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 2025.01.10(금) |
책 이름 | 태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
필사 O | "얘, 너 늙으면 젤루 억울한 게 뭔지 아냐?” 나는 할머니를 동그랗게 쳐다봤다. “주름? 아냐. 돈? 그거 좋지. 근데 그것도 아냐. 할미가 젤루 억울한 건 나는 언제 한번 놀아보나 그것만 보고 살았는데, 지랄. 이제 좀 놀아볼라치니 다 늙어버렸다. 야야, 나는 마지막에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인 줄 알았다. 근데 자주 웃는 놈이 좋은 인생이었어. 그러니까 인생 너무 아끼고 살진 말어. 꽃놀이도 꼬박꼬박 댕기고. 이제 보니 웃음이란 것은 미루면 돈처럼 쌓이는 게 아니라 더 사라지더라.” |
필사 X | 할머니는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아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희생은 아름답지만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린 참고 억누르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라 배워왔지만, 사실 아무도 자신의 자식마저 그런 인생을 살길 바라지는 않는다. 어른이란 자신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정의 달 5월이다. 그 이름답게 매번 타인을 위해 지갑을 열어왔지만 이번 5월만큼은 다르고 싶다. 올해는 나를 위해 지갑을 열 것이다. 장바구니 맨 아래로 밀린 소설책 한 권을 살 것이다. 그리고 맨 앞 장에 적을 것이다. “미루다 보면 잊는 법이야.” 나도 조금은 멋들어진 어른이 되고 싶다. |
일자 | 2025.01.13(월) |
책 이름 | 태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
필사 X | 침대에만 누우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잊고 살던 후회는 눈을 세게 감을수록 더 선명해지고 30분은 자책을 해야 마침표가 찍힌다. ‘이제 진짜 자자. 지금 자도 다섯 시간밖에 못 자.’ 절박함에 몸을 뒤척여보지만 잠자코 있던 분노가 조용히 말을 건다. “근데… 그때 그 새끼 진짜 너무하지 않았냐?” …오늘 잠은 다 잤다. (중략) 하루는 지독히도 잠이 안 와 잘 자는 아내를 깨우고 물었다. “너는 잘 때 무슨 생각해?” 아내는 자다가 하는 헛소리치곤 신선하다는 표정으로 무시하려 했지만, 찜찜한지 이내 눈을 비비고 답했다. “생각…? 생각은 무슨 생각… 그냥 따뜻하다?” “…응?”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오늘을 살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이 하는 생각이란 대부분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기에 생각이 많을수록 오늘을 떠나보내기가 힘들어진다고. 그런 이유로 많은 전문의들은 숙면을 위해 생각 좀 그만하라고 처방 노래를 부르지만 도통 그 방법만은 알려주지 않는다. |
필사 O | 그때 아내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생각? 생각은 무슨 생각… 그냥 따뜻하다?” 그간 완벽한 해결책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 불면을 한순간에 날려줄 위대한 생각만 떠올리면 지금의 문제도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생각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건 ‘더 완벽한 생각’이 아닌 ‘감각’이었다. 생각이 과거와 미래에 머무르는 시간이라면 감각은 온전히 현재를 느끼는 시간이니까. ‘따뜻하다.’ ‘벌써 봄이네.’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순간만큼은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
일자 | 2025.01.15(수) |
책 이름 | 태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
필사 X | 말투에는 그 사람이 가진 온도가 드러난다. 자신과 맞지 않는 취향에 ‘이상하다’라는 말로 거리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독특하다’라는 말로 포용하는 사람이 있다.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그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체온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맞고 틀린지를 떠나 무엇이 더 따뜻한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살다 보면 말투에 배려가 묻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이다. 너 덕분에 재미있게 놀았다. 너 덕분에 덜 슬퍼졌어. 그래도 너 덕분에 더 웃을 수 있었어, 라며 자신을 웃게 해준 소중한 경험들을 상대의 공헌으로 기껍게 돌려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하면 내가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필사 O | 요즘은 거짓말을 꽤 많이 한다. 과장 역시 자주 한다. 기분이 마뜩잖은 상황에서도 ‘독특하네!’라고 결국 감탄하곤 한다. 자존심을 부리고 싶은 상황에서는 깔끔하게 미안하다 사과해보기도 한다. 또한 가끔 주어지는 이벤트 같은 새로움들을 어차피 똑같다고 요약하기보단 ‘그래, 한번 해보자’라고 기대감을 더 많이 비춰보곤 한다. 나는 내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속이기 위해 부단히도 세상과 나에게 선언하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