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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일자
2023.12.29 (금)
이름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필사 X
<ㅊㅊ>
어릴 때는 아직 간지러워서 못 쓰고, 그 또래가 되면 괜히 싱거워서 안 쓰고, 시간이 지나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못 쓰는 단어. 청춘. 자음과 모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과 ㅊㅊ이 들어가는 발음 소리, 푸른 봄이라는 뜻까 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데가 없지만 도무지 언제 써야 할지 모르겠다. 어렴풋하게 지금이 그 순간이고 스멀 스멀 지나고 있다는 걸 알아도 어떻게 쥐고 있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쥐고 있을 수나 있는 건지. 산 정상까지 오르는 발걸음은 지난했지만 내려가기 위해 뒤 도는 순간 기분이 달라지듯, 혹시 지금 내 청춘이 벌써 정상을 지나 하산하는 길인가 하는 마음에 저녁내 뒤숭숭하다.
커가는 길은 힘들고 지루했고, 늙어가는 길은 우울해 서 힘이 죽죽 빠진다. 나는 일생에 언제 기쁠 수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이 뭔지 설명하기 어려우니 행복했던 순간을 그대로 재현해보는 것으로 그 기분을 더듬는다. 청춘도 어느 계절을 콕 집어 청춘이라 하기가 어려우니 대충 그즈음의 마음만 기억하려는 것이다. 내 하루는 대체로 울적하거나 아쉬운데 내가 소년이었을 때의 마음들은 지금보다 더 울적하고 아쉬웠어서 그 시절의 마음들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계속 아쉽고 싶은가 보다. 능숙하고 잘하면 왠지 청춘에서 멀어진 것 같아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능청스러운 모습이 아저씨 같아 나는 계속 부끄럽고 싶다. 어릴 때는 미숙함과 아쉬움을 감추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늘 부족하고, 미숙하고, 또 아쉽고 싶다. 어릴 때는 어른 처럼 보이고 싶어 화장을 했지만 크고 나서는 좀더 어려보이고 싶어 화장하는 마음으로 깊은 곳에 숨겨놨던 소년 시절의 아쉬움만 만지작거리게 된다.
필사 O
커가면서 알게 된다는 세상 물정과 현실, 한계를 되도록 모르고 싶다.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해서 바보같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말이 겸손의 너스레가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믿어서 실패할 때의 데미지가 작았으면 좋겠다. 성공이 어색하고 실패가 익숙하면 좋겠다. 시도해온 일들보다 도전해볼 다음 기회가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때가 왔을 때 그 이유를 싱겁게 나이나 세월에서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의 패배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도전할 힘도 용기도 없는 것을 굴복으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오래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들은 천천히 늙는다. 내 잘못과 부족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은 사과도 쉽게 한다.
베갯머리에서 하루를 반성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모르는 내 못난 모습도 숨기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런 밤들은 세포들이 노화하지 않고 성장한다.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내가 질투가 났다고, 미안하고 내가 부족했다고 말 할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소년이다. 나는 매일 미숙하고 질투해서 오늘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소년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일자
2024.01.01 (월)
이름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필사 X
<우리는 너무 쉽게 행복을>
행복을 바란다는 말을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행복이라는 가치 앞에서 헐값에 팔리는 애타는 마음들을 본 적이 있다. 내 이십 대의 행복은 주변 모두를 불행하게 했다. 내가 나의 행복을 추구할수록 아버지의 건강은 나빠졌다. 몇 년간을 괴로워하며 서로가 납득할 만한 행복이 있지 않을까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때 내 행복은 죄책감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아버지보다 더 불행해졌다.
내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행복은 많지 않다. 행복했던 기억 속에서 내가 했던 행동이나 상황을 재현해볼 뿐이지 행복한 감정은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웃음이나 즐거움의 호르몬이 나오는 것을 보고 쉽게 행복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문득 행복했었구나 하고 떠오르면 그것이 행복이다. 그래서 행복은 늘 결과론적이다.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도, 지금이라고 짚어줄 사람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 모두는 너무 쉽게 행복을 바라고 강요해 온 것은 아닐까.
필사 O
내가 기억하는 내 평생 동안 행복을 대단한 것으로 여기고 추앙하다 보니 행복에 대해서 어렴풋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 행복한지를 되도록 떠올려보지 않는 것이다. 공부를 하다가 내가 지금 집중을 하고 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 집중이 끝난 순간인 것처럼, 행복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맹목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 것이 좋겠다. 타인의 행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의 행복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이제 나는 그 누구의 행복도 바라지 않는다.
일자
2024.01.03 (수)
이름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필사 X
<밤벗>
밤을 즐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내일을 축내서 오늘의 아쉬움을 희석하는 사람들. 나는 밤이 되면 당신들의 밤도 나 같은지 궁금하다. 당신도 나 같은 새벽 2시 21분을 보내고 있는지.
밤에 하는 생각들은 대체로 농도가 짙다. 고요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밤의 시간. 낮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는 시간이 자꾸 도망가는 것 같은데 밤에 우두커니 있을 때는 시간이 먼저 찾아와준다. 그렇게 생각의 원액을 달이는 밤에는 하루를 복기하곤 하는데 보통은 후회로 시작해서 좌절로 끝난다. 이 과정이 아플 때가 많지만 고통도 자극이어서 관성적으로 더 큰 고통을 찾게 된다. 밤은 점점 더 길어진다.
왜 낮의 나와 밤의 나는 이토록 다른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오래 한 적이 있었다. 계절을 관통하는 신념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하루 동안은 생각의 선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밤에 생각하는 낮의 내 모습은 지나치게 수단적이고, 낮에 생각하는 밤의 나는 지나치게 이상적이기만 해서 혼란스러웠다. 두 자아가 상호보완적이면 좋았겠지만 너무나도 배타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낮과 밤의 나를 분리해서 이해하는 작업에 탐닉하는 데 반해, 낮에도 밤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밤을 꼴딱 새워야만 쓸 수 있는 편지들을 낮에 짜장면 먹으면서 쓰는 사람들을 보면 오늘 아침 지각해서 아직 떼지도 못한 눈곱이 부끄리워진다. 내가 내내 밤을 예찬하며 믿어왔던 생각의 어떤 농도가 애초에 조절할 수 있는 거였는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켜고 끌 수 있는 밤이 내가 항유하는 밤들과 같다고 볼 수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그 밤들과 낮들을 구분할까? 아니 이쯤 되면 다른 사람이 알고 모르는 것이 중요하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이것을 오늘 밤에 해볼 고민으로 남겨두고 또 밤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필사 O
밤에 그린 낮의 그림들과 낮에 적어낸 밤의 반성문들을 구태여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밤이 되어야만 밤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할 것 같다. 낮에 스텝이 꼬이면 그 스텝을 풀어내려 바보같이 밤까지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밤에 쓴 글은 그다음 날 밤이 되어야만 퇴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매일 밤 반성을 하고 후회를 하고 또 내일 같은 실수를 하겠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다짐은 밤만 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이들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냥 그렇게 하는 그들 옆에 앉아 같이 밤을 새우고 싶다. 오랫동안 다닌 사우나의 단골들처럼 익숙하게, 암묵적으로 정해진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의 모래시계를 바라보는 것. 하루가 얼마나 더러웠는지, 네가 미웠고 내가 잘했는지, 혹은 반대였는지 속으로 생각하며 모래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
동이 터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기상 시간까지 얼마나 잘 수 있는지 계산하는 순간의 얼굴은 숙면을 한 사람보 다 개운한 표정이다. 지금에서야 길었던 하루를 비로소 마무리하는 것 같은 그 표정. 3시간 뒤엔 지금의 나를 원 망하면서 인상 쓰고 일어나겠지만, 밤을 기사식당 밥공기처럼 꾹꾹 눌러 담아 보낸 지금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밤만 되면.
이지현
첫번째 필사했던 내용이 너무 공감갔다. 20대 후반이 되는게 아쉬워서 잘 못해도 좋으니 나이를 안먹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근데 책에서 말하는 청춘은 단순히 어리숙함보다도 실패하더라도 다음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나 긍정적인 에너지, 솔직함인 것 같다. 그런 해석이 굉장히 와닿았다.
블로그에 이런저런 감정을 글로 쓰는 걸 좋아하는데 밤에 쓴 글이나 편지들은 낮의 내 텐션과 달라서 낯설고 민망할때가 많다. 흔히 말하는 새벽감성이 너무 짙게 묻어있긴 하지만 그게 꼭 이상하거나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은 밤에 그런 여유가 없이 잠들어서 아쉬운데, 여유가 생기면 블로그도 다시 열심히 해보고 싶다.
김수민
작가가 행복을 좀 무겁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그렇게 느꼈다. 행복에 대해 작가와는 다른 입장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마구마구 비는 편.
막내라서 혼나도 덜 부끄러운느낌. 사회초년생이라는 딱지가 방패가 되어주는 느낌을 받아서 글이 공감 많이 갔다. 타성에 젖지 말고 나를 돌보면서 천천히 늙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을 안할 땐 밤낮이 바뀌는 편인데 그럴 때 어떤 중요한 선택에 대한 결정을 많이 내리곤 한다. 낮부터 끌어온 시간이 끝까지 끌어쓴 느낌이 들어서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젊은이들이 한번쯤 겪어봤을만한 감정을 솔직하게 적은 것 같아 좋았다.
김동영
감성이 맞고 글을 잘쓴다고 느껴졌다. 작가와는 다르게 행복을 '일상이 무탈하면 행복하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다.
부족하거나 미성숙하다고 느끼면 나이가 더 들어서 오히려 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글에서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상기하고 갈구하는 것 같았다.
내 감정이나 일과에 대해 글도 쓰고 생각 정리도 하곤 했는데 어느순간부터 그런 시간이 없어졌다. 나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게 되거나 내 감정을 회피하게 됐다. 글을 읽고나서는 내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느낌.
다음 책
김희경, 『에이징 솔로』
혼자 사는 다양한 형태나 비혼에 대한 통계, 현실적인 고민들을 다루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