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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일자
2024.09.13(금)
이름
나영웅,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필사 X
어렸을 때부터 나는 책을 좋아했다. 물론 태어났을 때부터 미친 듯이 책을 읽는 신동은 아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가 일하는 직장 근처에 시립 도서관이 있었다. 방학이면 어머니의 일이 끝날 때까지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다. 그때 나는 매일 어머니 직장 근처에 있는 도서관 어린이실에서 책을 보며 동생을 돌봤다. 방학 내내 도서관으로 출근하다 보니 어린이실에 있는 명작동화, 어린이 세계문학 같은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된 후에는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누나가 독립할 때 남기고 간 소설들을 읽었다. 고등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에서는 영어영문과를 전공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시작한 독서 토론 동아리를 8년 동안 운영해 왔다. 성인이 된 지금은 책과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필사 O
어린 시절 도서관에 가게 된 이유는 동생을 안전하게 돌보기 위한 환경적 요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은 나의 가정이다. 책을 통해 소설을 읽는 취미가 생긴 것 또한 가정이 내게 물려준 취미다. 이후 스스로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고 문학 전공을 하며 책을 좋아하는 독립된 취향으로 발전했다. 아주 사소한 환경적인 요인이 오랜 시간을 거쳐 나의 직업과 취미에 영향을 끼쳐왔다.
일자
2024.09.16(월)
이름
나영웅,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필사 X
취향은 오랫동안 상류층의 전유물로 소비되는 개념이었다. 어떤 대상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진 사람이 스스로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판단 능력이기 때문이다. 취향은 나만의 문화를 가지는 것으로 나를 위해 기꺼이 까다로워지는 행위인데 이런 문화를 갖는 것 자체가 충분한 자본이 있는 사람들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첫 월급을 받은 날로부터 5년이 지난 2018년, 나의 소득은 첫 월급의 두 배를 달성하였다. 드디어 최소 삶 유지비용과 나의 소득이 확실히 멀어진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취향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즐겨야 할지 어디에 돈을 써야 할지 어떤 소비가 나의 취향을 보여주는 소비일지 다양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소득은 사회 통념상의 고소득은 아니었다. 단지 최소 삶 유지비용보다 약간의 돈을 더 벌었을 뿐이다. 나는 그해에 처음으로 방이 두 개인 1억짜리 전셋집을 구했다. 차분히 글을 쓸 수 있는 방이 생겼고 그 방을 나의 취향으로 꾸밀 수 있는 돈이 생겼으며 주말 정도는 돈을 걱정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필사 O
오른 건 단순히 월급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사는 상품의 가격도 두 배로 올랐다. 최소 삶 유지비용이 낮은 시기에는 오직 금액과 기능만 봤었다면 이제는 구매 상품의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디자인을 고려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취향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일이 지금 사회에서는 개인의 생존에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자
2024.09.18(수)
이름
나영웅,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초록색
글씨만
필사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나 자신을 혐오하는 일은 자신의 취향을 부정당했을 때 생긴다. 이때 스스로를 되도록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 끝에 도달한 자리다. 그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비난한다면 아무도 도움을 줄 수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본의 총량을 가늠해 보고 현시점에서 사회가 나의 자본에 어떤 값을 매기는지 파악하면 나의 위치가 점차 드러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내가 도달하고 싶은 위치가 경제적 성공인지 사회적 명성인지 문화적 인정인지를 고민해보자.
천안이라는 사회에서 컴퓨터를 선물 받고 영문학을 전공해 전자책 MD와 콘텐츠 사업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아주 자랑스럽거나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주입된 사회적 성공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기준이 자리 잡고 있어 만족의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는 소중한 경험과 순간순간의 선택이 지금까지 없었던 특별한 개인을 만들어 준 것은 틀림없다. 이처럼 과거의 나를 선명히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자리를 더 소중하고 귀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취향을 사랑해 줄 준비를 마쳤다면 이제는 더 멋진 상징을 내 것으로 만드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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