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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상반기 일대일 양육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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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과 간증 - 나의 출애굽
주제큐티
1
  • 안식
효과적인 간증문
독후감
1
  • 안식
팔복 (마5:3-10)
주일설교
1
  • 안식
시간관리 - 급한 일과 중요한 일
주제큐티
2
  • 안식
내가 오늘 약하여서(삼하3:21-39)
주일설교
2
  • 안식
사랑받고 사랑하고 (엡 5:21-33)
주일설교
3
  • 안식
큐티 - 날마다 촉촉히 적셔주는 이슬비
주제큐티
3
  • 안식
기도 - 기복을 넘어 팔복으로
주제큐티
4
  • 안식
중독(수 10:15-28)
주일설교
4
  • 안식
하나님 : 100% 옳으신 하나님
주제큐티
5
  • 안식
예수 그리스도: 영혼 구원을 위한 십자가
주제큐티
6
  • 안식
성령님 : 갈등충만은 성령충만
주제큐티
6
  • 안식

중독(수 10: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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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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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주차
4
15.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16.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마케다 굴에 숨었더니
17.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다섯 왕들이 마케다 굴에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매
18.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큰 돌로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지키게 하고
19.
너희는 가만히 있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뒤에 있는 자들을 쳐서 그들이 자기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
2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쳐서 거의 진멸하였고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간지라
21.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마케다 진영으로 여호수아에게 돌아왔고 입을 열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22.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다섯 왕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3.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낼 때에 여호수아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군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처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굴 속 곧 그들이 숨었던 굴에 던지고 굴 어귀에 큰 돌들을 놓아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지난 1월, 한 정보 컨설팅 업체에서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정보가 담긴 성매매 리스트를 두 차례에 걸쳐 공개한 바 있습니다. 이 명단에는 의사, 변호사는 물론 경찰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까지 깊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언론 매체는 이들 중 목사로 추정되는 인물도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리더이자 양 떼를 돌보는 목자의 역할을 해야 할 목사님들조차 왜 점점 더 단절되고 깨어지는 관계 속에서 이러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이렇게 파괴된 관계 안에서 죄의 세력은 더욱 빠르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죄가 중독으로 이어지면서, 아버지 세대의 숨겨진 죄가 자녀 세대에게까지 대물림되는 현상도 목격하게 됩니다.
이처럼 끔찍한 죄와 중독과의 끊임없는 싸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요? 세상은 기만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만하는 자가 또 다른 기만하는 자를 속이기도 하고, 또 다른 기만하는 자를 끌어들이려 할 때는 치열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님들과 같이 기만하는 자들과 동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해가 멈추고 달이 멈추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응답이 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 말씀에는 여전히 아모리 족속의 잔당이 굴 속에 숨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끝이 없어 보입니다. 이 끝없는 싸움은 중독과의 싸움과도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중독’에 대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1. 먼저 숨겨진 죄를 다뤄야 합니다.

드러난 죄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죄도 분명 존재합니다. 여호수아 7장을 보면, 아간의 죄가 모든 이들 앞에 드러났고, 그는 돌에 맞아 죽는 공개적인 심판을 받았습니다. 도둑질, 살인, 비방, 상해, 교만, 음주, 원한, 질투—이러한 죄들 중 단 하나만으로도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주일에도 7살 난 딸을 암매장한 끔찍한 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이처럼 죄는 개인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 심지어 다음 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며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중독 역시 그 뿌리를 죄에 두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죄를 진실하게 드러내고 회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엄마가 이런 죄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처벌하지 않으면 이 죄를 제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개된 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숨겨진 죄가 더 무섭습니다. 이것은 더 재하기 어렵고 발견하기도 어렵고 오픈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불순종, 자만심, 이기심, 악한 생각, 의심 이런 것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습니다.
15.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진영으로 돌아왔더라
지난 시간에 아무리 다른 왕을 두려워하지 않냐고 물리치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달도 해도 멈추었습니다. 그래도 여호수아는 길갈 예배로 길갈 교회로 길갈 목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항상 키는 길갈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승리해도 다 길갈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16절입니다.
16.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마케다 굴에 숨었더니
마케다는 예루살렘 남서쪽 32km 지점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 많은 지역입니다. 100% 기도 응답을 받고 전쟁에서 다 이긴 줄 알았는데 가다보니 다섯 왕이 딱 숨어있는 거예요. 명예와 케락과 물질과 정력과 내가 포기하지 못한 세상 다섯 왕을 다 포기하고 승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숨을 곳이 있으니까 딱 숨은 거예요. 우리가 숨을 곳이 없으니까 숨지 않는 것이지 숨을 곳이 있다면 다 숨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망할 때까지 가는 것이 망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시작되고 이제 사건이 닥쳐오니까 뭐 왕이건 화려한 집이건 큰 교회 직분자 모태신앙이다 소용이 없습니다. 인내도 없고 들은 말씀도 없어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감당을 못하니까 자식들 부하들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목숨만 지키겠다고 굴속에 숨었습니다. 다서도왕 잘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숨는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면 자식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습니다. 자기만 피해서 숨어버립니다. 부도가 나도 숨어버립니다. 이것이 대적의 실상입니다. 보세요 진짜 그 뭐 가진 사람들은 참 나와서 오픈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사실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이렇게 오픈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정말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화려한 겉모습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약속의 길가리 있는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다섯 왕들이 마케다 굴에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매
참 여기서 숨은 죄를 누가 또 고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희가 수요일 날에는 혈루증 여인의 혈루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이거는 숨어있는 깊은 죄 또 다른 종류의 죄라고 생각이 돼요. 내가 아무리 숨어있어도 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만심 이기심 음란한 마음과 의심을 얼마든지 숨기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기 연민과 위선도 얼마든지 숨길 수 있습니다. 자기 연민은 겸손함과 착한 행동으로 숨기고 자만심과 이기심은 의로움으로 숨길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겉모습으로 죄를 감추려 할 때 나도 속고 남도 속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겨진 죄는 공개된 죄보다 발견하기가 어렵고 제거하기도 어렵고 스스로 드러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죄를 숨기는 역할을 합니다. 숨어서 은밀하게 죄를 행하면 그 죄가 지속적으로 나를 속박하고 중독과 집착에 빠지게 만듭니다. 차라리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말하고 비밀이 밝혀지면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계속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면 중독의 힘은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독은 개인의 취약성과 관련이 있어 그것을 공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독자가 하기 쉬운 첫 번째 거짓말은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 거짓말은 '그래, 나쁜 습관이긴 하지만 언제든지 버릴 수 있어'라고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중독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도 건강하지 못한 관계임을 알지만 '당장 끝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밤에만 되면 강박적인 충동이 재발하면서 그 사람을 찾게 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사단에게 이용당한 느낌'으로 자신을 증오하며도 '언제든지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독은 생각 이상으로 우리를 속박합니다. 제랄드 매이가 책에서 말했듯이 중독은 물질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알코올, 마약, 담배와 같은 물질 중독뿐만 아니라 일과 성취, 책임감, 친밀감, 호감을 받는 것, 남을 도우는 것 같이 비물질적인 중독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누가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있고, 오늘 말했듯이, 저렇게 거식증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감을 얻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고 억지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계속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이 되면 이게 다 중독이라는 것입니다. 중독 중 좋은 중독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신앙생활을 시키는 것, 교회 오게 하는 것, 이것도 사랑으로 해야 되겠는데, 그것도 강박적으로 하게 되면, 그것이 이제 속박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중독은 좋은 것은 없습니다. 좋은 중독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수많은 행위들에 우리가 중독될 수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일들에 어쩔 수 없이 에너지를 들이고 있는 것이라면, 어디든지 중독이 존재합니다.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어요.
죄고백없이 이기적으로 하는 모든 착한 일, 모든 것들에 중독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다섯 왕들은 많은 전쟁을 치뤘지만, 하나님께서 해도 달도 멈추게 할 정도로 강력한 사단의 하수인들이기 때문에 아직도 굴 속에 숨어 있습니다. 중독도 하루아침에 끊어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집착과 중독의 관계는 보기보다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뇌는 한번 가졌던 집착을 결코 완전히 잊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욕구를 자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곧 집착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우리 마음의 속임수로 인해 수많은 중독이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우리를 좌절시킬 때나 갈등을 유발시킬 때, 비로소 그 집착의 심각성을 이렇게 깨닫는 기회를 우리가 참 많이 가지게 돼요. 그래서 다들 내가 그런 줄 몰랐어.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어. 뭐 이런 얘기들을 이제 많이 합니다. 굴속에 숨어 있는 아모리 왕은 이미 결박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화려한 아모리 다섯 왕의 겉모습을 보고 우리가 놀랍니다. 왜 겉모습에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자, 예,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인데 그렇게 놀랍니다. 여러분의 숨겨진 중독은 무엇입니까? 저는 뇌 속의 중독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이 있겠지만 인정 중독이 참 제일 심각한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일생을 살면서 두려워하는 것을 꼽으라고 하면요. 자다가도 꿈에서도 제가 막 너무 놀라는 게 피아노 시험 치는 거예요. 실기 시험 치는 거. 그러니까 정말 수많은 실기 시험을 치고 또 칠 때마다 그 몇 분 안 되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 입시를 치고 대학에 가서도 수없이 또 실기 시험을 치고 연주를 했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떨렸을까요? 너무 떨려서 막 우리 약 먹어야 돼요. 그런데 그것이 이제 항상 성적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그러기 성적을 좋은 성적을 또 안 받으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다 좋은 것 같지 않아요? 그렇죠? 저는 장학금 받아야 되니까, 이게 착한 소녀 아니에요? 근데 매일매일 떠는 게 그게 뭔지 실체도 몰랐어요. 근데 인정받아야 하고 그것은 철저하게 나의 유익을 위해서 하니까 그렇게 떨리는 거예요. 입시와 딱 직결이 돼 있고. 그 최고의 대학과 직결이 돼 있고 나중에 또 진로와 직결이 돼 있으니까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그냥 날마다 떨리는 겁니다. 그 몇 사람 앞에서 그렇게 평생 떨리던 제가 지금 구름 떼 같은 여러분들 앞에서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들, 이게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제가 승진과 진급을 위해서 여기서 이렇게 설교한다면 제가 옛날에 심장마비 걸려서 돌아가셨을 것 같아요. 또, 여러분만 듣는 게 아니고 정말 얼마나 수 많은 청취자들과 시청자들이 보고 듣고 하겠습니까? 근데 제가 설교할 때 떨릴까요? 네? 떨릴까요? 제가 긴장은 하지만 이것은 나의 이해 타산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기 때문에 설교할 때 떨리지 않습니다. 아주 안방 같이 앉아서합니다. 근데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지 못해서 제가 안타깝고 긴장하는 것은 있지만 제가 막 그냥 그 사람들 앞에서 인정 받으려고 부들부들 떠는 거, 그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고 여기 성령 받지 못한 사람 보고 여기 올라와서 설교하라고 하면, 다 부들부들 떨어서 할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래서 이제 그렇지만은 그럼에도 제 뇌에는 인정중독이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것이 저에게 조금 남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항상 최고를 해야 되고, 이러니까 설교도 이 완전주의가 있어서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분명히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운 것은 항상 욕심 때문입니다. 거기에 또 제 욕심이 없겠습니까? 아무리 힘든 사람도 다 나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나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공개된 죄도 처리하고 숨겨진 죄도 처리해 주실 주님을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내 힘으로는 중독을 끊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치료가 시작됩니다. 가장 첫 단계가 나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나는 인정중독자입니다라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은 뭐라고 고백하고 싶습니까? 나는 마약 중독자입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나는 인정중독자입니다. 여러분들 속으로 생각을 해서 한번 다 고백을 지금 해보세요. 옆사람 안 들리게 이제 옆사람 안 들리게 발을 구르면서 한 번 자 나는 무슨 중독자입니다. 시작 나는 인정중독자입니다. 여러분들이 뭐가 중독이 치료되겠어요. 그리고 이제 마지막 단계는 보다 더 큰 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보다 더 큰 힘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중독은 우리 본성의 일부인 동시에 본성의 대적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받는데 가장 방해하는 것이 중독입니다.
그러나 또 역설적이지만 그러므로 그 중독이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깊이 깨닫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억압과 중독, 그 밖의 모든 인간의 마음에 자유를 억압하는 내적 외적 힘들을 다 능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중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은혜밖에 없어요.
그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건 세상이 알지 못하는 힘입니다.
저는 큐티야말로 중독 치료소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큐티를 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나 신안고백 없이 큐티를 문자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문자중독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큐티를 하는데도 나는 되는 게 없어.
이 사람들은 글자로 보고 하는 문자중독자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바리세인 같은 문자중독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 적용해 보십시오.
1.
오늘이라도 끊을 수 있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중독과 숨겨진 죄는 무엇입니까?
2.
내가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내 죄를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 축복임을 믿습니까?
3.
그렇게 해서 드러나게 하신 것이 있습니까?

2. 중독에서 해방되려면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합니다.

18.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큰 돌로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지키게 하고
19.
너희는 가만히 있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뒤에 있는 자들을 쳐서 그들이 자기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
여호수아가 숨은 것을 다섯왕이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바로 죽이는 게 아니라 굴 어귀를 막아서 지키게 하고, 그 다음에 무엇을 지시하는 거 보니, 남은 적군들을 가서 물리치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여리고 전쟁, 아이 전쟁 다 겪다 보니까 어떻게 전쟁을 해야 하는지 여호수아가 알았습니다. 저 같으면 다섯왕이 숨었다고 하면 부하 장병들 앞에서 내가 이 아모리 다섯왕을 물리쳤다고 자랑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장관, 군무총리 이런 다섯 명이 우리도 꽤 와서 설교를 듣고 이제 너무 은혜받아서 이제 목사님이 가서 복음 제시만 하면 영접하게 생겼어요. 목사님, 빨리 찾아가세요. 그러면 제가 의시되고 가지 않겠습니까? 여수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내버려 둬라. 그들보다는 남은 적군을 먼저 물리쳐라. 결국, 여호수아는 사단의 모든 것을 알고 장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될지 알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두목부터 쳐야 되고 어느 때는 졸개부터 쳐야 되는 것이 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인도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전쟁에서는 이 두목들이 이빨 빠진 호랑이기 때문에 내버려 두라고 하는 거예요. 언제나 이게 또 통용되는 건 아닙니다. 뒤에도 그 이유가 나옵니다.
20절부터 입니다.
2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쳐서 거의 진멸하였고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간지라
21.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마케다 진영으로 여호수아에게 돌아왔고 입을 열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혀를 놀려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은 비방하는 사람이 그동안에는 있었다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많아서 이것도 포기 못하고 저것도 포기 못하고 하니까 어떤 것도 진멸을 못합니다. 그래서 자꾸 욕심을 남겨두니까 혀를 놀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부하 남은 적군들을 다 물리치고 나니까 지금 혀를 놀려 이스라엘을 비방하는 사람이 없다고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대단한 왕같은 사람을 전도해서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 힘든 사람을 찾아가서 전도할 때,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지금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중독을 얘기하면서 왜 이 얘기를 하는가, 이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정말 힘들고 소외되고 이런 사람부터 찾아가서 돕는 게 얼마나 중독 치료에 아주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이 얘기입니다. 제가 설교하는 것은 아모리 왕의 입장, 지금 또 여수아의 입장, 군졸의 입장, 그 다 입장을 따라서 자기가 여호수아 입장도 대보고, 아모리 왕의 입장도 대보고, 군졸의 입장도 대보고, 이게 큐티고 그리고 그 말씀이 오늘 나에게 임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지금 처음 온 분들은 아모리가 뭐예요? 아모리가 방언, 방언의 목장에서 설명을 들으시기 바라요. 환란당하고 빚진 자, 한 영혼은 대통령 한 영혼과 똑같은 영혼입니다.
1년 내내 환란당하고 빚진 자 보내달라고 기도했더니 우리들 교회 모든 비방거리에 대해서 조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줄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여성 목회자입니다. 얼마나 비방할 일이 많겠습니까? 우리나라가 1600년의 불교 문화와 500년의 유교의 제사 문화, 이런 여성 비하 문화에 익숙한 유교 사회입니다. 그리고 지금 기독교가 들어온 지 한 130년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고정관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견고합니다. 이런 가운데 여성 목회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비방받고 조롱받을 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힘든 사람, 어려운 사람들 오라고 하니까 비방거리가 자꾸 줄어든 거예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도 계속 그 어렵고 힘든 그런 것만 찾아 다니셨어요. 우리가 예수님 목적이 믿는 목적이 그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린 핑계댈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틀렸어, 교회가 틀렸어, 집안이 틀렸어 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 할 일 열심히 하고 있으면 혀를 놀려 비방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맨날 왕들하고만 놀려고 하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숨어있는 왕들은 내버려두고, 내 할 일부터 하십시오. 지금 제가 일대지에 숨겨진 죄와는 완전히 다른 부분에 지금 적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와의 이야기를 오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영혼은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서당보다는 군졸들을 전도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
동창회 가서 전도한다도 좋겠지만, 정말 힘들고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면 비방을 덜 받습니다. 혀를 놀리는 사람이 줄어듭니다.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에서 일은 다 쓸데없다 이러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핍박받는다고 핍박증후군에 속하는 것도 중독입니다. 저도 이런 중독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여성이라서 핍박받는 것은 팩트입니다.
그러나 제가 주제를 인정하고 알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제 자존감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누가 핍박을 합니까? 자기가 자기를 핍박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열등감의 소치인 소리는 할수록 무시받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목에 힘을 줍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혀를 놀려 비방할 때 나의 잘못인가 의의 핍박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근데 혀를 놀려 비방당할 때 상처가 되면 이렇게 숨게 되어 혼자의 세계로 가서 중독으로 간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비방당하지 않기 위해 항상 낮은 자, 힘든 자를 먼저 돕고자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학교 가도 상처, 교회 가도 상처, 이 교회 가도 상처. 그런데 저도 평생 댕겼지만 상처 때문에 어디서 옮긴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남편을 옮기거나 시어머니를 옮기거나 뭐 이렇게 제가 이 교회 사역을 하면서도 이 뭐든 다 틀려서 그런 적은 진짜 평생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근데 항상 그냥 사역을 하면서도 이 교회도 틀렸고 저 교회도 틀렸고 우리나라가 틀려서 이민을 가야 되고 이 남편이 틀려서 또 남편. 바꿔야 되고, 아내 바꿔야 되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낮은 자를 돕고자 하면 그 마음만 먹어도 중간은 갑니다. 나의 잘못으로 비방당한다는 것을 인식하면, 혼자만의 세계에서 중독으로 괴로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급한 일인가 중요한 일인가, 이게 영적인 일인가 유괴일인가. 이 말입니다 우선순위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을 목표로 놓지 않으면 분별이 안 됩니다.
적용해 보십시오
1.
복음을 전하기 위한 영적 전쟁에서 나에게 가장 우선순위는 어떤 사람입니까?
2.
가난한 형제와 친구는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교회 데리고 갔을 때 내 체면을 살려줄 사람만 전도하지 않습니까?
3.
나의 그런 태도 때문에 믿는 자로서 비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3. 세 번째입니다. 중독에서 철저하게 승리하려면 실제로 삶에서 목밟기 적용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삶에서 목밟기 적용을 해야 합니다. 무섭죠? 24절입니다.
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낼 때에 여호수아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군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처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굴 속 곧 그들이 숨었던 굴에 던지고 굴 어귀에 큰 돌들을 놓아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원수로 내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는 원수의 목을 밟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해도 집안에서도 살아있는 교육을 해야 교회도 가정도 성장합니다. 로마서 16장 20절에 평강에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의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예수의 은혜가 너에게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의 군장이 군장들이 그 사탄을 상징하는 다섯 왕의 목을 밟았습니다. 은밀한 죄는 거듭거듭 우리를 미혹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죄를 발 아래 놓고 밟아야 합니다.
근데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외도나 부정을 행한 것이 알려지는 것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바람을 처음 피웠을 때는 찾아가서 모두에게 알리는 방법이 효과가 있습니다. 군력을 당해야 딱 끊습니다.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그래야 끊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처럼 불륜이 드러나서 수치를 당할 수 있는 것이 죄를 끊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는 수치를 당했지만은 그것 때문에 천국 간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것도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에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가서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끄떡도 안 합니다. 그래서 그걸 또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어쨌든 다섯왕이 발로 밟히는 군력을 당하면 빨리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요수하는 자신이 발로 밟을 수 있는데도 전쟁에 참가했던 군장들을 불러서 밟으라고 했습니다. 승리를 직접 체험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들의 양육과 훈련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교회를 목사 혼자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이 이제 각자의 삶에서 끊지 못했던 죄의 목을 밟고 왕 같은 세상 가치관들을 물리치는 이런 승리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성장하고 한 영혼이 성장합니다. 큐티는 단순히 시간을 내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내 죄를 발견하고 그 죄에 대한 목밟기를 매일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들교회 예배의 특징은 각 부서 설교 뒤에 적용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여자 문제를 일으켰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왕따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는데 자신도 따돌림 당할까 봐 못했다고 고백을 하고 이제 말씀을 듣고 용기를 내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청년은 담배를 끊지 못했는데 끊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냥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강대 쌍에 올라와서 지체들 앞에서 그런 적용을 합니다. 이것이 목밟기 적용입니다. 외도의 목을 밟고 왕따 문제의 목을 밟고 끊기 힘든 술, 담배, 음란 이런 목을 밟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시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적용을 하고 결단을 하니까 하나님이 더 힘을 주십니다. 그것을 보고 끊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냅니다. 멀리서는 목을 밟을 수 없습니다. 가까이 가서 다섯 왕 죄의 실체를 보고 내가 적용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하는 것을 보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직접 가서 적용해 보라고 요수아가 군사들을 훈련받고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 훈련입니다. 25절입니다.
2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한때 위세를 떨치던 다섯 왕들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두려워서 어떻게 목을 밟겠습니까? 목 밟기 적용을 하려니까 두렵고 떨리고 자존심과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도저히 못할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떻게 여자 문제를 적용하겠어? 이 목자가 어떻게 술, 담배를 아직 못 끊었다고 하면 어떻겠어? 난 못해, 못해. 돈의 목을 밟고 쾌락의 목을 밟고 명예의 목, 체면의 목을 밟는 적용을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땅끝까지 내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모리 왕들처럼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은 돈으로 숨고 지연으로 숨고 학연으로 숨고 끝까지 숨는 것밖에 못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참 천국 가기 어려워요. 아주 확률적으로 가진 사람들은 이 드러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죄를 짓고 드러내지 못하면 최후는 멸망과 심판입니다. 그래서 숨을 데가 없는 것이 축복입니다. 나를 숨겨줄 돈과 지휘와 학벌이 없어야 목 밟기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두려워 말라고 군장들을 격려했습니다. 목 밟기 적용을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내가 죄를 고백하고 죄를 끊도록 적용하는 것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내서 죄의 목을 밟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다른 이들을 돕게 되면 여호수아 같은 리더십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적용해 보십시오.
1.
오늘 어떤 목 밟기 적용을 할까요? 중독의 목을 밟기 위해서 우리가 대단한 것부터 하려는 것 아닙니다.
2.
좀 커피를 줄이시는 게 어떨까요? 우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 나라에서 정말 직거리만한 월급에 너무 비싼 커피를 날마다 마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리들교회 카페부터 좀 줄이시기를 바라요. 그 비싼 커피를 오시면 모두가 이렇게 한 잔씩 먹고 그럽니다. 자, 이 커피를 좀 줄이세요. 커피를 줄이세요. 얼마나 가정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아세요? 그럼 우리가 술이 안 먹는데 커피나 마시자. 그런 정말 대체하는 정말, 그게 대단한 수입원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실 때는 자판기 커피, 그리고 이제 다방 커피도 있고 어떻게 목사님은 자기는 안 마시면서 그럴 수가 있는가? 아니요. 저도 너무나 다방 커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중독이라는 게 딴 게 아닌 것 같아요. 하루에 한 잔을 참 먹기를 즐기는데, 저는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것도 중독이라고 생각해요. 이 땅에 좋아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커피 한 잔이 맨날 아락아락, 이렇게 오락가락해요. 중독이라고 생각돼요. 게으름에 목을 밟기 위해서는 운동을 시작하고, 충동에 목을 밟기 위해서는 신용카드 두고 외출하기. 뭐, 이렇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부터 좀 해보시기 바라요. 26절입니다.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처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도와달라고 나의 중독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미 구원받은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내 죄는 십자가의 자리에서 처형돼야 합니다. 저주받은 자리 목밟기로 처형돼야 합니다. 자, 힘들게 하는 아이가 집을 나갔습니다. 이 엄마는 어디서 나눌 데가 없습니다. 나눌 데가 없어서 우리 늦게 와서 이걸 나누니까 나누기만 해도 너무 기뻤는데, 게다가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나누고 기도하고 돌아오니까 다들 내일처럼 아까 기뻐해줍니다. 아까 올게 중이온 목장식구들에게 영광을 돌리잖아요. 그렇죠? 애들이 얼마든지 나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냥 뭘 조금 가진 아모리왕 같은 사람들은 그걸 다 숨기느라고 바빠요. 아들이 나간 것도 뭐, 남편이 바람피운 것도 맨날 숨기느라고 바쁩니다. 그렇게 마케다 굴에 숨으시면 치료가 안 됩니다. 내가 목밟기를 통해서 나무에 매어 달고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우리의 모든 저주의 죄를 대신해서 달리셨습니다.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굴 속 곧 그들이 숨었던 굴에 던지고 굴 어귀에 큰 돌들을 놓아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그렇게 내가 매달면 우리의 죄는 영원히 기억도 되지 않게 소멸되어 집니다. 굴 속으로 영원히 던져집니다. 죄가 죽음에 넘겨지면 그 다음에는 승리의 행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후로는 여수아가 이기는 전쟁만 하게 됩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의 많은 목장 나눔을 읽어드렸어요. 정말 듣기도 숨이 가쁜 이런 나눔을 읽어드렸어요. 자기 목밟기 적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걸 읽어줬을 때 그 당사자들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면 어떡해 라고 생각한다면 나눔을 안 하는 게 낫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십자가에서 죄가 처리되지 않은 것입니다. 죽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한번 오픈한 것을 주님께서는 기억도 안 하시고 오늘 굴 속으로 집어넣어서 도말하신다고 했어요. 세상의 모임과는 절대 다른 것입니다. 영원히 굴에 던져놓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아서 오늘날까지 있더라고 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기억도 안 하십니다. 죄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정복하기 원하십니다. 자백은 했는데 아직도 굴에 끼고 있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이제는 목을 밟고 십자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야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한 번 매달면 승리와 부활밖에 없습니다. 자 보십시오. 내가 목밟기 적용을 했어도 26절에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처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했습니다. 군장들이 다섯 앙에 목을 밟았어도 마지막에 진짜 죽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입니다. 내가 적용했다고 하루아침에 다 죽지 않습니다. 자 누군가가 적용을 했습니다. 제가 계속 그것을 적용의 재료로 삼아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가 적용했더니 목사님이 그걸 읽어서 십자가에 매달아서 읽어주셨다고. 목장 모임에 가서도 또 이제 목사님이 읽어주셨으니까 또 목장 모임에서 십자가에 대롱대롱 내가 그거 매달렸다고. 그래서 그걸 너무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자 우리가 이렇게 나눔을 하면 제가 그것을 설교에서 다시 한 번 인용하면서 목을 밟아주죠? 진멸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나누고 해석하고 선포하고 가는 것이 죄를 이겨가는 방법입니다. 딴 것이 없어요.
큐티가 중독치료소라고 했습니다. 28절입니다.
28.
그 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취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쳐서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치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더라
모든 사람을 진멸했다고 했습니다. 진멸의 원어가 헤렘인데 이게 이제 아간과 같은 단어예요. 우리도 헤렘이에요. 우린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진멸 당할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21가지 죄의 목록으로 인해서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진멸 헤렘의 종지부가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진멸 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헤렘 사상이 하나님의 복음을 더 은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7장부터 쭉 보면 그 죄의 핵심 내용이 다 들어있습니다. 죄의 실체는 탐욕입니다. 아간의 탐욕입니다. 탐욕 때문에 죄를 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심각하지가 않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다섯 왕들은 숨었다가 죽었습니다. 멸망, 포로에서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냥 죽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눈물을 흘리면 돈이 보이고 다른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죄가 보이는 것이 해결 과정입니다. 드디어 이때부터 여우수아가 죄의 실체를 알고 심각함을 알고 해결의 결과를 알았습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여우수아는 이후로 계속 승리의 전쟁을 합니다. 그 다음부터 지는 법이 없습니다. 계속 이겼습니다. 죄와의 전쟁은 이렇게 이겨가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중독되었다는 것이라고 아까 표현했는데 이 중독에서 이렇게 철저한 승리를 하려면 힘없이 말씀을 통해서 죄에 대한 연구를 하고, 묵상을 하고, 적용을 하고, 나눔을 하고, 선포를 하고 이것이 바로 완전히 이기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어디서도 그 치료책이 없습니다. 바로 이 말씀, 이 공동체, 길갈 공동체가 죄의 중독의 치료소라고 생각이 됩니다. 한 중년 법률가가 특정 성관계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한 동료에게 매력을 느껴왔는데 어떤 장기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여 밀접한 관계로 일하게 되면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아내가 모르게 하면서 아내를 속이는 것이 싫었지만 그의 연인은 그에게 수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정말로 살아있고 자유롭다고 느끼게 해줬대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그것이 중독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진짜 로맨스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연인을 만났습니다. 그녀에게 선물을 주고 그녀는 그의 가슴 속 열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 관계에 강요된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매주 한 번씩 찾아오는 자존감과 성적 해방을 위한 마약주사를 갈망했으나 만남 후에는 매번 우울해졌습니다. 가고 싶지 않지만 왠지 가야만 한다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셀 수 없이 여러 번 불륜을 끝내려고 결심했으나 또다시 상대방의 품속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었습니다. 진지하게 떨어져 지내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들키거나 연인이 앙심을 품게 될까봐 점점 두려워졌습니다. 근데 이때 잘한 것이 그가 의사를 만나고 믿을 만한 친구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오픈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오픈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한 두 사람에게도 꼭이 숨겨진 죄를 오픈해야 합니다. 그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없었지만 그들은 뭘 가르쳐줬는가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강박관념에 빠져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일은 고통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이제 마지막, 이제 마지막이라고. 그래서 이제 안 만나기로 했대요. 그렇게 끝이 났대요. 싱겁죠? 나중에 그는 그렇게 말했어요. 그냥 다시는 만나러 가지 않았어요. 그게 다였어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에 대해 감탄하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을 회상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그것보다 내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녀도 그녀 자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나는 그저 그저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자, 이 법률가는 뭐 이 믿음도 없는데 이 불륜 사건 이후에 수년 동안 계속해서 다른 여성, 많은 여성에게 끌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재빨리 그리고 단순하게 처리하게 되었어요. 그 여성과 함께하는 환상을 물리치려고 싸우거나 마음속에서 몰아내려고 애쓰지 않았대요. 그러나 거기에 빠져들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것은 진화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술을 커피로 대체하려고 이러면 안 돼요. 이 중독이 큰 것입니다. 이 법률가의 특징은 솔직한 연약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우스는 유혹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랬어요. 놀래루야. 예, 그러니까 뭐 바람을 폈는데 그냥 뭐 끊는다. 이 끊는다는 걸로 다가 되는 게 아니에요. 부부간에도 좀 적용을 많이 잘 해보세요. 저는 우리들교회 성대 여러분들도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중독에 노출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교회가 뭐가 다른 거 하면 우리들교회에서는 목장에서 날마다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나누다 보면 그러니까 그걸 막 없애려고. 노력하고 그러지 않느냐고 내가 그런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나누다 보면 그 중독의 마음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사람 좋은 거 누가 말려요? 가서 이렇게 얘기를 찾고 하다 보면 얘기를 하다 보면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냥 지나가게 되는데 우리가 공사장 팻말에 들어가지 마시오. 비밀이면 거기 다 들어가 보고 싶은데 아무것도 팻말이 없으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거.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이렇게 목장에서 나누면서 여러분들의 수많은 음란의 중독들이 어느 날 보니까 사그라져 있는 거예요. 그냥 있으면 있는 그대로 가서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목장이 얼마나 중요한 중독치료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중독을 지금 즐기고자 하기 때문에 절대로 목장에 나오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거기 죄의 싹시 딱 숨어있기 때문에 아주 인류일수록 목장에 나오기 싫어합니다. 일류일수록 빨리 나와서 어느 날 시작되는 그 중독을 빨리 치료해야 돼. 누구든지 아무 문제가 없을 때 더욱더 이런 중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저는 신안공동체임은 모든 흔들림을 지탱해내는 위대한 비결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중독을 끊기 위해서 반드시 목장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처방입니다. 그냥 나와서 있는 모습 그대로 팩트를 얘기하시면 되는 거예요. 내가 이런 정말 내 감정의 직면을 했다고.
그렇게 얘기를 자꾸 하다 보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게 종이짱처럼 한 장씩 한 장씩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린 예외 없이 중독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은 결국은 끊어낼 수가 있는 것을 여호수아를 통하여서 보여줍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너무나 길갈의 공동체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상담을 하고 어디를 가도 영원히 이게 끊어질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이렇게 예배공동체 신안공동체만 이걸 끊어질 수 있는 정말 엄청난 500원 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천국 가서 다 이자 쳐서 받겠어요. 제가 말씀을 맺습니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는 숨겨진 죄를 봐야 합니다. 또 우선순위를 알아야 합니다. 또 실제로 삶에서 목밟기 적용을 해야 합니다.
4.
여러분들이 숨기고 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중독을 끊어내기 위해서 사실 힘들고 소외된 사람부터 전도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제 너무나 두렵고 떨리지만은 내가 중독에 걸렸다고 도와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목밟기 적용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언제나 내 모습 부끄럽지만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시게 해달라고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너무나 부끄러워 무릎 꿇어 주님께 기도로 가보니 나 홀로 서있니 죽은 내 형께 웃어 주님만 나를 세워 내 형 살게 하소서 주님 내 안에 내 안에 계시오 주님 내 안에 나를 세워 주소서 언제나 내 모습 너무나 부끄러워 무릎 꿇어 주님께 기도로 가보니 나 홀로 서있니 죽은 내 형께 웃어 주님만 나를 세워 내 형 살게 하소서 주님 내 안에 내 안에 계시오 주님 내 안에 주님 내 안에 나를 세워 주소서 나를 세워 주소서 간절히 고백합니다 주님 주님 내 안에 주님 내 안에 내 안에 계시로 주님 내 안에 주님 내 안에 나를 세워 주소서 나를 세워 주소서 여러분들의 지금 숨겨진 죄는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게 숨겨진 죄를 또 중독을 처리하기 위하여서 내가 내 옆에 힘든 사람들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독의 밑바닥은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 힘으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할 때 아무리 다사당의 목도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제 참으로 우리의 모든 중독을 실제로 삶에서 목밟기 적용을 해야 되겠는데. 우리가 오늘 내가 중독에 걸렸다고 내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도저히 나는 목을 밟지 못하지만은 우리가 각종 중독에 걸렸다고 인터넷 중독, 술 중독, 여자 중독, 동성애 중독 이런 거식증에 모든 것에 걸렸다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주님 도와달라. 내가 이 중독에서 빠져나오기를 원한다 주님, 내가 이 목밟기 적용을 하기를 원한다. 중독에서 해결되기를 원한다고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아버지 하나님, 아무리 다사당의 환경이 되니 이제 구려에 숨는 곳을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가 숨지 못하는 것은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환경이 됨는 이들처럼 저에게도 환경이 되면 숨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 우리에게 길이 없게 하셔서 이 모든 중독을 막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숨겨진 죄가 아버지 하나님 성경에도 나오는데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것이 중독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 참으로 이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내 옆에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하지만은 그것도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중독에 목을 밟아야 하는데 내 체명과 자존심과 이런 모든 것들 때문에 목을 밟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있는 각자의 중독을 오늘 이 시간 아버지 하나님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주님. 우리의 중독에서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우리의 중독에서 나는 고칠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 이 중독을 주님 앞에 내어놓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셔서 참으로 우리가 주님발 아래 엎드려서 우리 중독 각자의 중독위에 주님이 손을 얹으시기, 그리고 이제 참으로 구원받아서 살아나라고 주님께서 안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피 묻은 손으로 안수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가족, 각종 모든 중독. 술과 마약과 음란과 아버지님 자녀와 인종 중독과 참으로 거식증과 우울증, 조울증. 모든 중독에서 주님이 참으로 혈류의 근원이 마른 것처럼, 이 중독의 근원이 마를 수 있도록 주님, 그것이 굉장히 단순한 목장 모임에서 큐티하고 나누고 선포하고 또 나누고 목밟고 하는 너무나 단순한 방법이지만 최고의 방법이 있다는 걸 가르쳐 주셨사오. 공동체를 귀히 여기고 말하고 나누며, 이 중독에서 건진받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역사여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살려주시옵소서. 긍휼극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에 주님이 기름 부어주시옵소서. 손을 얹어주시옵소서, 구원받아 살려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