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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설교😌
[기업으로 받은 땅] *잠깐묵상 | 여호수아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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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수 1:3-4)
여호수아서는 본격적인 땅 정복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서 ‘땅’은 중요한 주제입니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첫 창조입니다. 종말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입니다. 이것이 새 창조입니다. 첫 창조와 새 창조 사이의 시간, 태초와 종말 사이의 시간을 역사라고 합니다. 성경적 관점에서의 역사란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하늘이 땅을 정복하는 이야기가 태초와 종말 사이의 구원사를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첫 명령은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아담 또한 흙으로 지어진 땅의 존재였기에 존재론적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둘째 아담인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사건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또한 그분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고 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땅의 본질은 혼돈과 공허입니다. 태초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창 1:2). 하늘의 본질은 질서입니다. 혼돈과 공허를 향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질서가 생겼습니다. 카오스가 변하여 코스모스가 된 것입니다. 공허하고 혼돈한 땅에 빛이라는 질서를 부여하신 창세기 1장의 창조가 특정한 역사적 공간 속에서 현실화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여호수아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땅'이란 경제적 가치로 평가되는 부동산 개념이 아니라 하늘의 씨앗이 심기어져서 열매 맺는 공간으로서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기업으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어디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 땅을 어떻게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까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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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하지만 얽매이지 않다] *잠깐묵상 | 여호수아 13장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수 13:1) 여호수아가 늙었습니다. 할일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딛을 때만 하더라도 여호수아는 자기 생애동안 정복 전쟁을 완수할 수 있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매우 많이 남았습니다. 그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혼신을 다했지만 미수복지역이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을까요? 무리하지 않았을까요? 욕심 부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자기 왕국 건설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쉬움이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라도 이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 또한 크지 않았을까요? 모세도 자기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분노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대신에 다음 세대를 위해 신명기를 남겼습니다. 다윗도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막으셨을 때,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들 솔로몬이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모든 건축 자재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일이 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명으로 주신 일이라도 완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든, 힘이 없든 최선을 다했지만 마무리할 여건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꼭 내가 거두어야 할까요? 내 기도의 응답을 꼭 내가 확인해야 할까요? 100여년 전에 한국 땅에 와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수많은 젊은 선교사님들 대부분은 열매를 얼마 보지 못하고 순교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후대 사람들이 그 열매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시간 관념이 달라지는 경험입니다. 일생을 사는 사람은 일평생 자기 소원 성취에 목을 매겠지만, 영생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꿈을 함께 꿉니다. 욕심이 아닌 열심을 낼 줄 알고, 충실하지만 얽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과 내가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을 잘 구분합니다. 은혜가 족한 줄 압니다.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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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당한 여호수아] *잠깐묵상 | 여호수아 9장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 9:14-15) 길을 모르면 물어봐야 합니다. 일을 모를 때도 물어보면 됩니다. 한번 물어보면 될 것을 묻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았던 것은 여호수아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너무 강하고 담대했던 것일까요? 여호수아는 무슨 자신감으로 혼자 결정했을까요?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 것이다"(수 1:7)라고 하셨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려면 내가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인지 항상 물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묻지 않아서 치우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되는 일들도 있긴 합니다. 모세는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의 가나안 땅 동편 정착에 대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와서 결제를 받으라고 요구하시는 깐깐한 상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 싶으면 일단 기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호수아는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기브온 주민의 곰팡이 핀 떡과 찢어진 가죽 부대, 낡은 옷과 신발을 보고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들의 말투와 표정에서 진정성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줍니다. 마치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에게 떡과 가죽 부대, 신발과 옷을 보이며 믿음을 요구한 것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몇가지 정황만 주어지면 쉽게 확신에 도달하곤 합니다. 증거 몇 개만 있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왜 사기를 당하겠습니까? 믿을 만한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행각은 언제나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신앙이란 내 경험과 이성과 느낌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곧 나에 대한 불신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메시지에 대한 의심입니다.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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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의 성] *잠깐묵상 | 여호수아 7장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을 정복했습니다. 말이 안되는 방법으로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성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만 하다가 소리 한번 질렀을 뿐인데 거대한 성이 무너졌습니다. 여리고 성은 외벽의 두께만 2m이고 높이가 7m입니다. 외벽 안쪽으로는 14m의 내벽이 또 있었다고 합니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무너진 것입니다. 눈앞에 벌어진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고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모두가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동안 아주 은밀한 계획을 혼자 실행에 옮기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간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전리품도 취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셨지만 아간은 손대지 말아야 할 물건에 손을 댑니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수 7:21) 아간이 손을 댄 장물 리스트입니다.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오십 세겔의 금입니다. 시날은 ‘쉬느아르’라는 수메르와 아카드로 알려진 지역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입니다. 그러니까 시날에서 만든 외투라는 건 당시 최고 명품 자켓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에르메스 자켓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그리고 한 세겔이 10g 남짓이니까 아간은 은화 200개와 500g 골드바 하나를 슬쩍 한 셈입니다. 은화나 골드바는 언젠가 표시 안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옷은 어디 입고 나가면 단번에 티가 날 옷인데, 입지도 못할 옷이 그 순간에는 그렇게 갖고 싶었을까요? 거대한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리는 중에도 한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탐욕의 성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진정한 난공불락의 성은 여리고가 아니었습니다. 여리고는 하루에 일곱 번도 돌 수 있는 성이었지만 우리 안의 욕심은 평생을 둘러봐도 시간이 모자랄만큼 크고 광활하지 않습니까? 욕심의 끝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인간이 우주의 끝을 논하는 이 시대에도 욕심의 끝은 아득할 뿐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오늘도 욕심이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게 하나님이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길 기도합니다.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