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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나는 그저 이런 생각으로 산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 그런 한도 내에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에
게도 좀 잘해주자. 큰 희생까지는 못하겠고 여력이 있다면 말이다. 굳이 남에게 못되게 굴 필요 있나. 고정
되고 획일적인 것보다 변화와 다양성이 좋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선호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도 내에서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가고 싶은 것이 최대의 야심이다.
인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과잉 기대도 말고 과장된 절망도 치우고 서로 그나마 예쁜 구석 찾아가며
참고 살자 싶다. 큰 기대 않고 보면 예쁜 구석도 꽤 있다. 이건 결국 자기변명이다. 그래야 남들이 나도 참아
줄 테니. 어차피 사람들을 피해 혼자 살 것도 아니면서 인간의 본질적 한계, 이기심, 위선, 추악함 운운하며
바뀌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말고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존재답게 최소한의 공존의 지
혜를 찾아가자. 그게 각자의 행복 극대화에도 최선의 전략일 것이다.
일자
2023.11.17 (금)
이름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필사
<나라는 레고 조각>
나는 그저 이런 생각으로 산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나 끼치지 말자. 그런 한도 내에서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 하며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인생을 즐기되,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에게도 좀 잘해주자. 큰 희생까지는 못하겠고 여력이 있다면 말이다. 굳이 남에게 못되게 굴 필요 있나. 고정되고 획일적인 것보다 변화와 다양성이 좋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선호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껴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가고 싶은 것이 최대의 야심이다.
인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과잉 기대도 말고 과장된 절망도 치우고 서로 그나마 예쁜 구석 찾아가며 참고 살자 싶다. 큰 기대 않고 보면 예쁜 구석도 꽤 있다. 이건 결국 자기변명이다. 그래야 남들이 나도 참아줄 테니. 어차피 사람들을 피해 혼자 살 것도 아니면서 인간의 본질적 한계, 이기심, 위선, 추악함 운운하며 바뀌지도 않을 것들에 대해 하나마나한 소리 하지 말고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 존재답게 최소한의 공존의 지혜를 찾아가자. 그게 각자의 행복 극대화에도 최선의 전략일 것이다.
일자
2023.11.20 (월)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필사X
서교수에 따르면, 행복감이란 결국 뇌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뇌가 특정한 종류의 경험들에 대해 기쁨, 즐거움, 설렘 등의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실증적 연구 결과,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자주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인간이었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인간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끼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동물이었던 것이다. 돈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그룹의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높은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모든 생명체처럼 인간에게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이 핵심 과제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인간에게 생존과 번식에 가장 필수적인 자원은 동료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활동, 즉 동료 및 이성과 어울리는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쾌감이라는 보상을 주어 이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인간 행복의 원천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인테 집단주의 문화가 왜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지에 대해 서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원래 행복의 원천이어야 할 인간관계가 집단주의사회에서는 그 관계의 속성 때문에 오히려 불행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공감되는 얘기다. 맛있는 음식도 내가 원치 않을 매 강제로 먹으면 배탈이 나듯,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리 없다.
필사O
행복에 관한 과학의 연구 결과 중 가장 씁쓸한 진실은, 개인의 행복에 영항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는 유전적인 외향성, 사회성이리는 점이다. 타고나길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 중독증 환자들이야말로 행복해지기 쉬운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다. 그러나 문명은 과학이 밝혀낸 자연의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수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내성적인 이들도 외향적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행복을 느끼는 체질인 것이다. 미각이 지나치게 예민해 강한 맛의 음식에는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이런 차이를 인정해주지않고 무조건 집단이 요구하는 술 잘 먹고 윗분 잘 모시고 분위기 잘 띄우는 씩씩한 전사로 거듭날 것을 강요하는, 그래야 어른 되었다고 취급하는 문화 속에서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의 사회라면 이들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집단의 강요 없이,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취항이 맞는 작은 인간관계들의 고리 속에서 말이다.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일자
2023.11.22 (수)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필사X
<말이 흉기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는 주된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재판 경험에 비취보면 의외로 '자존심'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40년 해로하던 노부부가 있었다. 평소 유순하고 소심하던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 이유는 사소한 말다툼 중 '개눈깔'이라고 내뱉은 아내의 말 때문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눈 한쪽을 잃고 모진 놀림에 시달렸던 그에게 그 한마디는 흉기였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급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찌르는 흉기는 바로 '말'이다. 특히 인터넷은 그 흉기를 죄의식 없이 휘둘러대는 전쟁터다.
단지 주목받고 싶디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줄 수있는 모욕을 가하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인들은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 발언에 대해 사회적 제재를 가한다. 한 NBA 구단주는 여자친구에게 전화로 "흑인과 함께 내 경기장에 오지 마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영구퇴출당하고 구단을 매각했다.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필사O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흔히들 첫번째 질문만 생각한다. 살집이 좀 있는 사람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참말이기는 하지만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는 말이다. 사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말라는 두번째 문만 잘 지켜도 대부분의 잘못은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필요 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더 나아가 진심으로 친구의 비만을 걱정해 충고하고 싶다면 말을 잘 골라서 '친절하게' 해아 한다. 옳은 충고도 '싸가지 없이' 하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진심이 담긴 필요한 말이라고 해도 배려심 없이 내뱉으면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더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말'이라는 무시무시한 흉기를 무신경하게 휘둘러대는 대신 조금만 더 자제하고 조금만 더 친절할 수만 있다면, 세상은 휠씬 평화로운 곳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