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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형의 삶

일자
2024.11.01(금)
이름
김민철, 『무정형의 삶』
필사 X
지하철 티켓들이 먹통이 되었으니 바꿔달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영어로 계속 말하고, 그는 불어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대화는 점점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These tickets are not working(이 표들이 고장 났어요).”
“(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를 쏟아내는데, 고장 난 티켓으로 어느 역에서 어떻게 탔냐고 묻는 것 같았다)”
“No, No. I mean……(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고장 난 티켓을 가져가더니 검사를 하면서 점점 우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불어를 계속 쏟아냄)”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역무원은 우리를 무임승차자로 의심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이 고장 난 티켓으로 어디서 어떻게 탔는지 알아보려는 중이었다. 불어를 꺼내야 했다. 이것은 생존 불어. 여기서 우리를 구해줄 수 있는 건 오직 불어. 머리를 빠르게 돌렸다. 아는 단어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사다’는 불어로 ‘acheter’, ‘새로운’은 ‘nouveau’, ’티켓’은…… 불어도 티켓 아닌가? 자 그럼 이걸 이어보자…….
“J’achete un nouveau ticket(나는 새로운 티켓을 삽니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우리는 그의 수사망에서 순식간에 벗어났다. 그는 우리가 방금 새로 산 티켓을 확인하더니, 고장 난 티켓들을 모두 새 티켓으로 바꿔주었다.
“봤나. 장난 아니제.”
“니 불어 끝장난다잉.”
“이건 정말 내 불어 인생에 하이라이트다. 와, 진짜, 불어로 문제를 해결하다니. 와…… 내 좀 멋있네.”
500일을 공부해서 겨우 ‘나는 새로운 티켓을 삽니다’를 이야기하고는 그런 스스로를 기특해하다니. 과거 시제도 몰라서 저렇게 현재형으로 겨우 말해놓고는 기뻐하다니. 어이없게 느껴진다는 거 안다.
필사 O
하지만 계속 공부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작은 불씨에도 화들짝 놀라야만 한다.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을 잔뜩 불어넣어 그 불씨를 키워야만 한다. 어른의 공부가 그렇다. 특히나 시험이 목적이 아니고, 어떤 필요가 목적이 아닐 경우에는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희미해지기 십상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처음엔 원동력이 되어주지만, 그것이 성실성까지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방심하고 있다가는 ‘이걸 해서 뭐하나’라는 마음이 들불처럼 커져서 결국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다 태워버린다. 삽시간에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상황을 아주 많이 봤다. 아니, 아주 많이 겪었다. 그렇게 나에게 의미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산화한 배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나는 고작 문장 하나에 그토록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흥분하며 나의 기를 돋울 수밖에 없었다.
일자
2024.11.04(월)
이름
김민철, 『무정형의 삶』
필사 X
Printemps. 쁘렝떵. 봄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프랑스어로 Printemps을 발음할 때는 유난한 쾌감이 있다. 쁘렝떵. ‘렝’을 발음할 때는 목을 긁으며 거의 ‘헹’에 가깝게 소리를 내며 공기를 들이마신 후, 마지막 음절인 ‘떵’을 발음하며 입을 탁 벌리면 그 소리와 동시에 꽃이 피어나는 느낌이 든다. 무채색의 세상이 깨어난다. 흙이 꿈틀하고, 초록이 빼꼼하고, 겨우내 닫아놓은 창문이 활짝 열린다. 햇살이 눈을 찌르고, 초록과 분홍과 노랑이 회색 도시를, 장바구니를, 사람들을 뒤덮는 그런 장면들이 연이어 떵떵떵떵 폭발한다. 물론 이건 초급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끝낸 나의 제멋대로 상상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에게 그 단어는 폭발하는 봄을 담은 의성어가 되어버린 걸. 어차피 여행자는 오해로 단단히 무장한 사람. 자신이 본 한 장면으로 도시 전체를 오해하고, 자신이 겪은 한 사람으로 온 나라 사람들을 단정 지어버리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물며 단어 하나를 내 마음대로 상상하는 일쯤이야. 나는 ‘쁘렝떵’의 기운이 온 도시를 휘감은 바로 그날, 파리에 도착했다.
필사 O
봄의 파리는 처음이었다. 공항 지하철에서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쁘렝떵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땅 울렸다. 주저함이 없는 햇빛이었다. 그 햇빛 아래에서 사람들도 주저함이 없었다. 오늘 이 도시의 본업은 쁘렝떵이었으며, 이 햇빛을 받는 것만이 모두의 의무였다. 공원 잔디밭에 사람들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색색의 천을 바닥에 깔고서. 웃통을 훌러덩 벗고서. 몸의 마지막 긴장 한 톨까지 다 풀어버리고서. 햇빛이 드는 노천카페에는 빈자리라곤 없었다. 테이블 위에선 와인 잔들이 쨍그랑쨍그랑 봄빛을 튕겨냈고, 분수의 물줄기도 봄빛으로 샤워하며 차르르차르르 시끄러웠다. 봄볕에 말린 이불 같은 공기가 바스락바스락 세상을 채우고 있었고, 높다란 마로니에 나무엔 분홍 꽃, 하얀 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오늘, 이 봄을 따 먹지 않는 자, 유죄였다.
일자
2024.11.06(수)
이름
김민철, 『무정형의 삶』
초록색
글씨만
필사
아, 틀려도 되는 세상이라니. 틀려도 틀리지 않는 세상이라니. 카페 문을 하나 열었을 뿐인데 나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 도착한 것인가. 작가님의 분홍색 꽃을 따라 그리고 싶었는데, 나의 빈약한 24색 파스텔엔 분홍색이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자주색과 보라색 파스텔을 집어 든다. 애초에 색이 다르니 그림도 달라진다. 점점 작가님의 원래 그림과 멀어진다. 잘 따라 그려야지의 마음이 어느새 떠난다. 내가 선택한 색상 사이에서의 조화를 찾아서 마음껏 다른 색을 집어 든다. 노란색을 칠했다가 짙은 초록을 더하고 연두를 얹어본다. 자꾸만 내 방식의 꽃에 도착한다. 이래도 되나 주춤하다가도 작가님의 말을 되뇐다. 틀리는 건 없어요. 무슨 마법의 주문 하나를 얻은 것 같았다. 마음껏 칠하세요. 원하는 색으로 칠하세요. 그렇게 그렸다면 그 모양이 맞아요. 틀리는 건 없어요. 그런 색깔로, 그런 모양으로 살고 싶나요? 그럼 그렇게 살면 되는 거예요.
마음은 점점 가벼워져서 그림 속 꽃잎처럼 나풀댄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1등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더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의 공식은 이것과 달랐다. 행동엔 목적이 있어야 하며, 시간의 투입엔 합당한 결과가 뒤따라야 했다. 실력 향상이든 정신적 안정이든 근육 증진이든. 끝없는 상향 곡선의 세상. 어른이 된 우리에겐 실패할 기회와 시간조차 쉽지 않다. 한 번의 실패로 영원한 나락에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세상에 떠돈다. 그러니 의도가 필요하다. 실패해도 괜찮은 세상 속에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가져다놓는 기획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처럼.
내가 지금부터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거창한 무엇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동시에 아무리 이상하게 그려도 문제가 생길 리 만무하다. 이 세상에선 다만 넘치게 기쁘면 된다. 놀랍도록 순수한 즐거움이 나를 싹싹 씻겨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성공했다. 심지어 나는 “파리에서 오일 파스텔 수업을 들었어”라는 문장까지 가지게 되었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미 나는 성공해버린걸. 그럼 이 문장 안에서 마음껏 힘껏 뻗어가보는 거다. 내 마음대로 되고 싶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다. 실패를 나만의 문양으로 끌어안으며, 이상함을 나만의 색깔로 내세우며.