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성을 쌓고’ 살아갑니다.
가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는 땅에서 유리하는 자,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자였습니다. 두려웠고, 불안했고, 그래서 성을 지었습니다. 성은 누군가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진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나요?
바쁜 일상, 가득 찬 스케줄, 잘 포장된 SNS, 누군가가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들. 그 모든 것이 혹시 나의 ‘성’은 아닐까요? 나는 내 성 안에서 편안한가요, 아니면 더 외로운가요?
하나님은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책임을 부정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에게 책임을 물으셨지만, 그를 완전히 밀어내진 않으셨습니다. 죽음으로 단절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여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그 죄로 인간이 끝나지 않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가인에게 주어진 표는 처벌의 낙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작은 증표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 지금 어디 있니?”
그 물음은 정죄가 아닙니다. 각성입니다. 초대입니다. 돌아오라는 은총의 목소리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나요? 내가 쌓아 올린 성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 없이도 잘 살아보겠다는 독립 선언 속에서, 혹시 나는 점점 더 나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하나님은 가인에게도, 나에게도 여전히 다정하게 부르십니다.
“너, 어디 있니?” 그 부름 앞에서 멈춰 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