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 2025.02.10(월) |
책 이름 | 데이비드 이글먼,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필사 X | 우리 시야에 실제로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 ‘맹점’이라고 불리게 된 곳이다. 맹점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면, 왼쪽 눈을 감은 채로 오른쪽 눈으로 그림 속 + 기호를 계속 보면 된다. 그 상태로 종이를 얼굴에 가깝게 댔다가 멀리 움직이기를 반복하면, 검은 점이 사라진다(십중팔구 종이가 약 30센티미터 거리에 있을 때). 점이 맹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리오트 이전에 누구도 시야에 난 구멍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에게는 눈이 두 개 있고, 두 눈의 맹점이 서로 겹치지 않는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의미심장한 이유는, 맹점 때문에 빠진 정보를 뇌가 ‘채워 넣는다’는 것이다. 앞의 그림 속 점이 맹점에 왔을 때, 점이 있어야 할 위치에 무엇이 보이는지 보라. 점이 사라져도, 그 자리에 하얀색이나 검은색 구멍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뇌가 배경 패턴을 ‘만들어서’ 채워 넣기 때문이다. 시야의 특정한 지점에서 아무런 정보가 들어오지 않을 때, 뇌는 그 주위의 패턴으로 그 구멍을 메운다. |
필사 O | 혀가 입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누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기 전에는 아마 혀의 위치를 몰랐을 것이다. 뇌는 대체로 많은 것을 알아둘 필요가 없다. 밖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는 방법을 알 뿐이다. 뇌는 ‘꼭 필요한 것만 안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삼는다. 우리가 혀의 위치를 계속 의식적으로 알아두지 않는 것은 그 지식이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실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을 인식할 뿐이다. |
일자 | 2025.02.11(화) |
책 이름 | 데이비드 이글먼,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필사 X |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생기면 뇌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 과제를 수행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 회로를 조정한다. 과제가 회로에 각인되는 것이다. 이 영리한 전술로 생존을 위해 중요한 일 두 가지가 성취된다. 첫째, 속도. 자동화는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의식이라는 느린 시스템이 뒤로 밀려난 뒤에야 빠른 프로그램들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지금 날아오는 테니스공을 포핸드로 쳐야 하나, 백핸드로 쳐야 하나? 공이 시속 144킬로미터로 날아오는 상황에서 여러 선택지를 의식적으로 차근차근 살펴볼 수는 없다. 우리가 새로운 종목의 운동을 처음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팔다리와 몸통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마구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를 소화하는 데 아직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쌓이면 우리는 상대의 작은 움찔거림과 속임수 중에서 중요한 것을 가려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자동화가 완성되면 의사결정과 행동의 속도가 모두 빨라진다. 둘째, 에너지 효율성. 뇌는 조직을 최적화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화한다. 효율성에 관한 한 연구는 비디오게임 테트리스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뇌를 촬영했다. 피험자들의 뇌는 몹시 활발히 움직이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모했다. 신경망이 이 게임의 기반 구조와 전략을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쯤 시간이 흘러 피험자들이 이 게임의 전문가가 되자, 뇌는 게임 중에 에너지를 아주 조금만 소모하게 되었다. 테트리스 게임 실력이 회로에 깊게 각인되어서, 뇌에 아예 이 게임만 효율적으로 전담하는 프로그램이 생긴 것이다. |
필사 O | 차선 바꾸기 같은 움직임을 기억하는 능력을 절차기억이라고 부른다. 우리 뇌가 갖고 있는 지식에 우리 정신이 드러내놓고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전거 타기, 신발 끈 묶기,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주차하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는 이런 행동을 쉽게 해내지만, 그 방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카페에서 쟁반을 들고 다른 사람들을 피해 움직일 때 근육들이 완벽하게 시간을 맞춰 수축하고 이완하는 과정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데도,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그 행동을 해낸다. 뇌가 해낼 수 있는 일과 우리가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사이에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
일자 | 2025.02.12(수) |
책 이름 | 데이비드 이글먼,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필사 X | 금기에서 벗어난 행동은 전측두엽 치매 환자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전측두엽 치매는 전두엽과 측두엽이 퇴화하는 비극적인 질병이다. 이 부위의 뇌 조직이 사라진 환자는 숨은 충동을 통제하는 능력을 잃는다. 그들이 사회적인 규정을 어기는 온갖 방법을 한없이 생각해내기 때문에,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좌절을 느낄 뿐이다. 환자들은 가게 주인 앞에서 물건을 훔치고,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고, 정지 신호에 뛰어가고, 아무 때나 노래하고, 쓰레기통에서 주운 음식을 먹고, 물리적인 공격성을 드러내거나 성추행을 저지른다. 그래서 법정에 설 때가 많은데, 그들의 변호사와 의사, 그리고 당혹스러워하는 성인 자녀들은 그 범죄가 정확히 말해서 환자의 잘못이 아님을 판사에게 설명해야 한다. 뇌의 대부분이 퇴화해버린 그들의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약은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뇌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사례로는, 파킨슨병 치료 중에 일어난 일을 꼽을 수 있다. 파킨슨병 환자의 가족들과 보호자들은 2001년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프라미펙솔이라는 약을 복용한 환자 중 일부가 도박꾼으로 변해버리는 현상이었다.8 그것도 그냥 심심풀이로 하는 수준이 아니라, 병적인 도박이었다. 전에는 도박과 관련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곤 했다. 예순여덟 살인 한 남성은 6개월 동안 카지노를 전전하며 2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잃었다. 인터넷 포커에 빠져,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액수의 카드빚을 진 사람도 있었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는 세포가 없어지면서 발생하는 병이다. 이 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체내 도파민 수치를 높여야 하는데, 보통은 체내에서 생산되는 도파민 양을 늘리는 방법을 쓰지만 때로는 도파민 수용체와 직접 결합하는 약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파민은 뇌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이다. 운동 기능과 관련된 역할 외에, 보상 시스템의 주요 전달자 역할을 하면서 먹을 것, 마실 것, 짝 등 생존에 유용한 모든 것을 향해 사람을 인도한다. 따라서 도파민 수치에 문제가 생기면, 도박, 과식, 약물중독 등 보상 시스템이 잘못되었을 때의 행동이 나타난다. |
필사 O |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뇌에서 화학물질의 균형이 조금만 바뀌어도 행동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 환자의 행동을 생물학적인 현상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사람의 행동이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예를 들어, “난 의지가 강하니까 도박하지 않아”)라고 믿고 싶어도, 아동성애에 빠진 알렉스나 절도를 저지르는 전측두엽 치매 환자나 도박하는 파킨슨병 환자 같은 사례를 보면서 그런 믿음을 더 세심하게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모두 똑같이 ‘자유롭게’ 선택하지는 못하는 것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