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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햇살 자랑

ㅇㅅㅇ
Category
  1. 일기 : 실패한 실험
Date
Feb 24, 2021
지난 주말에 친구가 책방을 오픈했다. 나는 거기서 일을 도왔다. 끼리끼리라고 얼굴을 비추러 온 친구의 친구들도 자영업자였다. 손님을 기다리며 우리는 둘러 앉아 커피를 마셨다. 벽의 두 면이 통유리인 친구의 책방은 햇살 맛집이었다. 우리는 책방에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칭찬했다. 다들 자기 가게가 있다보니 자연스레 대화는 '햇살 자랑 콘테스트'가 됐다.
참가번호 1번 카페 사장님은 자기 가게엔 오전 10시 쯤 볕이 잘 드는데 안쪽 벽이 나무재질이어서 꼭 평화로운 숲 속의 거대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자랑했다. 참가번호 2번 술집 사장님은 창이 서향이라 낮 동안엔 볕이 잘 안들지만 어차피 그 시간엔 영업을 안 하니 괜찮다고, 그래도 오픈 준비할 때 보이는 노을이 참 좋다며 웃는다. 주방에서만 보이고 어차피 그쯤엔 들어오는 손님도 없지만 그래서 저 노을이 오직 자기만을 위한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햇살자랑을 하는 참가자들의 얼굴은 참 좋아보였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한마디 씩 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차례가 돌아왔다. 친구가 묻는다. "너네 거긴 어때?" 친구의 친구인 사장님들이 묻는다. "00씨도 가게 하세요?"
가게는 아니지만, 나도 내 공간을 갖고 있긴 했다. 누군가는 사무실(자식이 뭔가 그럴듯한 일을 하고 있으리라 믿는 부모님 시점)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작업실(프리랜서 친구들 시점)이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아지트(술꾼 시점)라고 부르는 월세 10만원짜리 노옵션 옥탑방이다. 나는 거기다 동네 형이 준 컴퓨터, 거실에서 자리만 차지하던 산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소파, 누군가 버린 책상,책꽂이,라꾸라꾸와 당근마켓에서 산 커피포트를 가져다 두고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쯤 자랑할만한 햇살이 비추는지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주절댔다. ”어...그냥 작업실?같은게 있긴 한데 햇살은 잘 모르겠네요? 신경쓰질 않아서?“ 내 말을 들은 사장들은 어떻게 그걸 신경쓰지 않을 수 있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게는 그 갸우뚱이 자기 일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가장 좋은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을 모를리가 없다는 비난처럼 느껴졌다.
억울했다. 나는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르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작업실에서 어떤 이야기를 쫓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작은 축제를 열고, 그 축제가 그들의 밥벌이가 되는 유토피아적 이야기. 경제성이 지극히 떨어져 보이는 계획이긴 했지만 나는 이것이 아주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이전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도전하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 또한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근사함과 자부심을 아무리 되새겨봐도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내 자리에 들어오는 가장 좋은 햇살을 모른다. 햇살을 자랑하는 사장님들의 얼굴은 분명 좋아보였는데, 어쩌면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왜 나는 내 자리에 들어오는 가장 좋은 햇살을 모를까?
작업실 구석의 소파에 앉아, 노옵션 원룸의 한가운데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책상을 바라봤다. 책상은 때마침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서 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만큼 내 삶이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남들이 커리어를 시작할 나이에 배달과 청소와 단기 알바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게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를 자주 고민했고, 작업실로 출근할 땐 돈 없는 백수가 무슨 작업실이냐는 시선을 두려워했으며, 집에 돌아갈 땐 외롭고 낙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통장 잔고를 볼 때면 언제나 인생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나는 이 모든 짓거리가 사실은 근사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걸 결국엔 깨닫게 되는 것이 두려워 '실험'이라는 실패의 가능성을 포함한 단어로 내 프로젝트를 수식했다. 요컨대 나는 내 일을 만들어내고, 그걸 사랑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결과로 얻은 삶까지 사랑하는데는 실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의 밝은 면과 그림자의 사이에서만 헤매느라 그 일을 비추는 햇살은 볼 생각도 하지 않은 꼴이었다.
간신히 그림자에서 눈을 때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작업실에 들어오는 햇살이 보인다. 처음으로 보는 햇살이었다. 지난 주말에 제일 좋은 햇살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잘 모른다는 내 말이 다른 이들에겐 행복하지 않다는 SOS로 들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갸우뚱했던 표정의 의미도 멸시가 아니라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런 걱정의 의미였으리라. 어쩌면 누군가는 내게 햇살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해보라는 충고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들도 분명 나름의 그림자를 갖고 있었을 텐데. 책을 팔아서 먹고 사는 건 늘 힘든 일이었고, 정이 들라손 치면 사라지고 마는 것이 동네카페인데다가, 요즘 술집은 10시면 문을 닫아야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림자에 대해 말하는 대신 햇살을 자랑했다.
햇살을 자랑하던 그 좋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나도 이제 한걸음 물러나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에도 주의를 기울여보겠노란 생각을 했다. 내 서사를 과장하며 불안을 감추려 애쓰는 대신 그냥 내 삶을 사랑해보기로 했다.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점에만 집중하는 방법으로. 이런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건 아님을 물론 알고 있지만, 일이 놓인 책상보다 내 삶을 놓은 공간을, 그 공간을 채우는 햇살을 바라보기로 했다.
자기 자리의 가장 좋은 햇살을 자랑한다는 건 결국 자기의 일을, 그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이런 자랑은 증명서 하단의 자필 서명과 같은 것이다. 사랑을 행복으로 완성시키는 공증의 서명.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오후 4시다. 서향으로 난 반원형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작업실 안을 따뜻한 주황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의 이 햇살이 가장 좋은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햇살 자랑 콘테스트에 끼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분명히 할 말을 마련해두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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