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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

일자
2024.03.22(금)
이름
임태수,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
필사 X
브랜드 매장이나 카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등 다양한 공간에 다니다 보면 처음 방문했는데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뭐랄까 괜히 정이 가는 그런 공간이 있다. 온화하지만 답답하지 않은 매장 안의 공기,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잔잔한 음악, 친절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점원, 군데군데 설치된 은은한 조명과 같이 과하지 않되 약간의 포인트로 매력을 뽐내는 공간들이 그렇다.
반대로 잘 차려놓았지만 왠지 다시는 발길이 향하지 않는 곳도 있다. 예를 들어 벽면의 선반이나 디스플레이 매대에 장식된 그래픽 요소, 그리고 의자, 테이블, 스탠드, 화분, 식기류 같은 인테리어 소품이 제각기 과한 독특함이 있어 전체적으로 어우러지지 않는다거나, 직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방긋 웃으며 기계적인 말을 내뱉는 쪽이다.
필사 O
아마 누구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몇 가지 이유로 어떤 공간을 좋아하기도 하고, 반대로 별것 아닌 것 때문에 다른 어떤 공간에는 발길을 끊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하나쯤 좋은 분위기를 지닌 장소가 있다. 장소라기보단 장소가 품은 분위기가 마치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이유가 어디 있겠냐고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일자
2024.03.25(월)
이름
임태수,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
필사 X
섬마을 작은 영화관 '우리각자의영화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어려운 점들이 많다. 배급사마다 책정하는 상영료가 천차만별인 까닭에 입장료와 참석 인원을 정하는 것도 까다롭다. 배급사로부터 거절당하는일도 허다하고, 급작스럽게 일정이나 장소가 바뀌기도 한다. 사실 좋은 영화는 나 혼자 찾아보면 그만이다. 친구에게 영화가 좋다고 한마디 건네는 것이 보통이다. 굳이 외딴섬에서 고생을 사서 하면서까지 상영회를 열지 않아도 된다. 세 사람 모두 회사 일로 바빠지면 지금처럼 주기적으로 상영회를 열기 힘들지도 모른다. 주말에 짬을 내 제주를 오가며 상영회를 준비하기엔 여러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필사 O
일자
2024.03.27(수)
이름
임태수, 『바다의 마음 브랜드의 처음』
필사 X
가장 제주스러운 책방 '소심한 책방'
두 사람은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비교적 느린 편이다. 좋아하는 것에 고스란히 마음을 담아 집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작은 것 하나를 하더라도 마음이 차올라야 가능하다. 정신없이 빠르게 뭔가를 처리하다 보면 스스로가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책방을 열고 한동안은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넘쳐 자신을 옭아매기도 했다. 장인애 대표는 집에서 낮잠을 자다 눈을 떴을 때 책장의 책들이 돈으로 보인 적도 있다. 자연스레 공급률과 책방 수익을 계산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지속하는 유일한 취미가 독서인 그녀는 그토록 좋아하던 책이 책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절망스러웠다. 한동안 현미라 대표에게 모두 맡기고 책방 일을 잠시 손에서 내려놓았다. 총아하는 일이 사무적인 업무가 되어가는 불편한 기분을 느꼈을 때 그 기분을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때 그 불쾌한 기분을 간과했더라면 아직까지 책을 책으로 보지 못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무미건조하게 일했을지도 모른다.
소심한책방이 문을 연 이후로 제주엔 많은 서점이 생겼다.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책을 집할 수 있도록 동네마다 책방이 생기는 건 물론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서점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의식이 된다.
필사 O
가끔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조급해하진 않는다. 이미 두 사람은 이곳에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곳과 경쟁하거나 더 잘하려고 애쓰지 않으려 한다. 장인애 대표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에세이에서 달리기에 관해 언급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루키는 달리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을 달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두 사람이 좋을 만큼만,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 싫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운영한다. 좋아서 시작한 일로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함이다. 조급함은 본연의 색채를 잃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