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Sign In

떨림과 울림

139p
인공의 불빛이 거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밤이 더 밤다웠다는 말이다. 밤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것은 달의 몫이었다. ...
달은 감미로움이기도 하다.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은 호수 표면에서 사뿐히 부서지는 달빛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한다.
172p
우주에 빈 공간은 없다. 존재가 있으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지며, 존재의 떨림을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속삭임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힘은 관계가 된다.
일자
2024.01.19 (금)
이름
김상욱, 『떨림과 울림』
필사 X
<지구에서 본 우주, 달에서 본 우주>
1년에 한 번 모두가 달을 보는 날이 있다. 추석이다. 인공의 불빛이 거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밤이 더 밤다웠다는 말이다. 밤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것은 달의 몫이었다. 따라서 달이 가장 밝은 날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으리라. 모든 이가 달이 날마다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달은 분명 밤의 지배자였다. 이 때문에 달은 서양에서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동양에서 달은 태양과 함께 음양의 조화를 이루는 쌍이다. 한가위 대보름이 되면, 서양인들은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를 두려워하며 달을 바라봤고 우리는 축제를 열었다.
달은 감미로움이기도 하다. 드뷔시의 피아노곡 <달빛>은 호수 표면에서 사뿐히 부서지는 달빛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한다. 인상주의 음악이라 할 만하다. 이 곡을 듣다 보면 감미로움은 미각 이라기보다 청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달의 철학자는 우리와 다른 우주론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구의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지상계와 천상계로 나누 었다. 그 경계는 대략 지구와 달 사이에 있다. 지상의 물질은 물, 불, 흙, 공기,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지만, 천상은 에테르라는 원소로 되어 있다. 천상의 물체들은 완벽한 구형을 이루며 시작도 끝도 없는 원운동을 한다. 달의 철학자는 하늘에 고정되어 있는 푸른색 지구를 보며 천상계를 이루는 물질이 다양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오히려 지상계의 물질이 단순하다. 오직 흙만 있다. 더구나 컬러풀한 지구가 완벽한 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필사 O
우리는 달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달은 불길한 것이자 축제의 대상이다. 달빛 속에서 프러포즈를 할 수 있지만, 곤히 잠든 적들을 향해 기습공격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달을 보며 이 야기를 만들지만, 또 누군가는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다. 달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이다. 달에서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올바른 세상이다.
살다 보면 남과 다툴 일이 있다. 여기에는 자기가 옳고 남은 틀리다는 생각이 깔린 경우가 많다. 지구에서 보는 우주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달에서 본 우주도 옳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 위에 정지해 있는지도 모른다. 다투기 전, 달에 한번 갔다 오는 것은 어떨까.
일자
2024.01.22 (월)
이름
김상욱, 『떨림과 울림』
초록색
글씨만
필사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 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떨림이다. 우리가 말하는 동안 공기가 떤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나의 말을 상대의 귀까지 전달해준다. 빛은 떨림이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시공간상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지만 우리 주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하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볼 수 있는 떨림, 느낄 수 있는 떨림도 있다. 집 앞의 은행나무는 영국왕실의 근위병같이 미동도 않고 서 있는 것 같지만, 상쾌한 산들바람이 어루만지며 지나갈 때 나뭇잎의 떨림으로 조용히 반응한다. 사랑고백을 하는 사람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린다. 그 고백을 듣는 사람의 심장도 평소보다 빨리 떤다. 우주의 숨겨진 비밀을 이해했을 때, 과학자는 전율을 느낀다. 전율은 두려움에 몸을 떠는 것이지만 감격에 겨울 때에도 몸이 떨린다. 예술은 우리를 떨게 만든다. 음악은 그 자체로 떨림의 예술이지만 그것을 느끼는 나의 몸과 마음도 함께 떤다.
인간은 울림이다. 우리는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사진은 마음을 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는 심장을 울리고, 멋진 상대는 머릿 속의 사이렌을 울린다. 우리는 다른 이의 떨림에 울림으로 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나의 울림이 또 다른 떨림이 되어 새로운 울림으로 보답받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은 울림이고 떨림이다.
떨림과 울림은 이 책에서 진동의 물리를 설명할 때 등장한다. 진동은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리현상이다. 공학적으로도 많은 중요한 응용을 갖는다. 따지고 보면 전자공학의 절반 이상은 진동과 관련된다. 이공계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의 대부분이 진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동은 떨림이다. 비슷한 말이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진동은 차갑지만, 떨림은 설렌다. 진동은 기계적이지만 떨림은 인간적이다.
사실 물리는 차갑다. 물리는 지구가 돈다는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이보다 경험에 어긋나는 사실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구는 돌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주의 본질을 보려면 인간의 모든 상식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물리는 처음부터 인간을 배제한다.
일자
2024.01.24 (수)
이름
김상욱, 『떨림과 울림』
필사 X
<달은 낙하하고 있다>
지동설은 지구를 일개 행성으로 전락시켰다. 이제 지구상 물체의 낙하는 우주적 운동과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뉴턴이 등장할 차례다. 뉴턴의 중력이론은 낙하에 대한 오랜 철학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의 아름다운 설명을 들어보자.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중력이라는 힘으로 서로 끌어당긴 다. 그래서 중력을 만유인력 31이라고도 부른다. 사과가 (지구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지구와 사과 사이에 중력이 작용하기 때 문이다. 물론 태양이나 화성도 사과를 당긴다. 하지만 우주의 모든 물체가 사과에 작용하는 중력을 모두 더해보면 결과적으로 지구로 끌려가는 힘이 남는다. 거리가 멀수록 중력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 지구와 달 사이에도 중력이 작용한다. 따라서 달도 지구로 떨어진다. 달이 낙하한다고? 사과를 야구공 던지듯 수평으로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한다. 지구가 편평하다면 사과를 아무리 세게 던져도 결국 바닥에 떨어질 거다. 하지만 사과가 낙하하는 거리만큼 땅바닥이 덩달아 밑으로 가라앉으면 사과는 바닥에 닿지 않을 수 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날아가며 낙하한 거리가 (지구가 둥글어) 내려앉은 거리와 일치한다면 말이다. 달이 낙하하지만 바닥에 닿지 않는 이유다.
필사 O
낙하에 대한 단순하고 아름답고 심오한 설명이다.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게 낙하한다. 지구는 태양으로 낙하하고 있지만 태양에 닿지 않는다. 인공위성은 지구로 낙하하고 있지만 바닥에 닿지 않는다. 태양은 우리은하 중심의 블랙홀을 향해 낙하하고 있지만 블랙홀에 닿지 않는다. 뉴턴은 이 모든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F=ma라는 운동법칙을 정립했음은 물론, 이 식을 풀기 위해 미적분이라는 수학마저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