과정에 기뻐하고 충만하고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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