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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설교😌
[돈에 밝은 아버지, 딸의 어두운 그늘] *잠깐묵상 | 창세기 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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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은 리브가의 오빠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에게는 외삼촌인 동시에 장인인 셈입니다. 야곱이 형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향할 때, 그는 아마도 외삼촌 라반이 자기에게 다정했던 엄마와 비슷한 성정의 사람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라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카가 자기 집에 온 지 한 달이 되자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제안했습니다. 야곱이 아무 대가 없이 성실하게 일을 해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임금 제안을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야곱을 정식적으로 부려먹기 위한 빌드업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야곱의 처지와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야곱에게 지극히 불리한 근로계약을 체결한 횟수만 지난 20년간 열 번에 달했습니다.
라반이 성사시켰던 최고의 딜은 둘째 딸을 연모했던 야곱의 순정을 이용해서 야곱의 노동력을 후려쳤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일로 라반은 14년 동안이나 아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야곱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시집 못갈 것 같았던 첫째 딸의 결혼마저도 단번에 해결해버립니다.
성경에 라반이 처음 등장했던 장면을 기억하십니까?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러 나홀의 동네에 이르렀을 때, 아브라함의 종을 영접했던 사람은 리브가의 아버지가 아니라 오빠 라반이었습니다. 원래 딸의 결혼에는 아버지가 관여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오빠가 왜 그토록 적극적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의 종에게서 돈 냄새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사례를 알고 그때의 라반을 다시 보니 그때도 라반은 여동생의 결혼을 수익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던 그의 인생의 결산이 무엇입니까?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창 31:14-15) 두 딸의 평가, 이것이 라반이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삶의 결산입니다.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형통이란 무엇일까요? 인생 잘 산다는건 어떤 것일까요? 세상이 점점 돈에 밝아지고 있습니다. 색에 밝아지고 있습니다. 힘에 밝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밝히는 것이 진정 우리 인생을 밝혀줄 수 있을까요?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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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어긋나서 받은 축복] *잠깐묵상 | 창세기 48장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창 48:14) 유대인들에게는 오른손이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오른손이란 존귀와 영광과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의 오른손은 언제나 장남을 향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임종 직전에 오른손을 장남의 머리 위에 얹고 축복하는 행위는 아버지의 영적, 경제적 권위 모두를 장남에게 상속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야곱의 임종때가 가까워지자 요셉은 자신의 두 아들을 데리고 야곱 앞에 섭니다. 요셉은 야곱의 오른손 앞에 장남 므낫세를, 왼손 앞에 차남 에브라임을 세웠지만 야곱은 손을 바꾸어 얹습니다. 야곱의 오른손이 차남에게 올라간 것입니다. 축복 받을 자격이 없는 차남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오른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른손이 늘상 향하는 곳이 있습니다. 돈이 되는 일, 정보가 모이는 곳, 이익이 될만한 사람에게 언제나 손길이 갑니다.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는 곳을 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손을 뻗을 만하니까 손을 뻗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오른손이 있습니다. 구원과 평안, 은혜와 자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오른손을 뻗을 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오른손은 당신의 독생자가 아니라 우리를 향했습니다. 손을 엇바꾸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고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엇갈린 자리, 그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손이 엇갈린 사건, 우리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세상의 오른손이 닿지 않는 곳에 내 오른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나에게 왼손을 내밀었다고 서운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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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지나 화해로] *잠깐묵상 | 창세기 42장
https://youtu.be/tAgZI9BSNAI?si=LujaNBSN5pOUb0hb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창 42:21) 미운 사람이 사라질 때 미움도 함께 사라지면 참 좋겠지만 미워하는 사람이 사라진다고 해서 내 안의 미움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사라지면 맘 편할 줄 알았던 형들은 22년이란 세월동안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 미움을 해결할 기회도 함께 사라져버릴 줄은 그때는 몰랐을 것입니다. 기회가 사라진 자리엔 후회가 남습니다. 다행스러운건 후회하고 있던 그들에게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화해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용서는 혼자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22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요셉은 이미 형들을 용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화해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워했던 그가, 나를 미워했던 그가 내 눈 앞에 있어야 가능한 것이 화해입니다. 형들에게도, 요셉에게도 이제 그 기회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습니다. 화해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린 쪽은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기회를 지혜롭게 붙잡습니다. 그리고 형들에게도 이 시간이 기회일 수 있도록 조심스레 다가갑니다. 자신이 요셉이라는 것을 형들이 알게 되었을 때 형들이 느껴야 할 죄책감과 수치심, 공포심이 어떨지를 알기에 요셉은 먼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형들을 대합니다. 형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3일 동안 갇혀서 지난 세월 숨겨왔던 미안함과 후회에 직면하고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사실 이것은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를 너머 하나님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자마자 그 죄를 해결할 방법부터 제시하셨습니다. 용서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미 끝난 일입니다. 하나님에게 등돌린 인간을 용납하시기로 하나님은 이미 결정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용서를 확증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나의 죄성에 직면하고 하나님의 용납을 나도 용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 3:15)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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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과 일임의 적절한 균형] *잠깐묵상 | 창세기 34장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창 34:23) 세겜은 정착민들이었고 야곱의 가족은 유목민들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이 세겜 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영주권을 발급해 주자고 세겜이 세겜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가문이 자기네 땅에 정착하게 되면 세겜성의 경제 규모가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주장의 근거였습니다. 기업으로 치면 M&A 제안입니다. 세겜성의 자산 규모, 경제 규모가 커진다는 말에 솔깃했던 세겜성 남자들은 야곱측의 요구대로 모두가 할례를 받습니다. 추장 세겜이 이렇게까지 일을 밀어 붙이는 이유가 그저 아내 한 명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세겜성 주민들은 알리 만무했습니다. 3일 뒤에 자신들에게 무슨 재앙이 닥칠지 모른 채, 그들은 추장의 말을 수용합니다. 지도자의 결정과 그것을 아무 검증 없이 수용한 주민들이 빚어낸 참담한 결과를 우리는 창세기 34장으로부터 읽습니다. 말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고 했지만 그 이면에는 세겜 개인의 탐욕이 서려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세겜성 주민들의 목숨을 담보 삼은 것입니다. 세겜성 주민들이 맞이한 이번 비극은 주민들이 적극 나서야 할 일을 지도자에게 일임했다가 발생한 참상입니다. 동시에 이번 일은 아버지 야곱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을 아들들에게 맡겼다가 생긴 참상이기도 합니다. 나서야 할 아버지가 나서지 않고 나서지 말아야 할 아들들이 나서서 피바람이 불고 말았습니다. 야곱 가문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들이 아버지를 믿지 못해 생긴 비극이고, 세겜성 입장에서 보면 추장을 너무 믿어서 생긴 비극입니다. 지도자를 믿고 맡겨야 할 일인데 사사건건 간섭하다가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반대로 각자가 목소리를 내야 할 일인데 리더를 믿고 맡겼다가 배가 침몰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34장을 묵상하며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 봅니다. 참여와 일임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는 나라이기를 기도합니다.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